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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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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셀러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의 미디어셀러,
문제적 현상과 건강한 알고리즘 사이

 

 

 

이명석(문화비평가)

 

2021. 4.


 

미디어셀러, 현상인가 구조인가?

 

우리 독자들은 자신이 읽고 살 책을 어떻게 선택하는가? 독서 대중의 저변이 넓게 퍼져 그들 사이의 여론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던 시대는 진작에 지나갔다. 방과 후나 퇴근길에 자연스럽게 서점을 방문해, 관심 분야의 책들을 훑어보고 결정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통적인 일간지 서평, 라디오 책 소개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급속히 축소되고 있고, 팟캐스트와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와 SNS가 더 강력한 정보채널이 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초 ‘TV 예능셀러’의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뉴스가 여러 언론에서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실렸다. 대부분 교보문고의 발표를 인용했는데, KBS의 독서예능 〈비움과 채움 북유럽〉에서 유명 드라마 작가 김은희가 추천한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의 판매가 급증했고, 『보건교사 안은영』의 작가 정세랑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소개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0시를 향하여』가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미디어셀러, 그러니까 영화와 드라마의 원작과 TV 프로그램의 추천작이 출판시장에 끼치는 강력한 영향력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교보문고 김현정 베스트셀러 담당의 해설은 이렇다. “기존에도 미디어셀러가 있었지만,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볼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커진 것이 베스트셀러 등극에 한몫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코로나19와 ‘집콕’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만들어낸 예외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SNS의 발달과 넷플릭스, 유튜브 등 신종매체의 약진이 결합된, 다음 단계의 시장 구도인가? 최근 미디어와 출판시장의 변화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셀러의 스펙트럼

 

1) 원작셀러

 

스크린셀러, 드라마셀러, 넷플릭스셀러… 인기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 소설과 만화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는 일은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반대로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만화가 영상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스토리텔링 산업의 상호 연계는 당연한 시대의 추이다. 그러나 그간 미디어 사이의 주도권 경쟁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영화와 TV 드라마의 주도권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트와일라잇〉, 〈해리포터〉 시리즈 등이 출판, 영화 쪽에서 쌍끌이로 초대형의 성과를 거뒀는데, 역으로 좋은 출판물 찾기에 큰 경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만화 원작을 영화화하는 붐이 일어나 판권 경쟁이 치열해졌고 인세보다 판권이 작가에게 더 큰 수입을 보장해주기도 했다. 물론 〈미생〉처럼 해당 영상물이 인기몰이를 하면 원작의 판매에 다시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번역 소설 중에는 『슬럼독 밀리어네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이 영화의 성공을 기반으로 뒤늦게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는데, 영화에 맞춰 제목을 바꾸거나 영화 포스터 이미지로 책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영상화 계약 여부는 출판물의 수출입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드라마셀러의 비중이 큰데,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해를 품은 달〉의 원작 소설 등 로맨스 판타지 소설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한류 영향권에 있는 해외시장에서도 이러한 출판물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당연히 출판사에서는 영상화에 유리한 작품들을 선호하게 되고, 시장 자체가 소설 위주의 특정 장르로 편향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두드러진 현상은 영상 미디어의 팬덤 문화가 출판시장까지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팬들은 특정 작품이나 스타에 빠지면 관련된 모든 상품을 굿즈처럼 구입하는데, 서적 역시 덕질의 소장용으로 구매하기도 한다. 최근 〈기생충〉, 〈킹덤〉, 〈비밀의 숲〉 등의 각본, 대본집이 인기를 모으는 것도 이러한 영향으로 볼 수 있다.

 

2) TV 예능셀러

 

2002년 MBC 〈느낌표〉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를 통해 소개한 책들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스무 권 중 여덟 권을 차지하면서 TV 예능셀러의 시대가 열렸다. TV의 영향력을 통해 독서의 저변을 넓힌다는 찬성 여론과 일개 프로그램이 출판시장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어쨌든 이때부터 TV는 책 소개 프로그램이나 교양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능을 통해 출판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2015년경부터 〈어쩌다 어른〉, 〈알쓸신잡〉 등의 인문학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면서 독서 시장의 신주류가 된다.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점령하는 것과 더불어, 이를 통해 스타가 된 저자군들이 강연 활동과 결합해 출판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후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가 쉬운 인문학이라는 테마로 출판 트렌드를 주도했고, 최근에는 〈비움과 채움 북유럽〉이 독서 예능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느낌표〉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우연히 만난 동네 주민들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런 식의 접촉이 어려워지자 스튜디오 예능으로 탈바꿈하며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문직의 흥미로운 인사들이 나오면서 이들의 저술이나 이들이 소개하는 책들에 관심이 모이게 되었다.

 

TV 예능셀러를 바라볼 때도 출판, 인문, 교양 예능에서 소개한 책인가, 혹은 단순히 예능에서 유명인에 의해 노출된 책인가를 구분해 볼 필요는 있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출연한 TV 리얼리티 예능 〈인더숲〉에서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가 나오면서 큰 화제를 모았는데, 이는 ‘인플루언서셀러’의 영역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 배우나 가수들의 국제적인 인기가 높기 때문에, 이들이 언급하는 책들은 해외시장, 특히 아시아 지역의 번역 출판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3) SNS, 유튜브셀러

 

미디어셀러의 영향력이 커진 데는 이슈가 되는 책에 대한 정보가 SNS를 통해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상황도 작용하고 있다. 출판사에서도 신인 작가들과의 계약에서 SNS, 팟캐스트, 유튜브 등 자기 홍보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경우를 훨씬 더 선호한다. SNS 인플루언서가 연예인보다 더 많은 팔로워 숫자를 가지고 상품 홍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출판 분야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북튜버의 성장은 이 문제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든다. 최근 김미경 TV, 겨울서점, 책읽찌라 등의 북튜버가 독서 분야의 인플루언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를 과거 책 소개 프로그램의 확장으로 볼 것인가,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셀러로 볼 것인가, 혹은 미디어셀러의 외형을 띤 광고 활동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볼 여지가 크다. 북튜버의 추천, 혹은 화제가 되는 저자와의 인터뷰라는 형식은 TV 책 소개 프로그램을 유튜브로 옮겨놓은 것 같지만, 간혹 제작비라는 명목의 홍보비를 받고 책을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뒷광고’ 등 상업적 유튜버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튜브에 기반한 베스트셀러의 대표작은 『흔한남매』이다. ‘흔한남매’는 저연령 유튜브 콘텐츠로 구독자 200만 명이 넘는 인기를 모으고, 그를 기반으로 꾸준히 만화 시리즈를 내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다. 과거에도 뽀로로, 펭수 등 유아 관련 프로그램의 인기를 바탕으로 출판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경우들이 있었지만, 유튜브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유튜브셀러의 약진은 자명한 사실인 것 같다.

 

출판의 특장점은 영화, TV와는 다르게 아주 다양한 취향과 관심을 다룰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유튜브 역시 바로 그런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대중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 한때 블로그가 출판 기획자들의 광산이었다면, 이제는 유튜브가 그런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디어셀러

 

예스24는 2020년 출판 트렌드 키워드로 #위드코로나 #홈스쿨링 #미디어셀러ing 등을 꼽았다. #미디어셀러ing라는 것은 미디어셀러가 중요한 트렌드이지만, 새롭다기보다는 꾸준히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위드코로나 #홈스쿨링을 통해 최근에 더욱 강화되고 있다.

 

2019년 국민독서실태조사의 ‘도서 선택 시 이용정보’의 항목을 보면, 성인과 청소년 모두 ‘서점, 도서관 등에서 책을 직접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환경이 이를 어렵게 하면서 TV, 유튜브 등의 소개 정보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학교나 학원을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동용 학습물이 인기를 모았는데, 이런 쪽에서도 설민석, 흔한남매 등 TV, 유튜브를 통해 유명세를 얻은 미디어셀러가 먼저 선택을 받고 있다. 실외 활동이 어려워 실내에서 TV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상황이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의 TV 예능,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 기반의 콘텐츠와 관련된 책들이 주목받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출판시장이 전반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셀러가 만들어내는 판매고가 숨 쉴 구멍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평소 책을 즐겨 보지 않던 대중들도 이를 통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체험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미디어에 의해 간택되는 출판사와 그렇지 않은 출판사가 느끼는 체감은 극과 극일 것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미디어셀러라는 복권에 당첨되기 위해 더 많은 카드를 긁어볼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출판사만이 이런 상황에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스타 저자나 영상화되기 좋은 소설과 같은 특정 테마로 출판의 경향이 기울어질 위험성도 존재한다. 출판 산업이 콘텐츠 생산의 주도권을 상실한다면 그 수형(樹形)이 기형적인 형태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영상미디어와 출판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까? 현재의 상황을 우려하는 입장에서는 영화, 드라마 등의 PPL이 노골적으로 바뀌는 환경을 통해 미디어셀러 역시 PPL의 형태를 띨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현재 출판사들의 매출액 규모에서 이런 시도를 벌일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드라마, K팝 등의 미디어 기업에서 출판 자회사를 내면서 공격적인 형태로 미디어셀러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건강한 미디어셀러 알고리즘은 가능한가?

 

이제 우리는 건강한 형태의 ‘미디어셀러 알고리즘’이 가능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아직 둔탁한 형태이지만 미디어와 책이 서로를 연결하는 방식들은 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도서 원작 TV 프로그램’ 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온라인서점에서는 반대로 ‘넷플릭스 원작 도서전’ 등의 이벤트 페이지를 운영한다. 특정의 책, 영화, 드라마를 선택하는 개인의 취향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다른 미디어의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미시적인 미디어셀러들은 시장을 왜곡하기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생존을 가능하게 만든다.

 

영화나 TV 예능을 통해 인기를 모으는 책 역시 건강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가령 영화 〈인터스텔라〉가 인기를 모을 때 1차적인 미디어셀러는 원작 소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우주물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이 생기고, 이때 TV 예능에 등장한 전문가가 적절한 가이드를 제공한다면, 관련 분야의 도서 전반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10만 권을 파는 미디어셀러 1종이 아니라, 1만 권씩 파는 미디어셀러 10종, 혹은 1천 권씩 파는 미디어셀러 100종의 형태를 만들어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시대엔 책만 읽거나, 영화만 보거나, 드라마만 보는 사람은 없다. 서로 다른 미디어를 오가며 자신의 취향을 찾고, 자신의 관심 분야를 파고, 새로운 테마로 도전한다. 출판이 강력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시대는 분명히 지났지만, 여전히 가장 다채롭고도 질 높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분야라는 자긍심으로 가지고 미디어들의 움직임을 선도할 수 있는 길을 찾기를 기대한다.

이명석(문화비평가)

민음사 편집자, 잡지 〈이매진〉 수석기자, 웹진 〈스폰지〉 편집장을 거쳐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여행자의 로망백서』,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모든 요일의 카페』, 『논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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