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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2  2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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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대한민국 출판시장]
출판계 세대교체의 현주소
- 젊은 출판인들의 불안과 그 이유

 

 

 

신동해(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장)

 

2021. 6.


 

출판업계의 노화는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10여 년 전 독서 시장을 이끌던 주력이 30대 여성에서 40대 여성으로 바뀐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단행본 출판은 대표적인 ‘사양산업’으로서 착실히 나이를 먹고 있다. 그런데 독자라는 미디어 유저의 노령화 외에, 출판업계 종사자의 노령화에 뚜렷한 증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진 않다. 단행본(일반서적) 출판계 종사자의 연령별 통계를 누적해온 〈콘텐츠산업 통계조사〉(문화체육관광부)를 봐도 출판계 종사자들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는 명확하지 않다(2018년에 갑자기 40대 이상 비율이 늘어난 것이 특기할 만하지만, 아직 2019년 통계가 나오지 않아 뭐라 해석하기가 어렵다. 또한 2014년 연령별 조사가 수록된 「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출판노조협의회)와 비교해봐도 각 연령대별로 10%가량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 통계의 신빙성 자체가 높지 않다).

 


일반서적산업 연령별 종사자 현황

 


다만 현장의 체감은 좀 다르다. “3년 차 편집자와 마케터는 산삼보다 구하기 어렵다”라는 농담도 이제 지겨울 정도이고, 서울북인스티튜트 졸업생의 절반가량이 3년 뒤엔 출판계를 떠난다는 도시전설이 낯설지 않다. 이 ‘3년 차 증발 현상’ 앞에서 선배들은 암담함과 걱정에 휩싸인다.

 

여기엔 몇 가지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먼저 출판계에 입문한 직원 입장에서 보자(가장 비중이 큰 편집자·마케터·디자이너에 한정해 서술한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던 문과 출신, 좁디좁은 취업문 앞에서 남들처럼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자니 그건 또 아닌 것 같던 차에, 드라마와 미디어를 통해서 바라본 출판 현장은 꽤 멋있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그간 읽었던 수많은 책과 문화 트렌드에 대한 지식, 또 내 손으로 내 취향을 육화할 수 있다는 기대, 좋은 글솜씨와 열정 넘치는 인상 등이 합쳐져 마침내 출판사 문턱을 넘는다. 하지만 그뿐, 곧 자신을 가르쳐줄 만한 변변한 선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수인 대리는 늘 자기 일에 치여 정신이 없고, 그마저도 조금만 깊이 물어보면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가만히 보면 이 회사 전체에 누군가를 책임지고 가르칠 만한 사람도, 여유도 없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 영역은 끝도 없이 늘어만 가고, 스스로 꽤 갖췄다고 생각했던 감각은 기획회의 때마다 반대에 부딪힌다. 책을 낼 때마다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어쩌다 조금 성공을 해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다음 책은 다시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 정신없이 책을 만들다가 3년쯤 되면, 갑자기 ‘현타’가 온다. 아니 잠깐,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내가 꿈꾸던 걸 이뤄가고 있나? 아니 그러면 돈이라도 많이 버나? 내가 여기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살 수는 있나? 그러자 사장님과 동료들 눈치 보느라 육아휴직 말도 못 꺼내고 퇴사한 과장님이 떠오른다. 또 최근에 다른 업계로 떠나거나 노량진으로 돌아간 동기들이 생각난다. 지난 3년이 너무 아깝지만, 어쩌면 지금이라도 ‘손절’하는 게 최선인지도 모른다…….

 

경영자 입장에선 이렇다. 신입사원 채용?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 출판계의 업무라는 게 도대체 매뉴얼로 만들기도 어렵고 어떤 기관에 맡겨서 교육시킬 수도 없는, 암묵지 영역이 너무 많다. 신입사원을 뽑아서 사수에게 맡겨 1-2년은 가르쳐야 혼자 책을 만들거나 전담 마케팅을 할 수가 있는데, 이젠 도무지 그럴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 작은 출판사는 애초에 여유가 없고, 큰 출판사는 갈수록 개인 실적 위주라서 신입사원을 붙이기가 어렵다. 개인별 정량평가 같은 것 없이, 팀 전체가 오순도순 막내를 키워가던 옛이야기는 20세기와 함께 사라졌다. 똑똑해 보이는 친구를 뽑아 신입사원으로 가르쳐봤자 3년 후엔 이직하거나 다른 업계로 떠나버리기 일쑤다. 출판계의 미래 같은 건 모르겠고, 그냥 당장 투입해서 연봉 대비 좋은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하지만 아직 신선한 아이디어는 스러지지 않고 열심인 3-5년 차 직원을 뽑고 싶다……. 이렇게 모두가 암탉을 얻을 생각만 할 뿐 알을 품지 않는 기현상 덕분에 3년 차 출판인들은 어딘가로 증발해버린다.

 

각자의 이런 ‘합리적’ 판단이 모여 3년 차를 증발시키는 데에 구조적 원인을 형성한다. 먼저 편집·디자인·마케팅의 숙련도 자체가 변하고 있다. 내가 ‘홍대 표지’라고 부르는, 최근 유행하는 북디자인의 경우 전통적인 디자인 문법을 상당히 위반한다. 상품디자인으로서의 최소한 요구조차 지키지 않거나(30센티미터 앞에서 봐야만 제목이 보인다거나), 예전 같았으면 인쇄 사고로 다시 제작해야 했을(본문 오른쪽 면을 백면으로 둔다거나) 경우들은 이젠 셀 수도 없다. 편집도 마찬가지다. 서문과 목차, 서론, 감사의 말과 헌사의 올바른 순서 따위는 다들 포기한 지 오래다. 어린 편집자들에게 ‘방주(傍註)’라고 말하면 올라타려 할 것이고, ‘제사(題詞)’라고 말하면 향을 피우려 들 것이다. 그래도 구성이 복잡한 책의 경우엔 선배 편집자가 잘난 체할 기회라도 있다. 나이 많은 마케터는 십중팔구 ‘감각이 구리다’라는 후배들의 뒷담화를 듣고야 만다.

 

요컨대 그간 출판계 선배들이 강조하고 배워온 수많은 노하우와 규칙들이 도전받고 있다. 본문의 앞붙이 순서를 올바르게 짜는 것보다 띠지 문구나 인터넷서점 소개페이지를 잘 구성하는 게 훨씬 중요해졌다. 최근 독자들의 감각에 맞는 굿즈를 척척 뽑아내는 후배를 선배 마케터가 이기기 힘들어졌다. 이는 시장과 기술의 변화에 반응하는 업계 내 변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기존의 편집 문법을 잘 지켜 꼼꼼하게 만든 책을 알아봐 줄 저자와 독자들이 사라지고 있다(전자책 이용의 증가도 이 현상에 일부 기여한다). 문화자본을 높이 쌓아둔 몇몇 회사 말고는, 이제는 ‘해선 안 되는’ 마케팅도 없다. 좋았던 옛날, 위대한 출판을 기억하던 깐깐한 출판인들은 또래 독자들과 함께 서서히 퇴장 중이다.

 

편집과 홍보마케팅의 외주화 역시 이 현상을 가속화한다. 이제 대중적인 출판물 상당수를 (육아노동을 전담하게 되면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인) 외주편집자가 만든다. 회사에 있는 저연차 담당자보다 선배인 그들의 노하우는 회사 내로 전승되지 못한 채 제품에만 투여된다. 마케터 역시 외부의 홍보업체를 찾아서 발주서 쓰는 게 주요 업무가 된 지 오래다. 회사 내에서 노하우를 전승해 숙련도를 높이는 메커니즘이 깨지면서,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건 모조리 외주화하는 방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제 회사에서 정직원으로 고용하고 싶은 건 꼼꼼한 편집자와 부지런한 마케터가 아니라 감각 좋은 기획자에 가깝다. 인쇄소 식자공에서 출발했던 출판업은 위대한 편집자와 마케터의 시대를 거쳐 기획자의 시대로 가는 중이다.

 

이 지점에서 기대의 충돌이 일어난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앞붙이 순서를 잘 짜는 베테랑 편집자가 감각 좋은 1-2년 차 편집자보다 더 잘 팔리는 책을 만든다는 확신이 없다. 고연차 편집자를 찾을 땐 팀장 자리가 비었을 때뿐이다. 직원들 이직도 잦다. 그러니 직원의 역량을 높이는 교육이나 투자에는 소홀하게 된다. 또 저연차 편집자나 마케터 입장에서는 ‘팀장보다 내가 더 많이 파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특별한 역량도 없어 보이는 팀장 밑에서 좋은 실적을 내봤자 온전히 자기 것으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잘해도 ‘내가 회사에 벌어준’ 것에 비해 눈곱만한 성과급이 올 뿐, 잘하는 대리라고 해서 과장보다 월급을 많이 받진 못한다. 그런 부질없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더 이상 애면글면하면서 책을 만들지 않게 된다. 팀장은 팀장대로 답답하다. 후배들은 자기가 잘한 것만 기억하고 망한 책에 대해선 쉽게 잊는다. 회사는 팀장을 맡겨놓기만 할 뿐 내가 얼마나 많은 뒤치다꺼리를 하는지 통 모르는 것 같다. 주니어 시절에 잘했기 때문에 팀장이 된 건데, 정작 팀을 관리하다 보면 책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진다. 위나 아래나 이렇게 에디터십이나 마케터십을 키울 만한 동기가 없으면 결국 시계추 직장인으로 살게 된다. 더 낫게 일할 방법을, 현재 자신의 한계를 돌파할 방법을 궁리하지 않게 된다.

 

문제는 3년 차 편집자·디자이너·마케터가 물리적으로 증발하는 일만이 아니다(저연차 증발 부분이 가장 심각한 것은 출판저작권 분야일 것이다). 업계에 남아 있더라도 자신의 업력을 갈고닦겠다는 동기와 비전이 증발하는 일이 더 문제다. 3년 차에 이른 젊은 출판인은 다른 분야로 떠날 마지막 티켓과 출판계에서의 비전을 저울질하게 된다. 엄청나게 다양해진 인접 직업군과 또래의 경쟁압력과 취직 성공 사례들, 공정성과 워라밸의 욕구 등을 생각해보면, 20-30년 전에도 늘 있어왔던 통과의례로만 치부하기 힘들다. 길은 많아졌고 뒤처지는 느낌은 강해졌다. 최저임금 등으로 겨우 밀어 올린 임금 수준과 경직된 직장 문화로는 젊고 유능한 출판인을 잡아두기 어렵다.

 

책을 잘 만들고 팔기 위한 권위와 노하우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도제식 교육을 통해 전승되며, 출판계의 그러한 부가가치에 대해 저자와 독자가 기꺼이 인정해주던 때가 지나고 있다. 이제 편집자들은 교수나 작가가 아니라 유튜브 셀럽을 찾아가 계약서를 내밀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한두 번 베스트셀러를 내고 나면 스스로 출판사를 차려버리는 식으로 출판계의 가치사슬을 우회해버린다. 많은 출판사들은 (이제는 덜 중요해진) 편집과 영업에서 자원을 돌려 기획과 마케팅 경쟁력을 높이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 내 직급과 대우의 틀은 여전히 연공서열의 성격을 띠고 있고, 이 간극에서 선후배 간, 경영진과 직원 간의 역할과 기대가 어긋나고 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던 문학청년이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기꺼움에 모든 걸 말없이 참아내던 시대가 아니다.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 가장 유능한 사람들부터 떠날 것이다.

 

원인이 복잡하니 화끈한 해법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서울북인스티튜트 지원 경쟁률이 해마다 높아지고 출판업계에 대한 이미지가 과장된 형태로나마 긍정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2019년 ‘출판사 연봉 공개’ 사례에서 보듯이, 불만은 화약처럼 누적되고 있고 청년들은 끊임없이 다른 업계와 견주어 보고 있다. 중후장대한 해법을 알 수 없기에,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지점 몇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첫째, 육아휴직의 문제다. 직원이 정당하게 신청했을 경우 거부할 수 없는 법적 의무조항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영진과 직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료들의 업무 부담 문제, 기혼-미혼 간의 문제 등도 얽혀 있다. 특히 작은 출판사의 경우 큰 부담이 되겠지만, 단행본 출판 인력의 상당수가 여성이며 이 육아 문제로 베테랑 직원의 경력이 단절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문화를 더 전향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둘째, 공통 교육의 문제다. 작은 출판사는 물론이고, 상당히 규모가 있는 출판사 역시 직원들의 역량 교육에 별다른 투자를 못 하고 있다. 돈과 시간 문제이기도 하지만, 교육 역량 자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마다 다른 암묵지 영역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제는 출판사별 편집 원칙 같은 것도 그리 선명하지 않으니) 공통의 편집·디자인 매뉴얼 같은 것을 출판진흥원 같은 곳에서 제작해 정기적으로 개정해나가면 어떨까 한다. 『열린책들 편집매뉴얼』의 확장판 같은 것 말이다. 현존하는 몇 가지 매뉴얼들은 얕은 깊이에서 그치고 말아서 현장 사용에 그리 도움이 되질 않는다. 또 개별 출판사에서는 최적의 강사를 찾아 교육을 맡기기도 어렵다. 진흥원 같은 곳에서 최적의 필자를 찾아 고급 노하우를 텍스트 형태로 고정하고, 아울러 무료 온라인 강의로 만들어두면 물어볼 선배 없는 저연차 편집자·디자이너들에게는 얼마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베테랑 편집자·디자이너를 고용해 ‘온라인가나다’ 비슷한, 실시간으로 곤란한 점들을 물어볼 수 있는 서비스도 생각해볼 만하다. 취업 전의 6개월 과정이나 몇 주간의 재직자 외부 교육도 좋지만, 가장 절실하고 또 피와 살이 되는 건, 당장의 문제를 두고 선배가 정확히 타점을 쳐줬을 때의 ‘돌파’다.

 

셋째는, 연공서열 체제의 변화다. 시장에서 가장 비싸지는 재능은 기획력인데 현실에선 직급별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따르고 있는 데서 괴리가 생긴다. 경영공급자 중심의 연공서열을 해소하는 한편, 고실적 직원이나 팀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할 수 있는 업무-실적 중심 임금 체제로 가야 한다. 또 지금은 책을 잘 만들고 잘 파는 직원을 뽑아 팀장을 시키고 있는데, 관리 역량은 또 다른 전문 역량이기 때문에 팀장 전환에 실패하는 경우 본인에게도 회사에게도 오히려 좋지 않게 된다. 실적을 증명해온 고연봉·고연차 직원들이 정년퇴직할 수 있는 전문가 트랙이 있으면 후배들은 더 명확한 비전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같이 학습하고 결과에 책임지면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획과 예산에 상당한 재량을 가진 소규모의 팀(마이크로 임프린트), 이런 형태가 앞으로의 출판에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 통장이 채워진다면, 어느 분야고 가장 큰 보상은 ‘똑똑하고 마음 잘 맞는 사람들과 서로 배우고 그것이 실적으로 연결되는 보람’이다. 과거 영화나 연극 분야가 놀라운 박봉에도 불구하고 젊은 영혼들을 끝없이 붙들어두었던 그 매력이 무엇이었는지를 한번 돌아볼 때다.

신동해(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장)

2001년 얼떨결에 출판계에 입문했다. 학술서 편집을 시작으로 인문사회, 경제경영, 자기계발 분야에서 고배와 감로를 배부르게 마셨다. 똑똑하고 너그러운 동료들과 카피를 궁리하는 재미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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