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Vol.13  2020.08.

게시물 상세

 

[지금 왜 지역출판인가]
팔도 방방곡곡 지역의 삶과 문화를 담다

 

 

 

최서영((주)더페이퍼 대표, 『골목잡지 사이다』 발행인)

 

2020. 08.


 


2019 고창도서전


2019 고창도서전

 

 

 

지역의 빛깔을 담은 책을 만나다

 

지역이 없는 중앙은 존립하기 어렵다. 그중 지역출판은 해당 지역의 지적,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역량 등을 가늠하는 문화지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분권을 이야기하는 시대이지만 문화의 중앙집권화 현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출판 역시 서울과 파주 출판단지를 중심으로 한 중앙출판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규모 자본과 시장에 의해서 좌우되는 현재 출판환경에서는 출판의 획일화, 집중화, 편중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지역출판은 현재 존폐의 기로에 놓일 만큼 사정이 녹록지 않다. 출판사들이 의미와 사명감만으로 버티기에는 힘든 실정이다. 그로 인해 지역의 문화 콘텐츠는 고사 위기에 직면해있다. 모든 문화사업이 오로지 산업의 영역에서 치열한 시장 경쟁을 벌일수록 전국 곳곳에서 지역의 삶과 문화를 발굴하고 기록해온 지역출판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출판계 연구 자료에 따르면 우리가 있는 경기도만 해도 서울, 경기 지역을 포함해서 출판 산업의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파주 국가출판단지를 제외하고 경기도 31개 시군에 그 지역의 문화를 담고 있는 출판사는 부산, 대구, 광주에 훨씬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한 개의 시·군에 한 개의 출판사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역출판의 위기는 한국문화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지역출판은 한국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보루와 같다. 한국 지역 저마다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통을 보존, 계승하며 공동체의 가치와 생태·환경적 삶의 방식을 담아내는 등 새로운 문화 창조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출판은 당대의 기록을 후대에 전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며 지역이 함께 만들고 향유하는 공동의 우물터이다. 모든 지역의 다양한 삶과 문화가 기록되고 역사로 대물림되는 자리이다.

 

〈전라도닷컴〉의 황풍년 대표는 ‘지역출판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출판사가 있지 않았다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놓는다는 것. 이는 시장논리와는 별개로 존재한다. 예를 들면 제주에 있는 ‘각’ 출판사가 제주4.3에 대한 책을 냈고, 광주의 ‘심미안’ 출판사가 5월 민주항쟁에 대한 기록을 출판한 것은 그 출판사들이 없었다면 그 역사는 기록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가 후대에 물려 줄 당대의 문화의 완결을 지역이 채워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 출판의 역할은 매우 주요하다.’라고 말했다(지역출판의 활성화가 절실한 이유 『출판저널』 503호).

 

전국에서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는 출판물과 잡지는 저마다의 색깔로 지역을 담아가고 있다. 지역 사람의 삶과 문화를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것, 지역 문화에 있고 지역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진정한 지역성을 담아내는 것이 지역출판이다. 우리가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원천적 힘이 저마다 발 딛고 살아가는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2018 수원도서전


2018 수원도서전

 

 

 

지역출판이 주인공이 되는 한국지역도서전을 열다!

 

존폐의 기로에 선 전국의 55여 개 지역출판사와 문화잡지가 모여 지역출판의 건강한 연대를 통해 지역 간 소통과 교류를 도모하고 한국 지역문화의 다양성을 민간의 힘으로 지켜나가고자 2016년 9월 1일,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이하 한지연)’가 출범하였다. 지역에 숨어있는 삶터 이야기, 지역문화의 우수성과 다양성을 담아내는 지역출판물을 출간하고, 지역출판사 및 저자의 활동을 격려하기 위해 ‘한국지역출판대상’을 수여하는 ‘한국지역도서전’을 열기로 하였다.

 

지역출판은 한 권, 두 권 책을 내면 낼수록 가난을 작정해야 버틸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한지연’을 통해 서로 만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연대하는 사이가 되었다. ‘한지연’이 열기로 한 ‘한국지역도서전’은 온전히 지역출판사들로 이루어진 국내 최초의 도서전이다. 또한 전국의 지역 출판인과 독자가 한데 어우러지는 지역출판문화축제로써 전국 지역에서 책 만드는 사람들과 지역의 빛깔을 담은 책을 만날 수 있는 곳, 전국의 지역출판사에서 펴낸 책이 한자리에 모이는 도서전이다. 특히 국가의 출판정책이 대부분 중앙에 집중되어 지역출판사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때 출판사 스스로 연대를 결성하고 만들어낸 최초의 도서전으로써 가지는 의미가 크다.

 

2017년 5월에 제주도 한라도서관에서 ‘2017 제주한국지역도서전’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수원에서, 2019년에는 전북 고창에서 해마다 전국 지역을 돌며 한국지역도서전을 열어나가고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어, 오는 10월에 대구 수성구에서 도서전을 앞두고 있다. 지역출판사의 자체적인 힘으로 도서전을 개최하면서 한국출판의 조직화와 혁신을 이루어가고 있다.

 

한국지역도서전은 지역을 담은 책을 매개로 팔도 방방곡곡 지역의 삶과 문화를 만나는 자리였다. 제주, 완주, 대구, 수원, 대전, 부산, 광주, 청주, 창원, 고창, 수원, 하동, 통영, 춘천, 경산, 장수, 원주, 홍성, 임실, 의왕… 전국 팔도 방방곡곡 우리 동네 얘기를 책이라는 그릇에 뚝심 있게 담아온 전국 지역출판사에서 펴낸 2,000여 권의 책이 쏟아져 나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2018 수원한국지역도서전’에서는 제2회 한국지역출판대상에 대구 한티재 출판사에서 펴낸 『들꽃, 공단에 피다』(저자 아사히 비정규직지회)가 선정되었다. 심사위원회는 “『들꽃, 공단에 피다』는 22명의 노동자가 저자이다. 지역출판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역 노동문제와 현실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출판사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아 노동현장을 기록으로 남긴 소중한 작업”이라며 대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국지역도서전의 의미와 가치를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한지연’이 주최하는 ‘한국지역도서전’은 전국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자리이다. 우리 지역의 유·무형 콘텐츠를 기록하고 보존하지 않으면 지역 문화를 만들고 발전시킬 수 없다. ‘한국지역도서전’은 지역출판과 지역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축제이다.

 

돈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증거하고 알리고 기록해야 할 지역의 수많은 이야기가 지역출판사를 통해 출판되고 있다. 지역의 이름 없는 골목 어귀에서 책을 지으며 살아가는 많은 편집자가 있다. 2020년,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출판의 출구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어차피 책을 만든다는 것은 다 매한가지다. 많은 편집자가 지역에서 출판하나 서울에서 출판하나 항상 고민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담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지역의 삶과 역사 그리고 문화 등 지역의 이야기가 출판될 수 있는가이다. 지역에 출판사가 없다면 돈이 될 만한 책이 아니라는 이유로 만들어져야 할 이유가 충분함에도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역에 같이 살고 있는 출판사가 있었기에 그것들이 책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세상은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이 시대의 주인이 되는 일이 곧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믿고 있다. 팔도 곳곳에서 보통사람의 기준으로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 책을 붙들고 애써온 지역출판사가 내놓은 책에 독자의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기대해 본다.

 


2017 제주도서전


2017 제주도서전

최서영((주)더페이퍼 대표, 『골목잡지 사이다』 발행인)

수원에서 지역공동체 잡지 『골목잡지 사이다』를 발행하고, 지역 이야기를 출판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출판사 (주)더페이퍼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8년 9월에는 전국 지역출판사들의 연대모임 ‘한국지역출판연대’가 주최하는 〈2018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을 개최 운영하였다.

 

커버스토리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