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4 2020. 09.
[1인 1책 시대]
김슬기(매일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2020. 09.
1인 1책 시대의 아이러니
2014년, 문지 문화원 ‘사이’에서 열리는 소설쓰기 강좌를 취재한 적이 있다. 중견 소설가가 진행하는 이 강좌에는 다채로운 배경의 수강생들이 모여 있었다. ‘칼퇴’를 하고 부랴부랴 달려왔을 7시 정각에 수업은 시작됐다. 8주간 열리는 소설창작워크숍에 수강료를 내고, 이 과정을 함께하는 이들의 연령대는 20~40대까지 다양했고, 대부분 직장인임에도 결석자도 적었다. 수업 진행은 학기 중에 단편소설 두 편 정도를 써서 모두 돌려 읽고 토론하는 합평(合評)으로 이뤄진다. 이날은 소설 네 편을 함께 읽었다. 다른 이가 써 온 소설에 대해 수업을 이끄는 소설가가 적절한 평가와 보완점을 짚어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창작자의 토론도 활발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작가의 꿈을 가지고 등단을 몇 년째 준비 중인 수강생이 아니라, 단지 취미 삼아 수업을 듣는 이도 있었다는 점이다. 한 작가 지망생은 “혼자 글을 쓰면 외로운데 수업 동료들과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니 독자가 생긴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고, 한 일반인 수강생은 “처음에는 글쓰기를 배울 요량으로 수업을 들었는데 이제는 진지하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강생들은 캐릭터의 평면성을 지적하거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 전개 방식과 비교하기도 했다.
6년 전, 이 취재를 한 목적은 주경야필(晝耕夜筆)이라는 소위 ‘요즘 것들’의 새로운 취미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성실히 직장생활에 매진해 승진하고, 더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이 직장인의 공인된 ‘자기계발’이던 시기가 조금씩 변화하는 징후를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직장은 더 이상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를 계발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색다른 일을 해 보고 싶어 했고, 일부는 글을 쓰고 싶어 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문학 출판사에서 하나둘 문을 연 소설쓰기, 동화쓰기, 시쓰기 강좌 등은 이렇게 문학청년이 아닌 직장인 작가 지망생들의 가세로 조용히 인기를 얻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만 해도 색다른 일이라,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던 글쓰기가 이제는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 글쓰기를 배우는 아카데미가 성행하고, 글쓰기 방법을 다룬 책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있다.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도 한겨레, 조선일보 등의 언론사가 진행하는 글쓰기 아카데미가 주루룩 뜬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문화강좌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글쓰기 강좌는 빠지지 않는 인기 강의다. 최근 몇 년 새 웹소설이 수천억 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하면서, 웹소설 작법 강의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돈이라고는 안 되는 일이 아니던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통계상의 출판시장은 앞이 깜깜하다 못해 암담할 정도의 불황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 1인 이상 가구당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2015년 1만 3,108원이었으나, 2016년 1만 2,066원, 2017년 1만 2,157원, 2018년 1만 2,054원으로 떨어진 데 이어, 2019년에는 1만 1,069원까지 감소했다. 5년 동안 물가는 올랐을 텐데 서적구입비가 15.55%나 감소했다는 건 처참한 결과다. 게다가 13세 이상 독서인구비율은 62.4%에서 50.6%까지 떨어졌다. 전 국민 중 청소년 이상 연령대에서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비율이 절반에 달한다는 이야기다.
가벼워진 글쓰기, 이대로 괜찮은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커지는 사회적 변화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동안 글쓰기 책으로 인기 작가가 된 여러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이유는 SNS(Social Network Services) 시대의 도래였다. 2010년대 스마트폰이 급격한 발전을 이루면서 우리는 모두 손바닥 위에서 글쓰기와 글읽기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를 경험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1인 1스크린 시대’가 열리면서 자기 취향대로 유튜브도 보고 TV도 보고 영화도 보고 스포츠 중계도 보고 뉴스도 보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중독되어 탐독하는 건 지인과 유명인의 글과 사진을 엿볼 수 있는 SNS다. 누구나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보내며, 1인 미디어 시대를 즐기고 있다. SNS 시대는 일반인 스타도 대거 배출했다. 평범했던 사람이 스타가 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같은 꿈을 꾸게 된다. 나도 글을 쓸 수 있다고.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고. 결국 현재의 글쓰기 전성시대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열망이 만들어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31쇄를 찍은 베스트셀러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글쓰기 전성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이 책의 저자인 김정선은 27년 차 외주 편집자로 일했다. 책으로 묶어진 원고의 교정교열을 보고, 맞춤법을 바로잡는 일을 해 왔다. 그는 글쓰기의 사소한 실수를 바로 잡는 이 책을 펴낸 뒤 수많은 강의를 하며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직접 만났다. 그는 필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언젠가부터 글쓰기 책이 출판 시장에서 잘 팔리는 분야가 됐다. 청소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 묶을 수 있는 건 SNS다. SNS에 글을 올려도 ‘좋아요’를 많이 눌러 주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보편화된 시대다. 통화보다 카톡을 많이 하니까 맞춤법에도 신경을 더 쓰게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글쓰기 열풍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 등 수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베스트셀러도 여러 권 탄생시켰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점점 더 많이 쏟아지고 있어서, 인터넷서점에서 관련 도서를 검색하면 2,000종 넘게 검색될 정도다. 이 중 많은 책은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글쓰기에 뛰어들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우는 메시지를 전한다. 심지어 자기계발서와 흡사한 메시지를 전하며, 당신도 책을 쓰면 유명해지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허언을 전하기도 한다. 책쓰기가 자기계발의 일환이 되어 버린 시대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SNS가 우리 일상을 침투하면서, 글쓰기 전성시대를 이끈 또 하나의 플랫폼도 있다. 요즘 출판계에서는 ‘브런치’의 인기가 뜨겁다. 커피와 빵을 곁들인 식사가 아닌 글쟁이의 플랫폼 이야기다. 2015년 6월부터 카카오에서 서비스 중인 브런치는 요즘 출판사 편집자가 가장 열심히 탐독하는 사이트다. 브런치에서 작가를 잘만 잡으면 대박이 난다는 믿음 때문이다. 100쇄를 돌파한 공전의 베스트셀러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는 브런치에서 ‘9급 공무원 세대’로 연재된 글이었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도 브런치에서 탄생한 베스트셀러다. 기존에도 페이스북과 블로그 등이 작가 발굴 플랫폼으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브런치가 그들과 다른 점은 자유롭게 글을 쓰는 SNS와 달리 처음부터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장기 연재를 하는 글이 많아 출판에 최적화됐다는 점이다. 올 들어 등록 작가가 2만 8,000명을 넘어섰고, 실제로 출간된 책이 2,000권을 돌파했다. 지구 한 바퀴 세계여행, 시사·이슈, IT트렌드, 영화 리뷰, 오늘은 이런 책, 뮤직 인사이드 등 장르가 세밀하게 구분된 브런치의 글창고에는 ‘직딩’을 위한 장르가 많다. ‘직장인 현실 조언’, ‘스타트업 경험담’과 같은 주제가 작가를 꿈꾸며 주경야필 직장인을 유입시키는 비결이다. 글을 읽으러 들어왔다가, 나도 쓰겠다고 결심하는 작가가 많다.
브런치를 일컬어 “대기업 퇴사자가 세계여행을 떠나 글 쓰는 플랫폼”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장수한의 『퇴사의 추억』, 정유진의 『회사 그만두고 유학을 갑니다』 등이 실제로 출간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문성 있는 직업 종사자의 글도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다. 홍자연의 ‘나는 크루즈 승무원입니다’, 최서정의 ‘나는 대한민국 상사맨이다’, 김경욱의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 등이 대표적이다. 일에 있어선 프로인 아마추어 작가의 플랫폼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글쓰기 내공을 쌓아온 이들은 브런치를 통해, 독자의 평가를 직접 접하고 인기를 얻은 이들은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아 작가로 데뷔한다. 등단 제도를 거쳐야 하는 문단에 비하면, 꽤나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데뷔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브런치 이외에도 페이스북과 블로그, 요즘에는 영상문법에 최적화된 콘텐츠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유튜버조차도 작가로 대거 변신하고 있다.
쓰고 싶다면 먼저 읽어라!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법이다. 너무 쉽게 작가가 되고, 글을 쓸 수 있는 시대는 좋은 책이 평가받고 많이 읽힐 기회를 줄어들게 만든다. 10여 년 전만 해도 매년 10만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하는 책이 숱하게 배출됐다. 하지만 요즘은 대형 베스트셀러의 탄생이 희귀해졌다. 한 해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든 책이 10만 부를 팔기도 버거운 여건이 됐다. 책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은 오랜 시간 공들여 책을 쓰는 노동의 가치를 초라하게 만든다. 그러니 학원에서 강의를 받거나 SNS를 통해 쓴 글을 모아서 쉽게 책을 펴내는 트렌드도, 이런 왜소해진 책시장에서 기인한 게 크다. 책을 써서 큰돈을 벌 수 없게 되니, 출판을 강의를 위한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거나, 단지 자신의 이력서나 경력에 한 줄을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집필 문화에 죽비를 내려치듯 쓴소리를 하는 책은 이미 과거부터 존재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다량으로 읽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책이다. 일본의 전설적인 다독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1대 100의 법칙’을 역설한 적 있다. 인문학, 철학, 언어학, 뇌의학, 우주과학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깊이 있는 논픽션을 수십 권을 저술한 그의 쓰기의 힘은 읽기에서 나왔다. 『읽기의 힘, 듣기의 힘』 등의 저서에서 그는 새로운 주제의 책을 쓸 때면 먼저 구할 수 있는 관련 서적을 모두 사다 놓고 읽는다고 설명했다. 보통 한 분야에 대해서 글을 쓸 때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500건가량 읽는다고 한다. 그에게 저서와 거기에 투입된 지식의 양은 거의 1대 100의 비율이다. 책 한 권을 쓰려면 자료 수집과 그 내용의 숙지에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이런 지적 호기심 없이는 시간의 힘을 이기고 살아남을 훌륭한 저술을 남길 수 없다.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이나 에세이라고 하더라도 다독 없이 좋은 책을 쓸 수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국내에서도 『책의 정신』 작가이자 편집기획자 강창래가 『위반하는 글쓰기』에서 ‘다독을 하라, 잘 아는 것만 쓰라’라는 원칙을 강조한 바 있다. 1인 1책의 시대에 이런 다독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그제야 출판시장은 건강한 생태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더 바쁘고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읽기의 힘은 결코 쓰기의 힘보다 작지 않다.
메리 파이퍼는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에서 “좋은 글은 심리치료처럼 마음의 풍경을 바꾸고, 마침내 세상의 풍경을 바꿉니다”라고 썼다. 파이퍼는 오랫동안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마흔 이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인물이다. 그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헤엄치며 나아가기’다. 흥미로운 풍경을 발견하고, 독창적으로 생각하며, 세심하게 묘사하는 것이 글쓰기의 비밀이었다. 흥미로운 풍경을 발견하기에 독서보다 더 좋은 실천은 없을 것이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대명사를 사용할 때는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퇴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하기 앞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한 가지뿐이다. 더 열심히 책을 읽는 것. 글을 쓰고 싶은 당신에게는 책의 바다를 헤엄치며 나아갈 의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