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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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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지역출판인가]
지역 출판사가 해야 할 몫과 사명

 

 

 

신중현(도서출판 학이사 대표, 한국지역출판연대 회장)

 

2020. 08.


 

출판사는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전파·향유·교류하게 하며, 그 대가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다른 산업과 동일하게 이윤추구만 하는 산업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특히 지역 출판업은 더 그러하다. 지역 문화 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요체라는 자긍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산업이다. 이러한 출판업이 수난 시대다. 코로나19 사태에 더해 덮친 인터파크 송인의 바람은 피폐한 출판시장에 더 큰 어려움을 안겼다.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하물며 중소출판사나 지역 출판사는 어떻겠는가. 그것을 일일이 나열하는 순간마저 구차해 말로 다 할 수 없다.

 

사전적 의미의 지역은 ‘일정한 지역의 땅의 구역, 또는 그 경계’를 일컫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역 출판은 지역이 아니라 지방, 즉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의 출판사를 일컬음이 옳을 것이다. 여기에도 혼란은 있다. 주소지만 지방에 두고, 생산부터 마케팅까지 모든 업무가 수도권에서 이루어지는 출판사를 다 지역 출판사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렇게 저렇게 다 제외하면 사실 지방출판사는 별로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떤 형태든 지역에 본거지를 둔 출판사를 지역 출판사라 하며, 함께 어울려 산다.

 

필자의 출판사는 대구에 있다. 그래서 ‘지역에 살고 대구에 산다’는 이 말을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대구에 살면서 서로 다독여주는 이웃들과 어울려 그들의 삶과 생각을 즐겁고 기쁘게 엮는다. 늘 작가와 독자가 함께 책을 통해 즐겁게 논다. 출판사는 지역의 좋은 사람을 만나 글쓰기와 책 읽기를 함께한다. 세계 책의 날에는 책 한 권과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만나 서로의 마음을 잇는다. 좋은 날에는 버스를 타고 문학기행을 가고, 완행열차를 타고 책을 읽으며 여행을 한다. 그래서 이 일이 참 좋다.

 

 

 

지역 문화의 요체, 지역 출판

 

지역 출판사는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당장 경험 있는 인력을 구하는 일부터 신입직원의 교육, 물류와 유통 등 모든 게 수월치 않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자체에서도 쉽게 마음을 쓸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안다. 모든 일이 통계로만 표시되는 세상에서 지역 출판사가 그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아주 미미하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역 출판사가 보이지 않지만 지역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이다. 지역에서 출판인들의 역할은 단순히 책을 엮어내는 것 이상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 지역의 진정한 삶을 발굴하고 기록한다. 그것은 문학이 되고 철학이 되고 역사가 된다. 단지 지역의 삶을 기록한다고, 지역 출판사의 출판물이라고 해서 하향적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지역이 어디든 오롯이 그 지역의 문화를 기록하고 세상에 알린다. 그래서 지역에 좋은 출판사 하나 쯤 있다는 것은 언론사나 대학이 하나 있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 그 말에 스스로 위안을 삼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가장 지역적인 책이 가장 세계적인 책이다

 

2020년, 필자가 살고 있는 대구는 코로나19로 인해 250만 시민의 봄이 송두리째 빼앗긴 한 해였다. 당시에는 다시 봄을 맞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담했다. 중앙 언론에서는 참담함을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경쟁하는 듯 보였고, 일반인들도 당연히 대구와 거리를 두었다. 심지어 서울 병원에서는 대구에서 오는 응급 환자조차 거부하던 시절이었다. 어둡고 암울하던 시기에 필자의 출판사는 지역 출판사가 지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이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대구를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었다.

 

계획이 서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마음이 급했다.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는 시기에, 모두에게 희망의 등불이 필요했다. 어려운 시기에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잘 버티고 있구나, 하는 희망을 빨리 건네주고 싶었다. 먼저 직업이 각기 다른 50명의 시민에게 원고 청탁을 했다. 마음이 급해 카카오톡으로 취지와 청탁서를 보냈다. 글을 자주 써보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것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생업을 할 수 없어 답답하던 차에 글에 마음을 풀어내니 속이 시원하다며 오히려 출판사를 위로했다. 시민들의 기록은 기획부터 출간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의료진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생사가 달린 전쟁터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의료진에게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을 글로 적어달라고 하는 것이 과연 말이 된단 말인가. 망설이다가 결국 부탁했다. 그러자 흔쾌히 코로나 현장 여러 분야에서 일하셨던 의사와 간호사, 구급대원 등 35명의 의료진이 바쁜 와중에 원고를 보내주었다. 그래서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사투 현장을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코로나19 대구시민 51명의 기록-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와 대구 코로나 현장에서 헌신한 의료진 35명의 목소리를 기록한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 그리고 대구 시인 95명이 코로나 사태를 시로 엮은 『아침이 오면 불빛은 어디로 가는 걸까』이다.

 

혼란한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대구의 기록물은 이렇게 출간됐다. 책이 출간되자 필자는 물론 독자의 반응도 뜨거웠다. 코로나를 함께 이겨낸 어려움을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책은 거의 동시에 코로나로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이 일본에 번역되자 많은 일본의 언론이 관심을 보이며 온라인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그들이 인터뷰를 요청한 공통적인 이유는 일본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당사자들이 즉시 기록한 책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출판사가 지역의 일을 재빠르게 기록한 것을 칭찬했다. 이런 일을 지역 출판사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코로나19 대구 시민의 기록)』,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코로나19 대구의료진의 기록)』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코로나19 대구 시민의 기록)』,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코로나19 대구의료진의 기록)』

 

 

 

지역 출판사의 활로 개척 ‘한국지역도서전’

 

지역 출판사는 지역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기도 하지만, 경영이 우선 되어야만 한다. 경영이 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이 부분은 관공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힘이 되어주면 좋겠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전국의 지역 출판인이 모여 자발적으로 한국지역출판연대를 결성했다. 혼자서는 힘이 부족하지만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각자 지역 사람들과 지내다가 도서전을 통해 서로 지역에 대한 소통을 한다.

 

모두 지역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만나면 이틀 밤이 짧다. 서로 동기간처럼 여긴다. 그 힘을 모아 해마다 한국지역도서전을 개최한다. 한국지역도서전은 여느 도서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대부분의 출판사가 개최 지역의 출판문화를 최대한 발굴하고 방문객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2017년 제주 한국지역도서전을 시작으로 수원과 고창을 거쳐 올해는 대구 수성못 상화동산에서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린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경상감영에서 발간한 영영장판(嶺營藏版)을 세상에 알린다. 이처럼 지역 출판사가 지역에 미치는 가치를 생각하면 얼마나 소중한가.

 

이렇게 지역에서 소중한 일을 신나게 하려면 무엇보다 출판사의 재정난이 해결되어야 한다. 재정이 안정되지 않으면 의지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결 방법은 지역책을 지역민들이 언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도서관이나 서점에 비치하는 일이다. 그것을 입법화한다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지역에서 애써 만든 책이, 지역 문화의 정수인 콘텐츠가 독자에게, 그것도 지역 독자에게조차 전달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지역 도서관은 전체 도서 구입 예산에서 지역책 구매에 일정 부분을 할애하고, 지역 서점은 지역책을 구매하는 독자에게 독서 인센티브를 주는 등 서점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지역 도서관과 서점이 지역민에게 끼치는 문화적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도서관과 서점의 역할이 사라진다면, 상상만으로도 일상은 팍팍해진다. 지역에서 작가와 출판사, 서점, 도서관, 독자가 어울려 제각기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비로소 지역사회와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지역에서 우선 소비해야 한다

 

지산지소(地産地消),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은 지역에서 우선 소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로컬푸드에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책도 마찬가지다. 로컬푸드처럼 지역 문화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지역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은 지역에서 우선 읽히는 풍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의 작가나 출판사가 지역의 자산이고 공공재라는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말 그대로 지역 작가와 지역 출판사를 개인만의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역 공공재는 지역에서 스스로 아껴야 한다. 남이 키워놓은 것을 가져다 사용할 것이 아니라, 직접 더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공공재를 잘 활용하면 지역 출판 활성화를 위한 정책도, 지역 작가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이는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지역 출판사와 작가가 함께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들과 소통하는 지역 출판의 건강한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

 

요즘 기쁜 날을 맞아 지역책을 선물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지역이 먼저 변하고 있다. 드물게는 행사에서 수건이나 우산 대신에 책을 선물하는 곳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우리 지역에서 출판한 지역에 관한 책이다. 책을 선물로 처음 받는 분들은 어리둥절해 한다. 지금껏 어느 행사장에서도 책을 답례품으로 받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선택이 돋보이고 더욱 고맙다. 선물로 받은 책 한 권이 어떤 이에게는 분명히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물로 받은 책 한 권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상상해 보라.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이미 전과 같지 않다. 책의 힘이 여기에 있다. 우산이나 수건도 선물로 유용하지만 이제는 답례품으로 책을 선물하는 것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주는 사람의 편의보다는 받는 사람의 수준을 생각해야 한다. 기업 경영주나 직장 상사는 직원이나 후배에게 축하하고 격려할 기회가 생기면 책 한 권을 선물해 보라. 창의력과 화합은 달리 생각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소득 3만 불 시대에 선물도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우리의 선물은 너무 오랜 세월 변하지 않았다. 육체에게 주는 선물보다는 정신에게 주는 선물이 필요한 시기다. 대구의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도 직원들에게 연말 선물이나 생일 선물로 책을 주는 곳이 많이 생겼다. 책 한 권 값으로 어떤 선물을 사서 받는 사람을 감동케 하겠는가? 이 또한 지역 출판사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말로만 지역 출판물을 이용하라고 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 번만 이루어지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제 출판도 쉬워졌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고, 책이 가지는 물성만 이해한다면 누구나 작가가 되고 누구나 출판사를 운영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1인 출판의 시대다. 출판사가 서울에 있든 대구에 있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역에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훌륭한 저자가 아주 많다. 이런 자원이 있는데 당연히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출판사는 새로운 작가와 지역 콘텐츠를 발굴하고, 지방정부와 지역 서점, 도서관이 함께 마음을 모은다면 지역에서 함께 모색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머물고 있는 지역과 지역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 길만이 지역이 살고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역할을 하는 곳은 당연히 지역 출판사다. 그리고 그것이 지역출판사가 해야 할 몫이고 사명이다.

신중현(도서출판 학이사 대표, 한국지역출판연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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