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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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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이 보는 출판]
그 ‘숨은 작가’를 편집자는 몰랐을까

 

 

 

김민섭(작가, 출판사 정미소 대표)

 

2019. 11.


 

“작가가 출판사를 만들었다고요. 뭔가 어중간하게 책을 판 작가들이 꼭 그러더라고요.”

 

첫 책을 만들고 물류계약을 위해 유통사를 찾았을 때 들었던 말이다. 사실 비슷한 말을 몇 차례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이기는 처음이었다. 그에게 ‘어중간하게’의 범위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대략 3만부 내외라고 했다. 내가 낸 다섯 권의 책 판매량을 다 합하면 그 정도가 간신히 넘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어중간하게’라든지 ‘그럭저럭’이라든지 하는 언저리에도 못 가는 셈이었다. 그에게 다른 작가들의 책을 내고 싶어서 출판사를 만들었고, 내 책은 여전히 다른 출판사에서 내려 한다고 하자 잘 믿지 않는 눈치였다.

 

모 작가는 내게 작가가 출판사를 내는 데 업계의 반감이 있으니 SNS를 통해 해명 비슷한 것이라도 한번 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인세 10%에 만족하지 못하고 판매마진까지 다 가져가려는, 혹은 출판을 단순히 책을 만드는 일로 끝난다고 보는, 차라리 자신이 만들어 팔면 더 잘될 것이라고 믿는 불만 많은 어중간한 작가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음을 안다. 아마 내가 업계 종사자라 해도 ‘아, 네, 어디 한번 잘해보십시오.’하고 그가 잘되기보다는 어떻게 좌절하는지를 지켜보려 할 것 같다.

 

사실, 글을 쓰는 자리에서 책을 만드는 자리로 오게 된 것은 모든 작가들이 가지고 있을 어느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2015, 은행나무)부터 『경계인의 시선』(2019, 인물과사상)까지 5년 동안 6권의 책을 출간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내가 글을 쓰는 한 개인으로서 소진되고 있음을 알았다. 어느 경험이나 감각들을 책으로 내어놓고 나면 그것은 다시 글의 소재로 삼을 수가 없게 된다. 동어반복이나 자기표절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서평은 “김민섭이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알 것 같아.”라는 것이다. 정작 쓴 사람은 김민섭이라는 작가의 서사를 이해하게 되었음을 기뻐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하고 두려워졌다. 그 즈음 나는 ‘김동식’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고, ‘문화류씨’ 작가를, 그리고 ‘차무진’ 작가와 ‘노정석’ 작가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내가 대학에서 나와 만난 새로운 지도교수라고도 부르는 이 몇몇 작가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그 실체 없는 두려움을 안고 몸도 마음도 계속 소진되어 갔을 것이다.

 

김동식 작가를 만난 것은 2017년 9월이었다. 그는 ‘복날은 간다’라는 ID로 온라인 게시판에 단편소설을 썼다. 1년 4개월 동안 300여 편을 쓸 만큼 그는 쉬지 않고 쓰고 있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10년 넘게 아연주물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는 그의 글은 무척 특별했다.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연구하면서도 그러한 글을 읽어본 일이 별로 없었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결여된 것이 많았지만 이처럼 재미있는 글을 소설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싶었다. 나를 통해 그의 글을 읽어 본 요다 출판사 대표가 나에게 기획자로 참여할 것을 제안했고 나는 소설집을 출간하는 데 관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김동식 작가는 아주 잘되었다. 『회색인간』을 비롯한 8권의 소설집이 1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2018 오늘의 작가상’ 최종심에 올랐고 각 서점의 연말 기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소설가로 명명되었다. 그의 글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제안도 많았고 실제 계약에 이르기도 했다.

 

『회색인간』 출간 이후 나는 타인의 책을 만드는 것이 무척 즐거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타인을 발견하는 일의 기쁨을 알았다. 평범한 노동자가 이 시대의 작가가 되는 그 1년 남짓한 과정은 정말로 가슴 벅차는 나날들이었다. 정작 김동식 본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담담하고 베스트셀러 작가라면 모두 한다는 ‘리커버 에디션’에서도 “고맙습니다.”하고 말할 뿐, 나를 비롯해 오히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호들갑이었다.

 

김동식 작가의 글을 처음 읽어 본 요다 출판사의 대표는 그가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느냐고 놀라움을 섞어서 물었다. 나는 그에게 “제가 찾았습니다.”하고 역시 장난스러움을 섞어서 답했다. 그러나 김동식 작가는 한 번도 숨어 있었던 일이 없다. 오히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개방된 게시판에서 1년 넘게 자신을 드러내왔다. 재미있는 글을 찾아 읽는 중고등학생이라면, 각 게시판의 ‘이야기’에 익숙한 평범한 개인이라면 모두가 그의 ID를 알았다. 그래서 그의 책이 출간되었을 때 ‘복날’의 책이 드디어 나왔다며 그들이 구매자로 나선 것이다. 그처럼 “저 여기에 있습니다.”하고 모두의 앞에 나와 있던 작가도 없었다. 그것을 업계의 편집자들만 몰랐다.

 

어쩌면 출판업계는 공모전이라는 공고한 제도를 믿으며 완성된 작가와 소설만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김동식 작가의 소설을 두 사람의 편집자에게 보여 주면서 “이거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 혹시 출간해 보시면 어떨까요?”하고 물었지만 그들은 “정말 재미있지만 누가 책으로 만들겠어요. 그럴 만한 글은 아니에요.”하고 답했다. 그가 글을 쓰는 동안 자비출간 형식의 제안 두어 번을 제외하면 편집자에게서 정식으로 연락이 온 일은 없다고 했다. 『회색인간』출간 이후 그가 “이렇게 많은 출판사들이 있는지 몰랐어요.”라고 할 만큼 여러 출판사의 출간 제안이 들어온 것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만한 일이다.

 

젊은 편집자 몇 명이 나에게 “저도 김동식 작가의 글을 게시판에서 읽고 있었는데 책으로 낼 용기가 없었어요.”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건 그에게 그만한 안목이나 용기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보다 오래 공부해왔고 좋은 글을 보는 눈이라면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편집장이나 대표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굳이 ‘김동식’이라는 장르를 소개하기보다는 업계의 문법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반성을 요구할 수는 없겠다. 어떤 편집자는 김동식의 성공 이후 “김동식 같은 작가를 왜 못 찾아.”라는 말을 내부에서 들었다고도 했다. 못 찾은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추천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를 숨은 작가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돌아보아야 한다.

 

“1년에 한 명씩만 김동식 같은 작가를 찾아오세요.” 요다 출판사의 대표는 나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나는 ‘외부 기획자’라는 무언가 정체불명의 직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게 “김동식 같은 작가는 김동식 밖에 없습니다.”하고 답했지만, 나는 이미 다음 작가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9개월 만에 문화류씨라는 작가와 만나게 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주로 자랐고 그러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것을 각색한 소설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렸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가 모든 글을 핸드폰으로만 쓴다는 것이었다. 단행본 2권 분량의 글을 오로지 엄지손가락으로만 썼다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만난 자리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글을 쓰는 게 힘들어서 포기하려다가 김동식 작가가 잘되는 것을 봤습니다. 1년만 더 써 보자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김민섭 작가가 같이 책을 만들어 보자고 연락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1년 만에 연락을 주신 거예요.” 그 말에 나는 구원받은 심정이 되고 말았다. 김동식 작가의 잘됨이 단순히 그와 출판사, 그리고 기획자 한 사람의 잘됨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었다. 그처럼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꾸준히 글을 써 온 평범한 개인이 용기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미소’라는 출판사를 만들었다. “개인의 고백을 응원합니다.”라는 사훈 같은 것과 함께였다. 나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쓰면서 대학이라는 세계에서 나왔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시기의 나에게는 대학이 내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다. 모두에게 그러한 세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고백하고 기록하는 것으로 거기에서 비로소 나올 수 있다. 우리가 아는 흰쌀이 정미소에서 도정을 거치는 것처럼 그러한 개인을 발견하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나는 현대소설을 오래 연구하고 강의해 왔지만 어린 시절부터 온라인 게시판의 여러 글들을 일부러 많이 찾아 읽었다. 언젠가 책으로 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글들이 아주 많았다. 지금에 와서는 그것의 작가도 출처도 알 수가 없어서 그 감동만 기억하고 있는 편이지만, 여전히 그러한 숨은 작가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제는 단순히 ‘책으로 내고 싶다’는 감탄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들을 읽고 발견하고 그들의 세계 바깥으로 그들의 길을 내어주고 싶다.

 

그러던 중 차무진 작가를 만났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작가였는데, 그의 글은 다른 작가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신작인 『인더백』에 내가 관여했다고 말하기는 민망하다. 다만 그와의 식사 자리에서 그가 “저는 OOO 작가와 같은 글을 쓸 수 없어요.”하고 말했을 때 내가 “OOO에게는 OOO의 세계가 있고 차무진에게는 차무진의 세계가 있잖아요. 저는 차무진의 세계도 좋습니다.”하고 답한 일이 있다. 얼마 후에 만난 차무진 작가는 나에게 그 말이 참 고마웠다고,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 출판이라는 것은 아마도 한 작가의 세계를 독자에게 내어 보이는 작업이다. 한 권의 책에는 글뿐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삶의 태도와 그의 세계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한 권의 책을 잘되게 만드는 것은 독자들에게 ‘이 작가가 잘되면 좋겠다.’는 감각을 공유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편집자들에게는 결국 그러한 작가를 찾아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정미소 출판사에서는 두 달 동안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노정석)는 고3 학생이 쓴 시와 에세이와 일기를 모은 것이고, 『내 이름은 군대』(이상문)는 우울증으로 불명예전역을 신청한 성소수자 청년의 수기다. 내가 노정석 작가의 글을 브런치북 공모전의 대상작으로 추천했을 때 그의 구독자는 두 명이었다. 그러나 ‘글 쓰는 학생입니다. 글과 함께 자랍니다.’라는 자기소개문을 본 순간 나는 이 작가가 좋은 글을 썼을 것으로 믿었고, 그의 글은 나의 기대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자신을 가장 담담하고 단단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은 이 고등학생 작가였다. 이상문 작가는 ‘백림서사’라는 매니지먼트의 대표 김현우 씨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군대라는 세계에서 나와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한 도정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노정석과 이상문, 두 작가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자신의 글을 ‘기록’이라고 규정한다는 것이다. 노정석 작가는 교육학을 전공하려는 자신이 이후에 어느 위치에 다다랐을 때 지금 학생으로서의 시선을 잃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현재를 계속 기록해 나가고 있다고 했고, 이상문 작가도 자신의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매일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정미소 출판사에서는 이처럼 자신의 세계를 고백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발견하고 책으로 출간하려고 한다. 출판업계가 이러한 일을 독립출판이나 1인 출판의 영역에만 맡기지 않았으면 한다. 만든 책을 유통망을 통해 타인에게 내어 보일 힘을 갖춘 많은 출판사들이 좀 더 그렇게 해 주면 좋겠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소명과 사명을 말하는 것만큼 타인을 피곤하게 하는 일도 별로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게 책을 만드는 일이라 믿으면서 즐겁게 일하고 싶다. 내년에는 네 명의 작가와 네 권의 책이 정미소에서 도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을 응원하며, 책을 만들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든 도정 역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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