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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  20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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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3.0의 시대]
2022 문예지의 부활
그들만의 리그를 버리고 오직 독자들을 위해서

 

 

 

차경희(‘고요서사’ 대표)

 

2022. 8.


 

“5년 전부터 시작된 문예지의 쇄신이나 새로운 문예지 창간을 독자로서, 중계자로서 지켜보았다.”는 말과 함께 “좋은 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발표할 기회를 마련하는 고전적, 전통적 문예지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오랫동안 있어 온 문단 내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고민에서 여러 새로운 문예지들이 나타난 것 같다.”1)

 

이 말은 2020년 10월 14일, 문예지 〈에픽(EPiiC)〉 창간 기자간담회에서 편집위원으로서 내가 했던 말이 실린 기사를 재인용한 것이다. 간담회에서 받았던 질문이 구체적으로 생각나지는 않지만, 아마 대다수 문예지들이 사라지거나 변화하는 흐름에 대한 의견을 한 기자가 물어왔고 이에 답했던 것 같다. 이 대답에서 ‘중계자’를 ‘(문예지를 판매하는 상인으로서의) 중개자’의 의미로 발언했던 기억이 있지만, 당시 〈요즘 소설 이야기〉라는 팟캐스트에서 문예지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었으니 ‘중계자’의 역할을 수행하던 때도 맞겠다.

 

2015년 말부터 지금까지 작은 문학 서점에서 문예지를 사고팔고, 나름 충실한 독자로서 문예지를 읽고,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문예지의 작품을 소개하고, 편집위원으로서 문예지를 만드는 일을 두루 해왔다. 아주 가끔은 문예지에 글을 싣기도 했으니 문예지와 관련된 대부분의 행위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문예지’라는 것에 대해 나름의 분석이나 성찰을 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자문하면 ‘그렇다’라는 답을 내놓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만약 ‘문예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경험을 바탕으로 내놓을 수 있는 첫 번째 답은 이것이다. 문예지는 (우선적으로) 창작자(필자)를 위해 존재한다. 이 답은 이 글을 청탁받을 때 제안받은 주제 “2022 문예지의 부활: 그들만의 리그를 버리고 오직 독자들을 위해서”와 배치됨을 알고 있다. 다시 앞서 인용한 말로 돌아가자. “오랫동안 있어 온 문단 내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고민에서 여러 ‘새로운 문예지’들이 나타난 것 같다.” 이 글을 기자 간담회에서 모호하게 언급했던 내용을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전개하면서, 문예지가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살펴보려 한다.

 

새 문예지의 잇따른 출연

 

문학 서점을 운영하면서 의식하지 않아도 문예지를 둘러싼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2015년 10월에 서점 문을 열었으니 이제 막 〈악스트(AXT)〉가 창간된 뒤였다. 1년 후쯤 〈릿터(Littor)〉가 창간됐다. 두 잡지 다 문학 출판사에서 새로 만든 잡지로, 격월로 출간되는 발행 주기나 얇고 감각적인 디자인의 생김새까지, 그 내용을 살피지 않더라도 기존의 계간 문예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내용도 기존 문예지와 달랐다. 작가의 인터뷰를 주요하게 싣거나(〈악스트〉), 단편소설보다 짧은 소설을 앞쪽에 두기도 하고 유명인의 독서 생활을 인터뷰하여 이목을 끌었다(〈릿터〉).

 

출판사가 창간한 문예지만 독자의 관심을 끈 것은 아니었다. 시인들이 모여 만든 〈더 멀리〉(2015년 창간)는 서점에 들여오면 곧잘 품절됐다. 원색의 표지에 간결한 내지 디자인, 그야말로 ‘독립출판물’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던 이 잡지는 등단·비등단 작가 구분 없이 글을 싣고 그 구성 또한 다채로워서 읽을거리가 풍부했다. 대구에서 생겨난 〈영향력〉(2016년 창간)의 저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 서점 기준으로는 판매가 활발하진 않았지만 ‘키친 테이블 라이팅 계간지’라는 부제에 맞게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묵묵히 써온 필자들을 발굴해내는 데 한몫을 했다고 본다.

 

〈영향력〉은 출간 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안정적 판매량을 확보했는데 펀딩 제목 중 재미있는 말이 있었다. “괴테도 실패한 문예지 만들기”라는 카피였는데, 〈영향력〉의 소개에도 괴테에 대한 언급이 있다. “쉰 살의 괴테가 상당히 힘을 쏟아 만든 문예지 〈프로필레엔(PROPYLÄEN)〉(1798~1800)도 3년 동안 단 300부만 팔렸다고 합니다.” 괴테가 문예지를 만들던 때와 지금 국내 상황을 비교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대문호 역시 문예지를 만들려 했고 판매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없는 현실은 지금 우리나라의 문예지 출간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문예지는 계속 생겨났고, 생겨나고 있다. 시, 산문 잡지 〈베개〉(2017년 창간), 문학과 타 예술 장르의 결합을 시도하는 〈토이박스〉(2018년 창간), 밀레니얼 세대를 대상으로 작품의 시각적 구현에도 집중한 〈언유주얼〉(2019년 창간), 약 100년 만에 복간된 문예지 〈백조〉(2020) 등 2016년 전후로 생겨난 문예지나, 동인지 즉, 문학 작품을 담고 있는 잡지들은 휴간과 폐간을 결정하는 가운데에서도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사전 펀딩을 통해 출판 자금을 모으거나 작은 서점들과 협업하여 홍보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자구책을 펼치고 있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판매가 낙관적이지 않음에도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문예지가 계속해서 창간되는 것일까?

 

‘지면’을 둘러싼 권한, 어디로 어떻게 이동했는가

 

이제 “오랫동안 있어 온 문단 내 문제들에 대한 대안”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할 차례다. 새로운 문예지의 출현은 기존 문예지들의 쇄신 시기와 맞물려 있다. 청탁 권한을 지닌 편집위원들이 문단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 문단 내 성폭력 등 고질적 문제들에 대한 자정 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날카로운 목소리들이 2015년 이후 거세졌다. 이에 따른 움직임으로 계간지 〈문학동네〉와 〈문학과 사회〉는 편집위원을 교체하기도 했다. 〈문학과 사회〉의 편집동인(편집위원)이 전원 30대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이례적인 일로 보도되기도 했다. 창비의 경우 젊은 작가들로 기획위원을 꾸려 문학 플랫폼이자 새로운 종이 잡지 〈문학 3〉을 창간했다.

 

기존 계간지들의 쇄신 방향이나 창간 문예지들의 대안적 모델을 보면 비슷한 점이 있다. 편집위원이나 기획위원 체제는 유지하되, 그 권한을 다음 세대 혹은 새로운 주체로 이동시켰다는 점이다. 〈문학과 사회〉나 〈에픽〉이 편집위원을 구성할 때는 등단 작가나 평론가 외의 인력을 편집위원에 포함시킴으로써 새로운 시선을 더하려고 시도했고, 〈자음과 모음〉은 2019년 여름부터 객원 에디터 제도를 운영하며 지면을 개방하는 개념을 도입했다. 한편 〈릿터〉의 경우에는 문학팀 편집자들이 기획, 청탁, 편집의 역할을 모두 직접 수행함으로써 주목을 끌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월간 문예지들은 대체로 ‘편집위원제’의 신설 등을 통해 그간 편집주간 혹은 편집장의 개인작업으로 이루어져 온 편집·기획을 보다 객관적이고 짜임새 있게 운영해 나가려는 추세다.2)

 

〈한겨레〉의 1989년 7월 6일자(데이터베이스 등록 기준) 기사를 보면 당시 문예지의 개편이나 창간에 대해 다루면서 “‘편집위원제’ 신설을 통해” 객관성을 추구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에도 문예지를 둘러싸고 큰 변화의 흐름이 있었는데 이때도 권한이 옮겨가는 방식으로 개혁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지금과는 반대 방향으로의 이동이었다는 게 흥미롭기도 하고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결과적으로는, 문예지의 많은 영역을 결정하는 주체가 바뀌는 것만으로는 문단 권력에 대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권력이 분산되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한쪽으로 무게가 실린 것이다.*

 

* 2015년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굳어진 편집위원 체제에 대해 비판들이 생겨난 셈인데, 이는 편집위원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을 만한 구조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편집위원의 역할이나 임기에 대해 어떤 고민이나 쇄신이 있었는지는 아마 문예지 내부마다 그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문예지는 곧 지면이다. 다소 문제를 축소해서 보는 면이 있겠지만, 지면에 대한 청탁권, 지면을 통한 (일부) 비평의 권한 등이 권력의 핵심 문제로 이어져온 것 아닐까. 물론 모든 작가들이 청탁에 목말라 하는 것은 아니며 평단의 호명을 대단히 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겠지만, 작가들은 지면을 통해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독자에 가 닿을 수 있다. 작품이나 작가에게 독자를 얻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독자에게 닿으려면 ‘문예지 게재’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문예지를 거치지 않고 공모를 통해 단행본을 바로 출간할 수 있는 경우 등도 있지만, 한국 문학 작가에게는 문예지에 작품이 실리고, 읽히고, 더 많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첫 책을 출간하게 되는 길에 오르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

 

지면의 확장, 개방적 구단 혹은 리그의 증가

 

앞의 질문을 다시 떠올려 보자. 판매가 희망적이지 않음에도 문예지가 생겨나는 이유에 대해. 결국은 ‘편견 없는 기회의 확장’을 위해서라는 답을 내리고 싶다. 기본적으로 등단·비등단의 경계를 지우고 여러 필자의 글을 소개한 많은 독립문예지들, 어느 정도 투고작 게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문학3〉, 〈에픽〉, 웹진 〈비유〉(2017년 창간), 게스트 에디터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필자의 외연 확장을 모색한 〈자음과 모음〉 등의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소위 말하는 ‘등단 작가’의 영역에서 벗어나 청탁 대상 자체를 틀 짓지 않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문예지에 작품을 게재하는 것은 일회성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이를 통해 작가의 작품이 더 발표되고 읽힐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한다.

 

다른 사례를 좀 더 보자. 〈베개〉의 경우 청탁 작품을 싣기도 하지만 출간 전 투고의 문을 열어두고 자체적인 심사를 통해 게재작을 선정한다. 이다음 단계도 중요하다. 〈베개〉는 문예지를 출간하는 한편, 〈베개〉에 작품을 실었던 필자들을 포함시킨 산문선을 사이사이 출간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베개 시인선’을 잇따라 출간하고 있다. 새로운 시인선을 출간하며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출판사 아침달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아침달의 모토는 ‘등단이라는 장벽과 별개로 좋은 원고를 세상에 소개하기’. 좋은 원고를 캐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김소연 시인의 제안으로 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했다.”3) 아침달은 큐레이터 제도에 대해 “권력 구조가 묻어나는 편집위원 대신 사용하는 호칭이다. 출간 여부를 결정하고, 원고에 특히 애정을 보인 큐레이터가 조력자로서 저와 소통한다.”4)고 밝히기도 했다. 큐레이터 제도를 통해 아침달에서는 등단·비등단 구분 없이 시 작품을 선별하고 시집을 출간한다.

 

1호로 그치긴 했지만 아침달은 시인선 출간 이전에 〈일상시화〉라는 시 문예지를 먼저 발행하기도 했다. 문예지 출간이 당장의 이익을 낳기는 힘들겠지만, 문예지를 통해 인연을 맺은 필자들의 단행본을 자사에서 출간하는 것으로 이어가는 모델은 출판사로서 이익일 수 있다. 〈에픽〉을 발행하는 다산북스는 〈에픽〉 창간 이후 ‘오늘의 젊은 문학’ 시리즈를 만들어 국내 문학 단행본을 새롭게 출간하고 있다. 〈언유주얼〉 역시 문예지 발행과 단행본 출간을 함께 진행 중이다. 큰 문학 출판사들의 웹진 또한 출간 예정 도서의 사전 연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어떤 문예지든 편집위원들의 고민은 한결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편집위원들은 ‘소중한 지면을 어떤 좋은 작품으로 채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기획이나 청탁을 수행할 것이다. ‘좋은 작품’을 고르는 기준에 자신의 이익을 반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좋은 글을 쓰지만 충분히 소개되지 않은 작가에게 지면을 할애하는 게 문예지의 중요한 역할이자 기능이라 생각한다. 문예지가 늘어나는 만큼 다채로운 작가군이 소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문예 지면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아쉽고, 자본력이 없는 소규모·독립출판사의 경우 유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지면을 늘리려는 움직임의 목적에는 ‘다양성’의 추구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문예지에 감각적 디자인이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기대하는 독자도 물론 있겠지만, 독자는 무엇보다 ‘좋은 글’을 갈망하는 존재라 생각한다. 지금의 문예지는 견고했던 필자 영역을 허물어가면서 신선한 작품을 실어 나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좋은 문학을 원하는 독자가 있는 것이다.

 

 

1)
문학잡지 “에픽” 창간! 픽션/논픽션, 순수문학/장르문학 간 장벽을 허무는 ‘내러티브 매거진’, 김보건, 〈뉴스페이퍼〉, 2020.10.14.
2)
“문예지 창·복간 봇물…독자확보 치열 / '작가세계' 등 2년 새 6종…연말께 2종 또 나와”, 조선희, 한겨레, 1989.07.06.(데이터베이스 등록 기준)
3)
“기성 시인과 신인의 콜라보…독립 출판사 ‘아침달’의 성공 비결은?”, 이설, 〈동아일보〉, 2019.07.08.
4)
상동.

차경희

차경희 ‘고요서사’ 대표

해방촌 문학 서점 ‘고요서사’ 대표. 계간지 〈에픽〉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goyo_book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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