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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9  2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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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독서러들의 세계]
프로 독서러들이 양서를 고르는 법

 

 

 

최승필(독서교육 전문가, 작가)

 

2023. 11.


 

양서를 고르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고 미묘한 문제다. 정평이 난 학자이자 독서가인 어떤 이를 모셔온다고 해보자. 그에게 100권의 책을 보여준 후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매겨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워낙 독서에 도가 튼 사람이므로 어렵지 않게 그 미션을 해낼 것이다. 그가 매긴 순위는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답다.

 

자, 이번에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그 방으로 들어간다고 해보자. 정평이 난 학자이자 독서가인 이가 꼽은 최고의 책을 펼쳐서 읽는다. 여러분도 그 책을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할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좋긴 하지만 최고는 아니야.’ 정도는 양반이고 ‘더럽게 재미없네.’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도저히 못 읽어주겠어.’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이도 부지기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일비재한 일이다. 현대인이라면 읽어야만 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지식도서라 큰맘 먹고 펼쳤는데 막상 읽어보니 도저히 읽을 물건이 아니었거나, 고전 명작이라고 해서 도전했는데 남는 건 왜 좋은지 알 수 없는 어리둥절함뿐이라거나 하는.

 

객관적으로 좋은 책, 양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개개인의 독서에서는 이 객관성이 붕괴된다. 독서는 책과 독자가 만나서 일으키는 일종의 화학작용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책도 독자인 나 자신이 그 책과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없는 상태라면 그 책은 라면 냄비 받침에 불과하다. 읽어봤자 아무런 효용감을 느낄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하잘 것 없는 책이라도 독자인 나 자신이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다면 그 책은 세상 그 어떤 책보다 가치 있는 책이다. 책의 가치는 읽고 이해하는 과정의 강도, 화학작용의 정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화학작용은 책을 읽는 독자의 흥미와 독서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아무리 뛰어난 독서가도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책은 읽을 수 없고, 아무리 흥미를 느껴도 내게 어려운 책은 읽지 못하는 법이다. 따라서 책을 고르는 기준은 언제나 하나일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가장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는 것. ‘프로 독서러’도 이 기준은 똑같다. 그럼에도 그들이 객관적으로 훌륭한 책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독서 이력만큼이나 성숙한 취향과 뛰어난 독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양서를 고르는 것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인 것이다. 양서를 고르는 법을 배워서 프로 독서러가 되는 게 아니라 프로 독서러가 되었기 때문에 양서를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거니까.

 

‘난 프로 독서러가 아닌데 어쩌라는 거냐.’ 답답해 할 필요는 없다.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이 아닌데 어쩌라는 거냐.’ 투덜거릴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면 된다. 오른 만큼 고도가 높아진다. 읽은 만큼 보인다. 양서를 알아보는 독서 능력을 갖는 것이 정상이라면 이 산은 야트막한 뒷동산에 불과하다. 엉뚱한 길로 가지만 않는다면 깜짝 놀랄 정도로 금세 정상에 당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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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독서가가 태어나는 방식은 딱 하나다. 푹 빠져서 읽게 되는 책 한 권을 만나는 것. 이것 말고는 독서가가 되는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런데 의외로 이 뻔한 길을 두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이들이 많다.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양서,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책을 찾아 읽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권장 도서, 추천 도서, 교과 연계 도서를 읽게 하고, 어른들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유명인의 추천 도서, 고전 명작을 찾아 읽으려고 한다. 책을 읽는 자기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이런 책 선택은 당연히 독자인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불러온다. 그렇게 선택한 책이 내 흥미, 내 독서 능력에 맞는 것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좋다고 하니 읽긴 하는데 재미도, 의미도 잘 모르겠는 묘한 책 읽기 상태에 빠지게 된다. 대개 결론은 둘 중 하나다. 시작하자마자 ‘아, 이건 아니다.’ 눈치를 채고 그 즉시 하산해 작심삼일 정도로 독서를 끝내거나, 불굴의 의지로 1년을 읽었지만 독서를 시작도 못한 희한한 상태에 빠지거나.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것은 프로 독서러들이 무슨 책을 읽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책을 고르느냐이다. 프로 독서러도 사람들이 좋다는 책을 읽을 때가 있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호기심이 일 때 그럴 뿐이다. 그들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고 직접 읽을 책을 고른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 옷 구경을 타인에게 양보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독서가에게 있어 책을 구경하고 선택하는 기쁨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독서가들은 ‘오늘 또 어떤 책을 만나게 될 것인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서가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서가에 머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고른다. 겉으로 보이는 방식은 특별할 게 없다. 책등을 눈으로 훑다가 흥미가 가는 제목을 발견하면 그 책을 뽑는다. 책의 광고판에 해당하는 앞뒤 표지를 눈으로 쓱 훑는다. 이 관문까지 통과한 책이라면 펼쳐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한다. 그리고 목차를 쓱 훑어본 후 문학 작품이라면 본문의 첫 부분을, 지식도서라면 들어가는 말의 첫 부분을 살펴본다. 그러면 느낌이 온다. ‘오, 이 책 장난 아닌데.’

 

흥미가 가는 제목을 발견하는 데서 결정을 내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 2분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제목, 앞뒤 표지, 작가까지 확인한 것으로 낙점이 끝나기도 한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하는데도 실패 확률은 거의 없다. 여지없이 만족스러운 책,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책, 심지어 객관적으로도 좋은 책이다.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자기에게 맞는 책, 좋은 책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수없이 많은 책을 고르고 읽어봤으니까. 그 말인즉슨 책을 고르고 읽어본 경험이 일천한 사람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할 거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도 해야 한다. 양서를 고르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 감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리 지루하거나 고통스러운 과정도 아니다. 좋은 책,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라 내가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책을 찾겠다, 이 목표 하나만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생각보다 쉽고 간단하게 이 감각을 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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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면 생기는 일

 

앞서 프로 독서러가 어떻게 책을 고르는지 간략하게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똑같이 따라 한다 하더라도 초보 독서가의 책 고르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걸어 들어갈 때 설레야지 작정한다고 설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목과 앞뒤 표지는 그렇다 치고 작가나 목차는 왜 보라는 건지 납득도 잘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는 것 자체가 성가신 업무로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초보 독서가는 어떻게 책을 골라야 할까. 책 제목에 흥미가 간다 싶으면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책의 첫 부분 세 문단을 읽어보면 된다. 술술 읽히면 통과, 뭔가 뻑뻑하고 어렵다 싶으면 탈락. 이렇게 단계를 대폭 줄이되 한 번에 많은 책을 고른다. 서점에서 이렇게 했다가는 돈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 도서관을 이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도서관 대출증의 한도를 꽉 채워 책을 빌린 후 하루에 한 번 책을 검토하는 시간을 갖는다. 책 한 권을 다 읽으라는 게 아니다. 딱 30페이지만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내가 고른 책이 내가 생각했던 재미있는 책인지 아닌지. 내 예상과 달리 재미없는 책이라면 30페이지까지만 읽고 자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꽤 큰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별 부담 없이 책을 고르고 확인하는 경험을 얻었고, 매일 30페이지를 읽으면서 독서 근육을 풀지 않았는가.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계속 이렇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책 고르는 과정에 성의가 있었다면 ‘30페이지만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잊게 만드는 책, 나도 모르는 새 100페이지까지 읽게 되는 책이 사흘 안에 반드시 나온다. 바로 그 책이 내가 끝까지 읽어야 할 책, 내가 고른 나에게 맞는 책이다.

 

천운이 따라 그 책이 내 마음을 뒤흔들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었다면 그 한 권으로 프로 독서러와 비슷한 심리 상태, 즉 도서관 갈 생각을 하면 설레고 빨리 다른 책을 읽고 싶은 상태가 된다. 정말 운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책 한 권 읽는 거 별 거 아니군’ 정도의 감상은 얻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책 반납 기한이 돌아오면 다시 도서관에 간다. 빌린 책을 다 검토하지 못했어도 상관없다. 싹 다 반납하고 다시 서가를 탐색하며 흥미로운 책을 찾는다. 그렇게 빌린 책들로 다시 30페이지 읽기를 한다. 이런 식으로 독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다.

 

만약 이 독서 생활을 진짜로 한다면,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야지.’ 마음을 먹었고 실제로 그런 책을 찾아내 푹 빠져 읽는다면 누구라도 독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책 읽는 재미도 재미지만 책 한 권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성큼성큼 성장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점점 더 원활해지고, 점점 더 세세히 느끼고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책을 고르는 감각도 급속도로 향상돼 나에게 맞는 책을 곧잘 알아볼 수 있다. 도서관 문턱을 넘는 재미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사람, 진짜 독서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나에게 맞는 책, 내가 푹 빠져서 읽게 되는 책이 객관적으로 좋은 책, 양서와는 거리가 멀 수 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프로 독서러도 처음에는 햇병아리 초보 독서가였다. 푹 빠져서 읽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프로 독서러로 성장한 것이다.

 

자기 언어 수준, 취향에 맞는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런 책이 독자의 독서 능력과 취향을 가장 큰 폭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프로 독서러는 객관적으로 좋은 책, 양서를 찾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런 책을 좋아하는 취향, 그런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독서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들도 ‘이 책 재미있겠는데.’ 하고 책을 고른다. 다만 그렇게 고른 책이 객관적으로 좋은 책, 양서일 확률이 높을 뿐이다. 독서의 주인은 언제나 책을 읽는 독자 자신이다. 남들이 뭐라 하건 사활을 걸고 ‘내가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 읽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책 고르는 법이고, 그렇게 고른 책만이 독자를 성장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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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에 빠지는 않을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드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인생 마지막 책인 것처럼 읽자. 독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이 책 빨리 읽고 다음 책 읽어야지, 마음먹는 순간 속독을 하게 되고, 속독을 하면 독서의 질은 급격히 낮아진다.
둘째,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생각을 읽는다’는 자세로 읽자. 실제로 글은 글을 쓴 사람이 한 생각, 그것도 엄밀하게 정제한 생각이다. ‘생각을 읽는다’는 태도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책을 깊이 읽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독서가가 된다는 것은 서가라는 생각의 바다를 여행하는 항해자가 되는 일이다. 이 여행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내 다음 여행지가 어디가 될지 나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책을 찾기 위해 서가로 걸어 들어갔을 때, 서가에 꽂힌 그 많은 책 속에서 내 흥미를 잡아끄는 책 한 권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번 여행지는 바로 너구나. 정해진 항로를 따라가는 여행이 아니라 마음의 감각에 의존하는 여행인 셈이다. 기준은 언제나 똑같다. 지금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나를 타격해 내 마음의 모양, 내 생각의 모양을 바꿔놓을 수 있는 책을 찾는 것.

 

1년쯤 지나 내가 읽었던 책들을 뒤돌아보라.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골랐을 뿐인데 그 책들 사이에서 어떤 연결성이, 묘한 맥락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그 흐름이 바로 1년간 내가 지나온 생각의 여정, 내 마음의 항적이다. 그리고 내가 처음 재미있게 읽었던 책과 내가 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의 현저한 다름도 발견할 수 있다. 처음이었다면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했을 책, 객관적으로 더 양서에 가까운 책을 읽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첫 책을 비하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때는 그 책이 내 최고의 양서였고, 내 독서 여정의 출발점을 마련해준 고마운 책이니까. 오히려 추억에 젖게 되겠지, 우리가 우리 어린 시절의 유치함을 소중히 추억하는 것처럼.

 

최승필

최승필 독서교육 전문가, 작가

독서교육 전문가이자 어린이 청소년 지식도서 작가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공독서가”라는 작은 책방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책을 쓰고, 강연을 다닌다. 쓴 책으로는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 2018), 『에밀 졸라 씨, 진실이란 무엇인가요?』(책마루, 2014), 『아빠가 들려주는 진화의 비밀, 사람이 뭐야』(창비, 2015) 등이 있다.
gongdoc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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