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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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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지역출판인가]
지역을 말하는 출판, 지역을 살리는 출판

 

 

 

최낙진(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2020. 08.


 

 

 

지역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담아내고 있는 지역출판사

 

2014년 2월, 제주 소재 ‘도서출판 각’이 제34회 한국출판학회상을 수상했다. 지역출판사가 단행본 100여 권을 발행한 공적에 대한 한국출판학회 연구자들의 인정이었다. 숫자 ‘100’이 갖는 의미는 크다. 이는 기획, 편집, 출간에 대한 자체 능력이 있으며, 출판사로서의 입지 또한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각 출판사는 설립 이후 줄곧 제주의 문학, 4․3, 민속, 문화, 환경, 생태 등 제주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냈다. 지역출판사의 수상은 한국출판학회상 제정 이후 3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부산 ‘산지니’, 광주 ‘심미안’, 대구 ‘학이사’, 광주 ‘전라도 닷컴’, 고창 ‘책마을 해리’ 출판사가 해를 이어 한국출판학회상을 수상했다. 청주 ‘직지’를 포함하여 한국출판학회상에 근접한 지역출판사들은 여럿 더 있다. 홍성 ‘그물코’와 통영 ‘남해의 봄날’은 또 다른 차원에서 지역출판사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2014년 4월, 서울시민청 갤러리에서 ‘촌스럽네’ 사진전이 열렸다. 월간 전라도닷컴(광주), 골목잡지 사이다(수원), 월간 옐로우(인천), 월간 토마토(대전), 격월간지 함께하는 예술인(부산) 등 ‘지역문화잡지연대’가 개최한 서울 나들이 전시회였다. 사진전 제목처럼 수줍지만, 지역잡지 출판인들의 당당한 미학적 선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잡지문화연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3년 후 일구어낸 것이 바로 ‘한국지역도서전’이다. 지역문화잡지에서 지역출판으로 영역을 확장한 그들의 결심을 보여준 ‘한국지역도서전’은 기득권보다 연대정신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가를 보여준 모범 사례였다.

 

2017년 5월, 제1회 한국지역도서전이 제주 한라도서관에서 창립 개최되었다. 개최 지역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제주한국지역도서전’으로 정식 명명되었다. 서울과 파주 출판도시 소재가 아닌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들이 비행기와 배로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도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들도 육지 각 지역에서 온 책들과 합류했다. 도서전은 전시 준비로 사람보다 책이 먼저 모여지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단행본 100여 권 이상을 낸 지역 출판사가 몇 곳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립 50여 년이 넘는 출판사도 있었다. 시 단위가 아닌 군, 읍, 면, 리 소재 출판사에서 낸 책들도 눈에 띄었다. 비록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는 아니었지만 허투루 낸 책은 없어 보였다. 묵묵하게 지역 이야기를 담아 낸 흔적이 역력했다. 제주를 시작으로 지역의 책과 출판인이 만나는 지역도서전은 2018년 수원, 2019년 고창, 2020년 대구 수성구로 이어지고 있다.

 

 

 

절박함과 간절함을 안고 있는 지역출판

 

이 글의 주제는 “지역을 말하는 출판, 지역을 살리는 출판”이다. 지역출판에 대한 이러한 의무 부여가 과도한 주문 같기도 하다. ‘출판이 지역의 이야기를 펼쳐내야 하고, 출판이 지역을 살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 정도로 이해되기도 하나, 이 역시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내심 이 말들에는 지역출판을 바라보는 절박함과 지역출판에 대한 기대감이 담긴 간절함이 들어 있다. 앞서 다룬 지역출판인의 삶에서 혹시 이러한 대답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언론과 정치권에서 지역을 강조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온갖 정책과 제도들이 시행되기도 했다. 수도(首都) 이전을 포함한 각종 백화제방식 공방이 오고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역 화두가 거세지고 많아질수록 지역은 가난해졌고 오그라들었다. 지방분권과 지역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웬만한 지역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 모양새를 갖추긴 했다. 각종 기관과 단체들이 세워지고 유․무형의 예산들이 뒷받침되어 왔다. 지역언론도 그 혜택을 받는 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지역출판은 그간 상대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제도권의 무관심과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지역출판인들의 태도 또한 한몫했다. 지역출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많아진 것도 지역출판인들의 연대가 이루어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힘입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출판문화협회 등의 관심과 지원도 더해졌다. 제주를 포함하여 한국지역도서전을 유치한 수원시, 고창군, 대구 수성구의 후원도 지역출판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지역출판의 성장을 위해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다.

 

출판은 대표적인 ‘지식정보 기반의 문화축적산업’에 해당한다. 지식과 정보의 힘은 ‘축적’에서 나온다. 일정 정도 축적되어야 문화로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이다. 물론 책이 생산되기까지에는 저자와 기획자 등 다수의 전문가 그룹들이 존재해야 한다. 편집, 디자인, 인쇄, 제본, 제책 등 축적된 제작 기술이 갖춰져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전국의, 해외의 독자들에게 책을 전달할 수 있는 거대하고 축적된 노하우의 유통 시스템 또한 필요하다. 책을 소비할 수 있는 독자시장의 형성도 요구된다. 서울(파주 포함)은 출판 생산, 유통, 소비의 축적이 최적화된 곳이다. 파주는 서울 출판의 ‘확장지’이자 ‘분구’로 보아야 한다.

 

지역은 출판 생산과 유통의 기반 없이 서울에서 만들어진 책의 소비시장이 되어 왔다. 서점에서 사서 읽는 책,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책의 대부분이 서울 소재 출판사가 발간한 책들이었다. 부지불식간에 서울에서 나와야 책이 된다는 고정관념이 형성된 이유다. 자기가 사는 지역의 책을 사서 보거나 빌려 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자 ‘힘든’ 일이 되었다. 책 이 넘쳐남에도 지역 독자는 지역에서 만들어진 지식과 정보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다. 우리 지역 이야기는 점점 더 낯설어지고 그 공간에는 서울에서 만든 책에 담긴 지식으로 채워져가고 있다. 그만큼 지역의 지식은 얕아지고 서울의 지식에 의존되어 간다. 지역의 지식 축적 자생력이 위협을 받고 있다. 지역의 이야기가 온전하게 전수되지 않고, 지역의 책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이다.

 

 

 

출판문화 생태계를 건강하게 하는 지역출판

 

기록이 없는 자는 역사가 없는 자이다.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의 기록이 없으면 지역의 역사도 없다. 지역을 채우고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을 잃어버린다. 기록이 없는 곳에 문화가 융성할 리 만무하다. 지역출판이 살아야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복원되고 회복된다.

 

이제는 지역이 ‘지식의 발원지’가 되어야 한다. 정보의 생산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지역출판은 지역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문화를 담아내고 키워내는 그릇이다. 서울 한 곳에 과도하게 몰려있는 지금의 우리나라 출판문화생태계는 그 집중도만큼이나 허약하다 할 수 있다. 지역이라는 공간의 다양성과 그에 따른 문화적 함의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출판사에서 다종다양한 책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지만 짧은 시간에 팔리는 책의 비중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책의 본래 기능보다 소비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우선시되고 있다. 팔리지 않을 거라 짐작되는 책은 탄생부터가 어렵다. 상업성에 줄을 서 있는 출판은 겉은 다양하지만 속은 획일적일 가능성이 높다. 해외 번역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도 이러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역출판은 소비시장이 좁다. 지역 자체의 독서인구가 적다. 어렵게 책이 나온다 해도 서울을 포함한 다른 지역으로 책을 유통시키기란 쉽지 않다. 생존에 취약한 지역출판생태계에는 역설적이게도 시장논리와 거리를 둔 출판의 ‘틈새’가 존재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지역출판인의 궁핍과 출판문화운동 차원의 숙명화된 소신을 담보로 한다. 지역에서 책을 내는 작가도 한 배를 탄 거나 진배없다. 출판의 공공영역 가치사슬에서 빠진 지역서점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에 따라 그 편차는 있지만 도서관은 비교적 잘 갖추어지고 있다. 또한 지역에서 중대형 서점은 부침이 크지만 새로운 독립서점은 속속 생겨나고 있다. 군락을 형성했다 할 만한 제주의 독립서점들이 ‘낭만적 실험’에 그칠 것인지, ‘지역 밀착 기반의 새로운 출판문화’를 형성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도서관과 독립서점들의 증가에도 생각해 볼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역 도서관에 어떠한 책이 채워지고 있는지, 서점에 어떠한 책이 진열되어 있는지, 어떠한 책이 독자에게 읽히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지역 도서관과 서점에서도 지역의 책이 홀대받고 있다면 이를 어찌할 것인가. 지역출판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책을 읽는 독서의 이로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출판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활성화 요구 모두 독서의 이로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역 사람들이 지역 책을 읽는 것은 그 이로움에 지역 정체성을 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사람들이 지역 책의 향유자가 되었을 때 주체적인 지역성을 회복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출판의 토양에서 깊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독자와 저자가 생겨나고 두터워지게 될 것이다.

 

도서관 이용 증가가 서점의 책 판매 감소가 아닌 증가로 이어지듯 지역출판의 건전한 성장은 우리나라 전체 출판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지역출판은 서울출판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은 더 좋은 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역출판의 성장 견인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출판과 서울출판의 동반 성장은 결국 우리나라 출판문화생태계를 건강하고 풍부하게 하는 일이다. “지역을 말하는 출판, 지역을 살리는 출판”이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차원의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지역출판인의 ‘고군분투’에 대하여 정치권이, 시민사회가, 지역 사람들이 진지한 화답을 해야 할 차례다.

 

 

 

또 다른 좌절과 희망의 노래 지역출판

 

지역출판의 희망을 노래하면서도 지역이라는 단어가 왠지 불편하다. 지역을 살려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는 침체, 쇠퇴, 낙후, 심지어는 차별받는 듯한 지역의 이미지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고사하고 좌절감이 앞서기도 한다. 지방분권과 지역발전을 현 문재인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권들이 강조해 왔지만 지역은 점점 더 왜소해지고 있다. 오히려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다.

 

집값만 해도 그렇다. 현 정부가 명운을 걸고 쏟아내는 온갖 부동산 정책과 제도도 서울과 수도권을 향해 맞춰져 있다. 제주와 전국 각 지역에서 서울의 아파트 뉴스를 눈 시리도록, 귀 따갑도록 들어야 한다.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 주위 여기저기 만들겠다는 신도시도 결국은 ‘서울 비대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 도시는 누가 채울 것인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지역 사람과 지역의 돈이 올라가 순차적으로 메꾸게 될 것이다. 그만큼 지역은 오그라들기 마련이다. 이러한 구조가 단순히 집값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 사회, 문화 제반 영역에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이제 막 눈뜬 지역출판문화 생태계는 이런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래도 지역출판은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이럴수록 지역을 말해야 한다. 이웃의 삶을 속 깊게 펼쳐야 한다. 때로는 소멸까지도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재생을 꿈꿀 수 있다. 지역 출판인과 그들이 만든 책이 만나는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7년 <제주한국지역도서전> 포스터. “동차기 서차기 책도 잘도 하우다예(동쪽에도 서쪽에도 책이 많네요)”는 제주 말로 전국 곳곳의 책이 제주도에 모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7년 〈제주한국지역도서전〉 포스터. “동차기 서차기 책도 잘도 하우다예(동쪽에도 서쪽에도 책이 많네요)”는 제주 말로 전국 곳곳의 책이 제주도에 모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낙진(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한국출판학회 연구 분과인 지역출판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7년 ‘제주한국지역도서전’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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