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7 2020. 12.
[구독경제와 출판산업]
김민섭(작가, 북크루 대표)
2020. 12.
올해 초, 정지우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이메일로 글을 보내는, 그러니까 메일링 구독 서비스 같은 것을 함께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 말을 듣고 먼저 들었던 마음은 그런 건 이슬아 작가처럼 젊고 힙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닌가, 내가 그런 걸 해도 괜찮은 건가, 였다. 그러나 그는 신뢰할 만한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그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괜찮을 것 같았다. 잘 안 된다고 해도 별로 손해 보거나 잃을 것이 없었고 그 민망함도 서로 나누어 가지면 좀 가벼워질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에 한 편씩 구독자에게 에세이를 보내는 메일링 서비스를 함께해 보기로 결의하고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책장 위 고양이’라는 에세이 구독 서비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함께하자는 약속은 해 두었지만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작가는 편집자에게 글을 보내고 나면 대개는 그걸로 끝이다. 그 이후 원고 교정, 단행본 제작, 유통, 홍보, 판매 등, 모두가 남의 일이다. 기껏해야 SNS 계정에 책이 나왔다고 알리거나 출판사와 서점의 요청에 따라 종종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 나가는 게 전부다. 이마저도 버거워하는 작가가 있고,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만큼 이것저것 많이 하는 작가도 있다. 나와 정지우 작가는 굳이 규정하자면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울 것 같다. 그래도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작가 두 사람이서 무언가를 하려니 막막한 것이었다. 구독료를 일주일에 만 원으로 했다가 너무 비싼 것 같아 한 달에 만 원으로도 이야기해 보고, 그러나 나와 당신의 글이 일주일에 만 원의 가치는 없다고 말하기에는 민망해 서로 말도 아끼고, 그렇게 며칠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동료를 더 모으기로 했다. 잘되었을 때의 민망함도 잘 안 되었을 때의 민망함도 두 사람이 짊어지기에는 너무 민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너, 내 동료가 돼라!”하고 손을 내밀 만한 주변의 작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정지우 작가가 일곱 명이 모여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 명씩 돌아가면서 글을 보내면 어떨까요, 하고 의견을 냈다. 그는 좋은 기획자였다. 이런저런 이름들이 나왔다. 우리는 서로의 글과 삶이 모였을 때 결이 잘 맞을 만한 작가들을 함께 고민했다. 내가 김혼비, 남궁인, 오은 작가를 추천했고, 정지우 작가가 문보영, 이은정 작가를 추천했다. 이들은 모두 글빚이 많은 바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응해 주었다. 정지우 작가가 섭외한 분들이야 내가 그 과정을 알 길이 없지만, 내가 섭외한 세 사람은 정말로 흔쾌했다. 고맙게도 ‘네가 하는 거면 같이 해 볼게’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대단한 걸 설명했던 것도 아니다. 일곱 명이 구독자를 모으고 돌아가면서 글을 써 보자고 했을 뿐, 구독료라든가 일정이라든가 하는 것도 모두 미정이었다. 이건 아마도 ‘작가가 작가에게’이기 때문에, 그리고 서로의 글이나 삶을 잘 알고 있는 사이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출판사 편집자가 평소 교류가 별로 없던 작가에게 이런 식의 제안을 했다면 아마도 무책임하다거나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작가의 제안이니까, 아아, 네가 기획자나 회사원도 아니고 그런 부분은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이 되었을 것이다. 작가들끼리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건 이처럼 잘됨과 안 됨의 민망함을 나누는 일이면서, 동시에 신뢰를 바탕으로 엉성하지만 어떻게든 끌고 나갈 동력을 서로에게 제공하는 일이 된다. 기획부터 작가 섭외까지 정확히 일주일이 걸렸다. 우리는 매주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대한 글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돌아가면서 쓰고 그것을 구독자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잠시 ‘북크루’라는 회사를 언급하려 한다. 북크루는 작가를 ‘독자를 위한 작가 초청 플랫폼’이다. 작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독자들의 요청도, 독자와 연결되고자 하는 작가들의 요청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읽다가 ‘이 작가를 만나 보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들어도 방법이나 문화 같은 게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주변의 도움과 응원으로 서로를 잇는 플랫폼인 북크루를 만들었다. 강연이나 독서토론뿐 아니라 작가와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다든가 함께 달리기를 하고 싶다든가 하는 작가-독자의 모든 연결을 지향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필요한 플랫폼이 될 것이라 믿고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갑지 않은 존재가 찾아왔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와 독자뿐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모든 만남 역시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나로서는 북크루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나면 ‘아아, 이건 코로나 때문입니다’하고, 이른바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게 작은 위안이다.
정지우 작가가 연락을 준 시점은 북크루라는 회사가 막 만들어진 때였다. 구독자 관리, 결제, 납세, 교정, 배송 등등, 이것을 어느 한 작가가 맡아서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북크루가 그 역할을 맡았다. 독자와 작가를 연결한다는 취지에도 맞았고 어차피 코로나로 인해 새로운 일을 고민하던 차였다. 북크루의 20대 직원이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되었다. 그는 모든 일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면서 ‘책장 위 고양이’와 ‘셸리’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첫 번째 시즌은 아래와 같이 진행되었다.
책장 위 고양이의 첫 번째 시즌 주제는 ‘언젠가’입니다.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일곱 명의 작가가 모였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써왔던 글들도, 살아가는 모습도 조금씩은 다른 그들이지만, 머리를 맞대고 ‘같은 하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작가들에게는 매주 하나의 소재가 정해집니다. 언젠가 고양이, 언젠가 비, 언젠가 작가. 과거의 언젠가, 미래의 언젠가를 떠올리면서, 지금 여기에서 ‘언젠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삶에 깊이 새겨졌던 기억들, 또 언젠가 도래하리라 믿는 훗날의 어떤 시간들에 관해 각자의 손길을 더해보려 합니다.
세상을 거닐며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담아 왔던 작가 김민섭, 우아하고 호쾌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들을 내어 보였던 작가 김혼비, 생과 사의 경계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절실하게 어루만져 왔던 의사 남궁인, 재기발랄한 언어로 세상과 맞서고 삶을 다정하게 움켜쥐는 방식을 이야기해 왔던 시인 문보영, 우리의 세계를 돌아보게 만들어 왔던 은은한 시인 오은, 모든 이의 마음 깊이 흐르는 슬픔과 눈물의 언어를 빚어내 왔던 소설가 이은정, 고요하고 단단한 내면을 바탕으로 누구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글을 써 왔던 작가 정지우가 함께합니다.
2020년 3월부터 5월까지, 일곱 명의 작가가 (월 기준) 400여 명의 구독자에게 63편의 글을 보냈다. 월 구독료는 12,900원이었고 3개월 구독료는 30,000원이었다. 이것은 작가에게도 구독자에게도 하나의 실험과도 같았다. 어떤 작가는 이메일로 글을 보낸다더라, 그런 걸 받아보는 독자가 있다더라, 하는 말만 전해 들었지, 서로에게 이러한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독자도 어디서 갑자기 생겨난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 이 일곱 작가의 기존 독자였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 “저 이런 것을 시작합니다”라는 작가의 말에 구독 버튼을 누른 그들은 이러한 방식에 익숙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도 독자도 적당한 설렘과 두려움을 같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정지우 작가와 메일링 구독 서비스를 위한 이야기를 나눈 지도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다행히 작가도 구독자도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역시 마음 맞는 작가들과 함께 이 일을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주변 작가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할 것이다. 매주 돌아오는 연재일이 무서웠고, 북크루 측에서는 초기에 ‘메일을 받지 못했다’는 몇몇 구독자들의 항의에 힘들었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로 즐거웠다.
작가의 글은 대개 단행본의 형태로 세상에 나온다.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하고 몇 년이 걸리기도 하고 사실 기약이 없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가 관여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작가도 독자도 외롭다. 우리는 UX(User Experience), 유저의 경험이 여러 콘텐츠 산업에 접목되는 일을 보면서도, 출판에 대해서는 보수적이다. 그런데 구독 방식의 사전 연재가 이벤트로서가 아니라 상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독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만들어낸, 출간 이전이나 출간이 불투명한 글을 가장 빨리 받아볼 수 있다는 데 만족한다. 작가는 경제적인 도움에 더해 독자와 소통하며 창작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작가에게 글의 가격은 책의 인세 10%로 정해져 있는 듯하지만, 결과물뿐 아니라 그 과정의 산물 역시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요즘의 구독경제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큐레이션을 기반으로 성장해 나가는 듯하다. 예를 들면 넷플릭스나 유튜브에는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영상이 다 있는 듯하다. 새로운 영상이 끊임없이 업데이트된다. 그 가운데 구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상을 추천받고 그것으로 최신 콘텐츠를 영리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감각을 선물 받는다. 그러나 작가 개인이 하는 구독 서비스의 경우는 하나의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것을 경제적으로든 마음으로든 응원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와 구분된다.
출판사나 북크루와 같은 플랫폼을 통하지 않더라도, 작가 스스로 구독과 같은 새로운 방식에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몇 가지 번거로운 일이 있겠으나, SNS(홍보), 구글폼(구독신청), 스티비(이메일 발송 및 구독자 관리) 등을 사용하면 개인으로서도 충분히 진행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응원하는 독자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작가의 오늘을 보내면서 좀 더 지속 가능한 글 쓰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 ‘책장 위 고양이’는 이제 다음을 준비 중이다. 7월부터 9월까지 진행된 두 번째 시즌에는 김겨울, 박예은(핫펠트), 박종현, 이묵돌, 제리 작가가 함께했고, 12월 중순부터 2월까지 진행될 세 번째 시즌에는 김버금, 김사월, 김신회, 장강명, 홍세화, 다니엘 브라이트 작가가 함께한다. 구독신청은 텀블벅에서 ‘북크루’를 검색하면 된다. 김민섭(작가, 북크루 대표)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며 살아간다. 쓴 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훈의 시대』, 『경계인의 시선』 등이 있고, 만든 책으로 김동식 소설집과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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