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셀러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살펴 본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북클럽

 

 

홍순철(BC에이전시 대표)

 

2021. 4.

 

“우리는 어떤 특이한 현상을 설명하고 싶을 때 영어 단어를 조합해 신조어를 만들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즐긴다. 예능이나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인기를 얻으면 미디어셀러, 드라마에 노출되면서 인기를 얻으면 드라마셀러, 영화가 개봉되면서 원작 소설이 인기를 얻으면 스크린셀러, 그리고 최근에는 각종 유튜브 방송에 소개되고 베스트셀러가 되면 유튜브셀러라고 부른다.” 2년 전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서 해외 출판사 저작권 담당자를 만나 우리나라 출판 동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코 ‘미디어셀러’라는 단어를 꺼냈다. 해외 출판사 저작권 담당자는 ‘미디어셀러’라는 말을 듣고는 재미있는 단어라면서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고, 필자는 한참 동안 미디어셀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각종 ‘OOO셀러’에 대해 설명해줬다.

 

‘미디어셀러’, ‘드라마셀러’, ‘스크린셀러’, ‘유튜브셀러’ 등은 모두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단어이다. 단어는 참신해 보이지만 사실 그리 유쾌한 의미를 지녔다고는 볼 수 없다. 다른 영상매체에 소개돼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책이 다른 영상매체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책 본연의 힘이 아닌 다른 매체에 의존하게 될 때, 게다가 출판업계 종사자가 그러한 상황을 지나치게 기대하게 될 때, 책은 점점 더 제힘으로 설 수 없게 된다. 세대를 불문하고 영상매체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지면서 전통적 활자매체인 책의 위상은 점점 더 추락하고 있다. 책의 가치를 지켜내야 하는 출판업계 종사자들도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위해 영상매체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다. 출판사들이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 책을 노출시키기 위해 ‘간접광고(PPL)’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가 하면, 수십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일부 유명 유튜버들은 자신의 방송에서 책을 소개하는 대가로 ‘뒷광고’를 요구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유독 대한민국에서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는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의 성장은 텍스트 쇠퇴 현상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콘텐츠 시장에서 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고, 책이 영상매체와 인터넷매체에 종속되고 있는 흔적은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디어셀러와 같은 신조어가 통용되지 않을 뿐, 해외 출판시장에서도 책이 다른 영상매체나 인터넷매체의 부속품 또는 장식품으로 전락하거나 다른 매체에 편승해 판매에 극적인 변화가 생겨나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시대

 

‘인플루언서 마케팅(influencer marketing)’의 시대다. 우리는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들을 ‘인플루언서(Influencer)’ 또는 ‘블로거(blogger)’라고 부른다. 이는 출판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플루언서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출판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이유는 이미 소셜미디어에서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 책을 내면, 그 책은 후광효과로 인해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각종 소셜미디어 북클럽 운영자나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면서 책을 추천하기 때문이다. 적게는 몇천, 많게는 몇만의 충성도 높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micro influencer)’가 책을 추천하면 그 책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게 된다. 소셜미디어 가운데 책 관련 게시물은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활발하다. 인스타그램의 책 관련 게시물은 ‘북스타그램(Bookstagram)’으로 불리며 일종의 문학 살롱 또는 문학 클럽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 소셜미디어에서 여행이나 패션 등에 대한 게시물보다 책과 문학에 대한 게시물이 늘어나면서, 인스타그램은 책을 홍보하고 지적 담론을 형성하며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다.

 

2020년 독일 출판시장에서도 인플루언서들의 활약이 주목받았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지닌 스타들이 책을 출간하고, 그 책들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크노시(Knossi)’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1986년생 유튜브 스타 옌스 하인츠 리하르트 크노살라(Jens Heinz Richard Knossalla)는 『크노시–인터넷의 왕(Knossi–König des Internets)』이란 책으로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목표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 그리고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는 것이었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과 팬들을 위한 왕국을 구축했다. 책을 통해 인터넷 왕국의 왕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을 소개한 저자는 부지런함, 행운, 끈기,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팬들과 팔로워들을 향한 진정한 감사가 성공 비결이라고 전했다. 이렇게 소셜미디어에서 인지도를 획득한 인플루언서의 책이 팔로워들의 적극적인 응원과 구매 인증샷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플루언서는 자신이 추천한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놀라운 마력을 지니고 있다. 독일어권 국가에서도 인스타그램 책 추천 게시물인 북스타그램이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자신을 ‘북스타그래머(bookstagrammer)’ 또는 ‘책 블로거(book blogger)’라고 부른 사람은 100~200명 정도로 추산됐지만, 5년 만에 2,000~3,000명으로 급증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책을 즐겨 소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그 영향력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출판사들은 유명 인플루언서들에게 자사에서 출간한 책의 내용을 게시해달라고 부추기고 있으며, 작가와의 이벤트 등에 인플루언서들을 우선적으로 초대한다. 리뷰를 위한 책과 책 관련 굿즈를 정기적으로 보내면서 인플루언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10년 넘게 종이책의 종말에 대한 예측이 있었지만, 특히 젊은 세대들(MZ세대)에게 종이책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가고 있다. 책을 끝까지 읽든 혹은 그렇지 않든, 인스타그램에 포스팅된 책들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나 철학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적극적으로 타인들과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올레 니모엔(Ole Nymoen)과 유명 팟캐스트 〈모두를 위한 부 The Wealth for Everyone〉 운영자인 볼프강 슈미트(Wolfgang M. Schmitt)가 함께 쓴 『인플루언서(Influencer)』는 지난 3월 초 독일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책은 ‘인플루언서, 그들은 슈퍼스타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노예인가?’라고 질문하며 디지털 시대의 최고의 권력자로 급부상한 인플루언서라는 신세계를 경제적, 사회적, 철학적, 문화적으로 분석한다. 책은 ‘인플루언서들이 자신들뿐 아니라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데 능숙하며, 아주 교묘하게 특정 제품을 배치하고 노출시켜 판매를 일으키고, 그것으로 밥벌이를 한다’고 비판한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는 필터와 포토샵으로 인해 빛나고 있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는 혁신적인 광고 홍보의 플랫폼 역할을 하며 상업 인터넷의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시키고 있다. 출판시장에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며 홍보 마케팅의 주요 타깃이자 통로가 된 인플루언서. 앞으로 그들의 활약이 기대가 되면서도 동시에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클럽 열풍: 오프라 윈프리, 리즈 위더스푼, 사라 제시카 파커, 빌 게이츠, 버락 오마바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함께 출판시장에서 엄청난 세일즈 티핑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에너지원은 ‘북클럽’이다. 영미권에서는 이를 일컬어 ‘북클럽 비즈니스(Bookclub business)’라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으로부터 시작한 북클럽 비즈니스는 유명 CEO, 정치 지도자, 배우, 패션모델 등으로 확대되더니, 최근에는 팬데믹 시대를 맞이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북클럽의 대모 오프라 윈프리는 1996년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을 시작했고 2011년 오프라 윈프리 쇼가 끝날 때까지 총 74권의 책을 추천했다. 그리고 그녀가 추천한 책은 예외 없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 표지에 윈프리 북클럽의 스탬프가 찍히면 마법처럼 즉시 ‘오프라 효과’가 나타났다. 북클럽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오프라 윈프리는 출판업계 전체에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니게 되었고 이제는 출판업계에서 그녀를 향해 노골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은 얼마간의 휴식 기간을 가진 후 더욱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돌아왔다. 2021년 3월 현재 30주 연속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가 있는 이자벨 윌커슨의 『카스트(Caste)』는 지난해 8월 오프라 윈프리가 ‘애플TV+’의 새로운 토크쇼로 복귀하면서 추천한 책이다. 흑인을 향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드러난 의료 차별이 맞물리면서 이 책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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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이 20주년을 넘기고,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젊은 세대를 겨냥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미국 출판시장에는 북클럽 열풍이 불고 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만든 북클럽이 연이어 등장했고, 리즈 위더스푼, 사라 제시카 파커, 엠마 왓슨 등이 자신의 북클럽에서 추천한 책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Where the Crawdads Sing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무명 작가의 첫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리즈 위더스푼이 북클럽에서 추천하면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상승세가 꺾일 줄 모르는 상황이다. 책의 표지에는 ‘REESE’S BOOK CLUB’이라는 자랑스러운 스탬프가 인쇄되어 있다.

 

북클럽은 유명 배우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물론이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지속적으로 소셜미디어에 책 관련 포스팅을 하면서 오프라 윈프리에 버금가는 ‘인플루언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북클럽을 운영하지는 않지만, 직접 읽고 추천하는 책 또는 여름 휴가철에 읽을 만한 책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출판시장에서 나름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등장한 인플루언서와 북클럽.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를 더 이상 ‘책의 적’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책을 이야기하고 홍보하는 데 가장 친근한 매체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앞서 언급한 뉴미디어의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 역시 출판업계가 고민해야 할 또 다른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