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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9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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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코로나]
혼자만의 시공간, 그 안에서 책의 역할

 

 

 

박현영(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소장)

 

2021. 3.

 

필자는 데이터를 통해서 생활의 변화를 관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숫자보다 이야기를 좋아한다. 보통의 경우 데이터를 숫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데이터에 들어 있는 숫자는 사람들이 지닌 이야기의 합이다. 소셜빅데이터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에서 키워드를 추출해 해당 키워드가 담긴 문서의 숫자를 헤아린 결과다. 다시 말해 데이터의 숫자가 높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 키워드를 많이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왜 이 키워드보다 저 키워드를 많이 이야기할까? 왜 지난 시기보다 지금 시기에 이 이야기를 더 많이 할까? 코로나19 전후 시기의 데이터를 비교하면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무엇이 이 이야기의 흐름을 추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래 데이터를 같이 읽어보기로 하자.

 

당근마켓 언급량 데이터


‘당근마켓’의 언급량은 2019년 10월 기준 2017년 대비 여덟 배 이상 상승했다. 코로나19 이후 그 상승세는 더욱 가속화되어 2020년 8월 기준 2017년 대비 32배 상승했다. 당근마켓의 함의는 로컬리티의 안정감, 비움의 실천, 판매자로서의 정체성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중고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출처: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당근마켓’의 언급량은 2019년 10월 기준 2017년 대비 8배 이상 상승했다. 코로나19 이후의 당근마켓의 상승이 너무 급격하여 가려져 있지만 코로나19 이전부터 당근마켓은 동네 거래가 주는 안정감, 연락부터 거래까지 30분 컷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상승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기 집을 돌아보면서 집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당근마켓은 집 정리를 하면서 비움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필수 앱이다. 사람들은 중고로 구매한 이야기보다 판매한 이야기를 더 많이 올린다. 2020년 이후 중고 ‘판매’ 성공담이 중고 ‘구매’ 담론을 역전했다. 사람들은 소비의 알뜰함보다 판매의 즐거움을 더 많이 공유한다. 당근마켓의 상승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근마켓이 떴다’, ‘당근마켓이 대세다’ 라고 말하는 것은 단편적인 현상의 나열일 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로컬리티의 안정감, 비움의 실천, 판매자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읽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중고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비움을 실천하는 뿌듯함, 적은 돈이지만 뜻밖에 얻은 패시브 인컴(Passive Income)이 사람들이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소비자(消費者)가 아니다. 사람들은 집단 지성을 이용해 똑똑한 소비를 하고 있지만 소비자의 위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스로 판매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존재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정체성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쿠팡에서 영향력 있는 리뷰를 남긴 소비자를 부르는 용어로 ‘파트너스’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적절하다. ‘쿠팡과 함께 수익을 창출해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소비자의 정체성 변화를 읽어낸 적절한 표현이다. 과거 제조사에서는 소비자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고객, 비고객, 잠재고객. ‘경쟁사 고객은 누구냐?’ 그 특성을 찾아내서 그들을 공략하고자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경쟁사 고객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지 않는다. 그것은 상상일 뿐이다. 창의력을 포함한 상상이 아니라 내 편의를 위한 재단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타깃은 독자와 비독자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책을 읽는 사람 혹은 읽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생활자들이다. 그들의 삶에 우리가 만드는 책이 어떤 역할을 한다면 그 삶 속에 놓일 수가 있다. 어떤 삶에 어떻게 놓일 것인가? 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된 생활의 변화 속에서 책의 역할을 찾아보자.

 

혼자만의 시공간을 나만의 루틴으로 채우다

 

2019년 말에 발간된 『2020 트렌드 노트』의 부제는 ‘혼자만의 시공간’이다. 코로나19가 일어나기 전부터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은 1인용 삶이었다. 비단 1인 가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혼자 살아도 같이 살아도 나만의 즐거움, 온전한 나만의 시간, 작아도 내가 점유한 나만의 공간을 찾는 흐름은 분명했다. 혼밥에서 시작해 혼술, 혼영, 혼커, 혼라이프로 이어지는 수많은 혼O 신조어들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이 흐름은 더욱 확실해졌다.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모임 축소 등으로 생긴 긴 시간, 같은 공간에 모인 가족 구성원들은 자기만의 시공간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꼈다. 어떻게 자기만의 시공간을 채워갈까? 답은 루틴과 리추얼에 있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스스로 만든 리추얼로 채워나간다. 그것을 나의 OO루틴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나의 모닝루틴은 따뜻한 물 한잔과 모닝요가 30분 #미라클모닝 37일 차”라고 기록하는 식이다. 루틴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고, 그 시간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선언적 키워드이다.

 

루틴 언급량 데이터


‘루틴’의 언급량은 2020년 9월 기준 2016년 1월 대비 일곱 배 이상 상승했다. ‘당근마켓’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이전부터 상승하고 있었고 코로나19 이후 그 상승세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루틴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했고, 그 시간을 스스로 만든 자신만의 리추얼로 채워감을 의미한다. 루틴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루틴의 상승은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로 채우려는 사람들 선언의 합이다. (출처: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루틴은 모닝루틴, 주말루틴, 나이트루틴과 같이 시간을 지칭하는 언어와 함께 쓰인다. 루틴 앞에 붙은 시간은 나의 자유 시간이지 의무의 시간이 아니다. 출근루틴, 숙제루틴처럼 의무의 단어와는 함께 쓰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특히 늘어난 루틴은 모닝루틴이다. 사람들에게 평일 아침 시간은 출근하느라, 등교하느라, 혹은 그런 사람들을 챙기느라 바쁜 의무의 시간이었다. 코로나19 이후 회사도, 학교도 가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평소에 가져보지 못한 아침이라는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사람들은 그냥 흘려보내기보다는 보람찬 활동으로 의미를 획득한다. 개인의 의식을 하루하루 반복하며 1일 차, 2일 차, 콘텐츠를 쌓아 가면 의지의 난이도는 낮아진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영어권에서 새롭게 등장한 해시태그 중 하나는 #quaroutine이다. 이는 격리를 뜻하는 Quarantine과 Routine의 합성어이며 코로나19 시대의 루틴을 뜻한다. 한국의 1일 차, 2일 차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100daysofpractice가 있다. ‘백일 동안의 실천’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자신의 취미를 100일 동안 매일 올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하는 모습, 자신이 그린 그림, 악기 연주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올린다. 장소는 제약받되 시간의 자율권이 주어졌을 때 사람들은 시간의 주인으로서 그 시간을 의미로 채우려 한다. 밑도 끝도 없이 흐르는 시간은 너무 지루하다. 무엇보다 뿌듯함을 느낄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 유튜브, 넷플릭스, 드라마, 각종 온라인 게임 등 킬링타임용 콘텐츠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독서, 글쓰기, 필사, 북커버챌린지 등 책 관련 활동도 같이 늘었다. 2020년 4분기 ‘필사’ 언급량은 2017년 1분기에 비해 3.2배 증가했다(출처: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생활변화관측지 VOL.22). ‘필사’는 크게 ‘챌린지’, ‘캘리그라피’, ‘습관’의 속성을 가진 연관어와 함께 언급된다. 사람들이 필사하는 대표 콘텐츠는 시, 소설 등의 문학 작품부터 노래 가사, 영화 속 명대사 등의 글귀까지 다양하다. 코로나19와 함께 강제로 생겨버린 여유시간에 의미 있는 도전을 하기 위해, 힘든 시간 마음을 다잡고 루틴을 확립하기 위해, 의미 있는 문구에 포인트 있는 글씨체를 보태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람들은 필사를 한다.

 

나만의 읽기, 연대와 소통으로 나아가는 길

 

책은 ‘혼자만의 시공간’, ‘루틴’, ‘나만의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내는 시대의 흐름에 가장 적합한 오브제이다. 이 시대 흐름과 같이 가기 위해서는 이제 좋은 책, 훌륭한 작가가 쓴 책, 평단이 인정한 책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점유한 책, 나의 루틴 속에 들어온 책, 나의 지금 상황을 대변해 주는 책이 필요하다. 상품 커뮤니케이션이 제품의 특장점에서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과 상황으로 옮겨가는 것은 비단 책 분야만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냉장고이다. ‘쿨링 기능’, ‘메탈 재질’, ‘세계 최초의 성과’, ‘세계가 인정한 기술’, ‘업계 최초 시도하는 고급 소재’ 등의 제품에 적용된 기술과 기능 메시지가 아니라 ‘나만의 냉장고’, ‘신혼가전’, ‘당신에게 맞출게요’라는 메시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제품에서 사람들의 라이프로 바뀌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책 역시 마찬가지다. 책을 한 권 낸다면 누가 쓴 책이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떤 기분으로 읽는 책인지, 어떤 평단이 인정한 책인지가 아니라 동료 인간 중 누구와 연대할 수 있는 책인지 커뮤니케이션 되어야 한다. 채식 레시피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독자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비건 에디터가 사랑한 책은 특정 작가가 쓴 책보다 독자의 편에 서 있다. 빨간 표지의 책은 빨간 인테리어 공간을 채우는 책이 된다. 아침을 여는 책은 내용과 상관없이 독서의 시간을 설명해 준다.

 

화두는 읽는 이의 삶의 질 향상이다. 혁신은 나와 무관한 세계가 놀란 기술이 아니라 나의 세계 속에 들어온 실질적인 변화다. SNS에 올라온 ‘북커버챌린지’를 보고 혹자는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부정적인 의미의 허세를 부리는 거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 의미의 허세,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누가 책을 읽겠는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은 ‘자랑’과 ‘인증’이면서 동시에 ‘도전’과 ‘성취’의 증거이다. 책은 도전의 대상이고, 성취의 증거이다. 이 도전과 성취는 자랑할 만한 거리이고 그래서 자주 인증된다. 그렇다, 책에 대한 니즈 대비 책을 실제로 읽어내는 근육은 약하다.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은 이 책이 얼마나 좋은지가 아니라 이 책을 언제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사람들의 라이프를 이해하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그러했고, 코로나19 이후 더욱 가속화된 생활의 변화 방향은 이러하다. 녹록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사람들, 불완전하지만 작은 실천으로 지구적 환경을 지키는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 작은 변화로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서는 책이 되자.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바로 ‘누구를 바라볼 것인가?’이다. 나이키는 ‘러닝크루’라는 단어조차 낯설 때부터 러닝크루를 조직하고 협업하고 독려했다. 러닝크루는 마라톤 동호회와는 다르다. 러닝크루에게 중요한 것은 마라톤 완주가 아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함께 뛰고 공감한다는 것이다. ‘크루’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운동을 위해 먼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도시 곳곳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러닝크루는 물리적 장소에 같이 모이지 않더라도 ‘나이키 런 클럽’을 통해 연결된다. 코로나19 이후 나이키 런 클럽은 플로깅(쓰레기를 주우며 달리는 캠페인)과 연결되며 새로운 연대감을 더해 가고 있다. 운동화를 파는 나이키는 운동화가 필요한 시간, 그 시간을 공유한 사람의 연대감을 북돋는다. 책을 파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책이 필요한 시간, 책을 통한 연대감으로 연결된 느슨한 공동체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지향점이다. 책은 콘텐츠다. 혼자만의 시공간을 나만의 세계로 구축해 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을 콘텐츠다. 책을 통한 느슨한 공동체 – 우리가 조직하고 협업하고 독려해야 할 독자의 상(像)이다.

박현영(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소장)

『2021 트렌드 노트』, 『2020 트렌드 노트』, 『2019 트렌드 노트』, 『2018 트렌드 노트』 저자현재 바이브컴퍼니 인사이트 리포트 총괄 및 생활변화관측소 소장숫자가 열과 행으로 꽉 차 있는 교차표(Cross-Tabulation)를 보는 것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지금은 사람들의 말과 글을 듣고 읽으며 ‘라이프스타일 리서치’를 하고 있다. 데이터는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데이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는?

1,000개의 질문에서 도출되는 일곱 개의 인사이트“데이터는 사실의 집합이며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능력입니다. 생활변화관측소는 사실에서 통찰을 읽어 콘텐츠를 만듭니다.”10년 동안 소셜빅데이터 관측의 노하우를 지닌 바이브컴퍼니, 약 1.2억 건의 소셜미디어 문서를 모니터링합니다.자연어 처리를 통해 1,000개 이상 키워드의 변화, 등락, 추세를 감지합니다.매월 일곱 개의 중요한 관측을 선별하여 이를 바탕으로 관측지를 발행하고, 관측담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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