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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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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COVID19 : 출판산업의 변화]
출판 본연의 세계해석 기능 강화될 것
“디지털 몸체 바꾸기 와중에도 오프라인 공간 확보 중요”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2020. 05.


 

코로나19는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뉠 정도로 거대한 전환이 찾아올 것인가, 아니면 늘어난 고무줄처럼 탄성에 따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후자이길 바라지만, 지금 분위기로선 큰 변화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출판생태계도 코로나 이후 크고 작은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올 한 해 동안은 새로운 세상을 예측하고, 정의하고, 분석하고, 비교하는 기획 단행본들이 폭발적인 물량 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강대국과 약소국, 선진국과 후진국, 국가 간 협력, 국제기구의 존재 가치, 밸류체인의 붕괴에 따른 경제논리의 변화 등 거시적인 주제들부터 홈코노미, 셀프케어, 멘탈케어, 가족 커뮤니케이션 등 새로운 생활에 맞춘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뿐인가. 과학과 환경 쪽에서는 지구온난화, 쓰레기 문제, 대기오염과 공장, 자동차, 과잉소비 등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모색하려는 문제제기와 솔루션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낼 것이고, 4월 총선 이후 개혁적 사회 분위기가 이런 담론들의 탄탄한 무대가 되어줄 것이다. 소설부터 자기계발까지 출판의 모든 분야에서 기획 단행본들은 각개약진하면서 뜨거운 경주를 펼치리라. 어떻게 보면 코로나는 출판사와 저자들에게 최소 3년간은 파먹을 수 있는 소재거리를 던져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글로벌 밸류체인이 무너져서 물건을 못 만들고, 못 나르고, 못 파는 사태가 벌어졌듯이 출판의 밸류체인도 끊어질 듯 위태로운 위기 앞에 놓여 있다. 콘텐츠를 생산(저자)하고 가공(출판사)하고 소비자(독자)에게 판매(서점)하는 과정의 순환이 출판생태계라고 할 때 이 각각이 코로나 이후 점점 내상을 입고 있다. 프리랜서 저자들은 강연을 할 수 없어 생계를 위협받고, 서점은 문을 닫거나 손님이 오지 않아 매출이 급감하며, 출판사는 팔리지 않은 책들이 반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코로나19가 단기간에 물러나지 않을 때 시스템적 유연성이 떨어지는 출판사와 서점은 큰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출판은 시대의 변화에 즉각적이고도 유연하게 응답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내용적으로는 새로운 니즈들을 열심히 찾아다녀야 할 것이고, 변화된 삶의 조건이 어떤 앎의 욕구를 만들어 내는지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가령 코로나 이후 양극화는 심화될 것인가, 약화될 것인가. 사회적 약자, 그중에서도 전염병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에 노출된 노년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집콕 문화가 개인주의를 심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다양한 인터랙티브 서비스가 개인주의를 약화시킬 것인가. 중장년층이 대거 온라인 문화에 동참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었던 디지털 라이프는 어떤 변화를 맞을 것인가, 사물인터넷부터 생명과학까지 과학 지배 현상은 어떤 갈등을 만들어 낼 것인가, 정부의 역할과 행위에 시선이 집중되면서 정치인과 관료들의 위상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스마트 정부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사회를 규율하는 크고 작은 규칙들은 변화된 삶 앞에서 계속 유효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에 실망한 세계인들의 온라인 시민정부가 구성될 여지가 있을 것인가, 앞으로 본격화될 VR 콘텐츠는 콘텐츠 시장을 어떻게 휘저어놓을 것인가, 전염병과 환경오염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 대량소비사회를 멈추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무엇인가 등 목록은 끝도 없이 길어진다. 출판은 전문가들과 함께 이러한 질문을 심도 있게 다뤄내고,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을 우리 사회에 쓰임새 있는 존재로 유통시켜낼 때, 다시 말해 전문가들이 자신의 몸을 실을 플랫폼으로 여전히 책을 선택해줄 때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내용적 도전과 응전 말고도 출판이 시급히 감당해야 할 부분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일이다. 구독서비스의 강화, 온라인 연재의 확대, 서점의 축소, 오디오북의 급격한 성장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출판이 생산하는 콘텐츠는 단계적으로 확산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형태로 진화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코로나가 온라인에 약한 출판사들을 강제로 온라인에 밀어 넣는 형국이다. 그 과정에서 한 권의 책은 여러 개의 콘텐츠로 쪼개지고 다시 합쳐지는 플렉서블한 성격이 강화될 것이다. 그 외에 출판사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마케팅 차원에서도 혁신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금까지는 SNS와 유튜브를 활용하여 카드형 미리보기, 요약하기, 간단한 스토리텔링 등에 멈춰 있지만 이제는 다양한 상황극을 연출하거나, 다이제스트 오디오북을 만들거나, 독자와의 마케팅회의나 독서모임, 다른 디지털 콘텐츠와의 협업,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쇼핑 플랫폼의 꾸러미 상품 진출 등 톡톡 튀는 마케팅과 유통 채널 확대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출판사의 내부적 전문성과 인적 구성에도 본질적인 변화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이미 디지털 포메이션을 겪고 있는 출판사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영업자와 교열자가 아니라 기획마케터와 프로듀싱 에디터를 핵심 인력화하고 있는 중이다. 편집자는 책을 기획하고 교정할 뿐만 아니라, 카드뉴스도 만들고 독자와의 이벤트도 기획하고, 굿즈도 계획하고, 책의 내용을 활용해 4페이지짜리 타블로이드 신문도 만들고 있다. 직접 영상에 출연해 유튜브에도 올리기도 하는 등 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 편집자든 출판사 경영진이든 그러한 업무의 과중을 계속 버틸 수는 없을 것이고 결국 본격적인 내부 분업을 통해 최적화 작업을 해내야 한다. 아마 마케팅 팀의 확대와 기획편집자의 위상 강화, 교정·교열 업무의 외주화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서점은 어떤가. 온라인 서점은 코로나 이후 매출이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오프라인 서점은 지난 몇 달간 타격이 크다. 이대로 가면 많은 서점이 폐업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될 경우 60퍼센트 정도 되는 지금의 온라인 책 판매 비중은 80퍼센트까지 치솟고 책은 온라인으로 사는 것이라는 새로운 고정관념이 형성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은 반드시 지켜야 할 보루다. 서점은 단순히 매출로만 따질 수 없는 상징적인 중요성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일상 생활공간에서 책을 접하고 만져보고 심지어 스쳐 지나가면서라도 책의 존재를 의식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오프라인 서점에 나가 책을 보고 구입은 온라인으로 하는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여유 있게 책 사이를 거닐면서 정신을 휴식하고 아이쇼핑을 한 다음 사고 싶은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가격 할인을 받아 사는 게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충족시키고 경제성을 실현하는 합리적인 행동이다. 만약 서점이 사라진다면 책을 산다는 행위에 깃든 이런 매력은 소실되고야 만다. 게다가 독자는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지 않고 늙어간다. 새로운 세대는 그러한 아날로그적 행동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온라인 서점 앱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에 훨씬 더 익숙하다. 이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출판시장은 점진적 축소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원주의 어떤 서점은 코로나19로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그 지역 사람들을 위해 책을 퀵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5만원 이상 구입이면 배송료를 받지 않고, 그 이하는 3,000원을 받았는데 의외로 큰 호응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온라인서점이 보편화된 시대에 이것이 얼마나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양한 배달 서비스가 강화되면 동네 책방도 어떤 형식으로든 그 물결에 동참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서점이 단순히 책을 판매해서 수익을 올리기만 하는 공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서점이라면 최소한 독자가 머물면서 책과 함께 호흡하는 기능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서점이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고 생활방역의 시간대가 펼쳐지면서 집 안에만 있느라 답답했던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공간을 찾고 있다. 테이블 간 간격이 넓고 층고가 높은 공간이 가장 눈에 잘 띈다. 인테리어가 친환경적이고 밝으면 더욱 좋으리라. 앞으로 서점은 이런 공간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다양한 쇼핑욕구와 식욕 해결의 공간을 겸하는 것은 물론이다. 물론 기존 서점들 중에 이러한 체질 개선을 할 여력이 없는 곳이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대적 추세는 확실히 그쪽으로 가고 있다.

 

다소 앞서가는 얘기일 수 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출판사와 서점의 역할 구분이 사라지는 때가 오지 않을까 예상한다. 이미 문학동네의 카페콤마, 북소리사회적협동조합의 북소리책방 등 출판사들이 서점을 직영하는 예가 늘고 있고 이것이 추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책이라는 것이 상품으로서 갖는 유약함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책은 비즈니스적으로 욕심을 낼 만한 물건이 아니다.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서점이라는 사업모델을 가지고 뭔가를 해보기에는 정가제라는 허들을 비롯해서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기존 서점들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고 출판사로부터 완성된 제품을 받아서 판매하는 소매업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서점을 해보고 싶어 하는 사회적 니즈는 있지만 그것의 지속가능성이 좀처럼 확보되지 않는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이런 딜레마가 더 깊어져서 오프라인 서점들이 사라진다면 그 여파는 결국 출판사의 매출 위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온라인에서 길을 찾고자 해도 이미 그곳은 콘텐츠의 정글이기 때문에 오프라인이 없어지는 만큼의 효과를 내리라는 보장은 희박하다. 그러면 방법은 출판사가 서점이 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이다.

 


카페콤마 송도점


카페콤마 송도점

 

다만 작은 규모의 출판사가 초기 투자비용과 임대료, 인건비를 지속적으로 부담하면서 서점을 경영한다는 것도 현실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출판사들이 긴 안목을 가지고 출판시장의 확장을 생각한다면 뜻을 모아 협동조합 형태로 직영 서점을 늘려나가는 방식은 충분히 가능하다. 출판사들마다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재고도서들은 잔인하게 잘려 폐기처분 되는 운명에서 벗어나 서점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재료로 재활용될 수도 있다. 새로운 시대의 서점은 높은 층고의 넓고 안락하고 예쁘고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그 공간을 꾸미는 데 가성비 좋은 것으로 책 만한 것도 없다. 서점에서 매일매일 독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독자의 요구와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도 훨씬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독자의 생활 속에 책이 깊숙이 자리를 잡을 때에야 시장의 불확실성은 줄어들 것이고, 외부적인 충격에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출판생태계가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는 서점은 서점이고 출판사는 출판사라는 역할 분담과 이분법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서점의 지속적인 감소와 이번 코로나 사태 이후 맞게 될 더욱 악화된 현실을 생각할 때 이제 출판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저자도 출판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서점을 자신의 주 무대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작가회의는 동네서점과 등단 5년차 이상의 작가를 지원해주는 ‘작가가 있는 우리 동네 책맛집’이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원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작가에게 방을 제공하고 매월 일정한 금액을 지급해 창작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지원을 받는 작가가 서점에 상주하면서 책을 팔아야 한다. 그리고 독자 프로그램도 운영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작가는 독자들과의 호흡 속에서 작품을 쓰게 되고, 독자들은 작가의 창작 공간에 한 발을 담그고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인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점에 많은 이들이 입을 모은다.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적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리고, 바뀐 삶의 조건을 성찰하고 정비할 시간을 갖게 되리라는 점이다. 책을 만들고 파는 이들도 바쁜 시간을 보내리라. 다만, 그 시간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책이 의미 깊어지는 시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동국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출판저널〉과 〈교수신문〉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글항아리를 차려 600여 종의 책을 펴냈다. 요즘은 출판사 60여 곳이 모여서 만든 북소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서점 독서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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