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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6  2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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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독자들의 귀환]
텍스트 소비의 시대, 아재들의 책 읽기

 

 

 

이홍(단행본 출판기획 편집자)

 

2023. 08.


 

읽기와 학습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나오미 배런(Naomi S. Baron)은 그의 저서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어크로스, 2023)에서 여성과 남성의 읽기 차이에 따른 책 선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여성의 언어는 사회적이고 상호작용적인 경향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 선형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구성된 소설(문학)을 선택하고 읽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선형적 스토리텔링 읽기는 ‘추론하기’라는 이해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학습 요구가 높은 학생들에게 문학 읽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문학을 많이 읽은 실험군에서 학업 성취도가 높게 나온 결과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 남성은 정보 중심의 언어를 좀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추론하기’보다는 직선적이고, 그래서 ‘즉시적인 이해’를 더 필요로 한다. 이런 이유로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픽션보다 논픽션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무척 흥미롭지만 엄청나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몇몇 연구들을 통해 전해지던 내용이다. 물론 일반화의 오류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관련하여 몇 해 전 근무했던 회사의 후배들이 인터넷서점의 판매 데이터를 뒤져 만든 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것이 그들의 노고에 해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봐주기 바란다.

 

여성과 남성의 읽기 장르 차이

여성과 남성의 읽기 장르 차이

출처: 2019~2020년 4대 인터넷서점 관련 자료 정리

 

대부분의 장르에 걸쳐 여성 구매자의 비율이 남성 구매자의 비율보다 높다. 물론 유아 청소년 분야의 실제 구매자는 ‘어머니’일 가능성이 큰데 이걸 제외해도 그래프의 기울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경제경영서와 사회과학, 정치, 기술, 역사문화 등 일부 정보 중심 비선형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남성 독자가 좀 더 높은 비율을 보인 것은 위에서 소개한 나오미 배런의 저술 내용과 연결했을 때 의미가 있다. 다만 이런 정도로 여성과 남성에 대한 일반화된 공식을 만들려고 한다면 무리다. 위의 표는 그냥 한 출판사가 독자 분석을 위해 인터넷서점의 협조를 얻어 만든 것일 뿐, 정교한 분석 기법이나 오랜 연구가 수반된 결과는 아니다. 정말 참고 자료일 뿐이다.

 

출판 기획을 위해 의도적으로 방향을 정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단순히 장르의 구분으로 여성과 남성의 읽기 습관을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형과 비선형의 스토리텔링은 기본적으로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선형적 스토리텔링 안에 비선형적 구조가 포함되는, 혹은 그 반대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 현장에서는 여성 독자와 남성 독자를 기계적으로 분류하려는 일반화된 인식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우연하게 만들어본 위와 같은 표들이 그런 인식에 확신을 더하기도 한다. 필자도 이 글에서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정보 중심의 비선형 스토리텔링의 책을 더 선호하고(언어의 이유이든 다른 이유이든), 그 연장선상에서 남성이 경제경영서나 사회과학 분야의 우선순위 독자라는 설정에 손을 들어주고자 한다. 다만 필자는 다른 관점의 생각도 있는데 그 부분은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말할 수밖에 없겠다.

 

성(性)에 따른 언어 분석과 함께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두 번째 문제는 책을 읽게 만드는 ‘환경’이다. 옥스퍼드대학교 통합감각연구소(Crossmodal Research Laboratory) 소장인 심리실험학자 찰스 스펜스(Charles Spence)는 “책은 감각과 환경이 작용하는 도구”라고 말했다. 독자를 둘러싼 주위 환경과 특정한 시간은 독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청각과 시각의 경험과 지향성, 심지어 종이가 뿜어내는 후각과 특유의 촉각과 같은 공감각적인 요소도 독서를 좌우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한다. 찰스 스펜스는 여기에 더해 책의 가격, 준비된 사전 지식과 읽기 후 활용 등도 독서 ‘행위’를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러한 환경적 요소들이 심지어 언어적 요소보다 책의 선택과 독서에 더 많은 구분과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어적 요소가 다소 일반화된 개념이라면 환경은 개개인에게 주어진 주관적 개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더 깊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여기까지다. 환경적 요소가 여성과 남성, 미성년과 성년 등의 책 구매와 독서 강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좀 더 심도 깊은 연구 결과들을 기대한다.

 

그래서 세 번째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시간 혹은 나이에 따른 ‘변화’다. 안타깝게도 일정 나이까지는 성장과 확장이라는 변화를 겪지만 이후부터는 퇴화와 축소라는 변화를 겪어야 한다. 이건 지구상 대부분의 유기체가 가진 숙명의 한계다. 그 반대의 변화도 있다. 경험과 사전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여 경험을 축적했다는 변화다. 하나는 부정적인 변화로 나아가고 하나는 질적인 축적이라는 변화로 나아간다. 이러한 변화의 뒤섞임은 삶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구체적인 행동 하나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에 대한 이유로 작용하는데, 이 글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책의 선택과 독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유가 무엇이든 책을 읽는 행위는 유형과 무형의 경험을 위한 것이며 이에 대한 요구와 수용의 강도는 인간의 삶 전반에서 ‘변화’와 함께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사전 지식과 직접적인 경험을 쌓아온 세대에게 간접 경험과 학습의 부담을 주는 독서에 대한 압박은 피곤함과 의식적인 저항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더 이상 판타지를 꿈꿀 정도로 이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다.

 

시간의 변화, 경험의 변화, 생물학적인 변화, 관계의 변화 등 이러한 수많은 변화의 문제들은 앞서 이야기한 언어, 환경과 더불어 성별이나 나이 등에 따른 책의 선택과 독서 강도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단순히 “30대 아재들의 복고 열풍”, “식지 않는 ‘부자 책’ 인기” 등과 같은 이슈의 관점만 가지고는 성인 남성들의 책 구매와 독서 경향을 의미 있게 진단할 수 없다. 가십에 불과할 몇몇 현상들을 두고 대단히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정말 편리를 위한 편리주의다. 물론 이런 판단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이다. 다른 시각과 분석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이 글의 전개를 위해 다시 한 번 더 타협하기로 한다. 현재 시장이 판단하고 있는 많은 관점들을 일단 수용하기로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이 글을 시작한 자의 본분이다. 성별로는 ‘남자’ 그리고 나이는 성년에서 쉰 초반 정도까지, 세상에서 흔히 ‘아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책을 선택하며 왜 읽을까? 출판시장은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며 대응하는 게 좋을까?

 

그들은 전략보다 전술적 선택에 의해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책 읽기의 효용성에 대한 전통 모델은 장기적인 ‘전략 구성’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위인전 읽기를 지도하는 것 역시 모범이 되는 모델을 제시해 전략적인 인생 설계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늘 강조하는 문학, 예술, 철학, 인문 등의 읽기도 종과 횡이 결합된 입체적 스토리와 지식을 통해 전략적 사고를 쌓기 위한 것이다. 책 읽기를 멀리한다는 아재들에게도 이는 중요하고 필요한 문제다. 그러나 그들에게 좀 더 필요한 것은 전술적 지식과 정보다. 그 이유는 앞서 서술한 언어와 환경 그리고 변화라는 내용을 이해했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술을 구성하는 정보는 ‘아재’들에게 가장 효율적이며 생산적인 선택지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현실에서 당장 피와 살이 되는 뭔가가 중요하다는 거다.

 

이들이 최근 가장 많이 읽는다는 책은 『세이노의 가르침』(데이원, 2023)이다. 오래전부터 출판사들이 저자로 모시고 싶어 안달했던 ‘세이노’인 만큼, 예상대로 그의 이름을 단 책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이 책은 목차도 서술 방식도 결론도 ‘전술적 자기계발서’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실 너무 뻔해서 실망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아재들은 자신들의 가려움을 긁어줄 전술 정보가 여기에 담겨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아니 그냥 믿고 싶은 거다. 세이노의 책과 달리 레이 달리오(Ray Dalio)의 『원칙』(한빛비즈, 2018)은 적어도 ‘전략’이라는 반열에 위치해야 할 책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인터넷을 뒤지고 유튜브를 돌려보면서 깔끔하게 정리한 『원칙』의 제본본을 만들었다. 유명 인터넷서점의 통계에 의하면 이 책의 구매자는 60% 이상이 30대 이상의 남성들이다. 출판은 편리하게 ‘장르’를 말하지만 사실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장르가 아니다. 그들에게 장르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미 구성된 삶에 교정과 방향을 말해 줄 정보가 필요한 것이다.

 

『세이노의 가르침』, 『원칙』

『세이노의 가르침』, 『원칙』

 

 

이러한 전술 정보의 필요성에 ‘이슈와 타이밍’이 결합하면 휘발성은 더욱 배가된다. 출판시장에서 경제경영서와 자기계발서의 트렌드가 가장 극적으로 바뀌었던 세 번의 시기가 있었다. IMF 이후,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사태 이후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다. IMF는 역사적으로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대한 욕구가 분출했다는 점에서는 또 다른 전환점이기도 했다. 영미권 중심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관련 서적의 범람은 물론 집단과 개인의 학습 열풍을 불러왔다. 그러나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그토록 열광했던 모델들이 부실한 허구였다는 실망을 안겨주었다. 급기야 경제경영서 시장의 빙하기를 몰고 왔고 자기 브랜드 강화를 위한 생존 콘셉트, 다친 마음을 위로받기 위한 멘토형 책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선형적 스토리텔링 그리고 소설을 중심으로 한 문학이 점유를 확장하는 출판시장의 변화를 가져온 것도 이때부터다.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거대 담론’에 대해 치명타를 가했다. 부동산 시장의 급상승과 가상화폐 열풍을 배경으로 한 재테크 서적 범람을 두고 출판시장에 남성들의 귀환이라거나, 경제경영서의 선전이라고 제목을 다는 것은 단편적 사고다. 이는 전술 정보의 선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슈와 타이밍이 호객 행위를 한 결과일 뿐, 독자 확대라는 질적 변화로 보는 것은 다소 오해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 어느 쪽이든 변화가 소용돌이치는 시기에는 그에 따른 정보를 획득해 전술적인 대응을 하려는 반응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시장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역사와 정치 이념 등의 문제 역시 많은 경우 정보 욕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런 요소들은 동류 간의 집단을 형성하게 하는데,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연대 관계가 삶의 존속과 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체감하는 경향 때문이다. 이는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DNA의 세습이다. 그래서 이전 시대처럼 ‘이념’ 중심이라기보다는 ‘구조’ 중심이라 보는 게 편리할 듯하다. 이 구조는 예를 들어 현재의 상황에 대한 방향성 같은 것을 말하는데 좀 비약해서 말하자면 이를 통한 경제적 이익 등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역시 전술 정보 수집이 필요한 아재들의 선택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는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복고 열풍, 투자서의 건재, 사회과학 서적들의 선전… 그래서 출판시장에 아재들이 돌아왔는가? 좀 밋밋한 결론이지만 그들은 사라진 적이 없다. 그러므로 다시 돌아왔다는 표현도 적합하지 않다. 출판이 그들을 편리주의적인 시선으로 재단해 바라봤을 뿐이지 지금까지 있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읽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책을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읽을 필요가 없는 환경과 변화에 직면한 것이다. 여기에 그들의 언어에 맞는 읽기 재료가 마땅히 없다는 불만도 더해진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빠르고 즉시적인 정보 요구에 맞추는 데 ‘책’은 너무나 비탄력적이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이 전술적 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데 그다지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출판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재들의 진정한 귀환은 그제야 가능하다.

 

삶이란 다양한 이야기와 크고 작은 경험과 유무형의 정보를 축적하게 만든다. 학생 시절과 젊은 시절에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직접적인 획득이 부족해 간접적인 획득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통한 획득을 평생에 걸쳐 게을리하지 않는 많은 독자들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를 보편화하기는 쉽지 않다.

 

팬데믹이 끝나니 곧바로 인공지능 시대가 열렸다. ‘챗GPT(ChatGPT)’는 시작에 불과하다. 전대미문의 전환의 시기를 겪을 게 뻔하고 이는 더 새로운 정보를 필요로 하는 갈증을 불러올 게 분명하다. 기존의 방식에 익숙했던 생활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생존해야 하는 절박한 개인’이라는 파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지푸라기라도 구명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리고 그 잘난 아메리카 우선주의의 모델을 금과옥조처럼 추종하는 한, 그래서 학벌과 재산과 진영에 따른 우열과 갈등이 격심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출판시장에는 끝없는 ‘기회’가 주어질 게 분명하다.

 

이홍

이홍 단행본 출판기획 편집자

단행본 출판기획 편집자로 한국출판인회의 실행이사, 웅진씽크빅 단행본 본부장, 리더스북 대표, 더난출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만만한 출판기획』(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8), 『편집자로 산다는 것』(공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2)이 있다.
wizardh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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