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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7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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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출판 모델이 출판계에 미치는 영향]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이 바꾼 출판의 패러다임

 

 

 

김민규(텀블벅 영업기획)

 

2022. 10.


 

이맘때가 되면 텀블벅엔 출판 프로젝트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다. 10월에 열리는 서울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여하는 독립 출판사들이 그곳에서 선보일 신간을 제작하기 위해 텀블벅을 찾기 때문이다. 비단 ‘언리미티드 에디션’뿐만이 아니라 다른 출판 행사나 서점 등의 공간에서도 텀블벅을 통해 제작된 책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그런 책을 살펴보는 사람들이 ‘나도 텀블벅이나 해볼까?’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예삿일은 아니다. 특정 회사나 브랜드명이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동사처럼 사용되는 것이 많은 IT 기업들의 목표일 텐데, ‘텀블벅한다’는 말이 예술·문화 계통에서 익숙하게 쓰이는 것을 보면 텀블벅이 창작 문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10여 년 전만 해도 크라우드 펀딩은 무척 생소한 개념이었다. 제품 혹은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일반 대중(crowd)에게서 후원(funding)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국내에서는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후원 문화는 기업의 투자는커녕, 창작지원 사업의 좁은 문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했던 수많은 창작자에겐 반드시 필요했다.

 

첫해에만 약 80여 개의 프로젝트가 텀블벅을 통해 진행되었고, 다음 해에는 무려 300여 개의 프로젝트가 열렸다. 목표를 달성한 프로젝트의 수도, 후원금이 모이는 규모도 놀라울 정도로 커졌다. 2016년, 5년 만에 텀블벅에서 2,000여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며, 약 11만 명의 후원자가 약 650억 원을 기꺼이 후원해주었다. 현재까지 2만 5천여 명의 창작자가 4만 건이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여기에 2,000억 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금됐다.

 

출판 분야는 텀블벅에서 특히 중요하다. 2022년 상반기만 해도 출판 분야에서 발생한 후원액은 약 100억 원으로, 패션 분야 다음으로 가장 후원 규모가 크다. 초기에 프로젝트의 수가 가장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던 분야도 출판이다. 2011년에는 24개의 출판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지만, 다음 해인 2012년에는 약 50개의 프로젝트가, 또 그다음 해에는 약 80개의 프로젝트가 들어오며 거의 두 배수에 가깝게 늘더니 2016년에는 약 350개, 2017년에는 약 600개, 2018년에는 약 1,000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토록 텀블벅 내에서 출판 분야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크라우드 펀딩 시스템이 출판 창작자에게 필요한 이유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책을 낸다는 것은 대부분 투고를 통해 선택받거나 연재 플랫폼에서 인기를 얻어 출판을 제안받는 소수의 작가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기회에 가까웠다. 물론 독립 출판이라는 대안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이를 위해선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고, 수요 예측이 어려워 판매가 모두 이루어질 때까지 재고를 떠안아야만 했기에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크라우드 펀딩은 이런 독립 출판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만들어질 책에 대해 예비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만 있다면 창작자는 자신의 기획을 프로젝트로 올려 관심 있는 후원자로부터 제작비를 수급할 수 있고, 자신의 책의 초기 독자가 되어줄 사람이 몇 명인지를 파악할 수 있기에 재고의 부담도 없다. 묶어낼 원고와 약간의 편집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봄알람’이 진행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프로젝트 화면

‘봄알람’이 진행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프로젝트 화면

 

 

제작 이전에 출판물에 대한 후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 가장 뜨거운 주제에 대한 출판물을 누구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여성주의 정보생산자조합 페미디아의 출판팀 ‘봄알람'에서 진행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페미니즘 담론이 폭발하던 2016년,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처음으로 직면한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봄알람은 빠른 기동력으로 한 달 만에 초고를 작성하고, 샘플 시안을 제작해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렸다. 탈고가 채 이루어지지도 않은 시점에 2,600여 명이 모였다. 시장성과 수익성에 대한 검토 때문에 제작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는 기존 출판 시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지금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담은 기획 출판물이 등장한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시장성에 대해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관점과 분야의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뜻이 맞는 여러 필자와 팀을 꾸려 독립적으로 잡지를 만드는 시도가 텀블벅에서 자주 이루어진 것이 이를 방증한다.

 

고정적인 팬층 확보를 위해 월간이나 계간 등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꾸준히 제작하는 것이 당연했던 기존 잡지 제작 방식과 달리, 텀블벅에서 제작되는 잡지는 자유주기로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담론을 최대한 빠르게 담아내고자 하는 목적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퀴어 컬처를 다룬 잡지 〈뒤로〉, 비연애인의 삶을 다루는 〈계간 홀로〉 등 그간 자주 다루지 않은 담론을 다룬 잡지에 목말랐던 독자층이 후원으로 반응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특히 영화 잡지 〈프리즘 오브〉의 특별 호가 1억 원이라는 기념비적인 모금액을 달성한 순간은 대형 출판사에서도 다시 잡지 제작을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텀블벅에서 계속해서 새롭게 태동하는 출판 흐름을 가장 예민하게 지켜보는 것은 독자만이 아니다. 늘 새로운 작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출판사에 있어 텀블벅은 신예 작가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곳이다. 특히 독립 출판물의 유통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소개하는 서점의 수가 늘어나면서, 텀블벅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출판물이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는 경우가 늘어났다.

 

백세희 작가가 진행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좌)와 이미예 작가가 진행한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이후 『달러구트 꿈 백화점』으로 재출간)(우) 프로젝트 화면

백세희 작가가 진행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좌)와
이미예 작가가 진행한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이후 『달러구트 꿈 백화점』으로 재출간)(우) 프로젝트 화면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텀블벅을 통해 제작된 이후, 펀딩에 참여한 후원자와 이후 독립 서점 등을 통해 만난 독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3쇄까지 출간되며 큰 호응을 받았다. 이러한 독자의 반응을 눈여겨본 출판사에서 백세희 작가에게 정식 출간을 제안하였고, 정식으로 출판된 책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마찬가지로 종이책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를 석권하며 화제를 몰았던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역시 텀블벅을 통해 먼저 선보였던 책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글쓰기를 포기했던 이미예 작가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던 이야기를 끝내 책으로 엮기 위해 텀블벅을 찾았다. 재밌는 것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원고가 미완성이었다는 것이다.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라는 제목의, 저자의 정체도 알 수 없고, 샘플 원고조차 없던 소설의 아이디어에 약 천 명의 독자가 먼저 반응했다. 후원자가 보내주는 다양한 의견을 참고하여 쓰던 원고의 방향까지 바꾼 이미예 작가는 그렇게 모인 약 2천만 원으로 책을 제작했다. 텀블벅에서 받은 응원에 힘입어 이미예 작가는 다양한 출판사의 문을 직접 두드렸고, 그중 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지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간을 하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텀블벅에서는 작성된 원고가 없어도 빛나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큰 호응을 얻는 책을 만들 수 있다.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가장 트렌디한 글을 쓰는 필자 김서울 창작자의 사례가 이를 가장 잘 드러낸다. 당시 한국 유물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SNS에 올리던 작가에게 우리는 보다 긴 호흡의 글을 연재하는 프로젝트를 해볼 것을 제안했고, 이에 작가는 약 4천 원가량을 구독료 개념으로 받고 총 6편의 글을 작성하여 후원자에게 전달하는 ‘한국 문화유산 큐레이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정말 무(無)의 상태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짧은 기획만으로 500여 명의 독자가 응답했다. 후원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은 저자는 다음 해에 다시 텀블벅을 통해 당시의 원고를 개정하여 독립 출판물로 묶어 냈다.

 

김서울 창작자가 진행한 두 건의 프로젝트, 『뮤지엄 서울』 연재 프로젝트(우) 진행 이후 이를 묶어 출판하는 프로젝트(좌)를 재진행하였다.

김서울 창작자가 진행한 두 건의 프로젝트, 『뮤지엄 서울』 연재 프로젝트(우) 진행 이후 이를 묶어 출판하는 프로젝트(좌)를 재진행하였다.

 

 

최근 텀블벅의 출판 분야에서도 가장 성장이 눈에 띄는 분야는 특이하게도 장르 소설이다. 연재 플랫폼의 성장으로 장르 소설에 대한 소비가 온라인으로 이동한 현재, 단행본으로까지 만들어지는 작품은 손에 꼽힌다.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최소 100화에서 많게는 1,000화가 넘게 연재되는 방대한 분량의 연재물을 책으로 엮어내는 것은, 충분한 자금을 보유한 대형 출판사 입장에서도 쉬운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필요한 수요를 예측할 수 있고, 높은 제작비를 사전에 모금할 수 있다는 장점에 주목해 작가가 직접 자신의 연재작을 물성을 가진 책으로 만드는 경우가 생겨났다. 글술술 작가가 진행한 『천재 배우의 아우라』 소장본 제작 프로젝트와 태비의별 작가가 진행한 『모시던 아가씨가 도련님이 되어버렸다』 소장본 제작 프로젝트가 각각 5천만 원, 3천만 원을 모금하며 성황리에 제작되었다.

 

이러한 성공 사례에 주목한 연재 플랫폼 문피아는 연재작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을 직접 출판 기획하여 세 번에 걸쳐 텀블벅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총 5억 5천여만 원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네이버 시리즈 역시 이후 『화산귀환』 단행본 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10억 원을 훌쩍 넘기는 성과를 기록했다. 작가 개인의 독립적인 시도들이 출판사뿐만이 아니라 연재 플랫폼에서도 단행본 제작 사업에 뛰어들게 만드는 현상을 자아낸 것이다.

 

문피아가 진행한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 단행본 애장판 제작 프로젝트

문피아가 진행한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 단행본 애장판 제작 프로젝트

 

 

크라우드 펀딩으로 출판의 문턱이 낮아지고 동시에 출판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작가와 출판사 사이의 경계는 물론, 독자와 작가 사이의 경계마저 흐려진 것이다. 소비자가 곧 콘텐츠 창작자가 되고, 콘텐츠 창작자가 곧 출판물 공급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크라우드 펀딩이 확산시킨 아마추어 출판 문화로 인해 출판물의 질이 하락하는 것을 걱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등단하지 않아도, 출판사를 거치지 않아도, 유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베스트셀러의 주역이 될 수 있는 환경이 죽어가던 잡지 및 장르 소설 단행본 시장을 부활시킨 것처럼, 출판 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우는 계기를 크라우드 펀딩이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텀블벅은 창작 문화의 또 다른 도약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크리에이터 3.0 시대의 창작자는 인지도를 높이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활동을 진심으로 지지해주는 핵심적인 팬을 구분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텀블벅에서는 간편하게 멤버십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스테디오(Steadio)’라는 서비스를 지난 7월에 시작했다. 프로젝트 단위로만 후원을 받을 수 있던 텀블벅과 달리, 스테디오에서는 창작 활동 자체에 대한 후원을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 작가는 팬들의 후원을 받으며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이를 묶어 다시 텀블벅 프로젝트로 선보일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을 통해 창작자는 외부의 도움 없이도 자립하며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창작의 미래가 또다시 성큼 다가올 것이라 확신한다.

 

김민규

김민규 텀블벅 영업기획

텀블벅 영업기획 팀으로 일하며 다양한 출판 및 콘텐츠 분야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현재는 텀블벅의 새로운 멤버십 서비스 스테디오를 함께 만들고 있다.
cole@tumblbu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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