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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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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지원 제도의 현황과 과제
: 명저 번역 지원 사업과 정암학당

 

 

 

김성환(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

 

2019. 11.


 

 

 

1. 2018년과 2019년 한국연구재단 명저번역 지원사업 현황

 

1) 연도별 예산과 선정률

 

- 연도별 예산

연도별 예산

 

- 연도별 선정률

연도별 선정률

 

 

 

2) 세 가지 문제

 

통계 자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예산과 선정률일 것이다. 예산은 2018년 9억 4천 2백만원에서 18억 4천 8백만원으로 2배쯤 늘어났고 선정률은 2018년 35.8%에서 2019년 58.7%로 1.6배쯤 늘어났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2019년 책정 예산은 집행된 것보다 더 늘어나 있었고 선정률도 책정 예산대로라면 실제보다 훨씬 더 높아야 했다.

 

실제 선정률이 낮은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번역연구자의 오역과 평가자의 엄격함이 평가 현장에서 느끼는 점이다. 그리고 연구재단이 명저번역지원사업을 관리하는 데서도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번역연구자의 문제, 평가자의 문제, 연구재단의 문제를 하나씩 짚어보고 해결책을 생각해 보자.

 

 

 

2. 번역연구자의 문제

 

1) 명저번역 지정도서 선정

 

명저 번역에 참여하거나 참여하기를 원하는 번역연구자가 제기하는 첫째 문제는 명저번역 지정도서의 선정 과정을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명저번역 지정도서목록은 연구재단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명저번역 지원사업은 매해 지정도서 추천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미 있는 지정도서목록에 새 도서를 추가하는 과정을 거친다. 또 모든 연구자가 추천위원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도서를 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연구자 지원팀 담당자에게 유선으로 추천하거나 메일로 추천하면 심의 과정을 거쳐 지정도서목록에 올릴 수 있다.

 

선정결과를 보면 전집류가 예산 문제 때문에 지정도서목록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이 경우 전집 중 한 권을 먼저 올리고 순차적으로 다음 권을 올리라고 권한다.

 

 

 

2) 번역료

 

번역료는 명저번역 지원사업이 시작된 1990년대 초에는 200자 원고지당 14,000원 수준이었지만 현재 7,000원이 기본이고 고전어의 경우 30%를 더한 9,100원까지 책정할 수 있다. 명저번역 지원사업의 번역료 7,000~14,000원은 한국고전번역원의 15,000원 이상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사업 예산을 늘리거나 양보다 질을 목표로 삼아야 번역료가 늘어날 수 있다.

 

명저번역 지원과제 도서목록을 보면 적정번역연구비가 총액으로 책정되어 있다. 이 적정번역연구비도 원성의 대상이다. 현재 적정번역연구비는 추천위원회가 책정하고 평가자가 연구계획서의 번역 샘플을 바탕으로 조정 의견을 낼 수 있다. 한 가지 해법은 번역연구자가 신청할 때 샘플을 기준으로 번역료를 계산한 자료를 계획서에 포함해 제출하고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3. 평가자의 문제

 

1) 평가의견서

 

번역연구자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는 평가자가 평가의견서에 제시한 오역에 대한 지적이다. 번역연구자는 대체로 평가자의 오역 지적이 부정확하거나 침소봉대한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오역 지적 문제는 정답을 찾기 어렵다. 오역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도 어렵고 오역 지적이 침소봉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해법은 나중에 조금 더 설명하겠지만 공동 번역 또는 공동 교열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다. 명저번역 지원사업의 경우 공동 번역팀으로 신청하거나 번역자와 교열자가 한 팀으로 신청하게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공동 번역 또는 공동 교열 시스템을 실현하는 한 가지 길이다.

 

 

 

2) 학문적 엄격함

 

2019년 명저번역 지원사업에서 선정률이 낮아진 데는 평가자의 학문적 엄격함이 한몫을 했다. 신청자가 60점 이하의 평가 점수를 받고 탈락한 경우가 많았다. “번역 샘플이 최악이어서 도저히 선정권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없다.”는 평가자가 많았다.

 

평가자의 학문적 엄격함이 한 가지 이유로 작용하는 낮은 선정률 문제도 정답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예산 편성권을 쥔 사람들의 반응, “예산을 줘도 못 쓰냐?”는 반응을 예상할 때마다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 있다. ‘평가자가 평가는 엄격하게 하더라도 선정은 너그럽게 할 수 없을까?’

 

 

 

4. 재단의 문제

 

1) 사업 관리

 

명저번역 지원사업은 연구재단이 출판까지 관리하는 거의 유일한 사업이다. 명저번역의 결과물에 대한 평가도 출판 시장에 맡기자는 의견이 있다. 연구재단이 결과물의 질을 보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2) 예산

 

2019년 명저번역 지원사업의 예산이 늘어난 것은 제살 깎아먹기였다. 저술지원사업과 인문도시 지원사업이 신규과제를 뽑지 못한 덕분이었다. 인문사회예산은 이런 사례가 많은 듯하다. 그래서 “인문사회 예산은 생물이다”라는 자조 섞인 말도 들린다.

 

모든 문제의 해법은 예산 증액에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인문사회 분야 R&D 예산이 원하는 만큼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명저번역 지정에 더 공을 들일 수 있고 전집류 번역도 통째로 지원할 수 있다. 번역료를 증액해 공동 번역 또는 공동 교열 시스템을 강화할 수도 있다. 평가비도 인상해 침소봉대한다는 이의제기를 줄일 수 있다. 명저번역 결과물의 철저한 관리를 통해 번역의 질을 향상할 수 있고 제살 깎아먹기도 없앨 수 있다. 아예 한국번역청을 세워 외국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관리할 수도 있고 한국고전번역원이나 한국문학번역원과 같은 번역원을 분야별로 10개쯤 설립할 수도 있다.

 

 

 

5. 정암학당

 

정암학당은 서양 고중세 그리스, 로마 원전을 연구하고 번역 출간하는 학술 단체다. 2000년에 출범했고 2005년에는 가장 오래된 서양철학 문헌이며 동양의 사서삼경에 비견되는 『소크라테스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을 펴냈다. 2007년부터 플라톤 원전 번역본을 내기 시작해 2019년까지 플라톤의 30여 대화편 중 24편을 출간했다. 한국연구재단 명저번역지원사업의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길을 찾기 위해 정암학당 이사장과 연구원들을 만났다. 인터뷰 중 몇 대목을 소개한다. 이 글의 맺음말은 마지막 질문에 대한 이사장의 답으로 대신한다.

 

Q. 정암학당의 번역 방식을 설명해 주십시오.
A. 첫째, 원전을 같이 읽으면서 출간된 책에 번역자로 나갈 연구원이 초역을 합니다. 초기에는 연구원 전원이 같이 읽었으나 요즘은 팀 별로 같이 읽습니다. 둘째, 윤독하며 수정합니다. 윤독 횟수는 책의 난이도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국가』는 7년 전에 초역이 완성되었으나 아직 윤독 수정 중입니다.

 

Q. 오역 문제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A. 초역을 연구하다 보면 오역으로 보이는 것이 나옵니다. 그러면 윤독할 때 논쟁합니다. 아주 심하게. 어떤 경우에는 연구원들이 칼만 안 들었지 서로 거의 죽일 듯 논쟁합니다. 이렇게 논쟁하다 보면 오역이 아니라고 밝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Q. 뒤끝은 없나요?
A. 없습니다. 뒤끝이 있으면 그게 깡패지 연구잡니까?

 

Q. 여러 차례 윤독 끝에 번역본들이 나오면 번역자들이 서로 다르더라도 문체가 비슷합니까?
A. 여러 차례 윤독을 하는 목적은 오역을 찾아내고 가독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체가 똑같거나 많이 비슷하진 않습니다. 연구자들이 저마다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 문체가 어느 정도 반영됩니다.

 

Q. 그래도 주요 개념의 번역어는 통일되어 있겠죠?
A. 그것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문맥에 따라 같은 낱말이 다르게 번역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Q. 정암학당의 번역 시스템이 가진 핵심 특징은 한 마디로 공동 번역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함께 읽으면서 초역하고 함께 윤독하며 수정하는 거니까요. 참 부럽습니다. 연구재단의 명저번역 지원사업은 공동 번역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웠습니다.
A. 네 그렇습니다. 공동 번역이라 할 수도 있고 공동 교열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번역의 질을 높이려면 반드시 공동 번역 또는 공동 교열 시스템을 고려해야 합니다. 비용이 들더라도 번역자와 교열자가 함께 신청하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Q. 혹시 정암학당의 플라톤 대화편 번역과 교열에 원고료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계산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명저번역은 초기에 200자 원고지당 14,000원이었다가 요즘은 7,000원이 기본이고 그리스어, 라틴어 같이 어려운 원어일 경우 30% 추가해서 9,100원까지 신청할 수 있습니다.
A. 초역과 윤독을 합쳐서 200자 원고지당 적어도 20,000원은 될 겁니다. 사무실 운영료, 세미나 운영료, 식비도 포함하면 30,000원은 될 거구요.

 

Q. 좋은 번역이 이루어지려면 공동 번역 시스템 외에 또 어떤 요소를 갖추어야 할까요?
A. 공동 번역 시스템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지만 번역연구자들의 내공이 쌓여야 합니다. 같이 읽고 윤독 수정하면서 논쟁하면 그게 내공이 됩니다. 내공이 쌓인 연구자들은 격심한 논쟁을 벌이더라도 20년쯤 같이 하다 보니까 서로 신뢰도 쌓았습니다.

 

Q. 이사장님께서 사비를 들여 정암학당을 세우고 고전을 연구 번역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A. OECD 국가들 가운데 플라톤 전집이 번역되어 있지 않은 나라는 우리가 유일합니다. 유럽은 16, 17세기에 정부 주도로 그리스어, 라틴어 문헌을 번역했습니다. 일본도 19세기 말 번역국을 두고 서양 고전 수만 종을 번역했습니다. 고전 번역서는 서로 다른 전공 연구자들이 함께 보는 원재료입니다. 덩치 큰 전집들만이라도 나라가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참고〉 명저번역 지원사업 추진 경과 및 지원 현황

 

□ 추진 경과
ㅇ ('98) 동서양학술명저번역지원사업으로 시작
ㅇ ('03) 번역연구기간을 1~2년으로 확대
ㅇ ('07) 번역 업적 산정기간 폐지
ㅇ ('15) 번역연구기간을 2~3년으로 확대
ㅇ ('17) 지정도서 목록 선정을 최근 3년간 추천도서로 확대
ㅇ ('18) 명저번역지원사업 연차점검 폐지
ㅇ ('19) 중요번역도서의 우선지원을 위한 해외학술서(Top-Down) 선정

 

□ 연도별 지원과제 현황

연도별 지원과제 현황

 

□ 출간 도서 현황

출간 도서 현황

 

□ 지원 현황

지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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