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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4  2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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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시대는 저무는가]
책 읽던 독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가희(뉴돛 대표, 유튜브 책읽찌라 운영)

 

2021. 8.


 

책을 읽는 사람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읽고 볼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종이책은 안 읽지만, 역설적으로 더 많은 문자를 읽는지도 모른다. 눈 뜨는 순간부터 자기 전까지, 인류는 유례없이 더 많은 것을 읽고 보고 있다. 다만 그것이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출판의 범주를 생각해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펼쳐지고 있는 건 아닐까. 2019년과 2021년, 나는 전북대학교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출판 및 퍼블리싱 분야 전문가 양성 사업’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출판에 관심이 있는 학부생들을 만나는 건 참 설레는 일이다. 취업의 좁은 문에도 불구하고, 대학 문을 나서는 친구들에게는 얼마나 새로운 기회가 도사리고 있는가. 적어도 출판업계의 폭은 훨씬 더 넓어졌고 직업 선택지는 많아졌다. 게다가 시대는 ‘콘텐츠’의 편이다. 나는 이 친구들이 상상할 수만 있다면 출판과 관련한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이 프로그램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토대로 오늘의 이야기를 펼쳐보려고 한다.

 

출판계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일어났을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모든 업계에서 기존의 질서를 흔들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무엇을 디지털화할 수 있는지, 많은 이들이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다. AI가 소설을 쓴다거나, 메타버스 세계에서 책을 읽는 방법까지 책과 관련한 미래 기술은 이따금 기사로 등장해 SF 소설처럼 우리를 설레게 한다.

 

출판과 관련해서 오래 전부터 언급되고 있는 기술로는 데이터를 통한 추천과 PoD(Publishing on Demand)가 있다. 나도 2013년 다니던 회사를 나와, 책과 관련된 데이터에 초점을 맞추고 창업을 했다. 책 속의 문구를 촬영하면 텍스트로 변환해주고, 쉽게 아카이빙할 수 있는 ‘원센텐스’라는 앱 서비스다. 미국의 ‘Good Reads’처럼 독자들의 독서 기록을 바탕으로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해주겠다는 야심이 있었는데, 모바일 앱 초기엔 이렇게 독서 데이터 관련한 스타트업이 꽤 많이 등장했다. 창업자들을 종종 만나곤 했는데, 핀테크처럼 ‘북테크 스타트업’이라는 말을 만들어 협력을 도모했다. 한편 책과 관련된 스타트업에는 내 나름의 상대 진영이 있었으니, ‘북 콘텐츠 스타트업’들이었다. 주로 카드뉴스를 통해서 책을 소개하는 ‘책 끝을 접다’나 ‘열정에 기름 붓기’ 같은 브랜드였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도서 데이터를 활용한 추천 서비스도, PoD도 업계의 주류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북 콘텐츠 스타트업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돌이켜보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연결’에 있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얼마나 가깝게 연결하는가. 모든 업계를 관통하는 이러한 현상은 책 『D2C 레볼루션』(로런스 인그래시아, 부키)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D2C 현상은 출판계의 모습도 상당히 바꾸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서점 대신, 또 신문이나 버스 광고 대신 저자와 출판사는 직접 독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혹은 그사이에 소셜미디어의 생리를 잘 이해하는 소셜미디어 매개자들이 있었다. 소셜미디어와 함께 등장한 이들의 짧은 역사가 매우 흥미롭다.

 

 

(1) 미디어 플레이어의 등장

 

처음엔 주로 SNS 구독자를 다수 확보하고, 소셜미디어 문법을 잘 아는 카드뉴스가 유력했다. 어느 날 파주에 ‘책 속의 한 줄’을 운영하는 회사가 “아직도 버스에 책 광고하니?” 라고 하는 도발적인 카피의 버스 광고를 게재했던 기억이 난다. 판매까지 정확하게 계량하긴 어렵지만, 카드뉴스 콘텐츠로 넘어오면서 조회 수와 같은 마케팅 결과가 측정 가능해졌다. 또 ‘책 끝을 접다’, ‘열정에 기름 붓기’ 같은 콘텐츠 브랜드는 구간을 역주행시키는 사례도 왕왕 만들곤 했다.

 

나는 그즈음 ‘원센텐스’를 알리기 위해 ‘책읽찌라’ 채널을 시작했는데, 그 길로 얼떨결에 책을 소개하는 북튜버가 되었다. 우리 앱 서비스의 한 달 사용자보다 더 많은 사용자가 내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과 관련된 미디어는 점점 많아졌고 실제 판매량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20년 연간 베스트셀러 10위에 든 도서만 살펴봐도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흔한남매』가 미디어로부터 기인한 콘텐츠거나, 미디어를 잘 활용한 사례였다.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의 경우는 저자가 인스타그램에 매일 책 속의 구절을 떼어 올렸는데, 그게 사랑을 받으며 역주행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과 『흔한남매』는 팟캐스트와 유튜브로 유명해진 콘텐츠의 IP(지식재산권)를 기반으로 도서를 출간했다. 모두 미디어를 통해 고객들에게 직접 가닿은 사례다.

 

 

(2) 출판사가 미디어를 운영

 

독자와의 접점에 있어 미디어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니 출판사도 앞다투어 미디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민음사TV’가 의미 있는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고, 문학동네의 ‘편집자K’도 출판사 계정과는 별개로 책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로 사랑받았다. 다산북스는 아예 콘텐츠 계열사를 따로 만들어 ‘소행성 책방’, ‘북스피릿’, 그리고 연예인 김경식이 영화처럼 책을 소개하는 ‘북경식’이라는 채널까지 운영한다. 채널만 봐서는 어떤 출판사가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하는 수 없이’ 미디어에 뛰어들어 독자들과의 접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3) 미디어가 출판으로 진출

 

하지만 출판사가 미디어를 잘 하는 것보다는, 잘 나가는 미디어가 출판사를 하는 경우 더 파급력이 컸다. 이미 영향력이 큰 미디어가 출판을 통해 책을 잘 팔기 시작한다.

 

2020년 베스트셀러였던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의 전승환 작가는 ‘책 읽어주는 남자’ 콘텐츠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많은 채널에서 구독자를 확보하고, 독자들을 위로해주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보니, 비슷한 결의 책은 곧 구매 전환으로 이어졌다. 최근에 이 콘텐츠 회사는 북로망스라는 출판사를 내고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 『안녕, 소중한 사람』 등의 에세이를 베스트셀러에 올리고 있다. 탄탄한 팬덤이 있고, 이들의 니즈를 잘 꿰뚫고 있기 때문에 출판사를 직접 운영했을 때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14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삼프로TV’ 역시 직접 출판사 ‘페이지2북스’를 내고 경제와 주식 관련 도서를 펴내고 있다. 저자들이 주로 삼프로TV 출연진이다 보니, 책이 나오면 자체 채널을 통해 저자를 어필하고 책을 홍보할 수 있다. 최근 삼프로TV는 상장을 준비하면서 여러 채널과 제휴 및 합종연횡을 강화하는 옴니채널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지식/경제 콘텐츠 채널들과 출판이 융합한다면 분명 더 큰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4) 오리지널 콘텐츠

 

나의 경우, 오랫동안 유튜브로 책을 소개만 하다 보니 한계가 느껴졌다. 저자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영상으로 연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시온’이라는 채널을 열었다. 그리고 책읽찌라 채널을 하면서 수요가 크다고 느꼈던 키워드인 ‘우울증’과 ‘밀레니얼 세대의 일(work)’을 주제로 시리즈물의 영상을 제작했다. 예능이나 드라마처럼 이름을 붙이고 동명의 책을 출간하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선판매했다. 오늘날 ‘오리지널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많은 미디어에서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 나는 이 또한 다른 의미의 ‘퍼블리싱’이라고 생각한다. 영상과 책이라는 두 개의 매체를 통해 발행할 뿐,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펼치는 과정은 같다.

 

부부가 운영하는 출판사 ‘구백 킬로미터’도 ‘요즘 것들의 사생활’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의 일하고 살아가고 사랑하는 방식을 영상으로 담고, 동시에 책으로도 출간한다. 이런 경우 뭐가 먼저랄 것이 없다. 책과 출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출판의 범주를 어디까지 볼 수 있을까

 

그래도 앞서 살펴본 건 종이책이지만, 웹소설도 책의 범주에 넣어줘야 할까? 웹소설을 책으로 넣어준다고 한다면 결코 책을 덜 읽는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 웹소설 이용자 실태조사”(한국콘텐츠진흥원, 2020)에 따르면, ‘평소 이용하는 디지털 콘텐츠’에서 ‘웹소설’이 73.6%로 1위를 기록했다. 그다음은 ‘만화(55.1%)’, ‘음악(53.7%)’, ‘영화(42.8%)’ 순이었다. 절대적으로 많은 사용자가 웹소설을 읽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종이 출판사의 2020년 매출액은 4조 8,080억 원으로 전년 대비 4.1% 줄었다. 그중 상위 23개 출판사의 영업 이익이 220억을 기록했는데, 전자책 플랫폼의 영업 이익은 상위 9개사 기준으로 750억 원을 기록했다.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규모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수치다.

 

 

단행본 부문 주요 출판사의 최근 3년간(2018~2020년) 매출액 현황

 

전자책 플랫폼 부문 주요 기업의 최근 3년간(2018~2020년) 매출액 현황


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2020년 출판시장통계”

 

게다가 글로벌로 눈을 돌리면 더 놀라운 현상이 펼쳐진다. K 웹툰이 압도적으로 해외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적이 있을까? 우리나라의 만화 시장 규모가 1조 원인 반면, 미국은 1조 5천억 원, 일본은 5조 8천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K 웹툰 플랫폼이 일본과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다. 일본의 웹툰 1위는 카카오 웹툰 서비스 ‘픽코마’가, 2위는 네이버의 ‘라인 망가’가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1위는 ‘네이버 웹툰’이 차지하고 있으며 2위인 ‘태피툰’을 네이버가 인수했고, 3위인 ‘타파스’를 카카오가 인수했다. 최근에는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네이버가 6,500억 원에 ‘왓패드’를 인수했고, 카카오가 5,000억 원에 ‘래디쉬’를 인수하면서 콘텐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자책 플랫폼을 꾸준히 해온 리디(RIDI) 역시 미국에서 ‘만타’를 출시해 백만 다운로드를 넘긴 상황이다.

 

이런 콘텐츠 전쟁에 국내 웹소설, 웹툰 출판사는 덩달아 수혜를 보고 있다. 디앤씨미디어, 키다리스튜디오, 미스터블루 등 수많은 웹소설, 웹툰 출판사의 주가가 매우 높아졌고, 인수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다만 치열한 IP 전쟁에서 전통적인 종이책 출판사는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있다. 민음사에서 출판사 황금가지를 내고 플랫폼 브릿G를 열기도 했으나 웹소설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다만, 영상화에 대비해 꾸준히 소설 IP를 확보한 중소 출판사들이 떠오르고 있다. ‘안전가옥’은 IP를 발굴하기 위해 꾸준히 공모전을 주최하고, 장르 작가들을 육성했다. 그 결과 많은 영상 제작사와 협업하고 있다. 장르 작가들을 매니지먼트하고 집필 단계부터 지원하는 ‘고즈넉이엔티’도 마찬가지다. 소설 『청계산장의 재판』의 판권을 한국 최초로 할리우드에 팔았을뿐더러, 보유한 작품의 30%를 2차 판권 계약에 성공했고, 올해 영화 제작사인 ‘위지윅 스튜디오’에 인수되었다.

 

한편, 정액제 서브스크립션도 출판사의 구조를 바꾸는 주요한 변화다. 전자책을 다루는 밀리의 서재는 300만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밀리의 서재는 오디오북이나 챗북 같은 형태로 콘텐츠를 재가공하여 서비스하기도 한다. 퍼블리는 책과 아티클의 중간 형태를 빌어, 짬짬이 읽기 유용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2만여 명의 유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135억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

 

또 최근에는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도 급격히 많아졌다. 예술에 관한 이야기만 다루는 ‘널 위한 문화예술’, 창업과 기업과 정신을 주제로 다루는 ‘EO’ 같은 채널을 보면 깊이 있는 지식을 탐구해서 제공하고 있다. 이 역시 책은 아니지만, 책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퍼블리싱’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쯤 되면 책을 위협하는 책의 경쟁자는 정말 말할 수 없이 확장되었다고 하겠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한때 종이책이었던 것들이 있다. 사전과 지도, 화보 같은 친구들이다. 뒤이어 정보와 지식을 담고 있던 책들은 이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로 옮겨갔다. 최근에는 웹소설이 웹툰이 되고, 다시 영상이 되면서 ‘이야기’들은 더 값싸고 손쉽게 다른 매체로 옮겨가고 있다. 종이와 활자는 한때 강력한 도구였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에서는 밀려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종이책이 가장 큰 효용을 줄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게 ‘사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음으로써 사유할 수 있는 이야기는 쉽사리 다른 매체로 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원래 깊이 있는 책을 많이 읽었던 이들은, 뉴미디어 시대에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더욱 가치 있는 프리미엄 영역에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회로를 돌려본다.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지만, 독서를 프리미엄 영역에 포지셔닝한 ‘트레바리’는 분명히 옳은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종이책 읽는 독자가 적어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참 좋은데,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는 독서의 전도는 이미 오래 묵은 고민이다. 할 수 있는 건 소수를 위한 프리미엄 시장을 노릴지, 책이 가지고 있는 퍼블리싱의 의미를 확장해 나갈지 선택일 뿐이다. 누군가에겐 위기이고 누군가에겐 기회의 시기가 아닐까.

이가희

 

이가희(뉴돛 대표, 유튜브 책읽찌라 운영)

뉴미디어 스타트업 뉴돛을 운영하고 있다.
책을 소개하는 유튜브 ‘책읽찌라’와 MZ세대를 위한 오리지널 콘텐츠 채널 ‘해시온’을 제공한다.
gahee@newdhot.com
https://www.youtube.com/channel/UCW-xgKdaPidxpJ6j6HZP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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