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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3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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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출판의 현황과 전망]
대학출판,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 대학 학술출판은 국가경쟁력

 

 

 

김정규((사)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

 

2021. 7.


 

1. 한국의 대학출판부는

 

1940년대부터 활동 시작
50여 개 대학출판부, 연간 1천여 종 출판
한국 학술출판의 한 축 담당

 

한국의 대학출판부는 1940년대 말에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출판부가 설치되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초기 대학출판부들의 설립 목적은 소속대학 교수들의 연구 성과와 대학교육에 필요한 학술서 및 교재를 출판하여 이를 보급하는 일이었다. ‘학술출판’으로 명명될 수 있는 이러한 설립 목적은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부터는 패밀리 브랜드를 도입하면서 출판 분야를 교양도서까지 확장하기 시작했고, 저자와 독자도 학내 교수와 학생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인에게 개방하여 대학과 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교육복지 증진과 지식·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장학금 지급, 소년소녀 가장 돕기, 교도소 재소자에 대한 교재 기증, 독서진흥단체를 통한 도서 기부 등 사회공헌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의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출판 관련 부서는 2002년 78개 처를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기 시작해서 2021년 6월 현재 약 50개 처가 활동 중이다(한국대학출판협회 가입 회원교는 47개 처). 출간도서는 10년간(2009~2018) 약 12,000여 종으로 같은 기간 국내 신간도서 종수 전체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대한민국학술원 및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도서는 10년간(2010~2019) 720여 종에 이른다. 이는 대학출판부가 한국 학술도서 시장에서 한 축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수치다.

 

2. 대학출판부의 강점과 특색을 꼽자면

 

책을 연구 및 교육 매체로 인식
교수와 연구소 등 콘텐츠 생산집단과 커뮤니케이션 용이
대학별로 차별화된 기획물 선보이고 있어

 

일반적으로 대학출판인들은 책을 소비재로 보지 않고 교육매체, 즉 생산재로 인식한다. 한 학자의 연구 성과는 후속연구자를 위한 기초자료로, 학생들을 위한 교육자료로 활용된다. 또한 평생교육 시대를 맞이하여 일반인에게 전문지식이나 교양을 함양할 수 있는 콘텐츠로도 쓰인다.

 

한국에는 4년제 대학이 약 190개교, 전임교원 약 66,000명, 약 5,000개의 연구소가 있다(2020년 기준). 대학출판부는 공간적으로 이러한 교수 및 연구소에 대한 접근성이 좋으므로 외부 출판사보다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환경을 활용하여 대학출판부들은 각자 대학의 학문적 차별성이나 지역적 특성에 맞는 다양한 기획물들을 선보이고 있다.

 

종교 관련해서는 가톨릭대의 ‘가톨릭신학총서’와 침례신학대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총서’, 동국대의 ‘한국불교전서’를 들 수 있다. 특수교육 분야에서는 대구대의 ‘특수교육총서’, ‘치료교육총서’, 건강 관련해서는 단국대의 ‘대학병원 건강교실총서’와 서울대의 ‘Health+시리즈’가 있다. 지역학으로는 계명대의 ‘계명영남학총서’와 ‘낙중학총서’, 경상국립대의 ‘지앤유 로컬북스’를 들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로는 건국대의 ‘세계작가탐구시리즈’, 계명대의 ‘예술학총서’, 경성대의 ‘경성대문화총서’, 부산대의 ‘영화연구소 학술총서’, 연세대의 ‘문학의 기본 개념’, 영남대의 ‘민족문화자료총서’ 등이 있다.

 

국제학 분야에는 고려대의 ‘동일본 대지진과 핵재난’, 단국대의 ‘동양학 학술총서’, 부산외국어대의 ‘국제지역문화연구총서’와 ‘국제관계연구총서’, 서울대의 ‘미국학총서’와 ‘일본연구총서’, 성균관대의 ‘동아시아학술원총서’, 영남대의 ‘중국연구총서’ 등이 있다. 그리고 인문사회 분야로는 계명대의 ‘한국학연구총서’와 ‘고문헌총서’, 고려대의 ‘인문사회과학총서’와 ‘번역학총서’, 이화여대의 ‘여성학총서’, 충남대의 ‘시민사회연구 시리즈’와 ‘인지문화연구 시리즈’, 영남대의 ‘인문학육성총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AKS인문총서’ 등이 있다. 한국방송대의 ‘아로리총서’는 교양문고이고, 한국외국어대는 외국어학 사전과 외국어 교육 교재가 백여 종에 이른다.

 

위의 총서 중에는 삼사십 년 동안 꾸준하게 이어져 100권 이상의 목록을 자랑하는 것도 있고, 최근에 론칭해서 시장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도 있다. 하나의 총서가 하나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경험이 풍부한 편집자들의 지속적인 열정이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학출판부에 10년, 20년 근무하며 묵묵히 교정지를 넘기는 편집자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대학출판협회 차원에서도 총서를 기획 중에 있다. 일본대학출판협회와 공동으로 추진 중인 가칭 ‘한일교류총서’다. 양국 협회 회원교의 우수도서를 저작권료 부담을 줄이면서 상호 번역해서 동북아 관련 학술연구 결과를 교류해 보자는 의도이다.

 

대학출판부들은 대학의 사회 참여 차원에서 고급교양서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패밀리 브랜드(임프린트) 전략을 채택한 곳이 여럿이다. 대학에 대한 딱딱한 이미지와 지역성을 탈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현재 9개 대학출판부가 13개의 패밀리 브랜드를 운용 중이다. 경희대의 룩스문디, 계명대의 빛을 여는 책방, 단국대의 노스보스, 대구대의 열린길, 서울대의 스누북스, 울산대의 UUP/ 지혜의 바다, 충남대의 궁미디어, 한국방송대의 지식의 날개/ 에피스테메/ 책속에 지혜, 한국외대의 HUEBOOKs/ HUINE이다.

 

대학출판부에서 출판해서 장안의 지가(紙價)를 올린 교양서로는 경상국립대의 『도시의 얼굴들』(허정도, 2018), 계명대의 『흥하는 도시 망하는 도시』(홍석준, 2019), 서울대의 『대항해 시대』(주경철, 2008), 충남대의 『이야기와 감동이 있는 일본문화 탐방』(장남호 외, 2013), 한국방송대의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토드 휘태커, 2015) 등이 있다.

 

도시의 얼굴들, 흥하는 도시 망하는 도시, 대항해 시대


이야기와 감동이 있는 일본문화 탐방,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

 

3. 대학과 대학출판의 환경, 자구책들

 

대학출판부 규모 매우 영세
대학도 경영환경 갈수록 악화
자구책 마련해도 한계 많아

 

대학출판부는 규모가 영세하다. 직원 수로 보면 10명 이상인 곳이 전체 50여 곳 중 10%, 4~9명이 50%, 4명 이하가 40%이다. 조직 운영은 학내의 한 부서로 운영하는 곳이 80%, 독립채산제 혹은 별도법인으로 운영되는 곳이 20%이다. 유통종수 500종 이상 되는 곳이 15%, 연매출액 10억 원 이상이 3곳이며 100억 원 이상이 1곳이다. 타 부서에 통폐합되는 곳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고, 작년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대학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교재 매출이 뚝 떨어졌다. 이러한 환경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각 대학출판부들은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돕기 위해 한국대학출판협회 차원에서도 몇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첫째, 유통 사업이다. 협회 회원교의 도서를 모아서 하나의 출판사처럼 서점이나 기관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27개교 참여 중). 신간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교섭력이 강화된다. 각 대학출판부는 유통관리 업무를 줄일 수 있고, 독자나 소매서점들은 대학출판부 거의 모든 책을 한 곳에서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자책도 유통한다.

 

둘째, 홍보 부분이다. 매년 연말 협회가 ‘올해의 우수도서’를 선정하고 목록을 만들어 언론과 서점, 도서관에 배포한다. 2020년도 올해의 우수도서에는 총 18종을 선정했다. 그 가운데 고려대의 『국보 「겐지모노가타리에마키(源氏物語絵巻)」』(김수미, 2020)가 학술 부문 최우수도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 학술용어』(이지원 외, 2020)가 대학교재 부문 최우수도서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7월 중에 협회 홈페이지가 새로 오픈한다. 독자들은 대학출판부에서 출판하는 모든 책을 각 대학별, 분야별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국보 「겐지모노가타리에마키(源氏物語絵巻)」, 한국학 학술용어

 

셋째, 전문인력 양성이다. 매년 국제세미나와 대학출판인 연수회를 실시하여 연구 및 실무 역량을 강화하고, 올해의 대학출판인상 시상을 통해 실무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 2020년도 ‘올해의 대학출판인상’은 경북대 김용훈 기획편집실장(본상), 서울대 정승아 팀장(기획편집 부문상), 경희대 최선희 계장(마케팅관리 부문상), 방송대 전준섭 팀장(공로 부문상)에게 수여됐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으로 학술출판을 지켜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학 경영자들의 인식 개선과 정책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대학 경영자들은 학술출판 혹은 대학출판을 수익사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대학출판부가 출판을 통해 대학의 본령인 연구와 교육, 생산된 지식의 보급을 위해 설립되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학술적 가치가 있는 전문학술서를 대학출판부가 지속적으로 출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대학도 어려움에 처해 있다. 10여 년째 계속되는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간 경쟁 격화와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대면 강의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지출도 감당해야 한다. 또한 교양 축소 및 전공 강화 정책, 강사료 절감을 위한 대형 교양 교과목 축소·폐지, 불법복제 성행, 비대면 강의 확산, 독서인구 감소 등 많은 지표들은 대학출판의 미래가 만만치 않다는 신호이다.

 

4. 학술출판, 경제재가 아닌 공공재로 관리해야

 

학술출판은 국가경쟁력
일본, 중국, 영국도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
대학교육 차원에서 교육부도 고민 필요

 

현재의 상황을 방치할 경우 대학출판부의 학술출판 기능은 약화될 것이고, 학술출판은 상업출판사에 전가될 것이다. 그러나 상업출판사들이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학술출판을 지속할 가능성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대학출판부 설립 허가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이는 학술출판의 필요성이 증가한 탓도 있지만, 그간 대학출판부와 함께 학술출판의 한 축을 맡아 왔던 상업 출판사들이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학술출판을 포기하거나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일본 정부는 왜 상업출판사 지원 정책 대신 대학출판부 설립 촉진 정책을 선택했을까? 이는 효율성과 공공성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학술적 성과의 생산자와 소비자 대부분이 대학 안에 있는 만큼 학술출판 역시 대학출판부가 맡는 것이 효율적이다. 대학출판부는 학내기관이므로 출판과정에서 저자와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다. 또한 출판된 학술서를 대학 내외의 다양한 행정·연구 기관의 협력을 통해 확산시키는 데에도 강점이 있다. 그리고 대학출판부는 공적 기관이므로 예산집행이 투명하며, 수익이 발생할 경우 학술출판 비용으로 재투자할 수 있다. 선순환 체제 구축이 용이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거시적인 차원, 즉 학술진흥과 학술출판 정책의 조화 또한 고려했을 것이다. 대학은 한 국가의 거의 모든 교육 정책이 실제로 집행되는 현장이며, 다양한 학술 정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학술진흥 정책의 일환인 학술출판 지원 관련 사업도 학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대학출판부가 맡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본다.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연 매출이 1조 3,000억 원이라고 한다. 한국 대학출판의 현실에서는 꿈도 못 꿀 규모다. 그러나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의 역사를 보면 인쇄출판 산업의 태동기인 16세기에 설립되어 업계 선발주자로서 선점효과를 누렸다. 또한 설립 이후 오랫동안 국왕으로부터 교재·학술서·종교서적의 독점적 출판권을 부여받아 안정적인 성장 기틀을 마련했다.

 

중국의 베이징대학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현재 유한책임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설립 초기에는 ‘국가 단독 소유제 기업’이었다. 따라서 이 역시 설립 초기 단계부터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규모와 출판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이후 이 대학출판사는 중국의 개혁개방 및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진행된 ‘대학 팽창’ 특수를 누리며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학술출판은 미국에서도 적자경영의 영역으로 본다. 학술서 출판으로 인한 손실은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므로, 외부의 보조금과 지원금으로 이 손실액을 보전하여 출판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학술출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낮은 상업성으로 인해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교육, 특히 대학교육 환경이 요동치고 있다. 대면 수업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축이 전환되고 있다. 교육매체도 학술출판 방식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학술출판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출판부들이 과거의 침체를 벗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정책당국이 나서야 할 시점이다. 학술출판이 국가경쟁력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직시하고, 학술도서를 공공재로 인식하여 출판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뿐만 아니라 교육부도 지원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교육부가 직접 하기 어려우면 대학에 별도의 예산을 주거나 한국연구재단, 학술진흥재단 등을 통해 예산이나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한 자료들

 

박대현·양정모 외, “학술지원 저술성과 확산을 위한 대학출판조직 지원방안,” NRF ISSUE REPORT(한국연구재단, 2021. 7호).
한국교육개발원, 고등교육통계조사, https://hi.kedi.re.kr/home/univ/school2(2020).
한국대학출판협회, 『한국 대학출판 국제교류사』(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김정규

 

김정규((사)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에서 30여 년 출판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교수신문〉에 북칼럼 ‘김정규의 책으로 보는 세상’을 기고 중이며,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칭얼대는 파도』(필명 김효안) 등이 있다. 출판유공자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jeongkyu@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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