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4 2023. 06.
[출판계 인력난, 이대로 괜찮은가?]
표정훈(출판평론가・작가)
2023. 06.
일의 네 가지 측면 - 보상, 능력, 재미, 의미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첫째, 경제적 보상 곧 돈 때문이다. 시쳇말로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 더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해 일한다. 보다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자산을 축적하기 위해 일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한다. 나의 노동 시간과 질, 성과에 합당한 경제적 보상이 주어져야 나는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다.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며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애쓴다.
둘째, 능력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아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물론 처음부터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분야에서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극히 드물다. 능력과 경험을 쌓아가면서 자기 계발에 힘쓰며 일을 한다. 그렇게 능력이 쌓이고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경제적 보상도 높아진다. 어느 분야에서 점차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 그에 따른 자부심, 자기 존중감도 높아진다.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일의 보람, 나아가 사는 보람을 느끼게 된다.
셋째, 재미다. 능력을 발휘하여 돈을 버는 것이 일의 전부라면 그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내가 하는 일에서 언제나 재미를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가끔은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돈을 받는 경제적 보상의 재미 외에 일 자체에서 느끼는 재미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협력해가면서 뭔가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만들어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과정 자체에서 누리는 재미다. 그야말로 일을 성사(成事)시키는 재미다. 프로 야구 선수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힘들게 훈련하지만 홈런 칠 때, 안타 칠 때 누리는 재미를 양보하기 싫을 것이다.
넷째, 의미다.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이 세상에 작든 크든 기여를 한다는 보람이다. 가치라고 바꿔 말해도 되겠다.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는 느낌은 중요하다. 환경미화원은 공공장소를 깨끗하게 유지하여 사람들이 보다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번역가는 외국어로 쓰인 책을 우리말로 번역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지식 영토를 넓힌다. 단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상, 능력, 재미, 의미를 두루 갖춘 일이 과연 있을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빌 게이츠(Bill Gates)나 스티브 잡스(Steve Jobs), 일론 머스크(Elon Musk)라면 또 모르겠다. 신기술로 세상과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는 의미, 세계 시장을 석권하며 쌓은 엄청난 부(富), 해당 분야를 선도하는 남다른 능력, 신기술 개발과 사업에 몰두하는 재미까지. 그러니까 그들은 빌 게이츠고 스티브 잡스이며 일론 머스크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럭저럭 보상과 능력 측면이 충족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재미를 느끼고 의미를 누릴 때도 있지만 그건 그냥 일종의 덤이다.
기본을 지키며 존중하고 배려하기
그렇다면 출판이라는 일, 일로서의 출판은 어떠한가? 돈, 경제적 보상 측면에서 출판은 안타깝지만 매력적이지 못하다. 2019년 말에 ‘북에디터(bookeditor.org)’에서 이뤄진 출판계 익명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균 연봉 약 3,060만 원, 특근 수당과 상여금 등을 뺀 평균 월급 약 244만 원, 신입 사원 평균 연봉 약 2,400만 원이었다. 연봉 6천만 원 정도가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집단을 정밀하게 기획, 설계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조사이기에 이 수치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출판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짐작하게 해주기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출판이라는 일이 보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그걸 몰라서 출판계에 들어오나?’인 것이다. 하루아침에 전반적인 업계 연봉 수준을 높일 수도 없는 일이고, 결국 한계 안에서나마 보상 체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을 정확하게 준수하고 육아 휴직, 가족 돌봄 휴직 등 제도를 최대한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능력과 실적에 따라 연봉을 보장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포상(褒賞)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원들에게 자기 계발이나 재충전 기회를 제공, 보장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연봉 수준이 높지 않아도 이러한 보장에서 만족을 느끼는 젊은 출판인들이 제법 있다. 회사가 자신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연봉에 퇴직금이 포함된 불법마저 아주 드물지 않다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출판은 다른 사업과 다르게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는 출판인들이 많다.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출판업을 시작한 동기에도 그런 자부심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그러한 자부심과 보람이 진정 가치를 발휘하려면 법과 규정, 제도부터 철저하게 지킬 필요가 있다.
‘인간적으로’보다는 ‘업무적으로’
직원 숫자가 많지 않은 출판사가 다수다. 그러다 보니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른바 회식 자리도 잦아질 수 있다. 그러나 출판사든 그 어떤 직장이든, 직장은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성과를 내는 곳이다. 요컨대 ‘인간적으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업무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곳이다. ‘인간적으로’ 나아가 ‘가족적으로’ 잘 어울려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출판사 대표나 선임자가 스스로 버리는 게 좋다고 본다.
각자 맡은 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을 쌓아나가고,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선배로서 업무상 조언과 도움을 주는 것 외엔 불필요하다. 같은 출판사에서 일한다고 해서 ‘한 식구’인 것도 아니고 ‘동지(同志)’인 것도 아니다. 업무 측면 외에는 서로 간의 거리를 존중하는 게 좋다.
이 점에서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의 인식 차이가 제법 커 보이기도 한다. ‘출판은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하는 일인데 서로 한 식구처럼 뭉쳐야지!’라고 생각하는 나이 든 세대에 비해, 어디까지나 일로 만난 관계는 일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차이다. 나이 든 세대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신임자에게 업무를 철저하게 가르치던 한 출판사 대표를 떠올려본다.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저 친구가 나하고 평생 같이 일할 리 없고 언젠가는 다른 출판사로 옮기거나 창업을 하겠지요. 그럴 때 적어도 이 출판사에서 일을 제대로 배웠다는 걸 자랑스러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출판인들이 ‘저 출판사에서 일한 사람은 신뢰가 간다’고 여기면 더 좋겠고요. 그래서 가급적 철저하게, 꼼꼼하게 가르치려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출판인의 자존심, 자부심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그 신임자는 회사와 함께 자신이 성장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합리적 설득과 설명
출판 관련 교육 기관에서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고 출판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는 늘어났지만 여전히 출판계는 일하면서 배우는 경우가 많다.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식이거나 일종의 도제(徒弟)식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임자가 신임자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주입시키는 경우도 많다. 설명하고 설득하며 가르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따른 방식을 무작정 지시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합리적 설명과 설득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 지시를 젊은 세대가 과연 납득할까?
선임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출판사 자체 업무 매뉴얼을 분야별로 정리해놓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적어도 업무 과정에 대한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합리적 설득과 설명이 필요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으로는 젊은 세대를 납득시킬 수 없다. ‘나를 따르라’는 일방적 리더십으로는 젊은 세대를 이해시킬 수 없다. ‘왜 따라야 하는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선임자는 후임자 혹은 신임자를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파트너로 대해야 한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을 시키며 소모하는 하급자로 대해서는 안 된다. 창의성과 유연한 사고, 새로운 관점, 다양한 아이디어가 반드시 필요한 출판 일에 상명하복(上命下服)식의 관계와 조직 문화는 금물이다. 선임자와 후임자 모두 각자 의견을 내고 생각을 나누고 발상을 공유할 수 있는 열린 소통과 상호 존중의 조직 문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어디까지 일해야 하는지 분명히 하자
출판 일은 어디까지가 한 사람의 업무 범위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책 한 권에 대해 기획부터 저자·번역자 섭외, 계약, 편집, 제작, 마케팅, 홍보 등등까지 한 사람이 전 과정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요즘엔 카드뉴스를 만들거나 홍보용 영상물을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굿즈를 기획·제작하기도 한다. 북 토크나 저자 강연, 사인회 등 행사도 기획·진행해야 할 때가 있다. ‘편집자는 만능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편집자 5명이 일하는 출판사라면 마치 ‘1인 출판사 5개’가 움직이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출판인이 출판의 모든 과정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며 필요하다 하겠지만 모든 과정을 다 책임지며 다 잘해내야 하는 것일까? 그 모든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내야 능력 있는 출판인이며 그렇지 못하면 무능력한 출판인일까? 물론 속속들이 다 잘 알고 다 잘해내면 좋겠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업무의 범위, 전문성의 범위와 직무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도대체 무슨 일을 어디까지 해내야 하는 것인지 애매하고 모호한 상황이 답답하지 않을까?
‘나 때는 그거 한 사람이 당연히 다 했어!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애썼지. 출판이라는 게 본래 그런 거야!’ 행여 이런 생각을 하는 선임자가 있다면?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강점을 지닌 업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모든 걸 다 잘해야 한다고, ‘만능 출판인’이 되어야 한다고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분위기가 없지는 않은지 되살필 일이다.
문화와 관행, 자세를 바꾼다는 것
‘젊은 출판인을 늘리는 방법’이라는 글 주제를 처음 접했을 때 참으로 막막했다. 덜컥 원고 청탁에 응해놓고 후회가 밀려왔다. 사실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겠는가. 설령 그런 게 있다 한들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연배 높은 한 출판인에게 물어보았다. “힘들고 돈도 잘 되지 않는데 왜 출판을 해오셨습니까?” 우문(愚問)에 대한 현답(賢答)은 다음과 같았다.
“우연이라면 우연하게 출판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어요. 어려움이 많았지만 하다보니까 일도 손에 익고, 어떤 의미에선 마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세상에 없던 책을 탄생시키는 일이잖아요. 또 책이라는 매체는 참 자유롭거든요. 세상에 같은 책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 재미와 보람으로 견뎌온 것 같아요. 책 한 권 한 권이 탄생할 때마다 그야말로 산고(産苦)를 치르잖아요. 막상 책이 나오고 나면 고통은 다 잊게 되고…. 또 새 책을 기획하고.”
다시 일의 네 가지 측면, 보상, 능력, 재미, 의미를 생각해 본다. 위의 출판인은 재미와 의미를 강조한 셈이다. 충분한 보상까지 따른다면야 좋겠지만 그것이 당장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젊은 출판인들이 능력과 전문성을 기르면서 재미를 누리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이 되지 않을까.
일이기도 하다. 결코 쉬울 리 없다. 젊은 출판인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 출판이 젊은 세대 독자들과 점점 멀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렵더라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표정훈 출판평론가・작가 서강대학교에서 철학과를 전공했다.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특임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강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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