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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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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셀러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텔레비전에 책이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조아란(민음사 마케팅부 콘텐츠 기획팀 팀장)

 

2021. 4.


 

최근 몇 년간 하루가 멀다 하고 OOO책이 혹은 OOO 작가님이 방송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편집자나 홍보팀의 호들갑스러운 메일을 받는다. 이 메일을 받아든 마케터들은 ‘얼마나 팔릴까’하는 기대와 함께 부과되는 일련의 부산스런 마케팅 활동들(방송 로고 사용 허가 – 방송 홍보 – 본방 사수 – 바이럴 콘텐츠 제작- 띠지 제작/웹페이지 교체 - 서점협의 등)을 수행해야 하는 피로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럼에도 미디어 노출은 때로는 (아니 거의 매 순간) 편집자나 마케터가 바라는 모든 것이고, “어디 방송에서 잘 좀 소개해주면 좋은데…”는 마케팅 회의 자리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이는 리뷰 대회, 사은품 이벤트, 언론 노출, 서점 광고, 추천사, 카드뉴스 제작 등 모든 마케팅 루틴을 따르고도 판매가 지지부진할 때, (적어도 우리가 보기엔) 정말 의미도 재미도 있는 책인데 아무도 관심이 없을 때, 비싼 계약금을 주고 들여온 책이라 무조건 많이 팔아야 할 때와 같이 난감하고 답답한 경우에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기적이다. 이 간절한 기운을 받아 어느 눈 밝은 방송에서 우리 작가님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기를, 이 재미있는 소설을 드라마 주인의 손에 한 번 들려지는 기적을 바라는 것이다. 그만큼 미디어 노출의 영향력은 마케터의 모든 노고를 무력하게 할 만큼, 또 피로를 싹 잊게 할 만큼 강력하다. 2010년 민음사에 입사한 첫해, 그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쏘아 올린 민음사의 베스트셀러들이었다. 놀랍게도 지금 이 원고를 작성하는 2021년에도 네이버에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라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넣으면 ‘드라마 시크릿 가든 주원 라임의 테마 도서 세트’라는 상품 검색어가 자동으로 완성되어 추천된다.

 

시크릿 가든과 이상한 나라의 베스트셀러

 

〈시크릿 가든〉은 마치 도서 노출의 ‘이데아’ 같은 드라마였다. (하필) 책을 좋아하는 재벌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주원(현빈)은 거의 매화 책을 읽는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혹시 드라마의 결말이나 복선에 대한 힌트가 책에 있지 않을까 궁금해 주원이 읽었던 책을 따라 읽기도 했다. 이 책토피아 드라마의 메인 테마 도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는데, 주인공은 그냥 ‘나 지금 사랑에 빠진 것 같아’가 아니라 자신이 ‘앨리스 증후군’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다.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듯한 신비한 시각적인 환영 때문에 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고도 슬픈 증후군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 같은 걸까?
-시크릿가든 中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포함한 주원이 읽은 모든 책들이 줄줄이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주원이 프레시안 선정 올해의 ‘다독상’ 후보에 오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어 그의 서재에 꽂혀 있던 책 제목을 시처럼 노출하여 속마음을 표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때 노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던 민음사 도서는 총 여섯 권이다 (『동화처럼』 김경욱,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오츠,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강기원,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김도언,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이응준). 아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낯선 책들이었을 텐데도 제목이 노출된 것만으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엄청난 부수가 판매되었다.

 

특히 당시 많은 도서가 노출된 민음사를 향한 여러 의혹들이 있었는데, 〈시크릿 가든〉과 같이 현빈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내 이름은 김삼순〉(2005)에 『모모』(마하엘 엔데)가 노출된 이후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던 전적이 있던 터라 의혹은 더욱 깊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드라마 촬영 당시 사전 협의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PPL이 아닌 ‘도서 협찬’(별도의 광고비 지원 없이 실물 도서만 협찬)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드라마 노출의 성공 노하우, 있다 vs 없다?

 

〈내 이름은 김삼순〉(2005)의 『모모』, 〈시크릿 가든〉(2010)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그리고 〈별에서 온 그대〉(2013)의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까지 연이은 드라마셀러의 흥행으로 민음사에 어떤 드라마 노출 노하우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하지만 ‘노출’의 노하우가 정말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드라마셀러’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노하우를 가지려면 일단 드라마가 성공할지 말지를 내다보는 선구안부터 ‘책’이 정말로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장악력 혹은 자본력을 고루 갖춰야 하는데, 출판사 규모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노하우가 있다면 오히려 노출이 결정된 후 진행되는 일련의 발 빠른 바이럴 활동들이나 도서 상품 구성 등에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민음사가 꽤 성공적인 미디어셀러들을 보유하고 있고, 이에 따른 미디어 노출에 대한 노하우를 가졌을 것이라는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런 성공적인 레퍼런스들이 쌓이자 드라마 제작사에서 먼저 연락이 오는 일도 잦아졌다. 하지만 제안하는 광고 금액의 규모가 엄청나서 아무리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하더라도 수익을 내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대략의 시놉시스 및 제안서를 보고 드라마 흥행을 예감한 경우라도 도서 광고의 경우 타제품들보다 보여지는 맥락이 더 섬세하고 까다로워야 하는 까닭에 불발된 경우가 많았다. 즉 도서로 PPL을 하기도 어렵거니와 오히려 PPL이 아니기에 시청자들에게 더 소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예능이 대세, 김영하부터 설민석까지

 

최근엔 미디어셀러 중에서도 특히 ‘예능셀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책을 주인공으로 한 예능들이 계속되어 기획/방송되었고 매주 소개 예정 작품들에 따라 많은 출판사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특히 tvN은 지난 7~8년간 성공적이고 인상적인 지식형 예능들을 많이 내놨는데, 이 프로그램들이 출판계 안팎으로 끼친 영향을 빼놓고 미디어셀러를 논하긴 어렵겠다. 2015년 북 토크쇼 〈비밀 독서단〉(tvN, 2015~2016)에서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소개되자마자 시집으로선 10년 만에 처음으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그 외 다수의 책들이 뒤를 이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구매자 중 50% 이상이 새로 유입된 신규 독자라는 통계도 있어(교보문고 제공) 〈느낌표 :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KBS, 2001~2003) 이후 10년 만에 영향력 있는 책 프로그램이 돌아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어쩌다 어른〉(tvN, 2015~2019)은 설민석을 우리나라 최고의 에듀테이너로(에듀케이션(Education)과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합성어)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앞서 무한도전 등의 방송에 출연해 이미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어쩌다 어른〉에 출연하면서(15회 이상 출연) 본인의 장점인 생동감 있고 몰입도 높은 강연을 대중에 선보였다. 이를 통해 명실상부 최고의 에듀테이너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즈음 발간된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설민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요즘 책방:책 읽어드립니다〉(이하 요즘 책방, tvN, 2019~2020)의 메인 출연자로 캐스팅되면서 본인뿐 아니라 본인이 강독하는 책들을 역주행시키며 출판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요즘 책방〉는 설민석의 활약으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지리의 힘』, 『신곡』, 『페스트』, 『동물농장』, 『노동의 종말』 등 출연 도서의 판매량을 방송 이후 최대 500%까지 끌어올렸다. 성공적인 미디어 데뷔 이후 10년 동안 설민석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가장 영향력 있는 도서 시장의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그런 후에도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설민석은 출판시장의 대체 불가능한 스타로 자리 잡았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 twN, 2017~2018)과 김영하 작가 또한 미디어셀링 현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과 스타 작가이다. 출연진들이 각지를 여행 다니면서 여행지와 관련된 주제로 자유롭게 토크를 하는 포맷의 알쓸신잡은 김영하 작가뿐 아니라 함께 출연했던 유시민 작가, 유현준, 정재승 교수 등의 저작들을 모두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책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아니었음에도 작가, 과학자,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 출연진들의 자연스러운 도서 언급 및 추천으로,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코스모스』, 『랩걸』 등의 교양 과학서들은 방송 직후 2주간의 판매량이 직전 동기 대비 600% 이상 증가하며 큰 화제를 낳았다.

 

특히 김영하 작가는 1995년 등단 이후 꾸준히 수준 높은 소설을 집필해오며 팬층을 확보하고 있던 작가였는데, 알쓸신잡 출연 이후 평단의 인기를 넘어 대중적 인기까지 누리게 되었다. 다른 출연자들과 마찬가지로 〈알쓸신잡〉 출연 직후 출간된 신작 『오직 두 사람』은 즉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고 전작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판매되었다. 이후 출간된 여행 에세이 『여행의 이유』(2019)는 그해 가장 많이 판매된 도서 1위가 되기도 했다. (예스24 기준)

 

또한 김영하 작가는 최근 운영하기 시작한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활용하여 미디어 출연을 계기로 만들어진 팬들과 함께 소통하며 그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는 2,000명이 넘는 동시접속자가 몰리면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한 직접 출판사를 차려 저작들을 출간하는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2021년 현재 두 작가의 행보는 대조적이다. 최근 〈벌거벗은 세계사〉(2020~)에 출연하고 있던 설민석 작가는 논문 표절 논란과 방송 내용 중 정보 오류 등이 화근이 되어 결국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설민석 작가의 사례는 단순 개인의 몰락을 넘어 그간 계속해서 제기되어오던 미디어셀러 도서들의 한계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사례라 볼 수 있다.

 

미디어셀러는 독이 든 성배다?

 

미디어셀러에 대한 우려는 출판산업 전반의 미디어 의존도부터 소개되는 콘텐츠의 편향이나 왜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미디어를 통한 대중의 관심은 쉽게 휘발되며 단발성에 그치기 때문에 이러한 점이 책문화 전반에 얼마나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출판사의 실무자로 일하면서 대중성, 정치적 편향, 논란이 될 만한 이슈 등을 포함한 일종의 첨예한 책들은 방송 노출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으며, 논란의 여지가 없는 안전한 책들이 소비되는 것을 지켜봐 왔다. 일종의 검열을 거친 도서들만이 결국 미디어에서 소개되고 소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방송 제작자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결정이지만 미디어셀러 위주로 도서가 판매되고 소비되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결국 어떤 메시지는 소수의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뉴미디어 시대의 미디어셀러

 

사실 미디어셀러에 대한 우려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굳이 글의 처음 사례로 10년도 더 넘은 〈시크릿 가든〉을 끌고 온 것도 이런 현상과 논의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검색을 해보면 거의 매년 ‘미디어셀러 열풍’과 이를 둘러싼 명암에 대한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는 동안 미디어셀러의 정의나 범위 또한 이를 사용하는 매체나 사람에 따라 혼용되거나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미디어셀러에 대해 『82년생 김지영』, 『보건교사 안은영』과 같은 ‘스크린셀러’까지 포함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 글에서는 드라마나 예능에 노출된 도서들을 ‘미디어셀러’로 상정하고 이야기했지만, TV 프로그램의 유형 중에서도 그때그때의 트렌드와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 ‘드라마셀러’나 ‘예능셀러’ 등으로 더욱 세분화되어 호명되기도 한다. 또한 최근 뉴미디어가 성장함에 따라 ‘유튜브셀러’, ‘Netflix셀러’ 등 다양한 셀러들도 나타나고 있다.

 

어떠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셀러’와 다양한 ‘셀러’들의 출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기에 출판 마케터로서 이를 우려의 대상이라기보단 영리하게 활용해야 하는 탐구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모든 책이 미디어에 노출된다고 해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둘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는 쪽이 더 좋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독자가 있는 미디어에 책을 노출시킬지, 어떤 새로운 맥락에서 독자들에게 다가갈지, 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책을 제안할 수 있을지에 대해 늘 고민하는 마케터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초연결 시대에 책이 스스로 분연히 일어나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출판사는 없다. 그것만이 진짜 의미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모든 출판사는 거의 필수적으로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며 마케터뿐만 아니라 모두가 뉴‘미디어’에 적응하려고 분투한다. 최근 민음사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채널의 슬로건이 ‘책보다 재미있는 책 이야기’라는 것인데, ‘책보다 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요즘의 미디어 활용 문법에 맞기 때문이지 책이 유튜브보다 재미없고 영향력 없음을 증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정보의 과잉과 편향이 가속화되고 마라탕 같은 콘텐츠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현실 앞에서도, ‘책’은 여전히 정제되고 기준이 될 만한 ‘송이 돌솥밥’ 같은 이야기를 하려 노력한다. 그런 노력들이 ‘다시’ 책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일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조아란(민음사 마케팅부 콘텐츠 기획팀 팀장)

민음사 콘텐츠 기획팀에서 일하는 12년 차 마케터입니다. 책을 둘러싼 재미있는 작당들을 즐기고 최근에는 민음사TV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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