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Vol.50  2023. 12.

게시물 상세

 

[특별 대담]
2023 출판시장 결산과 트렌드 예측

 

 

 

〈출판N〉 편집부

 

2023. 12.


 

2023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출판N〉은 올 한 해 출판시장 동향과 내년 출판 트렌드를 전망해보기 위해 출판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패널들을 모시고 ‘특별 대담’을 주최했다. 이번 대담에서는 출판계의 불공정 계약과 저작권 침해 문제부터 생성형 AI의 등장, 업마켓 소설의 강세, 마케팅 툴로 전락해버린 ‘펀딩의 비펀딩화’까지 다양한 주제들로 담론이 펼쳐졌다. 올 한 해 출판계를 뒤흔든 이슈들을 점검해보고, 이러한 흐름이 2024년에도 이어질 것인지 대담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시:
2023.11.15.(수)
진행: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참석:
김성신(출판평론가)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박태근(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김성신 출판평론가,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김성신 출판평론가,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

 

 

Part1. 2023년 한국 출판계 이슈

 

올해 출판계 이슈는?

 

백원근  올해 한국 출판계에는 정책적으로 다양한 이슈가 있었다. 2023년에 한국 출판계와 출판시장에 있었던 주요한 이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박태근  올해는 서울시 마포구의 작은도서관 폐관 정책과 플랫폼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의 운영 문제를 비롯해 진중문고 예산 삭감으로 인한 폐지 우려 등 출판산업 정책과 관련된 이슈들이 독자와 출판사 등에 밀접하게 닿아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 한 해였다.

 

김성신  2023년의 가장 큰 이슈는 출판계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간의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문체부에서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 누락 및 세종도서 사업 방만을 지적해 조치가 취해지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정책적인 갈등은 내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적인 이슈 외에는 고(故) 이우영 작가의 ‘검정 고무신’ 사태와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전자책 해킹 사건으로 인해 대두된 불공정 계약·저작권 침해 문제가 있다. 이 두 가지는 출판산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다. 따라서 향후에는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는지 계속해서 반성적인 성찰이 필요하겠다.

 

김세나  앞서 언급된 이슈 외에도 대학도서관 장서 폐기, 공공·학교도서관 성교육 도서 검열, 서울국제도서전 ‘오정희 작가 논란’, 작은도서관 예산 삭감, 출판 도서 지원 관련 예산(국민독서문화증진) 삭감,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 삭감 등 올해는 특히 출판계에 암울한 소식이 많았다. 그리고 알라딘뿐 아니라 서울도서관에서도 전자책 서버가 해킹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런 사건들은 출판의 근간을 흔들고 책 만드는 사람들에게 불안을 안겨주는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한편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올해 이슈로 『슬램덩크』(다케히코 이노우에(井上雄彦), 대원씨아이) 열풍을 눈여겨볼 만하다. 영화 개봉 두 달 만에 단행본 100만 부 판매를 넘길 만큼 대단한 인기가 있었고, 특히 3040 남성 독자들의 힘과 팬덤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뿐만 아니라 수년 전부터 대본집·각본집의 인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봤을 때 이제 책이 하나의 콘텐츠를 더 깊이 있게 즐기고 소장 욕구를 채우는 ‘굿즈’로서의 역할로 발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생성형 AI가 몰고 온 출판계 소용돌이

 

백원근  사회 전반으로 챗GPT(ChatGPT), 구글 바드(Google Bard) 등 생성형 AI 활용이 확산되면서 출판계에서 관련된 책이 많이 출간되기도 했다. 향후 AI가 출판산업의 다양한 부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AI 시대에 출판 분야는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관련된 책들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지 등 AI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김세나  국내에서 올해 초 처음으로 챗GPT가 쓴 책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스노우폭스북스)이 출간되었는데, 집필부터 교정교열, 책 표지 디자인까지 AI가 도맡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호기심에 사본 독자들이 많다. 또한 한국어가 서툰 일본인이 네이버 번역 AI인 ‘파파고’의 도움으로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상을 수상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AI 활용은 빠르게 진화하여 지금은 번역부터 디자인, 일러스트, 창작 등 출판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흔해졌다. 그러다 보니 AI를 활용하여 만든 콘텐츠는 표절 위험도 심각해서 AI가 출판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이에 일자리 불안을 느끼는 이들도 있는데, AI가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단순 작업은 AI로 대체되겠지만, 출판은 각 과정이 매우 섬세하다. 결국 전체 작업을 총괄하는 ‘메타 인지’ 부분에서 인간의 역할이 더 중요할 것이기에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다만 AI를 잘 활용할 줄 아는 프리랜서와 그렇지 않은 프리랜서 간 작업량이나 노동 시간, 결과물의 질적 측면에서 격차가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은 이를 더 잘 대비해야 할 테고, 출판계에서도 윤리적·제도적으로 잘 준비해야 할 듯하다.

 

김성신  히든브레인연구소에서 생성형 AI를 통해 저자 100명이 100권의 책을 동시에 출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례가 있다. 일차적으로는 출판계의 확장성을 잘 보여줬다는 평이 있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고 느꼈다. 지금까지는 저자가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독자들의 신뢰와 팬덤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방면에서 지적 산물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AI를 활용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책의 가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책을 쓴 저자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된다. 다시 말해서 너무 많아지면 가치는 휘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챗GPT 등 AI를 활용한 다양한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조만간 독자들은 AI를 활용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박태근  올해 챗GPT 관련 도서가 100종 이상 출간되었다. 이러한 기술 이슈에 있어서 한국 출판계가 책으로써 굉장히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것 같다. 그런데 출판산업에 있는 많은 분들은 당장의 생존이 시급하다 보니 아직까지는 AI와 거리감이 있다. 지금은 이 기술을 여기저기에 활용해보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예컨대 외서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AI 번역을 통해 책 전체를 번역해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교재 등 지식을 전달하는 책을 만들 때는 교정교열 단계에서 문장을 보는 것만큼이나 내용이 합치하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중요한데, AI를 통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 일을 해내고 있다. 이렇게 작은 부분부터 출간까지 다양하게 AI가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에 대해 뭐가 옳고 그른 건지는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AI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AI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활용 사례를 많이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맞이하게 될 총체적인 기술 변화에 있어서 출판산업에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을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판사 규모에 따라 기술 도입에도 격차가 생길 수 있을 터라, 업계 전체에서 필요한 기술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개발하고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백원근  무엇보다도 생성형 AI라는 사회적 관심사에 부응하는 출판시장의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출판산업에서의 활용 단계는 아직까지 초입 단계이지만 앞으로도 변화에 맞춰서 콘텐츠로 잘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겠다. 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며 생기는 정보 격차의 문제는 향후 검증된 기술이나 방법이 나타나면 그것을 작은 출판사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보급되어야 한다는 시사점도 있는 것 같다. 한편, 국제적으로는 AI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규제적인 관점에서 규율을 강화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결국 사회의 질서를 판단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AI의 저작권 침해에 대한 문제 등은 화근이 될 수 있는 소지가 있어서 앞으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주목해야 할 출판 마케팅 사례는?

 

백원근  최근 주목해야 할 출판 마케팅 사례나 새로운 동향은 무엇인가?

 

김세나  ‘올해 마케팅 트렌드’라고 꼽아 말하긴 어렵지만, 최근에 특히 역주행 도서들이 꽤 많았다. 물론 과거에도 방송이나 신문에 특정 도서가 언급되면 역주행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요즘에는 출판사에서 수소문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제는 유튜브 등 매체가 다양해져서 모든 대중이 아는 파워 인플루언서가 아니더라도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꽤 크기 때문이다.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은행나무, 2015)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 아닐까. 2020년부터 판매량이 꾸준히 늘더니, 올해 1분기에는 5만 부가 팔리고, 현재 총 15만 부 이상 팔린 걸로 알고 있다. 요즈음 독자들은 최대한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인 검증된 선택, 실패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독자 스스로의 감이나 스스로 재밌어 보이는 책을 고르기보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 즉 그 사람이 구독자가 적은 유튜버일지라도 나와 취향이 겹치고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의 선택을 믿고 구매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점 마케팅보다는 이러한 ‘믿을 만한 사람’의 추천, 즉 입소문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니 출판사에서는 홍보 계획을 세울 때,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해당 도서와 핏(fit)이 잘 맞는 채널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김성신  출판과 책에 대한 대중적 영향력을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등 유명인사가 아니라, 출판산업 내부자(출판인)가 직접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올해 교유서가에서 신입 마케터 두 분이 유튜버로 직접 나서며 재미있는 진행과 완성도 높은 콘텐츠 편집으로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흐름출판의 박대리 등 출판인의 정체성을 가진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이 등장해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런 것이 작은 사건들 같지만, 멀리 보았을 때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출판계 내부에서 출판 인플루언서들을 직접 생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출판계뿐 아니라 도서관계, 서점계 등 책을 중심에 두고 있는 여러 공공기관이나 산업계가 모두 이런 상황을 주의 깊게 보면서 그 성과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태근  올해의 출판 마케팅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공간 경험’이다. 최근 문학동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작가의 신간을 출간하면서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내어 ‘하루키 스테이션’을 진행했다. 그리고 위즈덤하우스에서는 피크닉이라는 공간에서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 전시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 경험’ 마케팅은 충분한 자본과 컨설팅이 필요하기 때문에 작은 단위의 도서에서는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다만 지금 한국에서 가장 힙한 장소들에서 운영되었다는 게 책과 저자에 대한 독자들의 매력을 높이고 판매를 증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펀딩의 비펀딩화’이다. 도서 펀딩은 초기에 작은 출판사의 좋은 책을 지원한다는 의미로 시작되었는데, 이후 책을 출간하기 전 일종의 예약 판매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다가 지금은 인터넷서점 사이에서 경쟁 마케팅 툴로 활용되면서 출판계 10위권 안에 있는 대형 출판사들도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펀딩의 목표 금액도 크지 않아서 펀딩 그 자체보다는 그로 인한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사실상 ‘단독 예약 판매’처럼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유명무실해진 펀딩이 독자들에게 꾸준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지 의문이다.

 

김성신  각 인터넷서점에서 진행하는 도서 펀딩에 대해 한 가지 짚고 싶은 부분이 있다. 어떤 출판사가 한 서점에서 도서 펀딩을 진행하면, 다른 서점에서는 그 책을 진열하지 않는 관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서점의 기능을 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판매하는 ‘상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존재다. 그래서 면세도 받고 공공도서관에서 무료로 빌려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즉 책에는 공공재로서의 본질이 있다는 것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이다. 서점 간의 경쟁과 마케팅이 사회적 공공재를 다룰 만한 수준인지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출판사와 서점이 단순히 돈벌이가 아닌 파트너십을 가지고 서로의 경영 철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백원근  도서 펀딩을 출판사와 인터넷서점 간의 협업 이벤트 정도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별도로 문제의식이나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서점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유통에 관해서도 혹시 덧붙일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린다.

 

박태근  최근 오픈마켓의 대표 주자인 쿠팡의 매출이 알라딘을 넘어서는 출판사들이 속속 생겨나는 상황이다. 이 사실은 이후의 출판 마케팅이나 유통·판매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들은 현재 서점의 추천 역할이 유튜브 등 외부 채널을 통한 마케팅보다 작다고 느끼고 있다. 오픈마켓의 매출은 증가하고 있는데 출판계가 서점에 갖게 되는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서점의 입장에서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세나  그래서 요즘 출판사에서 마케터를 추천해달라며 필수 요건처럼 “쿠팡 유통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출판 마케팅의 경험이 전혀 없어도 쿠팡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쿠팡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다 보면 점차 출판 유통 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꼽는 쿠팡의 장점은 빠른 배송과 더불어 무료 배송·무료 반품인데, 인터넷서점에서는 무료 반품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쿠팡의 이러한 편의성에 독자들이 익숙해진다면 책을 조금 읽다가 반품하는 일도 비일비재할 테고, 동네서점은 더 어려워지고 출판사 재고 처리 문제까지 자칫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을 듯하다.

 

김성신  말씀하신 것처럼 인터넷서점에 쿠팡처럼 무료 반품이 가능한 시스템을 기대하는 건 사실상 산업기반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은 기본적으로 경험재이기 때문에 파본과 같은 물리적 하자가 없는 이상 무료 반품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성격의 상품이다. 모두가 읽고 반품하기를 반복한다면 출판산업이 존립할 수 없단 의미이다. 책의 무료 반품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시스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성신 출판평론가와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

김성신 출판평론가와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

 

 

Part2. 출판 분야별 동향과 2024년 트렌드 예측

 

자기계발 분야와 업마켓 소설의 강세

 

백원근  올해 『세이노의 가르침』(세이노, 데이원)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린 책이었다. 이 책을 필두로 자기계발서 분야 인기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이러한 흐름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인지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박태근  자기계발서 분야의 인기는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우선 올해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여주었고, 또 독자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부로 이어가는, 확산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돌보는 방향보다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나름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독자들의 적극성이 확인된 상황이라 봐야겠고, 마침 이들에게 필요한 일침 그리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삶의 자세를 전하는 일종의 ‘구루(Guru)’가 연이어 등장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들의 성공담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태도를 지나 구체적인 실천 영역의 책들로 흐름이 이어지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김성신  자기계발서 분야는 사회의 불안 요소가 커졌을 때 인기를 얻는 경향이 있어 내년에도 이 분야의 인기가 지속될 것이라고는 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주제의 책들이 인기를 얻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데 가령 『세이노의 가르침』처럼 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왔을 경우에는 이전의 책들과 다른 어떤 특징이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일단 제목에서 오는 압도적인 뉘앙스와, 출간 전부터 이미 SNS를 통해 충분한 신뢰를 구축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과거에 인정받던 사회적 권위’가 대중들이 책을 선택함에 있어서 더 이상 중요한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과거에는 교수, 의사 등 저자의 직업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천억 원이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이런 성향이 내년 출판 기획에 발 빠르게 반영되겠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는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세나  SNS 발달로 자기의 삶을 타인과 비교하는 분위기 속에 부와 성공에 대한 현대인의 욕망은 계속 커질 테니, 이를 자극하는 자기계발서도 꾸준히 읽힐 것이다. 다만 이전과 조금 다른 양상이 보인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어찌 보면 흙수저 출신의 꼰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왜 독자들이 열광하는지를 살펴보면, 이제는 어떤 대단한 능력을 갖춰 엄청난 노력으로 성공한 이야기보다 ‘평범한 사람인데 나도 따라 하면 저 사람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메시지에 대중이 더 귀담아 듣는 게 아닐까 싶다. 올해 출간된 송희구 작가의 『나의 돈 많은 고등학교 친구』(서삼독)도 비슷한 사례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서삼독, 2021)에 이어 나온 이 책은 소설이지만, 나보다 나은 것 없었던 친구가 성공하게 된 이야기를 듣는 방식이 자기계발서와 유사해 남성 독자들이 유독 많이 읽었다. 이렇듯 소위 ‘잔 지식’을 주는 책들이 자기계발서 분야에서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백원근  소설 분야에서는 ‘힐링 소설’이라고 불리는 책들이 여전히 대세인데, 앞으로도 이 인기가 유지될까? 소설 분야의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김성신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미예, 팩토리나인, 2020),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나무옆의자, 2021),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황보름, 클레이하우스, 2022) 등의 작품을 우리가 보통 ‘힐링 소설’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이 장르를 협소하게 규정한다면, 이미 거듭 소비된 상황에서 인기가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대두되고 있는 ‘업마켓 소설(순문학의 문학성과 장르문학의 대중성 그 사이에서 양쪽의 장점을 잘 결합한 작품)’로 확장하여 규정한다면 이 분야의 시장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편의점』이 영국 등 해외에 수출되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이 분야의 책은 한국이 잘 만든다는 국제적인 평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런 점은 저작권 수출 추이를 통해서 검증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힐링 소설’이라는 범주로 쉽게 소비하지 말고, ‘업마켓 소설’이라고 범주를 확장해서 이 분야의 책들이 더 왕성하게 생성되고 소비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장르문학의 재능 있는 작가들이 이 시장으로 유입되고, 이 시장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출판계에서 생산적인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

 

박태근  한편으로, 소설 안에서 장르를 규정하는 것이 무의미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조차도 허물어진 상황이고, 작가들도 그러한 규정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글을 쓰기 때문에 소설 내의 경계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독자 중심으로 생각해보아도 과거에는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상당수의 독자가 읽었다면, 최근에는 가장 인기가 높은 작가일지라도 10만 부 판매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즉,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접어들며 출판사 입장에서 ‘메가 셀러’가 나오기 굉장히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작가들이 등단이나 문학상을 통해서 데뷔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작가를 찾아야 하는 방법은 훨씬 넓어졌는데,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은 기대보다 적어졌다. 이러한 소설 시장에서 출판사들이 그나마 안정적인 방법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은 ‘영상화’이다. 전통적인 맥락에서 책을 출간해왔던 출판사들보다 오히려 영상화를 중심으로 소설을 개발하는 출판사들이 베스트셀러를 많이 출간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사전에 영상화되어 있는지 여부가 독자들에게도 책에 대한 선호도나 구매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나 방송 작가들이 출판사와 기획해 펴낸 책들이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고 있기도 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설을 내온 출판사들도 새로운 출구와 전략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분야별·키워드별로 알아보는 2023 트렌드와 2024 예측

 

백원근  올해는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여행서가 많이 활성화됐고, 만화 분야도 반응이 좋았다. 그에 반해 주식과 관련된 책들 즉,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에 많이 팔렸던 경제경영서는 하락하는 경향이 있었다. 2023년 출판시장의 트렌드, 2024년의 예측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김세나  작년부터 올해까지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주제인데, 내년에는 ‘돌봄 문제’를 다룬 책들이 더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주로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만을 ‘돌봄’의 대상으로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누구나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베스트셀러였던 『김미경의 마흔 수업』(어웨이크북스, 2023),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메이븐, 2022)도 넓게 보면 나를 돌보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돌봄’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인문서나 에세이, 소설 등 분야도 다양하게 확장되고, 세부 주제도 심리·정신뿐 아니라 체력, 경제 등으로 더 넓게 다뤄지지 않을까. 또한 과학서의 인기 역시 내년에도 이어질 듯하다. 예전에는 자연과학을 전문으로 공부했던 사람들이 과학책을 구매했다면, 이제는 독자층이 일반 대중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방송이나 언론, 영화에서 과학을 소재로 많이 다루기도 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기초 과학 지식 정도는 접한 바 있기에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대중에게 과학이 이제는 전문 지식이라기보다 책을 통해 더 깊이 알고 싶은 교양의 영역으로 넘어간 듯 보인다. 베스트셀러였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Lulu Miller), 정지인 옮김, 곰출판, 2021),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유시민, 돌베개, 2023)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성신  조금 더 보태자면, 과학 분야에서 독특하고 좋은 작가들이 많이 등장한 것 역시 시장이 확대되는 배경이 아니었나 싶다. 즉 내용과 형식이 함께 상승효과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축으로는 의사인 저자들도 내년에 대거 등장할 것 같다. 이미 의사로서 책을 잘 쓰는 저자들도 많고,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히포크라테스’라는 의학 전문 분야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다.

 

백원근  꼭 교양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전체 분야에 전반적으로 그러한 경향이 보이는 것 같다.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지명도를 갖게 된 저자들이 낸 책들이 그러한데, 이들이 출간한 책은 쉽게 풀어 쓴 덕에 판매도 많이 된다. 유튜브나 SNS를 통해 매체 환경이 바뀌며 과거의 전통적인 저술이나 창작과는 달리 일상의 영역에서 말하듯 풀어쓴 책들이 전체 장르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김성신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감이 극심한 시대다. 앞이 보이지 않고 예측도 불가능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밝고 긍정적이기보다는 어둡고 비관적인 느낌으로 미래를 전망한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자기계발서에 독자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회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2023년의 베스트셀러 최상위 10권 중에서 『세이노의 가르침』, 『김미경의 마흔 수업』, 『원씽』(게리 켈러·제이 파파산(Gary Keller·Jay Papasan), 비즈니스북스, 2013), 『퓨처 셀프』(벤저민 하디(Benjamin Hardy), 상상스퀘어, 2023), 『역행자』(자청, 웅진지식하우스, 2022)까지, 무려 5권이 자기계발서였다. 인문서로 분류되긴 하지만 10위권에 들어온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Johann Hari), 어크로스, 2023) 역시 다수의 독자에게 자기계발의 목적으로 소비되는 책들이다. 그러니까 ‘자기계발’이라는 키워드가 압도적이라는 의미다. 이런 추세가 내년에 급격하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생성된 사회적 환경이 달라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2024년 역시 자기계발 분야 혹은 자기계발의 코드를 가진 인문 교양서들이 압도적일 것으로 전망한다.

 

박태근  말씀하신 『도둑맞은 집중력』의 화제에 대해 덧붙이고 싶다. ‘집중력’이라는 키워드를 좀 더 넓게 보면 중독과 연결해서 당면한 현실을 살필 수 있겠다. 그것이 주의든 집중이든 돈이든 쾌락이든 그야말로 모든 것을 중독 상태에 두고자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 상황인데, 누적 판매 10만 부에 다다른 『도파민네이션』(애나 렘키(Anna Lembke), 흐름출판, 2022)을 함께 꼽을 수 있겠고, 노화와 건강 맥락으로 보이는 책이지만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정희원, 더퀘스트, 2023)의 화제도 같은 궤에서 설명될 수 있겠다. 한편 최근 몇 년 동안 사회과학 분야가 하강세였다. 한동안 상승을 주도하던 페미니즘, 젠더 관련 도서 시장이 최고점에서 내려와 안정세로 접어들었고, 장애와 비인간 등 새로운 주제는 영글어가는 중이다. 2024년 4월에는 총선이 있는데 워낙 갈등이 심한 정치 상항이라 현실 정치 관련 도서들을 통해 각 진영에서 적극적으로 다음 모색을 발언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자체를 좋다 나쁘다 평가할 건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꼭 짚어야 할 한국 사회의 쟁점과 전망이 잊히지 않고 논의되기를 바란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

 

 

한국 책의 해외에서의 성과

 

백원근  지금까지 내수 시장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올해 한국 책의 해외 번역출판 및 저작권 수출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박태근  한 번 열린 문은 쉽게 닫히지 않고 한 번 열린 길 위에는 무언가 흐르기 마련이라는 이야기가 맞춤한 올해였던 것 같다. 부커상(The Booker Prize) 인터내셔널 부문에 지난해 박상영, 정보라 작가에 이어 올해에는 천명관 작가가 『고래』(문학동네, 2004)로 최종 후보에 올랐고, 몇 해 전 같은 상을 이미 수상한 한강 작가는 올해 프랑스에서 메디치상(Prix Médicis)을 수상했다. 수상작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는 프랑스 페미나상(Prix Femina) 외국문학 부문에서도 최종 후보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래빗홀, 2023)는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수상과 무관하게 이런 소식이 매해 이어지는 상황 자체가 무척 반갑고 또 이어나가야 할 대목이겠다.

 

김성신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한 작품이 해외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창비, 2019)도 국제 더블린 문학상(International Dublin Literary Award) 1차 후보(롱리스트)에 올랐고, 러시아어권에서는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문학동네, 2017)과 정이현 작가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문학과지성사, 2016)가 야스나야 폴랴나 문학상(Yasnaya Polyana Literary Award) 해외문학 부문 후보에 올랐다. 또 손원평 작가의 『프리즘』(은행나무, 2020)은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2위에 올랐다. 이와 함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윤정은, 북로망스, 2023)의 저작권 수출도 의미 있는 성과로서 거론하고 싶다. 영미권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와 무려 20만 달러의 선인세를 받고 계약했다. 최저의 계약금으로 한국 문학 작품의 저작권이 팔리던 시절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된 것이다. 2023년 올해는 세계 출판시장에서 대한민국 문학이 작품성과 상업성 양쪽 모두에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은 한 해였다.

 

김세나  올해 해외에서 한국 문학 작품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보니, 한국 문학에 관한 세계적 관심이 크다. 그래서 해외 도서전에 나갈 때 판권 수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샘플 번역과 제안서를 만들어 가는 출판사들도 늘고 있다.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출간하는 사례가 많아진 만큼 더 적극적인 번역 지원이 필요하겠다. 무엇보다 국내 독자층이 지금보다 단단해져야 한국 문학의 지속적인 발전이 있을 테니 이를 위해 출판계가 함께 노력해야 하고, 특히 문학 분야의 정부 지원이 축소되지 않길 바란다.

 

백원근  언급하신 작품들 외에 신경숙의 『바이올렛』(문학동네, 2001)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번역문학 롱리스트에 올랐다. 수상 불발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후보작에 오른 것만 해도 대단한 성취다. 지난해 영국에서 출간된 백세희 작가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 2018)도 출간 6개월 만에 10만 부가 팔렸다. 올해는 그림책 분야에 이어 한국 문학의 국제 무대에서의 성과가 일거에 꽃핀 해였다. 학습 만화에서 점화된 한국 도서의 해외 진출이 이제는 문학과 비문학 분야에서 고르게 약진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갈수록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출판 기획과 저작, 편집이 요구되는 것 같다. 한편으로 이웃 나라 일본의 서점계를 보면 기노쿠니야(Kinokuniya) 서점이 41개, 츠타야(Tsutaya) 계열 서점이 23개의 해외 매장을 각각 운영한다. 해외 현지에서 한국 책의 원서와 번역서를 중점 비치하고 현지 도서도 함께 판매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매력을 ‘직접 판매’ 방식으로 알릴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가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와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와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Part3. 책 생태계와 2024년 전망

 

독자를 늘리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 강구되어야

 

백원근  앞서 Part1과 Part2에서 출판계에 대한 이야기부터 출판시장에 관한 이야기까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런데 이 산업을 떠받치는 게 바로 국민의 독서력이다. 며칠 전 통계청에서 사회조사를 발표했는데 2021년에는 13세 이상 독서율이 45.6%였는데, 올해 발표한 것은 48.5%로 2.9%p 증가했다. 그나마 바닥을 찍고 이제 독서율이 올라가기 시작한 것인가 싶어 안심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두 명 중에 한 명은 책을 읽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평균 독서량이 15.2권에서 14.8권으로 약간 감소하기도 했다. 독서율이나 독서량이 곧바로 책 판매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출판계에서는 어떻게 하면 MZ세대를 애독자 혹은 생애독자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젊은 세대들에게 독서 친화적인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방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린다.

 

김성신  ‘책 안 읽는다, 독서율이 낮아지고, 독서량이 줄어들었다…’ 이런 출판계의 부정적인 구호들이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무한 반복되고 있는데, 이게 독자들에게 실효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남들이 다 하는 Must Have Item’이라고 소개해도 선택할까 말까인 지금의 대중들이 이젠 아무도 안 읽는다는 책이라는 것을 굳이 찾아 읽을까? 그런데 사실 한국이 출간 종수로는 전 세계에서 7~8위를 할 정도의 출판 대국이다. 그런데도 한국인은 한국의 출판산업과 출판문화 등에 대해 자부심이 없다. 한국의 출판산업이 독자들에게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부정적인 신호만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식의 낡은 캠페인이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의 출판산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독서와 책 읽는 사람에 대한 긍정적이고 건강한 신호를 보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세나  사실 종이책을 많이 안 읽는 거지, 대중들이 읽기를 예전보다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가 독서율을 높인다고 할 때, 전통적인 종이책만 한정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세대인 아이들이 독자가 될 텐데, 이들을 책과 출판계로 끌어오려면 디지털 독서에 대해서도 고민이 더 필요하다. 최근 ‘인터랙티브 콘텐츠(interactive contents)’도 늘고 있다. 채팅형 소설을 보면 독자가 직접 참여하여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작가와 소통하여 결말을 바꾸기도 하는데,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알파세대가 지금은 출판계의 주요 독자층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성향과 문화를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 이 세대를 출판계로 불러오려면 이들이 즐겁게 독서할 방법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 도서관들이 여러 이유로 많이 폐관되고 있는데, 아이들이 책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없어지면 독서율을 높이기 절대적으로 힘들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중하지 않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에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정책이 수립되면 좋겠다.

 

박태근  작년에 20대의 소설 독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헤비 리더(heavy reader)’라고 불릴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 분들임에도 대부분 종이책을 구매하지 않고 전자책이나 도서관을 이용해 독서를 하는 분들이었다. 그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이 부분은 출판계에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렇듯 독서율이라는 것에는 책을 소비해서 읽는 독자와 대여해서 읽는 독자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도 책 판매를 위한 독자 설정에 대해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성신  이제는 종이책 기반, 즉 제조업 기반의 출판산업이 그 다음 차원의 산업으로 진화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사인이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종이책의 형태가 아닌 언어 기반의 모든 콘텐츠에 출판이 관여하게 된다면, 출판산업이 지금보다 훨씬 거대해지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고통은 크겠지만 이 고통을 통해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즉 변태의 과정을 거쳐 다음 단계의 산업구조가 되면, 출판산업이 미디어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원근  각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디지털 출판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상황인데, 출판시장에서의 대응력은 다른 분야에 비해서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독자들의 수요에 비해 공급망이나 적절한 콘텐츠의 개발이 늦다는 생각이 들고, 이에 따른 판매 촉진을 위한 여러 활동들도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앞으로 디지털 환경에서 각종 기사나 정보에 AI가 책 관련된 것을 자동으로 추천해주거나 연결해주는 시스템이 개발이 되어서 책의 소비가 확장되면 좋겠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틱톡의 ‘북톡(BookTok)’ 서비스가 상당히 인기여서, 영국출판협회에서 작년에 20대 전후의 사용자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인 48%가 북톡에 소개된 책을 보러 서점을 방문했다고 응답했다. 반스앤노블에서는 북톡에 소개된 책들을 전용으로 판매하는 진열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결국 이렇게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들을 잘 활용해서 종이책 판매에 대한 노력이 총량적으로 더 커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출판사에서 개별적으로 유튜브나 SNS 활동을 하기 어렵다면 공적 자원을 통해 영향력 있는 책 추천 플랫폼을 만들어 책 문화를 확산시켜 나갈 수도 있겠다.

 

김성신 출판평론가

김성신 출판평론가

 

 

미리 살펴보는 2024년 출판 생태계 전망

 

백원근  2024년 달력을 보니 1월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4월에 국회의원 총선이, 7~8월에는 파리 올림픽 그리고 11월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그리고 유통 분야에 있어서는 대기업에서 오프라인 서점 진출을 제한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5년 한도가 2024년 10월에 끝난다. 그래서 서점계에서 다시 연장할지 여부에 따라 유통시장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내년에도 원가 비용 상승이나 소비자들의 구매심리 위축 등으로 인해 출판계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내년도 시장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총괄적으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김성신  현재 피부로 느끼고 있는 출판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나 정책에 대한 아쉬움은 내년에도 고스란히 재현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대신 출판계 자체의 위기감을 내부적으로 많이 공유하고 많은 출판인이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 결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결국 긍정적 변화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다.

 

박태근  내년에도 올해와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예측해 본다. 특히 메가 셀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10만 부 판매 도서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내년의 인기 도서 경향성을 예측하기도 힘들다. 출판 생태계의 진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출판계가 출판계만 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판산업은 여타의 문화산업과 관여되거나 인접한 경우가 많은데, 다른 산업과의 협업과 소통을 통해 시야를 더 넓히고 함께 목소리를 높여 새로운 국면을 도모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세나  2022년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박상영 작가가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소속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소속사는 연예기획사가 만는 계열사인데 한국 최초의 작가 매니지먼트 회사로 김영하, 김중혁, 김초협, 김금희, 장류진, 천선란, 편혜영, 배명훈, 조예은 등 여러 작가가 소속되어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출판사와 작가를 연결하는 일을 넘어 직접 출판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최근 손원평 작가는 『아몬드』(다즐링, 2023)를 창비와 계약 연장하지 않고 새로 출간하면서 “저작권 침해를 겪은 작가가 대형 출판사 도움 없이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런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뭔지 출판계가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한편 최근 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웹소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결국에는 스토리 기반의 콘텐츠 아닌가. 원천 콘텐츠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수 있도록 IP 사업과 연계하여 출판이 제조업을 넘어 콘텐츠 기업으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장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이야기 하나만 덧붙이고 싶다. 결국에는 책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산업 자체도 잘 돌아가지 않을까. 지금은 각자도생의 시대이기에 정보를 얻기 힘든 1인 출판사나 작은 출판사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래서 함께 모여 경험을 공유하고 다른 출판사의 사례를 들을 기회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백원근  내년을 전망하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해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 및 공공 영역과 산업계의 거버넌스 구축이 소망스럽다. 출판산업 지형 변화를 반영한 새롭고 담대한 모색과 실천이 있기를 바란다. 또 시대가 바뀌고 독자들의 생각이나 의식이 계속 바뀌고 있는데 출판계가 그에 맞춰서 변화의 흐름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년에는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이 발표되고 실행될 텐데, 출판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독서 친화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읽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도록 역할을 하면 좋겠다. 늘 아쉬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연말연시인데 대담을 통해 출판시장과 출판문화가 새로운 비전을 갖고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대담을 마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김성신 출판평론가,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왼쪽 하단부터 시계 방향)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김성신 출판평론가,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왼쪽 하단부터 시계 방향)

 

 

*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출판N〉 편집부

 

커버스토리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