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Vol.8  2020.03.

게시물 상세

 

코로나19 사태 속 출판계, 그리고 이후의 출판계

 

 

 

김기중(서울신문 기자)

 

2020. 03.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가 한국을 덮쳤다. 확진자가 잇따르면서 사회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서점에 발길이 뜸해지고, 도서관은 끝 모를 휴관에 들어갔다. 출판계에서는 신간을 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코로나19의 기세가 다소 잠잠해질 때까지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출판·독서계는 어떤 모습일까.

 

 

 

서점 판매량 전반적 하락, 여행 서적 ‘직격탄’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올리고 이틀이 지난 2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에 붙은 ‘이달의 강연회&사인회’를 알리는 보드판에 검은색 안내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었다. 2월 예정했던 고정욱, 전소민, 임희선, 이은희 등 저자 강연과 사인회를 코로나19 때문에 모두 취소한다는 내용이다. 매장 내부로 들어가자 썰렁한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코너 대부분에 눈에 띄게 고객이 줄었고, 독서를 위한 의자에는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한 직원은 “평일에도 마감 시간까지 사람이 북적이던 곳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고객이 점차 줄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사람이 이렇게까지 적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울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 2월 예정됐던 저자 강연회와 사인회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모두 취소됐다는 검은색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 2월 예정됐던 저자 강연회와 사인회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모두 취소됐다는 검은색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서점에 발길이 끊겼다. 평일 마감시간까지 고객으로 북적이던 교보문고 광화문점 내부가 2월 25일 오후 다소 한산한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서점에 발길이 끊겼다. 평일 마감시간까지 고객으로 북적이던 교보문고 광화문점 내부가 2월 25일 오후 다소 한산한 모습이다.

 

오프라인 책 구매는 줄었지만, 온라인 책 배송, 전자책 구매는 다소 늘어난 게 다행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교보문고 측은 “매장 방문객이 이전보다 30% 이상 줄었고, 지난 설 이후 한 달간 전년대비 오프라인(바로드림 서비스 포함) 매출은 약 15% 감소했다.”면서 “반면, 전자책 등 온라인 매출은 12% 정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사정은 다른 오프라인 서점 역시 마찬가지다. 영풍문고 측은 “매장 방문객이 5% 이상 줄었고, 온라인 매출은 10%가량 늘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매출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전체 판매량은 전반적으로 줄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서적 분야별로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온라인 서점 예스24 관계자는 “서점가에서 2월은 개학을 앞두고 참고서와 수험서 판매가 늘어나는 시기다. 이쪽 분야 판매량은 개학이 늦춰져도 지난해와 비슷한 판매량을 보였지만, 단행본 판매량은 반대로 크게 줄었다. 인문은 물론이거니와 사회과학 등 분야도 타격이 크다. 팔릴 책만 팔리고 나머지는 판매량이 모두 감소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오프라인 매장의 줄어든 발길이 온라인으로 고스란히 이어지지는 않은 셈이다.

 

여행 서적은 가장 심각한 피해를 봤다. 영풍문고에 따르면, 1월 10일부터 2월 23일까지 여행 분야 서적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무려 57%나 감소했다. 판매량이 반 토막 이하로 곤두박질친 셈이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행업, 숙박업 등 관광업계에 500억 원의 긴급 금융을 지원한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환자가 급격히 늘고, 한국인 입국금지 등의 조치가 이어지면서 나아질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영풍문고 측은 “외국 여행을 갈 때에는 여행 바로 직전에 가장 최신판 서적을 구매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코로나19로 관광업계가 위축되면서 여행 서적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여행 서적은 방학 기간과 신학기 시작 전 수요가 한창 늘어날 때라 피해가 더 심각하다. 성수기로 꼽히는 2월에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독자와 만남 잇따라 취소… “책 내기도 꺼려져”

 

출판사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대형 출판사들은 최근 출간 기자간담회, 독자와의 만남 등 각종 외부 행사를 취소하거나 계획을 접었다. 미리 준비하던 책은 예정대로 출간하더라도 홍보를 어떻게 할지 막막한 지경이다. 한 대형 출판사 홍보팀은 “3·1절을 앞두고 관련 책을 출간할 예정인데, 이런 분위기라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할 것 같다.”고 밝혔다. 작은 출판사는 더욱 난감한 지경이다. 책이 안 팔리는 분위기다 보니 아예 새 책 내기를 꺼린다. 출판사 북레시피의 김요안 대표는 “오프라인 쪽 매출이 확 꺾였고,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포스트의 클릭 수도 많이 떨어졌다. 사태 이후 책에 관한 관심 자체가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출판사는 개학을 맞아 공부법을 다룬 강사의 책을 출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학이 미뤄진 데다가, 이후 홍보도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대표는 “그나마 신경 쓴 책이 이런 사태 때문에 묻히게 될까 안타깝다. 개학 이후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작가들도 이번 사태에 발을 구르고 있다. 지난달 시니어 그림책을 출간한 백화현 작가는 이번 달 여러 일정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점차 심해지자 서울시교육청에서 하기로 한 강연 4개, 지역교육청 11곳의 사서 연수들도 모두 취소됐다. 다수의 지방 강연은 물론, 독자들과 운영 중인 책 모임 등도 하지 않기로 했다. 백 작가는 “강연은 인세와 함께 작가의 주요 수입원이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작가들로선 코로나19로 입는 타격이 크다.”고 전했다. 이번에 첫 인문학 서적을 출간한 모 작가는 “첫 책을 알리려면 여기저기 뛰어야 한다는 이야길 듣고 출판사와 함께 독자와의 만남을 매주 잡아 놨다. 이번 달 초부터 하나둘씩 취소되더니 다음 달 계획까지 모두 엎어졌다. 책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밝혔다.

 

해외 도서전 참가를 준비 중인 출판계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달 10일로 예정됐던 런던도서전은 취소됐다. 가디언 측은 “지난주부터 아마존이나 대형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 등이 철수를 선언해, 도서전을 강행했어도 행사장은 ‘유령 도시’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4일 열릴 예정이던 타이베이국제도서전이 5월, 오는 30일 개막 예정이었던 이탈리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도 5월 4~7일로 각각 개막을 미뤘다. 다음 달 열릴 예정이던 이란 테헤란국제도서전도 6월로 연기됐다.

 

도서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한창 주가가 오르는 K-문학을 비롯해 외국 진출을 꾀한 출판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오는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이런 여파가 이어질까 우려스러워하고 있다. 주일우 대한출판문화협회 대외협력담당 상무는 “상황이 심상치 않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선 4월 중순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 상무는 “국제도서전에 참가하는 출판사는 양서의 판권을 사고파는 ‘B2B’의 역할과 함께, 서점 이외의 장소에서 독자를 만나는 ‘B2C’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면서 “책을 즐기는 분위기를 확산하는 독서 진흥의 역할에 특히 고려해볼 때 국제도서전이 잇따라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독서 분위기 전체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출판계는 이번 달과 다음 달을 비롯해 장기적으로 신간 제작·출간 일정을 미루는 일도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최악에는 인쇄소가 휴업에 들어가거나, 미리 제작한 책을 장기간 배본하지 않으면서 출판계에 막대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서관도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도서관과 박물관·미술관 등 24개 기관을 잠정 휴관한다고 24일 밝혔다. 그동안 시립이나 구립 그리고 지방의 작은도서관 등은 그동안 상황에 따라 휴관을 이어왔다. 국립도서관이 휴관한 마당에 버젓이 문을 열고 있을 수는 없는 상태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평생학습관은 지난 10~16일 잠정 휴관했다가 17일 재개관했다. 그러나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24일 국립도서관 휴관에 맞춰 휴관 기관을 ‘별도 공지 시까지’로 변경했다. 그나마 도서 구매는 그대로 진행한다고 도서관 측은 설명했다. 영등포 평생학습관 관계자는 “대출 서비스는 하지 않지만, 자료선정위원회 선정도서와 이용자 희망도서는 일정에 맞춰 사들이기로 했다. 다만, 신간 출간이 뜸해지고 휴관도 길어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추이를 좀 더 지켜보고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이지만, 동시에 작가들의 소규모 강연 장소로도 활용된다. 사태 장기화에 따라 출판계와 연계하면서 우려를 키운다.

 

 

 

장기 침체 불가피… “코로나19 이후 고민해야”

 

눈에 확 띄는 피해 양상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출판·독서계에 미치는 피해는 이처럼 서서히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출판·독서계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출판사들이 책을 내도 판매량이 늘어날 것인가. 전문가들은 우선 장기 침체에 대비하고, 지금 마케팅 전략을 개선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한번 하락해 버린 출판·독서계가 바로 회복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줄어든 오프라인 책 구매가 모두 온라인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집에서 한가하게 책을 보기보다 코로나19 상황 변화가 어떨지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수험서나 참고서 판매가 끝나면 온라인 서점의 판매량도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장기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출판·독서계와 정부가 이번 사태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장 대표는 “출판계의 대응은 여전히 종이책 판매에 집중하는 식인데, 대형 서점과 출판사는 타격을 크게 입지 않더라도 동네 작은 서점이나 작은 출판사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라 하더라도 정부에서 과감하게 책 구매 예산 등을 선 집행해 도서관이나 각종 기관을 통한 구매를 늘리는 식으로 출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판사가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좀 더 적극적인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장은 “출판과 독서계의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꼬이면 해결이 어려운 지경까지 이를 수 있다. 지금 위기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좀 더 의욕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 소장은 “책이 지닌 본래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부터 하는 게 중요하다. 그저 뉴스에만 집중하는 상황을 탓할 게 아니라 위기 상황을 다룬 책을 적극적으로 낸다든가, 온라인상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독서 운동을 비롯한 마케팅 등으로 독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번 사태 이후 다시 비슷한 사태가 닥칠 수 있음을 가정하고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른다. 지금의 마케팅 전략에서 탈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독자들의 수요를 철저히 분석하고, 구독경제 등과 같은 변화에 편승할 필요가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오프라인 서적 구매자는 ‘헤비리더(heavy reader)’가 많고, 헤비리더는 대개 다양한 책을 사는 경향이 있다. 대형 서점들이 지금처럼 출판사에서 돈을 받고 매대에 원하는 책을 깔아놓는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온라인 서점도 출판사가 비용을 내고 책을 노출하거나 후기 등을 작성해 홍보하는 식의 뻔한 마케팅은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라도 독자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구체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온·오프라인 구독경제 등을 결합하는 식으로 충성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또 코로나19와 비슷한 사태가 터지면 똑같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김기중(서울신문 기자)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될까 싶어 기자가 됐다. 재밌는 기사, 정보가 되는 기사를 쓰려 고군분투 중이다.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이자 출판팀장으로, 출판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이 많다. ‘김기중 기자의 책 골라주는 남자’를 연재 중이다.

 

커버스토리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