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2 2021. 06.
[늙어가는 대한민국 출판시장]
김슬기(매일경제 매일경제신문 문화스포츠부 기자)
2021. 6.
독서인구에 관한 ‘세대론’은 오랫동안 출판담당 기자들에게 단골 소재였다. 40대 여성들이 주력 독자가 되어, 서점을 먹여 살린다는 기사를 지난 수년간 한 해도 쉬지 않고 써온 기억이 있다. 이런 뻔한 세대론 기사를 쓰고 곤욕을 치른 경험이 한 번 있다. 출판담당 기자로 뉴스를 생산하며 다양한 피드백을 받아본 경험이 있지만, 그때는 예상치 못한 ‘악플’ 세례를 받았다. 2019년 12월 보도한 “92년생 김지영은 서점에 안 간다”라는 제목의 기사 때문이었다. 책을 사는 주요 세대를 10년 전과 비교해 분석한 기사였다.
92년생 김지영은 서점을 가지 않는다
이 보도의 골자는 ‘82년생 김지영’과는 달리 ‘92년생 김지영’들이 서점을 떠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전통적으로 20~30대는 국내 출판계의 주력 독자층이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트렌드를 주도하고, 소비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해왔다.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낸 『82년생 김지영』도 이 세대의 지지로 201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런데 앞으로 20~30대 소비로 탄생하는 밀리언셀러가 또 나올 수 있을지 미지수가 됐다. 바로 독자들이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서점인 교보문고의 20대 독자 구매 비중은 2016년 24.4%에서 2017년 22.9%, 2018년 22.1%, 2019년에는 20.1%로 뚝 떨어졌다.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20대 독자는 심지어 더 적다. 2019년 한 해 동안 예스24에서 40대 독자 구매 비중은 44.2%, 30대는 24.8%를 기록한 반면 20대는 12.8%에 불과했다. 남성이 같은 기간 8%에서 7.4%로 줄어드는 동안 여성은 16.4%에서 12.7%로 줄어 여성 독자의 이탈률이 더 컸다.
처음에는 이 통계자료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과거 어느 시기보다 자기계발과 학습에 대한 열의가 큰 청춘세대가 책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였다. 취재하면서 만난 대학생의 인터뷰를 통해서 어렴풋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취업난이었다. 한 대학생은 “학업과 스펙 쌓기 등 취업 준비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 대학생이 책을 사서 읽기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치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현재의 20대는 과거의 어느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세대다. 구독경제가 보편화되어, 월 1만 원으로 책 또는 영화를 무제한으로 ‘스트리밍’할 수 있게 된 세대에게 한 권당 1~2만 원에 달하는 책을 소유하는 일은 ‘사치재’로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오늘날은 단군 이래 부동산 가격이 가장 값비싸진 시기가 아닌가. 방 한편에 책장을 놓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을 가지기 위해서는 수천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게 고달픈 ‘서울살이’의 현실이다.
이 보도가 나간 이후 여전히 문화예술의 가장 큰 소비자이자, 지지자인 20대 여성을 오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완전히 시대에 뒤처진 기사만 써서 본 신문사는 절멸 각임을 공지하는 매국경제신문 오늘도 잘 구경하고 갑니다”라는 악플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굳이 변명하자면, 이 해프닝은 시리즈로 보도된 두 개의 기사 중 한 꼭지만 읽은 독자들이 이 보도의 편협함을 공격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독서시장의 고령화를 부정적인 현상으로만 읽는 건 단견이다. 20대 여성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읽는 방식이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웹소설을 읽는다
당시 시리즈 보도에서 또 하나의 뉴스 꼭지가 주장한 사실은 20대 독자들이 웹소설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20대 독자는 종이책을 떠나서, 온라인 공간으로 이미 옮겨가고 있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20대는 스마트폰이나 전자책 단말기로 장편 소설을 읽는 데 거부감이 없어진 지 오래다.
웹소설 업계 1위인 카카오페이지가 2019년 이용자 연령층을 분석해보니 20대가 35.5%, 30대가 25.5%를 차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 뒤를 이어 10대가 15.5%를 차지했고, 40대 이상 연령은 통틀어 23.8%에 불과했다. 웹소설은 그야말로 밀레니얼세대를 위한 콘텐츠인 셈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웹소설 시장은 2013년 100억 원 수준에서 2018년 4,000억 원 규모로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카카오페이지는 지난 2019년에 하루 매출 10억 원을 돌파했고, 연 소득 1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스타 작가가 즐비하다.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는 물론, 영화 〈검은 사제들〉 등 히트작의 원작은 웹소설이었다. TV 광고에서 네이버 웹소설인 〈재혼 황후〉의 프로모션이 진행되는 걸 보면서 놀랐던 기억도 생생하다. 소위 1990년대 소설의 황금기 이후 TV에서 소설 광고를 본 적이 있었던가? 웹소설은 이제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OSMU(원소스멀티유즈) 창고가 됐다. 2013년부터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한 남희성의 웹소설 〈달빛조각사〉는 희대의 히트작이 되어 판매 부수 600만 부를 넘겼고 모바일 게임으로도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종이책이 아닌 웹을 기반으로 한 책은 이미 대세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실이니, 20대가 종이책 시장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쯤 되면 이 글의 제목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은 왜 책을 멀리하는가’는 잘못된 질문이다. ‘젊은이들은 왜 종이책을 멀리하는가’가 더 정확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지 소설에만 그치지 않고, 시야를 좀 더 넓혀보면 20대는 물론이고, 이들보다 아래 세대인 10대들이 가장 즐겨 하는 여가생활은 웹툰 감상이다. 매주 연재되는 웹툰의 신작을 보기 위해 자정까지 기다리다 잠드는 모습은 중고교생은 물론 대학생들에게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복학왕〉의 기안84, 〈여신강림〉의 야옹이 등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하는 셀러브리티가 되었고, 국내 인기 웹툰 작가는 세계적으로도 큰 인지도를 얻고 있다. 이들 세대를 대표하는 문화가 웹툰이 된 지 오래인데, 1990년대처럼 ‘요즘 애들은 책을 읽지 않아. 쯧쯧’이라고 혀를 차는 일은 시대착오적인 평가일 수 있다.
스트리밍과 오디오북에 빠진 밀레니얼
게다가 물성(物性)의 측면에서 책을 출간하는 형태도 크게 바뀌고 있다. 전자책 서점들은 지난 몇 년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하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교보문고, 예스24, 리디북스, 밀리의 서재는 각각 1만 원 안팎인 월 구독료로 전자책 1만~5만여 권을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전자책 구독자는 20대(40%)와 30대(37%)가 중장년층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최근 들어 스토리텔, 밀리의 서재, 윌라 등이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오디오북도 멀티태스킹과 멀티미디어에 익숙한 밀레니얼세대에 적합한 독서 방식이다.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모은 오디오북 서비스도 등장했을 정도로 이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클럽하우스’라는 오디오 기반 소셜미디어가 올 초 선풍적 인기를 얻은 것처럼, 원초적 소통방식인 대화를 통해 지식을 나누는 오디오북은 의외로 젊은 세대에게 소구력이 강하다. 이용자들은 항상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을 통해 출퇴근, 운전과 같은 이동 상황은 물론, 운동, 산책, 휴식 등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오디오북을 이용한다. ‘업글인간’이란 신조어가 탄생했을 정도로 현재의 20~30대는 자기계발에 목을 매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렇게 형태를 바꾼 다양한 책들이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까지 독서인구로 전환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여가 취향의 다양화가 만든 변화일 수도
이런 모든 변명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한국의 독서인구는 2011년 61.8%에서 2019년 50.6%까지 떨어졌다. 만 13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1년 중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은 비율을 조사한 설문조사의 결과가 50.6%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두 명 중 한 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지난 1년 동안 독서인구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는 14.4권으로 최근 10년 이래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이런 결과가 도출된 통계청의 〈2019년 사회조사연구〉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또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한국인들은 책을 읽는 대신 어떤 여가활동을 즐기는가에 관한 답이다.
독서를 여가활동의 한 범주로 포함한다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가활동은 영화감상과 TV 시청이다. 주중을 기준으로 할 때 TV 시청 인구는 79.2%에 달한다. 게다가 조사대상의 88.2%가 연중 영화를 1회 이상 관람한 것으로 응답했고, 평균 6.2회에 걸쳐 극장을 방문한 것으로 응답했다. 음악·연주회·콘서트 관람률 24.9%, 연극·뮤지컬·마당극 관람률 20.7%, 박물관 관람률 23.7%, 미술관 관람률 19.6%, 스포츠 관람률 23.5%에 비하면 독서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물리적 거리 이동과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독서는 진입장벽이 낮은 편임에도 외면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지만, 20~30대가 최근 가장 빠져 있는 여가활동으로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영상 콘텐츠 소비도 빼놓을 수 없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외부 활동이 제약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집콕’ 생활을 하게 된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준 건 짧은 시간 웃고 즐길 수 있는 ‘스낵’ 콘텐츠였다. 일례로 〈가짜사나이〉나 〈머니게임〉과 같은 유튜브 예능은 단기간에 1,000만 명 이상이 감상하며 지난 1년여간 콘텐츠를 넘어 가장 히트한 상품 중 하나가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말초적 재미를 자극하는 이런 콘텐츠를 보면서, 댓글로 실시간 소통을 하는 시청 방식을 더 익숙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유튜브 스트리밍과 트위치, 인스타그램 라이브와 같은 스트리밍 방식을 통한 영상 소비가 익숙해지면, 점점 더 고정된 활자를 읽고 혼자서 곱씹어야 하는 책을 읽는 습관은 어렵고 지루하며, 부담스럽게 느껴질 가능성이 커진다.
남들 다 아는 걸 나만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대세 콘텐츠’를 놓치는 건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책은 어떨까? 연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소설의 판매량도 불과 30~40만 부에 불과한 시대가 됐다. 몇 시간을 매달려 읽은 소설이나 책을 내 또래 중 누구와도 의견을 나누고, 인스타그램 등의 SNS로 공유할 수 없다면? 이들 세대에게는 굳이 읽어야 할 필요를 찾지 못하는 비주류 콘텐츠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출판사들은 밀레니얼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와 SNS 운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낯선 사람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밀레니얼세대를 위해 유료 오프라인 모임도 생겨나고 있다. 유료 북클럽 회원 수 2만 명을 돌파한 ‘트레바리’ 등의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모임에 ‘내돈내산’ 책을 들고 찾아오는 이들은 배움과 읽기에 대한 갈망보단,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한 갈망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영상을 보면서, 같이 댓글을 다는 밀레니얼세대가 지닌 취향의 연장선상에 있는 행동이라는 이야기다.
바야흐로 단군 이래 종이책을 팔기 가장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한 해 출판시장의 매출은 기대 이상으로 크게 성장했다. 코로나 시대는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책 읽는 시간’을 돌려주었지만, 이러한 반짝 특수는 결국 지나갈 것이다. 특히나 젊은 독자를 돌아오게 만들지 못한다면 말이다. 앞으로 출판계는 젊은 독자를 잡기 위한 전쟁과 함께, 전자매체를 통해 여가 시간을 독점하는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거대 플랫폼과의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됐다.
과거 출판시장 고령화를 취재하던 시기에, 한 출판사 대표가 들려준 말이 있다. “출판계에서 20대 독자가 늘어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책의 타깃 독자 설정과 무관하게 문화적 폭발력과 영향력은 청춘의 입김에서 새어 나오고 그 발화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독자가 줄어드는 건 출판인들에게 영원한 고민이었지만, 요즘 젊은 독자는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됐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김슬기(매일경제 매일경제신문 문화스포츠부 기자) 13년 차 기자로 기자 생활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보냈다. 대중문화, 공연, 미술 등을 두루 담당했고, 출판-문학담당을 9년간 붙박이로 하면서 출판계에 애증을 품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