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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4  2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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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인력난, 이대로 괜찮은가?]
그 많던 편집자는 어디로 갔을까?

 

 

 

신동해(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장)

 

2023. 06.


 

어디 안 갔다. 옆자리를 보라. 거기 잘들 있다. 출판통계로 봐도 그렇다(통계는 또 그렇다). 전체 종사자 수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일반서적 출판업 종사자 및 사업체 추이(2015~2020년)

콘텐츠산업 연도별 매출액 현황

출처: KPIPA 출판산업 동향

 

그렇다면 모든 팀장들이 입에 달고 사는 바로 그 말, “도무지 뽑을 사람이 없어”는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나는 왜 1년 내내 에디터, 마케터, 디자이너를 면접 보는 걸까? 그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전화해서, “동해 씨, 좋은 사람 진짜 없어?”를 묻는 일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출판계의 이 ‘인간 증발’ 괴담엔 정말 실체가 있는 걸까?

 

〈출판N〉은 지난번엔 ‘출판계 노화 현상’에 대해 써달라고 하더니 이번엔 구인난을 특집으로 잡았다(비슷한 주제로 잘도 두 번씩이나). 나는 착실하게 자료를 뒤져보았다. 마침 〈출판산업 구조 변화에 따른 인력양성 체계 마련 연구〉(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2)라는 좋은 보고서가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선 단행본 업계는 돈을 많이 못 번다. 일반서적 출판노동자의 평균 매출은 교과서·학습지 출판이나 전자 출판에 비해 낮으며, 조금씩 하강 중이다. 모두가 이직을 꿈꾼다고 한다. 〈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출판노동자의 평균 재직 기간은 3.1년이며, 73%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직을 생각하는 주요 이유는 임금 불만(49.5%), 경영 불만(44.1%), 노동 시간이나 업무 강도 불만(42.3%)이다. 놀라운 것은 1~3년 차 직원 중에서 ‘이직을 고려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은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이다. 고용 불안 요인 1순위로는 출판 시장의 전반적 위기를 꼽고 있는데(46.1%), 특히 업계 사정을 잘 알게 되는 5~6년 차의 경우에는 이 위기를 더 크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55.7%).

 

나는 정말 착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직 도망가지 않은 젊은 에디터와 마케터들을 앉혀놓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커피 한 잔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온 그들의 이마에선 ‘아니 그걸 몰라서 물어?’라는 태양권이 작열했다(아아 내 눈).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아니 뭐 저희도 알아요. 제 스펙으로 어디 삼성전자 이런 델 꿈꾸는 건 아녜요. 사실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책 만들고 팔고 그러는 건 매력이 좀 있죠. 그래서 SBI(서울북인스티튜트) 이런 데에 들어가려고 애쓰기도 하고, 어찌어찌 이 바닥에 들어와서들 있는 거죠. 근데 이게 참 그렇잖아요. 앞날이 잘 안 보여요. 연봉 작은 것도 그렇고,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일부 대감집이나 그런 거고. 연봉이 그런데, 복지 같은 건 어떻겠어요. SNS로는 다들 좋은 것만 자랑하니까 그런 얘기 들으면 흔들리긴 하죠. 이게 계속 그러니까 주위에 좀 똘똘한 친구들은 ‘어디 다른 데 없나’ 늘 레이더를 켜둬요. 그리고 이젠 ‘에디터’ 이런 게 천지삐까리잖아요? 리디나 밀리의서재, 폴인 같은 데에 가도 에디터잖아요. 꼭 교정지 싸 들고 퇴근하지 않아도 에디터가 될 길이 더 생긴 거죠. 마케터들도 이젠 홍보 에디터라고 할 수 있고, 게다가 마케터는 다른 업계로 빠지기도 훨씬 쉽고. IT 쪽에서 에디팅 경력자들 뽑는다니까 좀 기대도 되고. 아무튼 이래저래 맘 붙이기가 쉽지 않아요. 본부장님 때는 드라마 〈아들과 딸〉 ‘후남이’랑 비슷했던 거 아녜요? 막 난로에 손 녹여가며 교정 보고. 아닌가? 아무튼 지금은 불안도, 유혹도 많아요.”

 

즉, 출판이 커리어의 종착역이 아니라 시발역, 혹은 환승역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였다.

 

프레더릭 허즈버그(Frederick Herzberg)는 『직무동기 이론(The Motivation to Work)』에서 재미있는 주장을 한다. 사람이 어떤 일에 불만을 갖는 것과 만족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없다고 행복한 건 아니듯이, 사람은 일에 대해 불만/만족이라는 두 개의 척도를 각각 가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위생 요인(hygiene factor)과 동기부여 요인(motivation factor)이라고 부른다. 이런 비대칭은 비타민의 결핍이나 자녀 양육에서와 비슷하다. 부족하면 탈이 나지만, 넘친다고 완전에 이르는 건 아니다. 만족하려면, 불만이 없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허즈버그가 위생 요인(즉 열심히 일하는 걸 방해하는 것들)으로 꼽은 것은 지휘 체계(꼰대들), 대인 관계(얄미운 애들), 임금(소금보다 짠 것), 회사 정책(고장 난 신호등), 행정 체계(개미지옥), 복지(존재하지 않는 것), 고용 안정(양자(量子) 형태로 존재하는 것) 등이었다. 이것들이 잘 해결되면 그제야 ‘일 좀 할 수 있겠네’ 정도의 마음가짐이 된다. 반면 (직원들이 일에 미치게 한다는) 동기부여 요인은 성취(다른 평행우주의 내가 해냈을지도 모르는 것), 자기 완성(그 우주의 내가 56억 7천만 년 후에 이루는 것), 일에 대한 만족감(걔만 아는 어떤 감정), 주위의 인정(그래도 내가 버티게 해주는 힘) 등이 있다.

 

허즈버그의 이론으로 출판계를 대강 나눠본다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우리나라 출판계는 과거 가치형 출판에서 현재 커리어형 출판으로 이동 중인 것 같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 업계의 모토가 되었을 정도로 열악했던 형편에서 출발해, 지금은 상위 출판사들의 경우에는 인접 업계 회사들과 비교해도 그리 나쁘지 않은 위생 요인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물론 예나 지금이나 돈을 많이 번 경영자야 늘 있겠지만, 지금은 출판노동자들의 관점에서만 보자). 물론 여전히 조건도 비전도 좋지 않은 회사들도 많고, 소수지만 둘 다 만족스러운 회사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대다수 출판노동자들은 아주 열악했던 조건에서는 약간 벗어났지만 어쩐지 정신적으로는 더 허탈해진 그런 상태가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하고 외치던 상황에서, 돈은 약간 생겼지만 ‘가오’는 사라지고 있는 게 딱 지금의 상황이 아닌가 싶다.

 

예스24 강서NC점

 

 

이는 출판계가 노동 조건 향상과 직업 비전 제시라는 이중 과업에 실패한 결과다. 국가 경제 규모와 의식 수준이 약진하면서 말도 안 될 정도로 열악했던 환경들은 좀 개선됐을지라도, 젊은 출판인들이 업계에 남아 있기 위해선 따로 비전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열악하나마 고 연차의 에디터, 마케터, 디자이너 등이 누적된 경험치와 업력을 바탕으로 10년 뒤의 내 모습을 직장 안에서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었다(적어도 스스로 ‘에이스’ 라인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지만 지금 출판계에서는 그런 실력파 선배들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젊은 피는 수혈되는 만큼이나 곧바로 출혈되는 아슬아슬한 현상유지 상황에 있다. 똑똑하고 야심 있는, 그래서 예전 같으면 새로운 ‘에이스’가 되어 미래의 간부 직원이 되었을 젊은 피들은 더 이상 출판사 내부에서 미래를 찾지 않는다. 배짱 있고 행동력이 있으면 베스트셀러 공식을 알자마자 창업해버리고, 좀 더 신중한 타입이라면 일단은 회사를 다니면서 기회를 엿본다. 대부분은 업계 내 이직을 계속하면서 조금씩 연봉을 올려간다. 그러니 젊은 출판인 입장에서는 미래의 나를 맡길, 믿을 만한 회사가 안 보인다. 이렇게 조직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직업 특성으로 비전을 제시하면 어떨까? 한번 해보시기 바란다. 좋은 책을 만드는 보람 따위를 입에 올렸다간 태양권을 직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쓸 만한 편집자가 없다”라는 팀장들의 투정은 통계로는 잡히지 않는 문제 때문이다. 다 어디로 간 것은 아니고, 당신 회사에 없을 뿐이다. 있었더라도 자꾸 나가니 1년 내내 사람을 뽑는 기분이 든다. 들어와서 가만히 잘 다니는 팀원에 대해선 스위치가 꺼지기 때문에, 실력이 좋았는데 갑자기 나가버린 후배에 대해서만 자꾸 되새기게 된다. 잘하는 친구들이 회사 안에 진득하게 들어앉아 있는 게 아니라, 언제고 나가려고 업계의 언저리를 맴도는 느낌이다. 후배들에겐, 좋든 싫든 선택지가 늘었(거나 그런 것 같은 느낌이 생겼)다.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찾아 떠도는 요즘 문화도 한몫을 한다. 평생 직업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1차 직업조차도 확정되는 데 많은 시간을 요하는 듯하다. 3년 차가 됐다고 포기하고 출판계에 눌러앉지 않는다, 이젠.

 

뭐 그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야심만만하고 추진력 있는 신진들이 새로운 터전을 닦아서 젊은 출판사들을 키워나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부푸는 것 같다. 우리 회사에 젊은 피가 없더라도 그게 대수인가. 나만 고생하면 된다. 어디에선가 좋은 묘목들이 자라나면 산은 늘 푸를 것이다.

 

그렇지만 희망은 희망일 뿐이다. 지독한 공급 과잉 상황에서 대부분의 1인 출판사들은 험난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처음 펴내는 책들 중에서 중박 이상이라도 빨리 나오지 않으면 골목길 1인 사장 카페의 운명에 처하기 십상이다. 도서정가제라도 흔들리는 날이면 소규모 출판사들은 쓰나미를 맞게 된다. 골목 카페가 폐업하더라도 음료 업계엔 별 타격이 없겠지만, 도제식으로 공들여 가르쳐온 작은 출판계에선 인재의 순손실이 된다. 열심히 가르쳐서 ‘좀 쓸 만해진다’고 하는 5년 전후의 인력들이 계속 업계를 떠나게 되면 그 후에 들어오는 신입 직원들은 허리가 비어버린 기이한 업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재능이란 무작위로 뿌려지는 경향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다고 다 경영학을 좋아하지 않듯이, 이상할 정도로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서고 1% 정도는 태어나는 것 같다. 과거엔 직업이라는 게 무슨 천직 같아서, 작가나 학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여의치 않을 때 출판계로 들어와 평생 자신의 재능을 바치기도 했다. 재능 있는 사람이 업계에 들어와서, 그 재능을 통해 사회에 부가가치를 주고, 그 대가로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는 선순환. 1990~2000년대 인내형 출판기에는 오히려 직업 비전 측면에서는 안정적인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도제식으로 수련된 편집과 마케팅, 디자인의 업력이 저평가되고 환금되지 않는 시기,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외주화되고 발 빠른 기획과 감각만이 평가받는 시대엔 안정적인 승진-보상 체계가 작동하기 어렵게 됐다. 텍스트에 끌리는 취향을 타고난 사람이 꼭 출판사나 학계, 문단에 들어오지 않고도 평생 취향을 갈고닦을 수 있게 된 것 역시 중장기 위협이다.

 

업계의 재생산에 필요한 재능을 발견해 업계 안으로 흡수해 고정하는 두 가지 인센티브가 ‘업무 환경’과 ‘비전’이다. 재능 있고 용감한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 제작자의 재능을 활용해 좋은 책을 만들고 그에 걸맞은 대가를 돌려주지 못하는 회사는 점차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업계 전체로 보면, 기존 회사 밖에서 이들이 1, 2차 도전 후 실패했을 때에도 그들의 재능과 경험을 회수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한두 번 도전만으로 판을 떠나는(出판) 일이 없도록 어느 정도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과거 웅진이 시작했던 임프린트 제도는 이제 여러 곳에서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수가 너무 적고, 모회사에 근무했던 능력자들에게만 차례가 간다. 최근 출판계 선배 한 분은 출판 기획 기금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다. 창업 즉시 대박을 친 후배는 파주출판단지의 세제 혜택을 많이 봤다고도 한다. 어차피 업계의 모든 곳에 떡이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도전해볼 생각이 있는 미래 세대에게는 이 업계가 ‘뭔가 해볼 만하다’라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젊은 승부를 장려하는 에어백들이 좀 더 촘촘하게 짜여 눈에 잘 보일 필요가 있다.

 

나는 더 이상 ‘좋은 책 만들기’가 우리 출판계의 모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회사가 좋은 상태의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이 괜찮은 책을 만들 것이다. 초점은, 사람이다.

 

신동해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장

2001년 얼떨결에 출판계에 입문했다. 학술서 편집을 시작으로 인문사회, 경제경영, 자기계발 분야에서 고배와 감로를 배부르게 마셨다. 똑똑하고 너그러운 동료들과 책 이야기하는 재미로 산다.
rudra47@wjtb.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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