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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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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싸다 vs 비싸다]
판매량과 얽혀 있는 책값의 딜레마

 

 

 

이부연((주)스몰빅미디어 대표)

 

2022. 6.


 

저울 이미지

 

우리는 경제학 시간에 어떤 물건의 가격이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배웠다. 다시 말해 소비자는 가급적 물건을 싼 가격에 사려고 하고 생산자는 가급적 물건을 비싼 가격에 팔려고 하는데 그 둘의 욕구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가격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최초로 물건값을 매기는 주체는 생산자이다. 생산자는 먼저 자신이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계산할 것이다. 그것을 원가라고 한다. 여기서 출판사를 생산자라고 한다면 출판에 드는 원가로는 디자인비, 용지비, 인쇄비, 물류비, 인건비 등이 있다. 생산자가 가격을 정할 때는 최소한 그 원가보다 비싸게 매겨야 이익이 생긴다. 그렇다면 현재 책에 매겨진 가격은 최소한 출판사가 그 책을 만드는 데 들인 원가보다는 높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왜 그런지는 뒤에 다시 설명할 것이다).

 

그런데 출판사가 이렇게 원가에다 적절한 이익을 붙이고 가격을 매겨서 책을 시장에 내놓고 난 다음에는 출판만의 특수한 현상이 발생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보통 어떤 물건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을 매겨서 시장에 내놓는데 기대보다 수요가 많으면 실판매 가격이 올라가고, 반대로 기대했던 것보다 수요가 적으면 실판매 가격이 내려간다. 그런데 책값은 그렇지 않다. 책값은 수요가 많아진다고 해서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고, 수요가 적어진다고 해서 가격을 마음대로 내릴 수도 없다. 그것은 바로 도서정가제 때문이다. 현재의 도서정가제에서는 어떤 책에 대한 수요가 많든 적든 가격을 다시 정해서 시장에 내놓으려면 출간된 지 최소 12개월이 지나야 한다(그것도 다시 정한 가격 그대로 파는 것이지, 할인을 해서 팔 수는 없다).

 

여기서 잠깐 정가란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정가의 의미는 ‘상품에 대한 제조업체의 권장 가격’이다. 그런데 몇십 년 전에는 그 의미가 좀 달라서 ‘권장 가격’이 아닌 ‘정해진 가격’을 뜻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 상품에 대해서는 정해진 가격대로 팔지 않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으며, 할인을 해서 싸게 파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생각하여 제재를 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공재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상품에서 정가란 ‘권장 가격’을 의미한다. 즉 ‘이런 정도의 가격으로 팔면 좋겠다’는 것이지 ‘이 가격으로 팔아야 한다’는 강제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제조업체가 정가를 정해 상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도매상이나 소매상을 거치는 과정에서 수요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상품의 가격이 권장 가격보다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즉 정가란 말 그대로 권장하는 가격일 뿐이며, 도매상과 소매상을 거치면서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실제 가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출판업에서는 책에 대한 정가를 ‘권장 가격’이 아닌 ‘정해진 가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에 대한 이해를 하려면 온라인 서점이 등장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최근 출판 대국인 일본의 도쿄 간다 진보초에서 14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산세이도 서점이 일시 휴점에 들어간다는 소식으로 출판계가 술렁였다. 뉴스에서는 그 원인을 독서 인구 저하와 전자책 비중의 증가로 꼽고 있지만, 그보다는 오프라인 서점보다 온라인 서점에서의 책 구매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동네 서점으로 불리는 오프라인 서점의 쇠퇴는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궤를 같이한다. 1999년 4,595개였던 동네 서점은 2017년 2,050개로 절반 넘게 줄어들었으며 2019년 1,976개까지 줄어들었다. 그런데 동네 서점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은 온라인 서점이 등장하여 덩치를 키워갔던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현재 온라인 전문서점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예스24의 매출액은 6,500억 원 정도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서점 모두를 보유하고 있는 교보문고에 맞먹을 정도이다. 게다가 교보문고 또한 2021년 전체 매출액에서 온라인 매출액이 3,795억 원으로 오프라인 매출액 3,011억 원을 넘어섰다.

 

도서정가제의 등장은 이런 상황과 맥락이 이어져 있다. 1990년대 후반 예스24, 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의 등장은 출판계의 작은 사건에 불과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전자상거래의 등장은 출판계에도 영향을 끼쳐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온라인 서점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백 개가 될 정도로 난립한 온라인 서점들 입장에서는 우선 고객(독자)에게 판매할 물건, 즉 책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전자상거래에 익숙하지 않았던 출판사들은 거래에 문제가 생길까 봐 온라인 서점에 대한 책 제공을 망설였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들은 출판사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출판사에 유리한 거래 조건을 제시하며 판매할 책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온라인 서점이 출판사에게 제공한 당근은, 출판사로부터 공급받는 책의 가격(이를 보통 ‘공급률’이라고 한다)을 오프라인 도소매상보다 높여 주거나, 책의 구매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해 주거나, 자사와 계약한 출판사만을 대상으로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해 주는 것 등이었다. 당시 출판계는 오프라인 도소매상과 어음을 통한 거래가 많았는데, 어음은 부도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금 결제는 출판사에게 특히 달콤한 당근이었다.

 

하지만 모든 전자상거래가 그렇듯 초반에는 생산자(출판사)에 유리하게 보였던 조건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역전되고 만다. 처음에는 팔 수 있는 책이 없어서 출판사에 굽실거렸던 수많은 온라인 서점들이 몇 개의 덩치 큰 온라인 서점으로 정리되고, 독자들이 온라인 서점으로 급속히 이동하자 을의 입장이었던 온라인 서점이 이제는 갑의 입장이 되었다. 독자들은 어디서든 노트북이나 PC만 있으면 손쉽게 책을 구매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배달을 받을 수 있으면서 가격까지 싼 온라인 서점에 환호를 했고, 오프라인 서점의 매출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독자들이 오프라인 서점에서 온라인 서점으로 급격하게 이동한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책 가격이 싸다는 것이었다. 업종을 불문하고 가격 할인은 마케팅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이고, 이 점은 출판업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서정가제가 없었던 상황에서 온라인 서점은 책값 할인을 무기로 적자를 보면서까지 독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오프라인 서점에서 온라인 서점으로 이동하는 독자들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이로 인해 오프라인 도매점과 소매점(동네 서점)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온라인 서점과의 계약을 통해 매출이 늘어난 출판사들조차 자신들이 결국엔 을의 입장이 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온라인 서점에서 할인하는 책들은, 할인을 하지 않는 책들보다 수요가 훨씬 컸다. 그로 인해 할인하는 책들이 더 많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불러오는 강력한 노출 효과로 할인하는 책들이 더 많이 팔려나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갈 수 있는 책들은 그 개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격을 할인해서 파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더 많이 점유하기 시작하자 출판사 입장에서도 위기감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온라인 서점은 계속해서 책값 할인 정책을 확대할 것이고, 그럴 경우 출판사는 온라인 서점에 책값을 더 깎아서 납품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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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프라인 도소매상의 급격한 매출 감소와 출판사의 위기감이 도서정가제를 탄생시켰다. 처음 출판계에서 도서정가제를 도입하려고 하자 한창 주가를 올리던 온라인 서점은 강하게 저항했다. 도서정가제가 시장 원리에 위배되고, 책을 더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독자들의 선택권을 없애는 것이라며 자사 독자들을 대상으로 ‘도서정가제 반대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2003년 최초로 도서정가제가 도입되었다.

 

그런데 2003년 도입된 도서정가제는 반쪽짜리 도서정가제에 불과했다. 당시의 도서정가제는 온라인 서점만을 적용 대상으로 했으며, 무엇보다 출간된 지 1년 이내인 책에 대해서만 10%까지 할인하여 판매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말로 출간된 지 1년이 지난 책은 온라인 서점이 임의대로 가격을 정하여 판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은 1년이 지난 책들 가운데 대기 수요가 있는 책들을 대폭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전략을 가져갔고, 그로 인해 싼 가격에 할인 판매되는 책들이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당수를 점유하는 일은 지속되었다. 결국 불완전한 도서 정가제의 도입으로 오프라인 도소매상의 매출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했으며 쇠락은 이어졌다.

 

온전한 의미에서의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것은 2014년이었다. 이때부터 신간과 구간 모두 최대 10% 이내에서만 할인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러한 온전한 의미에서의 도서정가제 도입은 늦은 감이 있었다. 오프라인 도소매상은 이미 거의 반 토막이 난 상태였고, 몸집이 커진 온라인 서점 입장에서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오히려 무료배송 정책으로 이익률이 크지 않았던 온라인 서점 입장에서는 도서정가제가 이익률을 제고(提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도서정가제의 변천에 대해 길게 언급한 것은, 도서정가제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는 논쟁을 떠나, 책값이 책의 판매량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온전한 의미의 도서정가제가 만약 온라인 서점이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다면 우리는 지금의 예스24나 알라딘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도서정가제는, 처음에는 그 타깃이었던 예스24와 알라딘을 보호해 주는 측면마저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온라인 유통사가 등장하려면 반드시 필요로 하는 할인과 공짜라는 가격 정책이 도서정가제로 인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도서정가제는 분명 오프라인 도소매상의 몰락을 막아주는 최후의 보루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보루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출판사는 가격 전략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그에 대해 얘기하려면 먼저 현재 출판 시장의 발행 규모를 먼저 언급해야 할 듯하다. 과거 한때 4,000부에 육박했던 평균 초판 발행부수는 현재 거의 1,000부대로 곤두박질친 상태다. 발간되는 책의 종수는 연간 7만 종에 이를 정도로 폭증했으나 출판계의 전체 매출액은 정체돼 있기 때문에, 평균 초판 발행부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초판만을 팔아서 이익을 낼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든다. 초판은 재판에는 들어가지 않는 디자인비, 편집비, 번역비, 일러스트비 등의 원가 비중이 높기 때문에, 현 출판 시장의 가격 구조에서 초판만을 팔아서는 이익을 내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더 걱정을 하게 만드는 것은 1,000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초판조차 다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즉 1,000부를 찍었다는 것은 1,000부가 다 팔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1,000부도 못 팔고 있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러하니 출판사로서는 고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출판사가 책의 가격을 정할 때는 앞서 얘기했듯 원가에다 이익을 덧붙여 정하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출판사가 원하는 대로 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만약 200쪽짜리 에세이를 출간하는 데 드는 비용이 권당 2만 원이라고 해서 이익 2,000원을 붙여 초판의 가격을 2만 2,000원으로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다른 업종에서도 그렇듯 모든 상품의 가격은 경쟁 상품이나 유사 상품과의 비교를 통해 적정선에서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세이 책의 경우 보통 200~250쪽 내외의 책들이 1만 원에서 1만 5,000원 사이에 팔리는데, 원가가 높다고 나 혼자 2만 2,000원의 가격을 매긴다면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물론 책이 특별하거나 저자가 특별하다면 시도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책을 만드는 데 따르는 원가 비중은 계속 오르고 있다. 용지를 제공하는 제지업체는 해마다 서너 차례 가격을 인상하고, 인쇄비와 제본비도 적게나마 꾸준히 오르고 있다. 물론 인건비도 계속 상승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 또한 상승된 원가에 맞춰 책값을 올리는 것이 정상이겠지만(실제로 책값이 조금씩 오르고 있기도 하지만), 초판만을 팔아도 이익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책값은 여전히 아니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출판사가 가져갈 수 있는 최선의 가격 전략은 독자들이 구매를 포기하지 않을 수준에서 가격을 최대한 높게 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분야의 책 가격이 1만 5,000원과 1만 6,000원 사이에서 형성돼 있다면 1만 6,000원으로 가격을 매기거나 1만 6,500원 정도로 조금 더 높여 보는 것이다. 독자들은 책만 마음에 든다면 1,000~2,000원 정도는 크게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필자의 소견으로는 구간에 대해서는 도서정가제를 어느 정도 완화해 주는 것이 출판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도서의 할인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에 영향을 주어 출판 시장이 혼탁해지고, 오프라인 도소매상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면, 출판사가 직접 할인해서 파는 것 정도로 용인을 해주면 어떨까. 출판사 입장에서는 초판을 찍어놓고 다 팔지 못하는 책들이 상당수 있고, 그런 책에 대해서는 가격을 할인해서 파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독자의 수요가 없는 책이 가격을 할인하다고 해서 잘 팔리는 것은 아니겠으나 가격을 싸게 해주면 얼마라도 더 팔려서 재고를 소진할 수 있는 책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소진되지 못한 재고는 자원의 낭비이고 환경을 훼손하기까지 한다).

 

이제는 모든 상품을 온라인 마켓은 물론이고 SNS를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또 능력만 되면 생산자(출판사)가 직접 온라인과 SNS를 통해 얼마든지 상품(책)을 판매할 수도 있는 시대다. 이렇게 변화된 시대에 도서정가제가 출판계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이부연((주)스몰빅미디어 대표)

북이십일, 한국경제신문사,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경제/경영, 자기계발, 인문, 역사, 과학, 문학 등 다양한 성인 출판 분야의 편집 및 기획을 담당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출판 기획을 주제로 강의한 바 있으며, 현재는 (주)스몰빅미디어 대표로 재직 중이다.
sonlov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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