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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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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싸다 vs 비싸다]
우리의 책값에는 오해가 있다

 

 

 

서동민(가가책방 대표)

 

2022. 6.


 

간단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당신에게 책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책은 생업의 본질이거나 수단일 것이고, 배움의 창구 혹은 정보의 서랍, 어쩌면 심심풀이거나 공감, 깨달음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나에게 책은?’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건 자신의 위치나 상황에 따라 책을 활용 혹은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 대답에 따라 다음 이야기가 의미를 얻거나 잃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나에게 책이 무엇인지’ 간단하게나마 대답이 떠올랐다면 시작해 보자.

 

익숙한 이야기겠지만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을 끌어낸다고 한다. 이제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소비자에게 책은 왜 비싼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앞서 던진 “당신에게 책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이 글을 읽는 이에게 던진 질문인 동시에 ‘책은 왜 비싼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짧은 경력이나마 출판사에서 일했고 10년 넘게 글을 쓰고 있으며 적극적인 독자이면서 상위 한 자릿수 비율의 소비자였기에 할 말이 많았던 질문이다. 너무 익숙하기에,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한 주제이기에 쉽게 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멀리 가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답을 적어보려고 시도할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더니 결국 ‘우리도 다 이유가 있고, 우리도 힘들고’ 하는 마음의 소란이 잠재울 수 없을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책은 왜 비싼가?”에 답하는 글을 쓰기까지 지나온 생각의 지점들을 짚어두기로 한다.

 

도서 이미지

 

먼저, 책을 사고 읽는 사람들을 나눠 봤다. 소비자인가, 독자인가, 구매자인가. 책을 소비하는 사람도 많다. 표지가 예뻐서, 사은품이 마음에 들어서 같은 이유가 대표적이다. 혼자 읽고,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고, 글로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선물용으로, 출판사를 응원해서, 작가의 팬이라 구매하는 이들도 있다. 정확히는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책마다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고 책값이 비싸다거나 적당하다거나 오히려 저렴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 지점을 뭉뚱그려서 답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오히려 책값이 절대 비싸지 않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출판계, 책의 미래를 위해서는 값을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무시하지 않았다. 책을 읽는 방식이 반드시 도서의 직접 구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염두에 뒀고, 내국인의 평균 독서량과 연간 도서 구매 금액과 외국의 사례를 비교하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이후에야 비로소 “소비자로서 나에게 책은 왜 비싼가?”에 답할 수 있는 마음이 됐다.

 

출판 불황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이후에 단 한 번도 불황이 아닌 적이 없었다는 농담 아닌 얘기가 최근에는 유사 이래 최대 불황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해외의 평균 독서량, 독서인구 수와 비교하며 한국인의 독서 무관심을 문제 삼는 기사도 이제는 식상하다. 인구 구조와 여가의 비중,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경로와 콘텐츠의 다양화, 영상 콘텐츠 시장의 확대 등 이 시대의 거의 모든 것이 도서 시장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양 산업, 비인기 시장이라며 쇠퇴와 축소를 받아들이기엔 책이 지닌 가치와 책을 향한 애정이 너무 크다. 책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세계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어린이에게 스마트폰과 미디어 콘텐츠 노출을 금지하거나 자제하는 게 낫다는 다양한 연구가 쏟아진다. 하지만 그러한 연구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과 미디어 콘텐츠의 필요성과 매력을 멀리하기는 어렵다. 시대가 변하면서 콘텐츠도 변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변했다. 책 전체를 천천히 읽거나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기보다 이미 다 읽은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거나 유용한 내용을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에 끌리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출판업계가 책을 구매하는 사람을 소비자로 보는 것처럼 소비자도 책의 종류나 분야와 무관하게 책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다름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무심코 동일 선상에 두고 생각해버리곤 한단 이야기다. 일정 시대, 기간에 특히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거나, 저자의 스타성에 기대거나, 작가만의 비법이나 정보가 희소한 경우 책값이 비싸질 수 있는 게 당연하다. 내용과 작가에 관한 관심이 없거나 적은 상태에서 책의 정가만을 보고 비싸다거나 책이 많이 비싸졌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자면 독립출판물은 일반 출판물과 비교하면 그 내용의 체계성이나 만듦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독립출판물을 즐기는 이들은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끌리기에 구매한다. 인쇄 수량이 적고 수작업 혹은 독특한 정체성이 담긴 콘텐츠를 담기에 책값이 더 비싸게 느껴질 수 있음에도, 고려하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공감이나 관심이 없거나 적다면 일반 상품과 도서를 비교해서 이야기하면서 비싸다고 말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즐겨 읽는 책의 분야나 읽는 방식, 활용법의 다양성에 따라 책값이 비싸거나 적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너무 비싸게 느껴졌지만, 작가와의 북 토크에 참여할 기회를 얻고 친필 사인까지 받게 된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독서는 휴식, 자기만의 시간, 혼자 있는 시간과 쉽게 연결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기회를 얻거나,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거나, 글로 감상을 남기거나,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모여 느낌과 생각을 나누며 이해를 넓히고 감정을 공유하며 견해를 바로잡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책값이 문제 되는 일은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한국 사회에는 하나의 풍조가 있다. 무언가를 평가의 지표로써 활용할 때 절대적인 수량에 큰 의미를 두는 풍조다. 한 해에 수백 권에서 수천 권의 동화책을 읽는 어린이 독서왕을 생각해 보자. 어른도 그렇듯 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들도 유난히 좋아해서 매번 읽어달라고 하는 책이나 여러 번 읽는 책이 있다. 자라면서 더 많은 책을 갖고, 읽게 된 후에도 여전히 소중하게 기억하는 책들이 많아질 수 있다면 책이 비싸다는 생각도 덜어질 것이다.

 

출판업계 일각의 견해겠지만 어떤 이들은 도서를 공공재 혹은 미래 유산처럼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가장 두드러진 사건이 도서정가제 강화 시행이다. 한국의 도서정가제 역사는 2003년에 시작됐다. 처음 도입의 취지는 일반 상품과 다른 출판시장의 특수성과 도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출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작가나 출판사의 유명세 외의 경쟁력을 갖기 힘들고, 공정을 간소화하거나 개량함으로써 수익 구조를 향상하기도 어렵고, 애초에 누구나가 소비하는 상품으로써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닌 ‘독서인구’라는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없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제도적으로 보완하고자 한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나라, 정부의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작고 살아남기 어려운 자식이지만 보호하고 키워나갈 가치가 충분한 존재라는 얘기다. 그런 가치에도 불구하고 출판업계는 늘 불황이었고, 최대 불황이었고, 단군 이래 역대급 불황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다. 불황이었기에 할인이 흔해졌는지, 할인이 흔해져서 더 큰 불황으로 이어졌는지 선후 관계가 분명하지 않지만, 도서출판 생태계를 살리고 문화를 이어가기 위한 처방으로 2014년 도서정가제가 강화 시행됐다. 출간일을 기준으로 할인 비율을 낮췄던 이전 조치보다 더 강화되어 모든 도서에 대한 할인 규제가 시작된 것이다.

 

소비자, 독자가 책값을 비싸다고 느끼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도서정가제 강화 시행이다. 일부 출판 관계자나 도서정가제 강화 시행 추진 과정의 주요 참여자들은 지금도 ‘정당했고, 필요했고, 효과가 있다’라며 여러 지표를 제시한다. 하지만 정작 독자들이 느낀 배신감, 상심의 이유는 도서정가제 강화 시행의 필요성이나 기대 효과를 부정하기 때문이 아닌 추진 과정에서의 불협화음과 논란을 해소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이 더 크다. 그 불통 성격의 과정에 이어 시행 이후 지켜지지 않은 적극적인 도서 재정가 등의 약속은 책값을 더 불합리하고 비싸다고 인식하게 만들어 버렸다. 할인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사람에게 할인 시대에 반값으로 구매할 수 있던 도서를 재정가 과정 없이 정가에 구매하라고 이야기하는데 비싸지 않다고 느끼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도서의 할인 판매가 문제라고 정의하고 도서 할인 판매만 규제하다 보니 도서정가제가 독자와 소비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책값을 비싸게 만든 나쁜 제도가 되고 말았다. 일부 관계자는 도서정가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무지와 몰이해의 결과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분노하며 거부하는 건 모든 소비자의 아주 기본적인 권리다.

 

출판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인 출판사와 유통사의 간의 비용 부담, 작가의 인세 구조, 온라인 서점의 무료 배송과 지역 서점의 생존 문제까지. 자체적인 내부 문제 해결에는 소극적이면서 여전히 독자의 책임과 가치에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는 듯한 모습이 쓸쓸할 뿐이다.

 

독자 이미지

 

책값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 비싸거나 적당하거나 저렴해질 수 있다. 흔히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는 그 가치를 발견하고 증명할 수만 있다면 영수증에 찍히는 물리적인 숫자가 책을 사지 않는 이유가 되는 경우는 줄어들 거라는 이야기다.

 

출판사도 유통사도 서점도 결국 수익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업체다. 그래서 다양한 이해 추구 수단을 마련하고 더 많은 책을 팔기 위해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을 거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독자도 안다.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생각도 있다. 독자란 그런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책의 미래를 볼모로 현재의 부담을 온전히 소비자가 감당하기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지 않는 게 첫 단추가 아닐까.

 

독자와 출판사, 소비자와 책값은 인식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오해가 있다.’ 그렇기에 책을 사는 사람은 늘 책이 비싸고, 책을 쓰는 사람은 빈곤하기 쉽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고민이 많아지는 것이다. 거기다 책을 옮기고 보관하는 사람들, 파는 사람들의 고민까지 더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결국, 소비자에게 책값이 비싼 이유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거의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사라져도 정말 책이 가치 있고 필요한 것이라면 여전히 필요한 책은 세상에 나올 것이다. 서점이 사라진다 해도 책은 돌고 돌 것이다. 공공도서관이 더 흔해지고 장서가 많아진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더 많은 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야 조금 불편하고 어색하겠지만 의지의 독자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늘어놓는가. 업계가 독자를 소비자로 바라보고 대하는 한 언제까지나 책값은 비쌀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독자를 출판 산업을 지탱하는 소비 주체로 생각하는 한 언제까지나 책값은 비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위해 책이 존재한다. 사람이 있어서 책이 있다. 많은 책이 이야기하듯 인식이 변하면 태도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달라진 태도를 사람들은 알아차린다.

 

책을 사면서 비싸다고 이야기하거나 비싸다고 이야기하면서 책을 사지 않거나 하면서 소비자들은 제 몫을 감당하는 중이다. 관계자 여러분, 당신의 차례다.

서동민

 

서동민(가가책방 대표)

충청남도 공주에서 ‘오랜 새로움’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가가책방이라는 작은 책방을 운영한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혼자 읽는 시간이 많았으나 서울 생활을 하며 경험한 다양한 독서모임에서 대화와 이야기의 가치를 배웠다. 지금은 고전을 주제로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공주와 주변 지역 사람들을 만난다. 브런치에 지역에서의 삶과 일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
homowanders@naver.com
https://brunch.co.kr/captaindr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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