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0 2023. 02.
[다시, 종이책의 미래를 말하다]
손민규(예스24 인문·사회정치 PD)
2023. 02.
예스24 강서NC점
2009년부터 예스24에서 일했다. 도서 정보 입력, 서평단 운영, 〈채널예스〉 기획 및 취재, 블로그 서비스 유지 보수 등 이런저런 업무를 거쳐 2017년부터는 인문 도서를 담당하는 PD로 지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MD라고 불렀던 직무다. PD라고 해서 방송국의 PD 같은 개념은 아니고, 도서라는 상품(product)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주도적으로 기획(director)하여 판매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도서와 관련된 굿즈와 콘텐츠 제작, 강연과 여행 기획 등이 그러하다.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슬쩍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요즘 서점에서는 책만 진열하지 않는다. 책으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유형의 파생 상품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이목을 끌려 노력한다.
서점이 자체로 진행하는 활동도 많지만, 대개는 출판사 협조가 필수다. 하여, 도서 PD의 주된 업무는 출판사 미팅이다. 얼마나 많은 출판사를 만나느냐면, 나는 하루에 가장 많이 만났던 수가 22군데였다. 요즘은 모든 온라인 서점 미팅 시간이 정해져 있고 예약제로 운영되기에 그 정도로 많이 만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하루에 대여섯 군데 출판사와 미팅을 진행한다. 신간을 어떻게 알릴지를 논의하는 게 출판사 미팅의 주된 목적인데, 출판 시장 상황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눈다. 처음으로 서점에서 일했던 2009년과 현재인 2023년, 종이책을 둘러싼 환경이 변했지만 나누는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독서 인구가 점점 줄어서 큰일이에요.”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39.6%였던 독서 인구는 2021년 23.9%로 감소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라면, 2019년 20.9%보다는 늘어난 수치라는 사실이다. TV와 신문으로 대변되는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시대에 비해, 플랫폼과 매체가 훨씬 다양해진 현재에 오히려 책을 알리기가 정말 어렵다. 어렵다는 의미는, 돈이 든다는 뜻이다. 레거시 미디어를 비롯해 유튜브, 소셜 미디어, 포털 등 모든 매체를 신경 써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인원과 비용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안 쓰자니 막상 홍보할 길이 마땅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출간되는 신간 종수는 늘어났다. ‘2021년 출판통계’에 따르면 2017년 5만 9,724종이던 신간이 2021년은 6만 4,657종이었다. 2020년 6만 5,792종에 비해서 줄어들긴 했으나, 5년 전에 비해 신간 종수가 늘어났다고 볼 수 있겠다. 독서 인구는 줄어드는데 경쟁은 치열해지니 책의 수명은 짧아질 수밖에 없다. 발행 부수도 감소한다. 초판이 3,000부인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판매가 보장된 저자가 아니면 요즘은 2,000부가 기본이고 1,500부나 1,000부를 찍는 책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와 나누는 대화의 끝은 누구를 향한 말도 아닌 모호한 독백으로 끝난다.
“이러다 종이책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방어적 비관주의일 뿐, 사실은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건 안다. 종이책의 종말은 디지털로의 완전한 전환을 뜻하는데, 언론 매체나 음악에서도 비슷한 전개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종이 신문이나 LP, CD도 모두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기존 방식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공존했다. 내가 느끼기에 책이라는 수단은 신문이나 음악보다도 디지털로의 전환이 더디고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
읽기와 학습 전문가 나오미 배런이 쓴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미국 사정도 비슷하다. 아마존이 킨들을 선보이며 하드웨어를 개선하고 전자책 종수를 늘리면서 종이책의 종말이 빠르게 다가오는 듯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상황은 바뀌었다. 전자책의 성장률은 2013년에 정점을 찍은 뒤, 2016년부터는 종이책과 전자책 성장률이 역전된다. 종이책 판매가 소폭 증가하기도, 감소하기도 하며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반면 전자책 시장은 2016년 –16.9%를 시작으로 4년 연속 감소하기만 했다.
왜 그럴까? 독자들이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해서다. 읽기 선호도에서도 연령별로 소소하게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종이책을 좋아한다. 디지털에 친숙한 젊은 세대에서조차 그러하다. 이 책이 인용한 〈라이브러리 저널〉의 연구에 따르면, 16~22세가 66.3%로 오히려 55세 이상보다도 종이책을 선호했다. 이에 비해 전자책은 8.4%, 오디오북 7.4%, 선호하는 수단이 특별히 없다는 대답이 17.9%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종이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이책의 냄새와 느낌이라는 물성은 디지털로 대체가 어렵다. 디지털로 읽을 때보다 종이책이 집중하기 좋다는 점도 크다. 디지털로 읽을 때 사람들이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훑으려는 경향이 강한 반면, 페이지를 넘겨서 읽는 종이책 방식은 꼼꼼하게 읽게 해주고 읽었던 부분을 뒤로 돌아가 다시 보기에도 편하다. 단말기와 앱의 기능이 많이 발전했다고 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디지털로 읽을 때 주의력이 쉽게 흩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꼼꼼하게 읽기보다는 훑어 있는 경향이 높았다. 주석 달기 역시 마찬가지다. 종이책에 비해 전자책은 읽으면서 주석을 다는 게 불편하다.
개인적으로 느낀 바도 비슷했다. 전자책 단말기를 사고 이런저런 책을 구매해서 읽었지만, 결국 나는 종이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은 전자책으로 읽기가 어려웠다. 전자책으로 제작이 안 된 종이책도 많았다. 장시간 기차를 탈 때를 빼면 좀처럼 이용할 일이 없어, 어디에 단말기를 놔뒀는지도 잊어버렸다.
서점에서 책 판매량을 확인하면서도 나의 취향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특히 내가 담당하는 인문, 정치사회 분야 단행본의 종이책과 전자책 판매 건수를 살펴보면 여전히 종이책이 월등히 많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거나 압도하는 때는 오지 않거나, 온다고 하더라도 꽤나 먼 미래일 듯하다.
그럼에도 종이책의 위기 징후는 존재한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인플레이션이다. 2022년부터 세계는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선포했다. 굳이 제롬 파월(Jerome Powel) 미국 연준 의장의 발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치솟은 물가는 생활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밥값, 가스비, 전기 요금, 교통비 등등 안 오른 게 없다. 책값도 예외가 아니다. 크게 오른 제작비가 2022년부터 신간 위주로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웬만해서는 가격 인상이 많지 않은 인문 교양서 쪽에서도 판을, 혹은 쇄를 달리 하면서 정가를 올리는 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다. 『사피엔스』가 2015년, 『호모 데우스』가 2017년에 출간될 당시 정가는 22,000원이었다. 2023년 1월 양장 특별판으로 나오면서 변경된 정가는 30,000원이다. 2018년 출간된 뒤 스테디셀러로 꾸준하게 사랑받는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도 16,800원에서 18,000원으로 최근 정가를 인상했다.
이렇게 책값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작비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종이 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작비 인상이 일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출간된 지정학 전문가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이 쓴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에 따르면, 세계의 공장 중국이 공급한 저렴한 물건으로 유지되던 좋은 세월은 끝났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둔화되더라도 미중 대립의 격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불확실해짐에 따라 특정 원자재의 부족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종이도 예외가 아니다. 종이책이 비싸질수록 수요는 디지털로 이동할 것이다. 업라이트 피아노 자리를 전자피아노가 차지했듯 말이다. 실제로 미국이 교과서를 디지털로 전환하려고 하는 데는 디지털이 효과적인 교육 수단이라서가 아니라, 종이책의 제작 비용이 비싸서가 주된 원인이다.
인플레이션 압박은 종이책 정가를 올리는 데서만 그치지 않는다. 도서 구매가 온라인으로 이동한 상황에서, 무료 배송 정책이나 택배 단가도 모두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2월 14일 예스24가 무료배송 기준을 1만 원에서 1만 5,000원으로 인상했으며, 알라딘·교보문고 등도 2월 중으로 무료 배송 기준을 1만 5,000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3사 모두 무료 배송 기준 미달 시 배송료를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인상한다.
종이책의 위기를 부추기는 두 번째 상황은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이다. 신문과 방송으로 상징되는 레거시 미디어의 시대가 저물며 매체 환경이 바뀌었다. 그렇다고 레거시 미디어가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출판사는 기존 매체를 포함하여 블로그, 소셜 미디어,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에 책을 효율적으로 알려야 한다. 좋은 책은 저절로 알려지지 않느냐 말하는 건 속 편한 소리이다. 매년 6만 종 이상의 신간이 쏟아진다. 출간되고 알리지 않으면 그 책은 조용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운 좋게 『밥보다 등산』, 『힙피플, 나라는 세계』를 통해 저자로서 책이 태어나고 확산되고 소멸해가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었다. 소멸했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저 두 책은 출간이 1년 지난 현재 거의 팔리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책 한 권을 쓰는 것도 힘들지만 알리는 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알리는 데는 돈이 들고, 사람이 필요하다. 관리해야 하는 매체가 늘어날수록 홍보 비용이 높아진다. 자본이 영세한 출판사일수록 불리할 수밖에 없다.
자체 홍보력이 보증된 인플루언서가 저자로서 선호된다. 한때 파워블로거가 쓴 책이 유행이었다면, 요즘은 다양한 미디어에서 저자가 발굴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도 있지만 요즘은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책이 눈에 띈다. 『교양이 쌓일 만두 하지?』, 『스낵 인문학』 등처럼 채널에서 다룬 콘텐츠를 책으로 묶어 내기도 하고, 『이순신의 바다』의 황현필 저자나 『책의 말들』을 쓴 ‘겨울서점’ 김겨울 저자, 『당신을 읽느라 하루를 다 썼습니다』의 ‘공백의 책단장’ 공백 저자처럼 활동 기반이 유튜브인 경우도 있다. ‘겨울서점’이나 ‘공백의 책단장’과 같은 북튜브에서 소개한 책이 화제가 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다. 『역행자』의 저자 자청도 빼놓을 수 없다. 혜성처럼 등장해서 여러 책을 추천하고 사라진 뒤, 다시 등장해 자신의 책을 낸 자청이 활약한 공간도 유튜브이다.
그렇다고 인플루언서가 낸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판매가 보장되진 않는다. 자청의 책처럼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도 있지만, 수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도 판매가 미진한 책도 있다. 구독자 수는 참고 사항일 뿐, 판매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책을 알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인플루언서 중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도 있지만 보통 사람도 있다. 일반인 인플루언서가 쓴 책은 대개 에세이로 나오는데, 이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에세이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지금 시대는 인플루언서를 필요로 하는 시대다. 개인은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하고, 회사는 인플루언서를 통해 제품을 알리고 싶어 한다. 책도 예외는 아니다.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글쓰기 강좌가 흥하고, 자비 출판 문턱도 낮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엄기호 교수는 “모두가 다 독자가 아니라 저자이기를 바라”는 현재 독서 지형을 꼬집었다.
여기서 종이책의 위기 징후 세 번째가 나타난다. 바로 문해력의 문제이다. 문해력 문제는 비단 종이책의 위기가 아니라, 읽기의 위기이다.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는 미국과 노르웨이 모두 독서량이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독서 인구, 독서량의 감소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의 문해력도 문제가 되고 있다. ‘사흘’을 4일로, ‘심심한 사과’를 재미없는 사과로, ‘중식’을 중국 음식으로 이해하는 등 한국 사회 전반적인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어쩌면 『어른의 문해력』을 포함한 문해력 관련 책이 인기를 끄는 것은, 한국 사회의 부족한 문해력에 관한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종이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진 않다. 토마 피케티와 같은 경제학자가 지적한 대로 전후 자본주의에서 근로 소득은 자본 소득을 하회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오르니 소비자는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다. 종이책이 좋긴 한데, 가격이 오르니 선뜻 구매가 망설여진다. 사더라도 권수를 줄인다. 출판사도 줄어든 독자의 지갑 사정에 맞추기 위해 경쟁이 치열해진다. 제작 비용과 홍보 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생존하기 더더욱 쉽지 않다.
그럼에도 ‘모두가 다 독자가 아니라 저자이기를 바라’는 시대에서 희망을 찾아보고자 한다. 어쩌면 필자 역시 이러한 시대의 수혜자일지도 모르겠다. 교수나 성공한 기업가만이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시대였다면, 책을 못 냈을 테니까.
직업상 여러 책을 읽지만, 내야 할 책을 쓰기 위해 수십 권의 책을 읽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을 지인들이 선뜻 읽어줬는데, 그중에서는 평소에는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빈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덕분에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됐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험은 책을 내는 저자에게나, 독자에게나 소중하다. 모두가 저자이기 바라는 시대에는 잠재적 저자가 종이책과 독서의 가치를 알리는 모세혈관으로 기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소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읽기와 쓰기는 한몸이다. 종이책이 위기라면 읽기와 쓰기가 모두 붕괴된 세상일 터. 아직은 쓰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나는 지금 종이책은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손민규 예스24 인문·사회정치 PD 15년째 서점 사람.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지금은 예스24에서 인문, 정치·사회 도서를 담당하고 있다. 헤비메탈과 산과 책, 카메라를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