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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3  20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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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태계 ‘노동’을 말한다]
법제도 개선과 단체교섭을 통한 출판노동자 권리 찾기

 

 

 

안명희(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지부장)

 

2023. 05.


 

거대한 출판산업의 규모에 비해 너무도 열악한 출판노동자

 

출판산업은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다. 2022년 조사하여 2023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발행한 〈2021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콘텐츠산업에서 매출액 규모가 가장 큰 산업은 바로 출판산업이다. 그다음이 방송산업, 게임산업이다. 사업체 수, 종사자 수, 부가가치액도 출판산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수출액은 게임산업이 가장 높았으며 출판산업은 음악, 방송, 지식정보산업 다음을 차지했다. 수입액은 광고산업 다음으로 출판산업이 높았다. 정리하면 출판산업은 방송, 영화, 음악, 게임, 만화, 광고 등의 산업보다도 시장 규모가 크다는 의미이다. 출판시장의 규모가 세계시장 10위권 내에 든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것이다.

 

콘텐츠산업 연도별 매출액 현황

(단위: 십억 원)

콘텐츠산업 연도별 매출액 현황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2021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

 

그러나 이 같은 산업의 규모에 비해 출판노동자의 법제도적 지위나 노동권의 보장은 너무도 형편없다. 혹자는 5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는 이유를 들어 출판사가 영세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둘러댈 테지만, 이는 영세성의 문제가 아니라 양극화의 문제로 접근하는 게 맞다. 그리고 실제 5인 미만 사업장이 이토록 많은 것은 출판사 내부의 고용을 최소화하고 책 생산을 외부화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1년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간 도서 1권 발행 기준으로 자사 수행 71.8%, 외주 의뢰 28.2%이다. 출판사의 연간 지출액 비율은 인건비 23.2%, 편집비 12.1%이다. 이는 곧 외주노동자 없이는 출판사의 책 생산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며, 출판사용자 입장에서는 외주노동자가 있기에 굳이 출판사 내부 고용을 늘릴 필요성을 갖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구조에서 출판사 내부의 고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출판사의 전략은, 출판노동자들을 노동법 밖 노동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출판사는 출판노동자를 고용했을 때 드는 비용과 사용자로서 져야 할 책임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것과 맞닿아 있다. 재직노동자의 경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어서 근로기준법을 모두 적용받지 못한다. 장시간 노동, 쉬운 해고 등에 대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외주노동자들도 프리랜서로 호명되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기에 모든 노동관계법의 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다. 결국 출판노동자는 재직이든 외주든 할 것 없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법제도적 지위가 취약하고 권리를 배제당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법제도 개선을 통한 출판노동자 권리 찾기

 

그렇다면 노동조합이 없는 출판사의 재직노동자, 5인 미만 출판사의 재직노동자, 외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출판노동조합(이하 출판노조)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 걸까? 우선 정부와 국회에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출판 외주노동자들의 경우,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고 있지 못하기에 상당 부분을 문체부 제정 표준계약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문체부 소관 문화예술 15개 분야 82종 표준계약서 중 출판 외주노동자에 대한 표준계약서는 없다. 이 때문에 ‘출판 외주노동자 표준근로계약서 제정’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작업 내용, 작업 기간, 작업 단가 산정 방식, 작업비 지급 시기와 같은 외주 작업에 대한 조건 등을 표준근로계약서에 명시하여 외주노동자들을 보호하여야 한다.

 

그리고 출판노동자들도 방송, 영화, 공연 등의 다른 문화예술노동자들처럼 ‘예술인’이라는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출판 분야는 문화예술진흥법상 문화예술 분야에는 속하지만 예술인복지법상 예술 분야에는 포함되지 않아서 출판노동자들은 최소한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예술인복지법을 개정하여 출판노동자도 예술인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 예술인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의 적용을 통해 직업적 권리 보장과 사회안전망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출판 외주노동자들의 경우, 예술인복지법상의 예술인은 아니지만 노동조합의 힘으로 예술인 고용보험의 적용 대상으로 포함되었다. 그런데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현장에서는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출판노조의 〈2023년 출판노동 요구안 설문 결과〉에 따르면,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은 단 2%에 불과하다. 사실상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또한 가입을 하려고 해도 현재의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는 대다수 출판 외주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비문학이라서 안 되고, 교정교열이라서 안 되고 등등의 이유로 가입이 거절되고 있어 사회안전망으로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

 

또 다른 법제도 개선 방안으로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이하 출판법) 개정을 통해 출판노동자의 노동권, 출판노조의 활동 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영화산업에서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화비디오법)에는 영화노사정협의회 구성, 표준보수지침 마련·보급, 근로계약 시 근로조건 명시 의무 부과, 표준계약서 사용 권장 및 사용 시 재정 지원 우대, 영화근로자의 안전사고로부터 보호 등의 조항이 있어 영화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영화비디오법처럼 출판법에도 ‘출판근로자’, ‘출판업주단체’, ‘출판근로자조합’ 등을 정의조항에 명시하고, 세부조항을 통해 출판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향상해나갈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출판노동자 모두가 노동법을 적용받을 수 있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외주/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건 명백한 차별이다. 또한 노동조합법을 개정하여 헌법에 명시된 노동삼권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노동자성이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기획사, 번역회사, 에이전시 등)에서 실질 사용자인 출판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법에 출판노동자를 끼워 맞추기 하는 게 아니라, 출판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법과 제도를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출판사용자에게 책임을, 출판사용자단체와 단체교섭을

 

앞서 열거한 대로 정부와 국회가 강력한 의지를 발휘하여 법제도를 제·개정한다면, 출판노동자 모두의 노동권은 보장될 수 있을까? 사실 낙관할 수는 없다.

 

출판노조의 〈2023년 출판노동 요구안 설문 결과〉에 따르면, 재직노동자의 경우 근로계약서 작성 96.6%, 가산수당 미지급 81.8%, 연차 휴일 적용 88.6%, 임금명세서 교부 82.6%, 4대 보험 가입 96.4%, 출산·육아 휴직 없다 51.3%로 나타났다. 아직도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출판사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직노동자들의 사정도 이러한데, 근로기준법 밖의 외주노동자는 오죽할까.

 

지난 10년간 진행된 출판노동 관련 여러 실태조사와 연구보고서 등에서 출판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법제도 제·개정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출판사업주가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지만 않는다면 출판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이보다는 나아질 게 분명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제대로 계약서를 쓰고, 임금/작업비를 체불하지 않고, 가능한 작업 일정을 제시하고, 장시간 노동과 부당한 해고를 하지 않는다면 출판노동자들이 이토록 고통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법제도가 미비한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판사용자의 책임이 덜어지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2022년 12월 16일에 진행되었던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

2022년 12월 16일에 진행되었던 출판 외주/프리랜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

 

 

그래서 출판노조는 출판계의 대표적인 사용자단체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를 대상으로 ‘출판산업 단체교섭’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출협에는 2023년 1월 기준 ‘총 4,003개 출판사’가 회원사로 가입되어 있다. 〈2021년 출판산업 실태조사〉를 위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출판 사업체 규모 추정을 위한 필수 항목에 응답한 3,246개를 조사 모집단으로 한 것에 대응해보면, 출협이 웬만한 출판사는 포괄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출협이 출판계 대표적 사용자단체라는 것은 그 규모에만 있지 않다. 출협의 회원 자격 요건은 출판사 신고를 필한 대표자(출판사 대표)여야 한다. 출판사 사장만이 출협의 회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미 출협을 출판사용자단체로 지목해왔다.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 논의 때 출판 분야 사업주 측에서는 출협이 나왔고, 노동자 측에서는 출판노조가 참여했다. 이렇게 모두가 출협을 출판사용자단체로 이해하고 있는데도 오직 출협만이 부인하고 있다.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갖은 이유를 대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용자는 출판노동자의 노동에 대해 책임이 있다. 사용자라면 마땅히 져야 할 의무라는 게 있다는 말이다. 출판노조는 출판사용자와의 교섭을 통해 이를 확인하려고 한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저의 노동 기준을 넘어, 아직 법이 보장하지 않는 출판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출협과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맺어보겠다는 것이다.

 

이미 〈2023년 출판노동 요구안 설문 결과〉에서 출판노동자의 84.9%가 노동 조건의 개선을 위해 출판노조와 사용자(또는 사용자단체)의 교섭이 필요하다고 답했고(잘 모르겠다 14%, 필요하지 않다 1.1%), 74.2%는 출판노조가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단체교섭을 요구한다면 지지하겠다고 했다(잘 모르겠다 21.7%, 지지하지 않는다 4.1%). 지금껏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한 번은 가봐야 할 길임이 분명하다.

 

출판노조는 대안을 내놓았다, 정부·국회·출협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2023년 출판노동 요구안 설문 결과〉에서 재직노동자들은 첫째, 연장 근로 제대로 보상받기(74.3%), 둘째, 장시간 노동 줄이기(64.4%), 셋째, 포괄임금제 폐지(62.7%)를 요구했다. 오래 일하고 있으나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외주노동자들은 첫째, 적정한 작업 단가(95.1%), 둘째, 작업비 지연/체불 금지(69.6%)를 요구했다. 같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주노동자의 61.8%가 연소득 2,400만 원 이하라고 답했다. 전체 75.5%가 연소득 3,000만 원 이하로 나타났는데, 외주노동자 저임금 문제가 너무도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출판사가 어려워서, 단군 이래 불황이 아닌 적이 없어서라고 변명하기엔 너무도 궁색하다. 파주에 거대한 출판도시가 건설되고, 출판사 사옥이 점차 화려해지고, 2세, 3세로 출판사가 대물림되는 것은 결국 출판노동자의 피, 땀, 눈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출판노동 환경의 열악함은 출판사업주가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고, 사용자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결과이다. 만약 아직도 출판사의 영세함을 이유로 들어 출판노동자에게 고통을 감내할 것을 바란다면, 착취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출판계 만족도 조사에서 출판노동자 절반(10점 만점에 4.98점)만이 만족한다고 답했다(〈2023년 출판노동 요구안 설문 결과〉). 차마 떠나지 못한, 떠날 수 없는 출판노동자들이 유령처럼 떠도는 출판계에 도대체 어떤 미래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출판산업의 시계는 출판노동자에게 맞추어야 한다. 언제든 갈아 끼우면 되는 부품처럼 출판노동자들을 여겨서는 안 된다. 출판산업의 한 주축으로 출판노동자들을 바라봐야 한다. 출판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바라는가? 출판노조는 법제도 개선안과 단체교섭이라는 대안까지 내놓았다. 이제 정부와 국회, 출판사용자가 답하기만 하면 된다.

 

이용해

안명희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지부장

인문사회 분야 편집자이다. 현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지부장으로 출판 분야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
intifada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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