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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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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COVID19 : 출판산업의 변화]
지역서점들이 마주한 코로나19

 

 

 

정병규(파주 헤이리동화나라 대표,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2020. 05.


 

 

 

책을 신봉했던 자

 

수년 전 경기도 파주출판도시에 ‘지혜의숲’이라는 공개형 서가가 문을 열었다. 도서관 시스템이 아닌 완전 개방형 서가에 20만여 책이 넘는 규모로 자율 운영하는 곳으로는 처음이었다. 기증자 서가와 출판사별로 분류되어 크게 3섹터로 나뉜 공간은 당시 출판계의 화제였다.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 가운데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서가에 배가했었던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 첫째는, 내가 그동안 책에 대해 가졌던 생각의 틀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과 두 번째로 출판사, 독자, 도서관이 갖고 있는 책의 개념이 서로 달랐다는 것에서 나의 삶은 그 일을 하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책이라는 물성을 신봉해 왔던 나는 개관 첫날부터 봇물 터지듯 밀려드는 인파에 놀랐고 이어서 음식, 음료와 함께 책을 옆에 쌓아놓고 일종의 퍼포먼스하듯 즐기는 독자 대중들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또 다른 경우로 양쪽 복도의 6m 이상 높이의 서가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안 되게 서서 지켜보다가 지나가는 일도 점점 많아졌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대중들이 책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경험하고 난 뒤 24년간 지켜왔던 나의 책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책은 나에게 우월감을 주는 지적 물성이 아니었다. 책은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 자체로 위안이 될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진지한 독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책방 창밖을 매일 보면서 그 느낌이 사실임을 확신했다. “이런 곳에 책방이 있네.”, “여기 그 드라마 촬영했던데 맞아?”, “오늘은 그냥 보기만 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오랜 기간 사회적 격리로 인해 집 안에만 있던 사람들이 날이 풀리면서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혹여나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 문을 활짝 열어 놓았는데 오가는 가족들, 연인들, 차량에서 내리지 않고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등 책방을 들여다보는 풍경이 제각각이다. 이런 모습은 20년 가까이 주말과 휴일 동안 익숙하게 봐와서 낯설지 않았지만 아직 서로를 대면하기에는 이른가 싶다.

 

 

 

책방의 일상

 

책방에서 사는 책은 기호 식품이 아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요즘과 같은 절체절명의 시기에는 그 결정이 바로 드러난다. 필요할 때 위로를 받고자 한다면 음악이나 다른 예술 분야도 있지만 누군가의 글로도 위로받을 수 있다. 그 통로 중 하나가 책과 책방이다. 그것도 지나다 쉽게 들를 수 있는 ‘동네책방’. 그런데 책은 마스크나 식료품이 아니기에 구매 목록에서 먼저 제외된다.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거리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학교와 어린이집, 유치원만 개학과 개원하는 것이 아니고 책방도 학교 개학과 함께 사람들의 나들이가 시작된다. 학교와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고 난 뒤 작은 모임이 책방에서 열리기도 한다.

 

학습교재가 아닌 단행본을 파는 ‘동네책방’은 최근 수년에 걸쳐 전국에 700여 곳이 넘게 생겨나고 있다. 세대가 바뀌면서 전통적인 ‘서점’, 즉 수험교재와 문구류를 함께 취급하는 곳보다 규모가 대체로 작은 책방이다. 대신에 서점을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고 책을 직접 꼼꼼하게 읽어 보고 큐레이션 하는 책방이 대부분이다. 서울 서촌의 어느 책방은 약 30종의 책만을 진열하는데 모두 읽고 권한다. 그러다 보니 SNS 활동보다는 찾아오는 사람들과 직접 대면을 더 많이 한다. 책방이 아무리 작아도 그 틈새에서 동네 북콘서트, 작가와의 대화, 독서 동아리 등을 통한 일상적인 문화 교류활동이 책방마다 열린다. 하지만 사람들의 활동이 위축되거나 소비가 줄면 가장 먼저 발길이 뜸해지는 곳이 책방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도록 가장 빠른 택배와 동네 배달 시스템을 갖고 있다. 수많은 상품과 음식이 집까지 빠르게 오는데 책은 여기서도 예외다. 온라인 서점은 이런 시기에 전년 대비 10~20% 가량 매출이 늘었다는 통계도 나온다. 발걸음보다 로그인을 더 좋아하는, 빠른 시대에 사람들을 책으로 홀리려는 마법 같은 묘약을 만들기 위해 동네책방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단톡방에서 대화를 한다.

 

대형 유통사들과의 공급률 거래 조건 협의, 여러 지자체들과의 책방 활성화사업 연계 의논,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관련 연구자료 숙독 등 여러 얘기를 나누다 Zoom에 로그인해서 밤에 또다시 회의를 하기로 한다. 한편으로 여러 기관 및 단체가 내놓은 공모사업에도 신청을 한다.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응모하기 위해 시시때때로 작가와 만나 기획 논의를 한다. 높은 경쟁률 틈에서 뽑히기 위해 생각하고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내놓고 메모하면서 가닥을 잡아 간다. 어떻게 하면 지역 거점서점과 함께 연계할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다 또 하루가 간다. 좋든 싫든 차라리 ‘동네책방’이 여기저기서 두드려 맞는 동네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을까?

 

 

 

없는 게 없는 아파트 단지 딱 하나 없다

 

동네책방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헌책방까지 포함해서 책을 파는 곳은 학교 가까운 곳에 드물게 보이는 교재를 파는 서점뿐이다. 동네책방 네트워크는 올해 ‘BUY BOOK BUY LOCAL 캠페인’을 벌였다. 텀블벅을 플랫폼으로 일정한 금액을 모은 뒤 매달 참여자에게 기획해서 만든 상품을 주는 행사인데(물론 책방에서 독자들과 조금이라도 더 접촉하기 위한 이벤트이다), 하필 기운차게 시작했던 이 야심만만한 행사는 뜻밖의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복병을 만나 의기소침해졌다.

 

그럼에도 책방들의 정성에 힘입어 목표 금액을 초과 달성했다. 책방에서 매달 선정하는 작가들의 책과, 행사를 알리는 스티커와 포스터, 맞춤형 에코백 등을 진열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이런 취지를 알리고 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많지 않은 책방의 방문객이 훨씬 줄어서 마치 빛바랜 앨범처럼 쓸쓸해졌다.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더 해야 할까? 어디엔가 힘을 보태 달라고, 용기를 달라고 구조 요청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책과 책방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여기까지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년 전 국민일보 손영옥 문화생활부장은 신문 연중기획 시리즈인 ‘독일을 넘어 미래 한국으로’ 취재를 위해 방문한 베를린에서의 소감을 이렇게 적는다.

 

베를린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서점의 향기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중산층 동네인 힌덴부르크담에 위치한 토마스 갈라 서점. 오렌지색 ‘바이로컬’ 표식이 붙은 출입문을 밀고 들어갔다. … 이곳을 찾은 이유는 독일 서점가에 불고 있는 바이로컬 운동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8월 라이프치히 도서박람회에 참가한 한 오프라인 서점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말하자면 동네서점 이용하기 캠페인이다. … 서점주인 토마스 갈라 씨는 “내가 사는 동네가 중요하다는 의식을 주민들에게 심어주자는 것”이라며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면 동네 서점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걸 강조한다”고 말했다. 더 싼 것 더 편리한 걸 추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사람 냄새를,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놓치게 된다. 우리 사회가 경쟁사회로 치달으면서 잃어버린 가치다. 책 냄새 가득한 서점의 향기를 맡고 싶다.

 

중요한 것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책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의 마음이 함께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네에 책방 빼고 모든 것이 다 있다면 이제 책은 공공도서관과 중고 서점, 온라인 서점에서만 봐야 할 터이다. “책방도 없는 동네, 그게 동네인가?” 누군가의 책에서 나온 말이 생각난다.

 

 

 

사회공동체에 바라는 것

 

지난 3월 1일 파주시 소재 경기도 인증 지역서점들은 파주시서점협동조합과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파주지부 명의로 파주시 관내 교육지원청과 초중고등학교 등에 공문을 보낸 바 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파주시 소재 지역서점들이 휴무 확대와 방문객 감소로 지속적인 운영에 애로점이 많음을 호소하고 이에 협조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2014년 5월 20일에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 5항 : 간행물을 판매하는 자는 독서 진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하여 정가의 15퍼센트 이내에서 가격할인과 경제상의 이익을 자유롭게 조합하여 판매할 수 있다. 이 경우 가격할인은 10퍼센트 이내로 하여야 한다.”에 근거하여 그동안 지역서점들이 학교도서관에 도서를 납품할 때 10%의 가격 할인과 5%의 경제상의 이익(간접 할인)을 제공하였는데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지역서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어 불가피하게 5%의 경제상의 이익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양해의 글이다.

 

그리고 도서에 대한 마크 및 장비에 들어가는 작업비가 실제 소요되는 비용보다 낮게 책정되어 지역서점의 안정적인 운영에 어려움이 있음을 호소하고 이에 대한 배려를 요청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경기도교육청 도서관정책과에서 발표한 “2020년 학교도서관 진흥 시행계획” 중 독서문화 진흥을 위한 지역서점과의 협력 관련 부분에 따른 것이었다. 위 기관의 협력 사항에는

 

*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역서점 연계
* 단위학교 자료구입 시 지역서점 이용 권장
* 단위학교 도서구매 시 부대비용(마크데이터구축비 및 장비용역비 등)은 도서관 운영비에서 별도 편성, 자료구입비에서 집행하지 않도록 주의

 

라는 세부 지침까지 나온 바 있다. 그럼에도 기관의 구매 현장에서는 이를 실행하는 사례가 많지 않았기에 부득이 긴급한 호소를 올린 것이다.

 

동네책방네트워크 회원사 중에는, 부산 지역의 경우 이미 작년부터 5% 간접 할인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 전해오기도 했다. 부산시의회 의원이 시정 사무감사를 하면서 세금이 집행되는 도서구입비에서 5% 적립금을 받아서 개인 또는 기관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당거래 등 법 위반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고, 최대한 다음 년도부터라도 5% 적립을 원천 폐지하라는 주문을 하였다. 관행이라는 시 담당자의 답변에 대해서도 ‘말이 안 되는 관행’이라 지적하고 이를 폐지하지 않으면 고발 조치하겠다고 해서 부산시는 즉시 폐지했다고 한다. 다만 교육청이 관리하는 공공도서관의 경우는 예산출처에 따라 아직도 적립 요구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다.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체로서 관심을 갖고 이전과 다른 관행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시간을 놓치면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다.

정병규(파주 헤이리동화나라 대표,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

파주 헤이리동화나라 대표이자 행복한그림책연구소 소장,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보리출판사, 201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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