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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20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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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서비스 열풍, 국내에서 얼마나 통할까

 

 

 

조단(필명)

 

2019. 07.


 

"출근길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편안하게 독서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회사원 김동호씨(27세)는 요즘 출퇴근길 책을 '듣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김씨는 아침에 출근할 때 1시간 20분, 퇴근할 때도 1시간 20분 지하철을 타야 한다. 중간에 노선을 갈아타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더하면 매일 3시간 이상이 출퇴근하는데 들어간다. 김씨는 "아침저녁으로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멍하니 서 있는 것뿐이었는데 이젠 그 시간을 독서에 쓸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고단했던 김씨의 출퇴근길을 바꿔준 건 '책 구독 서비스'다. 김씨는 얼마 전 직장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월 1만원 정도만 내면 책을 무제한 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해졌다. 김씨는 스마트폰으로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몇 가지 책 구독 서비스를 비교해 본 뒤 한 업체에 곧바로 가입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첫 달은 무료로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데다 의무 가입 기간도 없어서 부담이 없었다. 이젠 출퇴근 시간에 주로 오디오 북을 듣는다는 김씨는 "무료 구독 서비스가 끝나면 돈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할 생각"이라면서 "종이책 한 권 값도 안 되는 비용으로 다양한 책을 무제한 즐길 수 있어 가성비도 좋은 서비스"라고 말했다.

 

유명 소설가인 C씨의 서재에는 언젠가부터 새로운 책이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신간도 전자책(E-Book)으로 내려받아 읽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전업 소설가라는 직업상 다른 작가들의 신작 소설도 많이 읽어야 하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쓰기 위해 참고해야 할 책들도 많아 서재가 항상 비좁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자책을 활용하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종이책을 잘 사지 않게 됐다"면서 "처음엔 전자책이 낯설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익숙해지면서부터는 오히려 종이책이 더 불편해졌다"고 했다. C씨는 “한 달에 1만원 남짓 내면 무제한 책을 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까지 등장하면서 책 구입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많이 줄어들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저렴하고 편리한 구독 서비스가 모두에게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두 달째 이용하고 있다는 대학생 이소현씨(22세)는 “읽을 만한 콘텐츠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면서 "장르도 로맨스, 판타지 등 웹소설이 많고 진지하게 볼만한 정통 소설이나 각 전공 분야 서적 등은 검색해 봐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출판 시장에 구독 서비스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가 빠르게 퍼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구독 서비스가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출판업계 역시 전자책과 오디오 북 등 '디지털 도서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구독 서비스 플랫폼이 잇따라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전자책 플랫폼 확산은 책의 생산과 유통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까지 제출되고 있다. 도서 구독 서비스는 책의 미래, 나아가 출판산업의 미래까지 바꿔놓는 대변화의 신호탄이 될까.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사그라들까.

 

 

 

사회 전 분야로 퍼진 구독 경제

 

사실 구독 서비스(subscription service)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신문이나 우유처럼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돈을 내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받는 전통적인 상거래의 한 가지 유형이다. 그런 것이 최근 10여년 사이에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전과 디지털 기기의 확산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구독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월정액을 내면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음악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요즘은 월 1~2만원 정도만 내면 무제한으로 영상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유료 동영상 제공 서비스는 물론 화장품과 식품, 술, 커피, 자동차 분야까지 구독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외국계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구독 경제 시장 규모가 2016년 4200억 달러(약 485조5200억원)에서 2020년에는 5300억 달러(약 612조68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근거가 뭘까? 전문가들은 구독 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요인으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에 주목한다.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새로운 소비 성향을 가진 세대 말이다. 중견 출판사인 H사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밀레니얼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며 자라온 '디지털 네이티브'로, 트랜드 변화에 민감해 '소유'보다는 '경험'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많은 돈을 주고 하나를 소유하기보다 싼 값에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구독 서비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분석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초기에 양질의 콘텐츠와 일정 규모 이상의 정기 구독자 확보에 성공하면 추가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상태로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게 구독 서비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동영상 콘텐츠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 세계 미디어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현재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는 1억4000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1년에 구독료로 100달러만 낸다고 해도 넷플릭스가 거둬들이는 연간 총 구독료는 140억 달러(약 16조1840억원)가 된다. 구독 경제 산업에 뛰어든 기업들이 초기에 구독자를 붙잡기 위해 다양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안간힘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져가는 도서 구독 서비스 시장

 


국내 도서 구독 서비스 시장의 대표 업체들

 

구독 경제의 확산이라는 큰 흐름이 출판 분야에서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현재 국내 도서 구독 서비스 시장의 대표주자는 리디북스와 밀리의 서재, 교보문고, 예스24 등 4개 업체다. 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휴대용 디지털 기기로 이용할 수 있는 전자책과 오디오 북 등을 내세운 무제한 대여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월 5500원~1만원 남짓한 구독료를 내면 5800~3만8000여 권의 책을 자유롭게 읽거나 들을 수 있다.

 

업계 1위는 이 시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리디북스로 지난해 79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40% 이상 성장했다고 한다. 누적 가입자 수도 360만 명에 이른다. 2017년 10월 서비스를 시작한 밀리의 서재는 지금까지 70만 명 가까운 구독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유명 연예인이 책의 내용을 30분 정도로 요약해 읽어주는 '리딩북(reading book)' 서비스를 내놓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면서 상당한 효과를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렇게 도서 구독 서비스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관련 업체들의 '몸집 불리기'도 이어지고 있다. 리디북스는 지난해 도서 마케팅 벤처기업인 '책끝을 접다'와 온라인 미디어 '아웃스탠딩'에 이어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 벤처기업 '라프텔'까지 인수했다. 밀리의 서재도 최근 동영상 콘텐츠를 담은 '밀리 TV'를 선보이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종이책 판매에 무게를 두고 있던 교보문고가 지난 3월 무제한 월정액 서비스를 내놓고 이 시장에 뛰어든 것도 도서 구독 서비스가 앞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다만 빠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국내 도서 구독 서비스 시장은 전체 출판 매출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전자책 시장의 매출 규모는 2000억원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국내 전체 출판시장 매출의 5% 안팎에 그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매년 꽤 큰 폭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독 서비스는 새로운 기회"

 

도서 구독 서비스가 침체된 출판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백기사가 될 수 있을까? 진단과 전망에 있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서 구독 서비스 확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도 구독 경제의 주소비자층인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분석한 맞춤형 서비스를 내놓는 데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하고 사회 전 분야로 퍼지고 있는 구독 서비스는 이미 거부할 수 없는 큰 흐름이 됐다는 것이다. 도서 구독 서비스 업체인 A사의 관계자는 "업계에서 적극적으로 상품을 개발해 이들을 끌어들이는 게 서로에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도서 구독 서비스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정체 상태를 답보하고 있는 출판업계 전체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도서 구독서비스가 책읽기에 대한 경제적, 심리적 장벽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도서 구독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책을 아예 읽지 않던 사람들이 책에 눈길을 주는 계기는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어떤 식으로든 일단 책과 가까워지면 결국 종이책 구매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오디오북 시장의 급성장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교보문고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유통하고 있는 오디오북 콘텐츠는 2500여종으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4배 이상 많아졌다. 이 관계자는 "도서 구독 서비스 업체들도 오디오북 서비스 투자를 늘리고 있어 오디오북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최근에는 출판업계뿐만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등 정보기술(IT) 업체들도 유명 작가들과 손잡고 오디오북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 중에도 종이책과는 별도로 여러 권의 오디오북을 내놓고 활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대열에 동참한 중견 작가 K씨는 "시대가 바뀌고 독자들의 요구가 있는데 굳이 종이책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인쇄술이 등장하기 전에 모든 책은 구술, 그러니까 말로 전달하는 형태로 이어져 왔다"면서 "구전이라는 고전 방식이 디지털 기술과 맞물려 오디오북의 형태로 다시 등장한 것 뿐"이라고 풀이했다.

 

디지털 구독 콘텐츠 산업의 성장 추세는 지구적 현상이라 할 만하다. 데이터분석 업체인 오서어닝즈닷컴에 따르면 월정액 9.99달러(약 1만1550원)에 100만권이 넘는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미국 아마존의 '킨들 언리미티드(KU)' 서비스는 미국 전자책 시장의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영국 전자책 시장의 82%, 호주 시장의 54%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전자책 시장은 전체 출판 시장의 25%가량 된다.

 

구글도 지난해 1월 오디오북 서비스인 '구글 플레이북'을 전세계 45개국에 선보이며 오디오북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중국 디지털 출판산업 연도보고에 따르면 중국의 오디오북 시장도 2016년 29억1000만 위안(약 49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8.3%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직 낙관하기엔 시기 상조"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종이책과 비교했을 때 구독 서비스의 콘텐츠는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에 열린 2019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넷플릭스의 공습, 도전받는 도서정가제'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도서 구독 서비스로 위협받고 있는 도서정가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여기서는 "국내 전자책과 오디오북 시장은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도서 구독 서비스는 적자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한 참석자는 "방대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국 아마존의 킨들 언리미티드나 넷플릭스와 달리 국내 도서 구독 서비스의 콘텐츠는 일부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중심으로 돼 있어 큰 차이가 있다"면서 "출판사와 작가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도서 구독 서비스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독 서비스 업체들은 도서 구독 서비스를 종이책 출판 산업과 똑같이 보고 규제하는 것이 관련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도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독자들의 실제 독서 행동에 근거한 분석도 나왔다. 발표에 나선 교보문고 eBook사업팀 지영균 차장은 "교보문고 도서 구독 서비스의 경우 3만8000여 권 가까운 디지털 콘텐츠 가운데 1번이라도 내려받은 전자책은 6500여권으로 1.7%에 불과하고, 98% 이상은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면서 "독자들이 여전히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책을 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도서의 범위가 아직은 제한적이고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출판의 오늘과 내일' 세미나에 참석한 존 톰슨 케임브리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국의 경우 전자책 시장이 빠르게 커지다가 2013년에 0% 성장률을 기록했다"면서 "로맨스나 미스터리 소설, SF 소설은 많았지만 인문학, 경영학 등 전문서나 요리, 여행, 아동 서적의 디지털 콘텐츠는 많지 않았다"고 평했다. 중간중간 책을 앞뒤로 뒤적이며 레퍼런스를 찾아봐야 하는 전문 서적이나 요리 서적, 책 중간 중간에 삽화나 사진, 그림 등이 많이 들어간 여행, 아동 서적 등은 디지털 콘텐츠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전자책은 여러 가지 형태의 책 가운데 하나가 될 수는 있지만 종이책 전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면서 "디지털 혁명은 콘텐츠를 얻는 다양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이지 기존의 책을 대체하는 수단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연대 북저널리즘 대표도 "도서 구독 서비스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하나의 '방식'일뿐 출판산업의 온오프라인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긴 힘들 것"이라면서 "도서 구독 시장 자체도 앞으로 눈에 띌 정도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은 한국 출판 시장의 구조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인 도서 구독 서비스 회사와 출판사, 작가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다양한 책의 디지털화가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플랫폼 유통업체들은 되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해 단기간에 많은 구독자를 모으면 독서 시장이 커지면서 작가와 출판사에도 결국 이득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출판사와 작가들은 플랫폼 유통업체들이 일부 유명 출판사와 작가들의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에만 '러닝 개런티' 같은 제 값을 지불할 뿐 나머지는 일시불 계약을 통해 헐값으로 넘겨받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반발한다.

 

출판사와 작가의 입장도 다르다. 출판사는 몇몇 유명 작가를 제외한 다른 작가들의 경우 수익이 없더라도 전자책 서비스나 도서 구독 서비스에 콘텐츠를 제공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책의 노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작가들은 "출판사들이 작가와 출판 계약을 할 때 정한 전자책 계약을 근거로 도서 구독 서비스 업체에 월정액으로 콘텐츠를 제공해놓고는 실제 작가들에게는 정당한 수익을 되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5월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한국전자출판학회 김기태 회장(세명대 디지털콘텐츠 창작학과 교수)은 "도서 구독 서비스 모델의 등장이 '도서정가제의 사각지대'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도서정가제의 영향을 받는 전자책 판매와 달리, 디지털 콘텐츠를 대여해 구독하는 도서 구독 서비스는 도서정가제 위반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규정상 도서정가제는 도서의 '판매'와 관련해서만 적용이 가능하고 도서 '대여'에는 적용할 수 없다. 김 회장은 "콘텐츠가 아날로그(종이책)이건 디지털(전자책)이건 간에 어디까지 출판물로 볼 것인지, 어느 시점까지 어떻게 콘텐츠를 제공하고 수익을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형 출판사인 J사 관계자는 "전자책은 사용 기간이나 구독자들의 선호도 등에 따라 수익을 정해야 하는데 구독 서비스 업체에서 이런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거나 이를 근거로 수익을 나누는 경우는 일부 유명 작가들과 대형 출판사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도서 구독 서비스 플랫폼에 전자책을 월정액이나 장기 대여 형식으로 넘기면 이익을 보는 건 플랫폼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자책의 경우도 전자책 업계에서 10년, 20년 대여라는 사실상 무기한 대여 형식을 빌려 편법 할인 판매를 하자 지난 5월 출판계는 '건전한 출판유통 발전을 위한 자율협약'을 맺고 전자책 대여 기간을 최대 90일로 정하기도 했다.

 

기세 좋게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도서 구독 서비스의 바람이 침체된 출판업계와 독서계에 순풍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플랫폼 유통업체와 출판사, 작가 등 이해관계자들의 합리적 의견 조율과 이 과정에서의 제도적 개선과 정비가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플랫폼 유통업체와 콘텐츠 이용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별도의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부터, 플랫폼 유통업체가 현재 가져가는 수익 규모가 적정한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정책연구소 정원옥 선임연구원은 "도서 구독 서비스가 세계적으로도 아직 성공 사례가 없기 때문에 출판업계도 아직까지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지는 못하고 있다"면서도 "서로가 상생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플랫폼 유통업체와 출판사, 작가 사이의 신뢰 형성"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이해관계자들이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지 말고 양질의 콘텐츠가 다양하고 꾸준하게 나올 수 있는 출판산업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모두가 살아날 수 있다"면서 "미국이나 유럽 등과 비교해 책을 읽는 사람이 크게 적은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이 문제 해결 과정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 시장에서 도서 구독 서비스가 주목 받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도서 구독 플랫폼 유통업체와 출판사가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수익은 어떻게 분배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출판사의 규모나 베스트셀러 여부에 따라 계약 조건도 천차만별이고, 이에 대한 관련 규정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중호 한국출판콘텐츠 대표는 지난달 서울국제도서전 세미나에서 "국내 도서 구독 서비스는 월정액 이용료가 너무 싸고 콘텐츠 서비스의 범위나 작가, 출판사와의 수익 정산도 불투명해 대다수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별다른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며 "이런 상황이 기존의 종이책이나 전자책 판매에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도서 구독 서비스 업계는 "독자 맞춤형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최적의 환경으로 제공하면 결과적으로 독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종이책과 전자책 판매로도 이어지는 등 출판산업 전체에 이득이 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도서정가제 논란과 관련해서는 프랑스의 사례를 참고해 볼만하다. 프랑스의 경우  미국 아마존의 '킨들 언리미티드(KU)' 서비스가 무제한 월정액 서비스를 시작하자 "전자책은 도서정가법의 적용을 받는 도서에 해당하며, KU의 무제한 서비스는 도서정가법에 위반된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아마존이 프랑스 정부의 시정명령을 받아들인 뒤 '도서 구독 서비스의 정가는 출판사가 페이지별로 정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원칙을 정해 시행하고 있다.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혹은 구독 서비스냐에 관계없이 콘텐츠의 내용에 대해 동일한 가격을 매겨 판매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조단(필명)

조단(照壇). 대학에서 미디어를 전공한 뒤 20여년 동안 미디어 산업 분야에서 일하며 취재와 글쓰기, 프로그램 만들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농구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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