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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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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의 대공습]
챗GPT가 범용될 때의 출판문화 예측 시뮬레이션

 

 

 

김홍기(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본부장)

 

2023. 04.


 

들어가며

 

챗GPT(ChatGPT)는 오픈에이아이(OpenAI)사가 2022년 11월 30일 공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으로, OpenAI에서 만든 대규모 인공지능 모델인 ‘GPT-3.5’ 언어 기술을 기반으로 시작했다. Chat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GPT)와 Chat의 합성어이다. 다양한 지식 분야에서 상세한 응답과 정교한 답변으로 인해 집중 받았지만, 정보의 정확도는 중요한 결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 출처: 시사상식사전, 위키백과

 

세간의 화제를 넘어, 각종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인간(사용자)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을 제공하는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는 이제 수익 사업에 활용될 정도로 중요한 도구로 공존하기 시작했다. 앞의 챗GPT의 정의에 등장한 ‘부정확성’이라는 결점도 2023년 3월 14일에 오픈AI사가 발표한 GPT-4(챗GPT 4.0) 업그레이드 버전에서는 더 이상 핑곗거리가 되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챗GPT4.0 서비스에서는 기존 수천억 개의 매개변수*를 100조 개까지 늘렸다는 추측도 무성하다.

 

* 매개변수: 몇 개의 변수 사이의 함수관계를 정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또 다른 하나의 변수. 챗GPT 세계에서는 인공지능의 학습을 통해 도출된 값을 의미하며, 해당 매개변수가 많을수록 AI 모델의 성능이 좋아진다.

 

이번에 발표한 신형 GPT-4.0 모델은 기존 GPT-3.5 모델의 읽고 쓰는 능력을 획기적으로 뛰어넘어 내용을 이해하고, 행간의 보이지 않은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까지 겸비하여 전문 자격시험 등에서 인간 수준의 능력에 비로소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8,000단어를 처리하던 GPT-3.5가 미국 변호사 시험, 과학 경시대회 등에서 합격선을 아슬아슬하게 뛰어넘는 수준이었다면, 현재의 64,000단어를 처리할 수 있는 GPT-4.0은 상위 1% 수준의 성적을 낼 수 있고,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포함한 24개 언어를 추가로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논문이나 문학 작품을 읽고, 요약하고, 감상하는 능력을 뛰어넘어 이제는 ‘이미지’를 분석하여 형이상학적으로 감상하거나, 인간이 원하는 답을 도출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한다.

 

특히 월 20달러(약 25,000원)의 유료 서비스 플랜을 오픈AI사가 내놓으면서,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챗GPT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이미 현지에서는 GPT-4.0 이후의 모델 개발이 끝나간다고 할 정도로, 이 혁신적인 인공지능 서비스의 잠재성과 성장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챗GPT 4.0을 활용한 도서 요약 예시 화면(한글)

챗GPT 4.0을 활용한 도서 요약 예시 화면(한글)

 

 

애플의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100배를 뛰어넘을지도 모르는 파급력과 영향력을 지닌다는 이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를 바라보는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아니 정말 위협적이다. 최종 소비자로선 신기하고 편리한 하나의 서비스로서 행복회로를 돌리며 바라보겠지만, 당장 챗GPT가 책의 저자로 등장한 충격적인 현실을 출판문화사에서 벌어진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길 수는 없어 보인다.

 

본 칼럼에서는, 아직 정확하게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실제로 챗GPT가 자리를 잡고 실생활과 업무 현장에서 범용되기 시작했을 때 출판문화 여러 분야에서 벌어질 변화에 관해 탐구해보고, 경계해야 할 부분과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를 간략히 점검해본다.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의 대상

 

챗GPT를 만든 오픈AI사에 대규모 투자를 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인터넷 브라우저 ‘엣지(Edge)’와 사무 환경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MS 오피스’ 프로그램 군에 ‘코파일럿(Copilot)’이라는 기능으로 챗GPT 서비스를 기본으로 탑재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존하는 최고의 협업 도구로 인정받는 ‘노션(Notion)’ 역시 “노션 AI” 서비스를 이미 도입해 기존의 똑똑한 챗봇 수준을 뛰어넘어,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적재적소의 서식이나 복잡한 템플릿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픈AI사의 또 다른 인기 서비스 ‘달리2(DALL-E2)’는 인간의 자연어를 그대로 반영한 사진이나 그림을 왜곡 없이 창조하고 있고, 누구나 원하는 사진을 저작권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얻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특이점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챗GPT가 만든 대본과 달리2가 만든 이미지를 바탕으로 몇 개월을 작업해야 하는 짧은 동영상이나, 며칠씩 수고해야 하는 그럴싸한 유튜브 콘텐츠를 불과 몇 분 만에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오픈AI의 달리2에 명령한 화가 J.M.W. 터너(J.M.W. Turner) 스타일의 결과물들

오픈AI의 달리2에 명령한 화가 J.M.W. 터너(J.M.W. Turner) 스타일의 결과물들

 

 

챗GPT가 글을 쓰는 저자로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와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과 논픽션 작품을 ‘창작한다’라는 정의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수십~수백억의 예산이 들어가는 장편 영화나 동영상 작품을 아주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다면, 책을 쓰거나 삽화를 그리는 일은 인공지능 능력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앞으로 250페이지의 장편소설을 챗GPT는 불과 몇 분 안에 완성할 수 있을 것이고, 20페이지짜리 풀 컬러 그림책은 1분 만에 완성될지도 모른다. 여기에 ‘헤밍웨이’ 스타일이나 ‘애거사 크리스티’ 스타일, ‘하루키’ 스타일’ 혹은 2010년 이후의 ‘노벨문학상’ 스타일이나 ‘뉴베리 아동문학상’ 스타일, 역대 ‘볼로냐 라가치상’을 분석하여 2024년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책을 만들어달라는 명령까지도 챗GPT나 달리2는 찰떡같이, 아니 그 명령을 내린 사용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식을 뛰어넘은 수준까지 반영한 가장 완벽한 작품들을 창조할 수도 있다.

 

이미 특정한 환경을 제외하고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스마트폰 카메라와 기존의 고성능 풀 프레임 카메라의 차이를 일반인의 육안으로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오히려 풀 프레임 카메라를 넘어선 결과물을 보여주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사진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미국 일선의 고등학교 교사들과 대학교 교수들은 숙제와 과제물을 챗GPT를 이용해 작성한 것을 가려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공식화했고, 학생들을 평가하는 기준을 다른 식으로 대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학상의 심사는 어떻게 될까? 문학 평론가와 권위 있는 문학가의 심사가 정확할까? 기존의 수백, 수천 작품들을 교차 분석한 챗GPT의 심사평을 믿어도 될까? 각종 문학상에 출품되는 작품들이 순수 인간의 아날로그적 창작의 고통의 산물인지, 챗GPT가 몇 분 만에 뚝딱 만든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이 시점에, 결국 ‘창작’이라는 행위를 정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과정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할지도 모른다.

 

챗GPT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출판문화는 어떻게 변할까?

 

챗GPT 작가들과 순수하게 아날로그적으로 글을 쓴 인간 작가들, 또는 작가이지만 부분적으로 챗GPT를 활용하여 글을 쓴 하이브리드 인간 작가들이 혼재한 상황이 생긴다면 출판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몇 분 만에 책 한 권이 완성되는 시장이 도래한다면, ‘종이’로 책을 제본하여 만드는 형태가 쇠퇴할 가능성이 크다. 보통 출판사들이 한 달에 3종 이상을 출간하는 것이 무리인 현 상황에서, 갑자기 하루에 10개 이상의 원고가 쏟아져 나오고, 출간할 가치가 있는 책이 한 달에 50종이 나오는 환경이라면 물리적으로 인쇄 일정을 맞추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의미가 없어진다. 책의 출간 종수가 늘어날 뿐이지, 판매량이 비례해서 증가한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인쇄업이 다시 활황을 맞을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가장 우려스러운 챗GPT가 편집/기획 역할을 대체하는 상황의 도래!

 

이미 여러 뉴스와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듯, 챗GPT는 책 한 권을 몇 분 만에 원하는 형태로 요약해준다. 그 요약의 수준은 각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에 맞추어 분량까지 조절하여 깔끔하고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해 줄 정도이다. 이 기능을 응용한다면 챗GPT가 원고의 교정과 교열은 물론이고 독자들이 선호하는 디자인 작업까지 완성하여 책의 형태로 결과물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1인당 한 달에 1~3종 이상의 책을 완성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앞으로 챗GPT와 달리2를 활용하면 저자의 원고를 시장 친화적이면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책으로 필요할 때마다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더군다나, 앞에 언급한 것처럼 챗GPT가 작가로서 직접 원고를 생산해내기 시작한다면, 작가의 창작 과정과 편집·생산 모두가 인간 작가와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의 노동 과정 없이, 마감일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일사불란하고 정확하게 진행될 것이다. 더 이상 외주 용역과 프리랜서 시스템이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관계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출판 영업과 마케팅의 과정에서는 이런 인공지능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각종 ‘SNS’의 알고리즘만 봐도 알 수 있듯,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읽어내고 타깃 시장을 설정하는 능력은 인공지능의 가장 진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어쩌면 자본주의 시대의 인공지능 서비스의 최종 지향점이자 궁극의 목표일 수도 있다. 더 이상 신문 지면이나 라디오 등을 통해서 책 광고를 하지 않는 현실에서, 챗GPT와 달리2는 영향력 있는 SNS나 커뮤니티에 가장 어울리는 광고 문구와 이미지를 생성하여 시간까지 설정하여 출판사에 제안해 줄 수도 있고, 해당 도서 판매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인플루언서’를 추천하여 소개하는 방법까지도 알려줄지도 모른다.

 

챗GPT 도서 홍보 인플루언서 추천 예시

챗GPT 도서 홍보 인플루언서 추천 예시

 

 

외서의 기획이나 번역 시장은 더욱 암울해 보인다. 이미 영어 중심의 챗GPT 서비스를 ‘영한/한영’으로 번역해주는 서비스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고,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영어 문장을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 각종 노하우가 온라인상에서 쏟아지고 있다. 더군다나 신형 GPT-4.0 유료 가입자들에게는 한국어 서비스도 지원이 시작되었고, 현재 한국어 답변 능력이 77%로 성장했다. 따라서 앞으로 GPT 매개변수가 수십억에서 수조 개로 업데이트될수록, 이에 비례해서 책 한 권의 번역의 완성도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참고로 AI를 활용한 번역 서비스는 ‘구글’이나 ‘네이버 파파고’에서도 이미 상용화하고 있는바, 이런 온라인 번역 서비스를 통해 결과물로서 검증되어 출간이 가능한 수준의 번역이 곧 가능해질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은 이견이 없다. 이는 실질적으로 ‘원고 매수당 얼마’라고 정해진 현재의 출판 번역 시장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나고 숙련된 번역가라도, 챗GPT보다 정확하고 적절한 번역 완성도를 보여줄 확률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외서 기획자들이 앞으로 시즌별로 해외 도서전에 참가해서 외국어로 작성된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카탈로그나 라이츠 가이드(Rights Guide)를 전부 검토하거나 원서 원고를 읽고 선택할 일도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챗GPT의 연산 속도가 더욱더 빨라진다면, 모든 검토 자료나 원서 원고를 챗GPT에 입력하여 적절한 명령과 조건에 따라 분류하여, 해당 출판사에 가장 어울리는 신간 작품 목록을 상세하게 추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을 그 어떤 외서 기획자나 저작권 에이전트보다도 정확하고 뛰어나고 빠르게 챗GPT는 수행해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으로, 순수 아날로그적 전통적 출판 방식을 고수하는 ‘장인’의 영역은 시장에서 명맥을 유지할 것 같다. 기획과 집필, 제작의 전 과정을 인간의 노동만으로 구현해 내 ‘수제품’ 같은 책들이 하나의 ‘명품’이나 ‘수집품’으로서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 물론 다수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베스트셀러 영역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실제로 인공지능이 관여하지 않은 ‘수제품’이라는 증명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럼 독자들은 어떻게 변할까?

 

항상 그랬었지만, 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책 구매의 기준은 책의 내용과 저자, 제목과 표지, 가격 정도이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순수 인간 작가, 챗GPT 작가, 챗GPT를 활용하여 창작하는 하이브리드 인간 작가 등이 혼재된 상황과 도서를 생산하는 데 드는 물리적인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된다는 가정을 합쳤을 때, 출판시장은 극도로 다원화/다극화될 것이고, 트렌드의 유통과 소비 속도는 계속 빨라질 것이다.

 

이미 ‘유튜브’ 등 지식과 정보,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책의 대체재가 범람하는 현실에서, 챗GPT라는 특이점이 자리를 잡고 나면, 독자들이 책을 구매하여 읽는다는 패턴과 정의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계자들은 치밀하게 연구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챗GPT 이후의 세상에서는 책을 쓰기도, 책을 만들기도 너무나도 쉬운 세상이 펼쳐진다. 현재 단행본 기준으로 매주 대략 40~50종의 신간이 나온다고 한다면, 정말로 챗GPT가 작가와 편집의 역할을 완벽하게 보조하는 시대에는 매주 신간이 100종이 될지 1,000종이 될지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의 콘텐츠 범람의 시대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아날로그적 감각 수용 과정과 능력일 것이고, 물리적으로 한정된 독자들의 선택 기준에 들기 위한 출판사 간의 치열한 경쟁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독자들을 ‘독서’라는 문화에 묶어둘 형식과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

 

더 이상 ‘아직’의 영역이 아니다!

 

‘챗GPT’라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실생활에 파고들어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흔들지도 모른다는 여러 경우의 수에 대해 출판문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지점은 최근의 GPT-3.5에서 4.0으로 압도적으로 개선된 모델이 보여주는 그런 충격이 아니라, 지금의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가 시작에 불과하고, 현재 능력과 파급력의 10배가 될지 100배가 될지도 모를 획기적인 인공지능 모델들이 앞으로 줄줄이 대기 중이라는 점이다. 당장 수개월이 될지 수년이 될지 모르지만, 스마트폰 카메라 능력이 특이점을 맞고 있는 것처럼, 이런 자연어를 처리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순간이 도래한다면 아마 전 세계적으로 출판문화와 시장에 대한 각성과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공포와 기대가 카오스를 이루는 시대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아직’의 영역이라고, 자연어 AI가 출판계 자체에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아날로그적’ 창작의 고통의 산물들을 다루는 출판이라는 산업의 범주에서 ‘디지털’이라는 생경한 문화 트렌드에 전통적인 ‘독서’를 하는 독자들이 그리 쉽게 물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시즌제 드라마를 제작하는 미국의 TV 프로덕션 업계에서, 많으면 20명 이상의 작가가 참여하기도 하는 현재 시스템을 1~2명의 작가와 인공지능 작가의 협업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나, 챗GPT 작가가 쓴 작품만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출판사 형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그 작품이 인간 작가의 순수 창작의 산물인지, 디지털 인공지능 작가가 쓴 것인지 일반 독자는 구분하기 힘들기 시작할 때이다! 독자로서는 해당 콘텐츠가 그저 매력적이고 재밌고, 쓸모 있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주기만 한다면 그것이 ‘디지털’이든 ‘아날로그’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챗GPT를 활용한 소설 줄거리 창작 예시(한글)

챗GPT를 활용한 소설 줄거리 창작 예시(한글)

 

 

결국 ‘챗GPT라는 것이 있다’의 감탄과 충격이 아니라 그런 인공지능 서비스를 어떻게 적용하고 이용할 것인지의 영역에서 작가와 출판 관계자들도 해답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미 각 지자체 교육청을 비롯하여 서구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 ‘AI 리터러시’ 교육과 관련해서 다양한 정책과 과정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들이 활발하다. 챗GPT를 통해 글을 쓰거나 달리2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인간 내면의 ‘상상력’이라는 능력 그 자체이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명령에는 단순하게 반응하고, 복잡한 명령에는 복잡하게 반응한다. 그 복잡한 해답들을 인간이 다시 음미하고 인공지능과 함께 지속해서 생각하는 과정으로서 협업이 이루어질 때, 그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하고 정교한 결과물들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어떤 작가가 뛰어난 상상력과 자기만의 이론과 정보의 청사진을 갖고 있다면, 챗GPT는 이를 작가의 의도대로 시행착오 끝에 완벽히 구현해낼 수 있다. 노련한 편집자라면, 자기만의 편집 노하우와 철학을 챗GPT에 더 구체적으로 명령하여 작가의 원고를 한층 세련되게 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의 흐름과 잠재 독자의 욕구를 근본적으로 이해할 줄 아는 마케터라면, 독자들의 생각과 행동의 온·오프라인 길목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서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시뮬레이션을 역으로 해석하자면, 실력이 없는 작가나 기획자나 편집자나 마케터는 더욱 빨리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챗GPT 이후의 시장이 더욱 빨라지고 효율적으로 변모한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까지의 아날로그에 기댄 시장의 비효율성과 관계 속에 숨어 있던 비생산적인 요소는 걸러지기 시작할 것이다. 결국 역할에 맞는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 어떤 공부와 연구를 하고, 연습하고, 시행착오를 얼마나 많이 거쳤으며,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체화시켜서 본인의 스타일과 철학을 만들었는지가 챗GPT 시대에는 더욱 중요한 가치로서 대두될 것이다.

 

“AI 리터리시”라는 개념 자체는 기존의 복잡한 코딩 언어를 공부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자연어’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누구나 상상력과 창의성의 구조를 가지고 적절한 과정으로 표현을 할 수만 있다면, 더 탁월한 결과물을 도출하여 생산성과 창의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를 그저 글과 강연으로 공부했거나, 편집과 디자인의 과정을 기계적으로 익힌 것뿐이라면, 챗GPT와 달리2에 내릴 수 있는 명령은 단순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물은 프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메타적으로 인공지능에 내리는 “자연어 명령” 그 자체가 얼마나 독창적인지, 과장해서 말하자면 얼마나 ‘아름답고, 세련되었는지’의 수준과 여부에 따라 부가가치와 그 명성이 결정된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부터 단기적으로는 독서 열풍이 불지도 모른다.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에 창의적이고 적절한 질문을 내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교양과 지식, 인문학과 기초 대중 과학책들에 대한 수요가 몰릴 수도 있고, 문학적 사유와 성찰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챗GPT가 돈으로 살 수 없는 인간의 사유와 태도, 창조성에 관한 관심을 폭증시킬 것이고, 그 원천 지식을 고스란히 얻을 수 있는 책에 대한 가치는 재고될 수 있다.

 

종국에는 출판 생산과 소비의 각 주체들의 물리적인 시간과 과정이 대폭 줄어들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모호한, 진정한 웹3.0**의 시대를 가장 적나라하게 선도할 산업 분야로서 출판 생태계가 변모할지도 모른다. GPT 이후의 시대에는 한 분야의 오랜 경력과 경험을 쌓은 사람이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디지털 리터러시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비즈니스 구조를 파악하여 적용할 줄 아는 능력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기획과 집필, 편집, 번역, 마케팅의 각 과정을 인공지능을 이용해 자유롭게 통제할 줄 아는 특별한 1인이 완벽하게 출판물을 완성할 수 있고, 허울뿐인 명성이나 시장의 독점적 지위와 같은 기존의 비효율성, 굳어진 편견과 감정의 영역까지도 허물 수 있는 새로운 실력자들의 탄생 또한 기대된다.

 

** 웹3.0: 탈중앙화와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웹 공급자의 일방향 정책에서 벗어나 정보와 가치를 개인 사용자도 함께 참여하여 소통하는 기술.

 

챗GPT의 인공지능 리터러시(문해력)에 대한 정의(영문)

챗GPT의 인공지능 리터러시(문해력)에 대한 정의(영문)

 

 

나오며

 

기존 산업 현장의 기계와 로봇의 발전이 인간 혼자 힘으로 하기 힘든 물리적인 역할을 대체했다면, 현재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이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을 완벽히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고, 그래서 출판 종사자들 관점에서 거부감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전자책이 도입되고, 모바일 구독 경제와 오디오북 스트리밍과 같은 편리한 독서의 도구들이 생겼음에도 그동안 ‘종이책’으로 상징되는 ‘책’과 ‘출판’이라는 구조가 견고하다고 모두 믿고 있었다. 확실히 세상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출판산업계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그 영향을 덜 받았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 때문에 시장의 부가가치가 다른 산업군에 비해 정체되고, 경쟁력을 잃어가는 경향도 있었다.

 

하지만 출판산업은 이제 비로소 피할 수 없는 디지털의 파괴적인 힘을 정통으로 견뎌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출판 실무 일선 현장은 전화와 우편에서 팩스로, 팩스에서 이메일로, 이메일에서 SNS로 소통의 수단이 변모해왔고, 자료 대부분이나 서류 검토는 이제 물리적인 책이나 원고, 서류 꾸러미가 아닌 PDF를 비롯한 전자 파일로 거의 이루어진다. 협업의 도구로써 Zoom을 통한 비대면 미팅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실시간으로 프로젝트를 아무 때나 온라인상에서 공유하고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챗GPT의 등장을 이제는 이런 우리의 업무 도구와 형태가 변화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앞으로 이런 인공지능 서비스가 우리 일의 형태를 어떤 식으로 바꿔 놓을지, 문화로서 ‘출판’이라는 범주에 어떻게 얼마만큼의 파급 효과를 일으킬지 여전히 정확한 예상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챗GPT 이후의 시장으로서 ‘출판계’는 더욱 공정하고 효율적인 형태로 진화할 것이고, 아이디어 충만한 준비된 실력자들에게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장이 펼쳐질 것이라는 점이다!

 

김홍기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본부장

5만 권이 넘는 원고와 기획서를 서가와 하드 디스크에 보관 중이며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출판되어 빛을 본 원고들도 있고, 여전히 잠자는 원고들도 있다. 더 많은 원고를 세상에 공개하여 독자들이 마주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terrykim@imprim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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