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8 2021. 02.
[2020년 독자들이 선택한 책이야기]
김현정(교보문고 브랜드 관리팀 베스트셀러담당)
2021. 2.
코로나19가 전 세계인의 삶을 뒤흔들었다. 특히 삶의 여유와 여가시간을 채워주던 여행, 공연, 영화 부문 등 문화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 활동으로 독서가 꼽힌 게 눈에 띈다. 책에 관심을 갖지 않아 1년 이상 독서를 하지 않았던 독자들이 온라인서점 계정을 활성화하기도 하고, 신규 가입을 하는 등 독서 인구가 늘어났다. 또한 독서 활동 활성화로 인해 책꽂이, 독서대와 같은 독서 관련 상품 판매가 늘고, 서재 꾸미기와 공부방 인테리어 수요도 높아져 서점뿐만 아니라 다른 유통산업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생활은 일시 정지 상태였지만, 독자들은 오랜 집콕 생활에서 힘을 얻고자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독서를 했다. 베스트셀러는 독자들이 구매한 도서 순위를 꼽는 것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회상을 그대로 녹여내는 사회적 지표의 의미를 가진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에 떨었던 한 해 동안 어떤 책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출판계의 흐름은 어땠는지 정리해보았다.
사람과는 거리두기, 책과는 가까이
온라인서점의 영향이 커지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열된 책의 내용을 살펴보고 편집이나 다양한 물성을 비교하며 구매하기 때문에 서점은 전통적으로 오프라인 중심 산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서점 방문객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독자들은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책을 구매했고, 판매 비중이 처음으로 영업점 채널 점유율을 앞질렀다.
교보문고, 2020년 판매 채널별 판매 점유율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과과정이 시작하는 개학이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3월은 서점가의 최대 성수기이다. 매해 상위 매출일자 순서를 꼽으면 3월 초가 줄 세우기를 하는데, 처음으로 10위권 일자 내에도 들지 못했고 전년 대비 -40.6%로 가장 큰 역신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온라인 구매가 이어지면서 경제불황이 이어지는 시기임에도 전체 7.3% 신장세를 보였다.
코로나19를 이기는 해법 찾기. 베스트셀러 콘텐츠로 급부상
코로나19 시국을 돌파할 해법을 제시한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 이슈로 재발견된 책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이다. TV 방송에 소개된 영향도 있지만 예견한 듯 현시대와 맞아떨어지는 내용으로 큰 인기를 거뒀다. 바이러스와 전염병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관련 키워드로 출간한 책이 한 해 동안 쏟아져 나왔다. 이전에는 학문적인 부분에서만 관심을 가졌던 경제경영 분야는 2020년 출간된 도서 중 가장 많았다. 전염병이 경제에 큰 타격을 줬기 때문에 가장 빨리 대응한 분야였다. 이외에도 『김미경의 리부트』는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한 조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준비하기 위해 경제 전망에 독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트렌드 코리아 2021』도 단숨에 연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진입했다. 코로나19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책들이 줄을 이어 나오며 코로나19 출판전국시대를 열었다.
책 권하는 부모
학령 인구 수가 감소해도 교육비 지출은 꾸준히 늘어왔다. 보통 가구별 소비에서 식비 다음으로 교육비 비율이 높으며 불경기에도 교육비는 상승한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상승으로 학원 등원이 힘들어지면서 교육의 역할이 책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현상은 어린이 독자가 타깃인 분야에서는 호재로 나타났다. 초등학습 분야가 전년 대비 31% 상승했고, 아동 분야도 6.4% 상승했다. 아동만화는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과 같은 학습 흥미를 돋우는 학습만화 시리즈 위주로 부모가 구매했는데, 재미로 읽을 수 있는 명랑만화 『흔한남매』가 돌풍을 일으켰고 연간 종합 8위를 차지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교육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장기간 유튜브나 TV 매체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명랑만화책에 더 관심을 보인 것이다.
위기일 때 부자가 될 기회를 엿본다
IMF 한파 후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 꼭이요’라는 한 카드사 광고 카피가 대박을 쳤다. 물질욕만 추구하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서로를 격려하는 덕담으로 사용했다. 경제불황일수록 물질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진다. 집값 폭등과 코로나19로 경제불황 겹친 시기에 주식투자가 부자 되는 법으로 급부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학개미, 주린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주식시장에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재태크/주식 분류 2020년 분기별 전년 대비 신장률
지적 호기심 폭발, 성공을 준비하는 자기계발
독서에 소홀했던 독자들은 여유로운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인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로 짧게 요약 정리해주는 인문교양서와 실용적인 부분을 강조한 도서가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예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꾸준히 시리즈를 출간하고, 다양한 분야로 퍼졌다. 이를 통해 가벼운 인문학 도서, 대중적인 교양서적 출판 종수도 늘어났다.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는 철학, 예술, 역사 등 다양한 지식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교양도서로 자리 잡았다.
슬기로운 집콕생활
집콕 생활이 길어지고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불어난 체중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돼 체육시설도 이용하지 못 하게 된 독자들은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홈트레이닝에 관심을 보였다. 다이어트와 운동/트레이닝 분야가 각각 14.1%, 32.1%로 신장세를 보였다. 영상매체나 실내체육시설 이용으로 관심이 다소 줄었던 분야였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된 도서를 참고삼아 홈트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TV가 추천하는 책
2020년은 온라인개학과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서 가족 구성원이 모두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교양예능 TV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았다. 그중에서도 고전책을 소개한 TV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서점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예능 포맷으로 기획된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면서 책의 가치는 여전하지만,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TV를 잇는 대항마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코로나19 시대에 큰 성장세를 보였다. 자체 콘텐츠의 영향력도 막강해져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된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독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연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위기에 익숙한 출판계가 도리어 위기에 빛을 보는 면모를 보였다. 오랜 집콕 생활로 인해 많은 사람이 독서를 한 이유도 있지만, 전국 도서관들이 휴관에 들어가면서 책을 빌리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책을 구매한 수요가 커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어린이 독자들은 집이 놀이 장소 겸 교육 장소가 되면서 구매한 책들을 더 가까이에서 두고두고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손에서 놓고 있던 책을 다시 집어 들고 독서의 유익과 재미에 빠지게 된 점은 출판계에 유의미한 일이다. 그 독서의 흥미를 오랫동안 느낄 수 있도록 양서를 추천하고 비대면 독서를 연계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김현정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베스트셀러담당)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 집계와 판매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생각을 읽고, 판매 동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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