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 2021. 03.
[with 코로나]
장동석(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출판평론가)
2021. 3.
코로나19 창궐 1년.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일상은 멎거나 바뀌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지만, 그 여파는 우리 일상을 여전히 옥죌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19는 시작일 뿐 또 어떤 바이러스, 아니 어떤 위험이 우리 앞에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사 이래 늘 그랬지만, 위험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은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오리무중인 인간의 운명을 그나마 밝혀온 것이 있으니, 바로 ‘책’이다. 책은 인류 지혜의 총합이자, 어제의 기억을 불러내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게 하고, 내일의 걸음을 밝혀주는 이정표다. 하지만 그 이정표도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코로나19는 세상의 빛이 되어준 이정표, 즉 책과 그 생태계 풍경마저 적잖이 바꾸고 있다.
부동산도 코로나19와 연관이 있다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일어난 책 생태계의 가장 극명한 변화는 팬데믹 관련 서적의 출간 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 ‘코로나’라는 키워드를 넣어보니, 제목과 부제에 ‘코로나’를 넣은 책이 무려 430여 권이나 검색되었다. ‘팬데믹’을 제목이나 부제에 넣은 책은 비교적 적은 편으로 60여 권 정도였다. 물론 이 책들이 모두 코로나와 팬데믹, 즉 감염병에 대해 다룬 것은 아니다.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부동산과 주식 투자와 관련된 책도 있고 공부법, 교회와 관련한 책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코로나’와 ‘팬데믹’을 제목이나 부제로 단 책들이 여럿 출간된 것은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꼭 감염병이 아니더라도 특정한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그걸 제목으로 달고 출간된 책들이 허다하다. 주식 열풍이면 주식을,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의를 제목으로 내세운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한 바 있다. 특정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그 제목을 살짝 바꾼, 즉 제목 따라하기가 만연한 시대에 코로나19와 팬데믹 같은 대형 이슈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책 제목이나 부제로 계속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대목에서 출판사들의 고민은 깊다. 책과 출판의 현실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들은 코로나19 시대에 집에만 있으니 사람들이 책을 많이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코로나19 창궐 초기에는 책을 읽는 분위기가 나름 조성되기도 했다. 온라인 서점의 매출도 코로나19 이전보다 증가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모든 사람이 책을 읽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아니다. 한 온라인 서점의 2020년 3월 아동서 판매량은 전년 대비 170%, 소설은 195% 성장세를 기록했다. 또 다른 온라인 서점은 청소년 서적 매출이 82%, 교육서 매출은 36% 증가했다. 여타 분야도 조금씩 성장했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요약하면 이렇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앞서 살핀 간략한 데이터로만 봐도 어린이·청소년 분야, 그중에서도 교육 관련 서적의 판매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설은 코로나19 초기 반짝했을 뿐, 이후 이렇다 할 흐름을 이어갈 만한 판매고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른바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여타 분야의 책들은 판매량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통계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2020년 연말 발표한 〈2020년 출판산업 실태조사〉1)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출판사는 66.7%에 달했다. 증가했다는 출판사는 4.4%에 불과했다. 1) 〈2020 출판산업 콘퍼런스-결산과 전망(2020.12.15.)〉 자료집
강연을 하지 못해 슬픈 전업작가들
세상에 외따로이 존재하는 사람도 없고, 그런 사건은 더더욱 없다. 어린이·청소년 책, 그중 교육서의 선전 뒤에 가려진 여타 분야, 특히 인문서들은 코로나19 여파로 더욱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은 코로나19 초기 소설을 선택했다. 딱 거기까지였는데, 볼거리는 얼마든지 많았다.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플랫폼 기업들은 이 시기 구독자 수를 대폭 늘렸다. 그것이 무엇이든 ‘읽는 일’은 고된 노동에 가깝다. 생각도 하면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보는 건 편하다. 멀티도 가능하다. 분명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드라마와 영화를 책처럼 골똘하게 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본론으로 가보자. 인문서의 판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저자들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자마자 대개의 저자들은, 그중 전업작가들은 강연 혹은 강의의 기회를 (거의) 모두 잃었다. 오프라인 북토크는 전업작가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다. 북토크가 진행되어야만 (비록 작지만) 도서 홍보 기회도 생기고, 그래야만 책이 판매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두 가지 기회가 모두 사라졌다. 모든 도서관이 휴관에 들어갔고, 문화센터나 북카페 등에서 열리는 출간기념회나 강의는 줄줄이 취소되었다.
비대면으로 방식을 바꿔 독자들과 만남이 이뤄지기는 했다. 연예인 등이 팬들을 만나는 방식으로만 여겼던 ‘라이브 스트리밍’이라는 말이, 이제는 강의 (혹은 강연) 시장에도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효과는? 미지수다. 어떤 이들은 더 폭넓게 독자를 만날 수 있다고 좋아하지만, 어떤 이들은 현장 강의가 주는 날것의 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아쉬워한다. 독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저자를 만날 수 있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저자의 진정성을 체감할 수 없어 애가 탄다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이 더 좋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도서관과 작은 서점의 분투는 계속되고 있다
이야기를 사람에서 장소로 옮겨보자.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한 책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모일 수 없게 되자, 그 기능을 (초기에는) 다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일단 도서관의 공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외선 소독기로 책을 소독하고,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책을 빌려주는 일은 대안다운 대안이 아니다. 잠시 위기를 대처하기 위한 미봉책이다. 결국 도서관의 주요 기능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즉 연결에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한다고 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지식큐레이터 강양구는 출판 전문 잡지 〈기획회의〉 511호(2020년 5월 5일 자) 특집 ‘코로나19 시대의 출판 1’에 기고한 ‘코로나 시대의 출판 : 창조적 파괴’라는 제목의 글에서 “대량 감염을 낳을 수 있는 밀집 환경만 피하면 된다”는 전제 아래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럿이 모여서 책을 읽고, 공부도 하고, 시간도 보내는 도서관의 열람실 비중은 줄어들 것이다. 유명 저자를 섭외해서 많은 청중을 동원하는 방식의 이벤트도 사라질 것이다. 반면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소규모 독서 모임과 그런 모임을 열 수 있는 환기가 잘 되는 열린 카페 같은 공간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도서관 본연의 임무는 코로나19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잡지 512호(2020년 5월 20일 자) 특집 ‘코로나19 시대의 출판 2’에 ‘감염병 시대, 도서관 살아남기’라는 제목의 글을 쓴 박소윤 고양시도서관 주무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도서관에서 마스크를 쓰고 책 읽는 풍경과 수시로 책을 소독하는 모습이 일상화되더라도 함께 읽기와 독서모임은 더 강화되지 않을까. 내가 공감했던 이야기에 다른 사람들의 공감도 간절히 필요하다는 걸 물리적으로 떨어진 후에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언급할 공간은 서점이다. 오프라인 서점은 코로나19의 파고를 넘기가 힘에 부쳤다. 앞서 언급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0년 출판산업 실태조사〉2)에 따르면, 오프라인서점의 91.6%는 매출이 감소했다. 매출이 늘었다고 말한 오프라인 서점은 1.3%에 불과했다. 경기콘텐츠진흥원이 2020년 8월 발표한 〈경기도 지역서점 실태조사 및 활성화 방안〉에도 비슷한 통계가 등장한다. 2020년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감소했다는 지역 서점들은 74.6%였다. 대개의 서점들이 30% 이상 매출이 감소했다.
2) 〈2020 출판산업 콘퍼런스-결산과 전망(2020.12.15.)〉 자료집
글을 쓰는 사람, 그것을 책으로 만들고 파는 사람, 그렇게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나 돌고 도는 공간, 즉 도서관과 서점은 코로나19 시대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의 최대 수혜자이지만 독자들의 삶도 사실 쉽지만은 않다. 앞서도 말했듯이 감염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코로나19 상황에 맞서 일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발현하고 있다. 그 와중에 책도 읽어야만 했다. 오프라인서점 방문을 줄이고 온라인서점에서 더 많은 책을 구매했고, 종이책도 많이 봤지만 전자책도 차츰 더 읽게 되었다. 구독서비스도 책을 읽는 한 방법으로 차츰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Midas〉 2020년 4월호 기사에 따르면 리디(주)의 전자책 이용자는 3월과 4월에만 전년 대비 10% 늘었다. 밀리의 서재 3월 월별 평균 일일 이용자는 1월에 비해 28%나 늘었다. 기술은 발전했고, 코로나19는 그 기술력을 독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셈이다. 어쩌면 전자책과 구독서비스의 성장은 한편으로는 예견된 일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코로나19 시대가 낳은 역설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 변화의 양상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지더라도 계속 유지될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단 하나 아니던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고 해도 책 생태계의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 변화의 양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 책 생태계에 몸담은, 저자에서 독자까지, 우리 모두의 일일 것이다. 그러니 잃은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은 것도 생각해 보자. 바로 거기서부터 코로나19 시대를 견디며 살아낸 방법은 물론, 이겨낼 지혜까지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장동석(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출판평론가) 서평 전문지 〈출판저널〉 편집장,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주간, 철학잡지 〈뉴필로소퍼〉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는 출판도시문화재단에서 문화 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저서로는 『살아 있는 도서관』, 『금서의 재탄생』, 『다른 생각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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