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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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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의 대공습]
챗GPT와 작업한 일주일간의 출간기

 

 

 

서진(스노우폭스북스 대표)

 

2023. 04.


 

언론에서는 연일 챗GPT(ChatGPT)가 실행하는 여러 능력을 기사로 쏟아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출간에 필요한 여러 작업을 다수의 AI가 했다는 소식이 지상파 정규 뉴스를 비롯하여 종편, 케이블 방송 등 120여 개의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글쓰기를 포함한 AI의 창조적 능력은 출판업계와 관련 종사자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2월 첫 주. 해외 언론에서는 챗GPT가 가져올 시대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지만, 국내 언론에서는 폭발적인 수준의 보도가 나오는 시점은 아니었다. 평소 기획을 개인 경쟁력으로 삼아 온 덕분에 두어 주 먼저 알게 된 챗GPT는 개인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일주일 정도 이리저리 이용해보며 든 생각은 출판업계 전반에서 챗GPT의 활용 범위가 매우 클 거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곧장 월요일 회의에서 직원들과 함께 챗GPT에 관한 스터디 시간을 가졌다. 챗GPT를 활용한 기획과 저자에게 제안할 활용 방법도 구상해 보았다. 한계점을 짚어 보고, 다른 AI들이 연이어 오픈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지며 이런 시대의 변화 앞에 우리는 어떻게 경쟁력을 갖춰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챗GPT의 활용 범위가 모두 파악되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AI가 쓴 글과 인간이 쓴 글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였다. 앞으로 무분별하게 챗GPT 글이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닐지,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책이라는 결과물에 독자를 계속 붙잡아둘 수 있을지, 더 나아가 출판 시장 자체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는 않을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해결 방법은 하나였다. 지금, 직접, 해 보는 것. 우리의 영역에서 활용될 AI들의 현주소를 지금 당장 파악하는 일이었다. 직원들과 스터디 회의를 마친 월요일, 퇴근 후 출간 결정을 내렸다. 6시 정각 칼퇴근을 은근한 자랑으로 여겨왔지만 작업에 꼭 필요한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밤을 지새울 각오로 다음 날부터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인쇄를 거쳐 서점 배본까지 단 7일이 걸렸다.

 

챗GPT를 저자로 두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적합한 기획안을 찾는 일이었다. 기획 의도가 분명하고 책의 가제목과 그에 따른 각 장의 주제들, 장에 들어갈 목차까지 완벽하게 개발해 놓은 기획안이 필요했다. 다양한 분야를 겨냥한 50여 개의 기획안들이 있었지만 챗GPT를 활용한 책에 필요한 기획안은 자기계발서라고 판단했다. 역사나 지리, 세계사나 교양, 혹은 전문적 지식 기반을 필요로 하는 분야의 기획서는 모두 제외했다. 정보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료를 도출하고 생성하는 능력은 AI가 비교 불가한 수준으로 인간보다 월등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다르다. 자기계발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분야다. 감정이입과 설득과 주장에 이끌려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고 삶과 인생행로를 설계하게 만드는 분야다. 그렇기 때문에 세련된 가설과 대단한 설득이 아니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필요한 분야인 자기계발서야말로 ‘과연 AI인 챗GPT가 써낼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봤다.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

 

 

그렇게 출간하게 된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챗GPT, AI 파파고 옮김, 서진 기획, 스노우폭스북스, 2023)의 기획 의도는 명확했다. 챗GPT의 글쓰기 능력을 보기 위한 시도가 아닌, 우리 출판계 전반에 이렇게나 성큼 다가와 있는 AI의 현주소를 즉각적으로 시험해 보는 것. 바로 그 기준에 온전히 따르기 위해 챗GPT에 책의 주제와 기획 의도를 함께 입력했다. 단독 저자로서 챗GPT가 모든 원고를 쓸 것이며 그에 따른 서문을 요청했다.

 

처음 사용한 챗GPT 무료 버전에서는 텍스트가 부실했고 1천 자 내외를 생성하는 데에 그치며 한계를 보였다. 즉시 유료로 전환하고 챗GPT3.5 버전으로 같은 작업 지시를 입력하자 3천 자 내외의 일정 수준이 담보된 텍스트를 생성했다. 챗GPT는 서문을 작성하는 데 2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각 장의 주제에 따른 장 서문과 목차에 맞는 텍스트 생성 모두 각 2분 내외가 소요됐다. 작업을 지켜보는 내내 놀라움을 넘어 혼란과 혼동이 혼재된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쳤었다고 할 수밖에, 다른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더 수준 높은 글을 얻기 위해 질문을 바꿔가며 다양하게 묻는 일은 없었다. 작업자의 업무는 번역 AI로 사용한 파파고가 한글 목차를 오류 없이 영어로 번역하고 있는지 검수하는 것과 챗GPT가 써낸 원고를 다시 파파고가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역이 없는지를 교차 확인하는 일로 제한했다. 한글 원고를 읽으며 문법적 오류가 있지는 않은지, 주장의 기준이나 설득의 논리가 허무맹랑하지는 않은지 등 투고를 검토하는 에디터의 영역에서 글을 읽었다. 문법적 오류나 띄어쓰기 오류의 정도는 저자들도 쉽게 범하는 범위에 있었고, 심각한 수준의 오류는 없었다는 것이 모든 작업을 진행한 기획자의 판단이다.

 

책의 표지 이미지를 만든 셔터스톡(Shutterstock) AI는 3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다뤄야 했다. 무료 버전은 한계가 분명히 보였다. 현재의 표지는 작업자가 세세한 부분을 지정해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다. 책의 제목과 분야를 영어로 설명하고 각 장의 주제들도 바꿔가며 입력해서 얻어낸 결과물이다. AI의 현주소를 짚어보자는 기획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유료로 전환한 뒤 지속적으로 책에 담긴 정보만을 입력했고 AI는 스스로 그 과정에서 진화했다. 그리고 지금 책 표지의 일러스트를 만들어냈다. 처음 AI는 괴기스럽고 연관성도 없는 일러스트를 내놨지만 수차례 반복적으로 제안하는 인간을 AI가 이겨내지는 못했는지 서너 시간이 지날 즈음 책의 표지로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원고를 생성하고 번역하고 문장 교열과 교정에 이틀이 걸렸다. 조판에 1.5일이 사용됐으며 인쇄소에 협조를 구해 3일 만에 책이 나왔다. 인쇄소에 데이터를 걸고 편집부는 곧장 주요 언론사 70여 곳에 보도 자료를 보냈다. 정성을 다해 책을 만들고 꼼꼼하게 선별해 보내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언론사에서 오후 늦게야 보낸 보도 자료에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주요 지상파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거나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출판사 방문 인터뷰 요청까지, 모두 응할 수 없어 서면이나 유선 전화로 대신하는 일에 2주를 꼬박 보냈다. 기자들은 직업적인 재능을 발휘해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 많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이 깊어지며 더 발전된 생각을 모을 수 있었다. 출판인으로, 업계 종사자로서 여러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의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전했다.

 

하지만 대형서점들은 챗GPT와 AI가 만들어 낸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 도서를 전면 노출에서 제외시켰다. 챗GPT를 활용한 책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매우 폭발적이었지만 챗GPT를 다룬 다수의 책이 판매 가교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사람이 아닌 AI가 쓴 글을 인간 저자가 쓴 글과 동일하게 인정할 것인지조차 따져보지 못한 시점 아닌가. 앞으로 챗GPT를 단독 저자로 내세운 책이 무분별하게 출간되거나 공저 혹은 제1저자로 사용된 책이 출간될 경우 출판계에 혼란이 커질 수 있는, 부담되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출판인은 언제나 대중의 필요를 먼저 인식하고 글로써 압축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세대의 누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어떤 필요를 느끼고 있는지 깨어 살피는 멋진 직업이 바로 출판이다. 하지만 출판계 전반이 축소되고 시장이 위협받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너무 몰입해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현재, 우리의 시선이 울타리 밖을 보지 못하는 형국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에디터는 그동안 이미 집필이 완료된 원고를 투고 받고 선별해 선택하는 대부분의 행위로 창조적인 기획자로서의 발전 기회에 게을렀다. 에이전시를 통해 출간된 해외 원서를 찾고, 베스트셀러 순위 여부에 따라 선인세가 결정되며, 계약 경쟁이 가열되는 종국의 ‘업’의 방식과 에디터의 일하는 방식에서도 많은 부분 탈피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에디터 각자는 원고를 만지는 작업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정과 교열 전문가는 앞으로 필수 인재가 아니다.

 

출판 종사자 모두는 대중의 필요를 해소해주는 선봉에 있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대중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선행해 고려하고 어떤 주제를 주요점으로 다뤄 책으로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챗GPT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빙(Bing), 그 외 글로벌 기업에서 연이어 오픈될 다양한 AI를 활용해 일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발된 기획 건들이 전문성이 담보되는 각각의 사회 전문가들에게 제공되고 집필로 연결될 수 있도록 편집팀이 운영된다면 책을 필요로 하는 대중의 인식을 더 크게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모바일 기기의 사용이 늘고 매체의 폭발적 다양성이 뒤덮은 시대에서 책이 고루한 것으로 여겨질 뻔한 상황을 챗GPT를 포함한 다양한 AI의 출현으로 오히려 전화위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로 바라보는 출판계 전체의 인식 변화는 즉시 이뤄져야 한다.

 

출판계 종사 20년 차를 앞둔 개인적인 관점에서 챗GPT와 AI들의 출현은 위기와 기회 모두를 가지고 있는 양날의 칼이다. 종국에는 교정과 교열에만 뛰어난 에디터는 반드시 AI의 위협을 받을 것이다. 콘텐츠를 고르고 잘 선별하는 것만이 유일한 특장점인 에디터는 없다. 그 정도 실력은 이미 평균 수준에 오른 사람들이 에디터이기 때문이다. 에디터가 원고를 만지는 작업자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담보될 수 없다. 반드시 한 차원 더 높은 콘텐츠 창조자의 역할을 겸비해야 한다.

 

번역기를 사용해 원서를 번역한 텍스트를 버젓이 보내면서 역자 신분을 유지하는 불성실한 번역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계에서 저자가 받는 영광된 상을 역자가 함께 받는 것은 그만큼 번역이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치를 인정해 주는 출판계에서 안일한 태도와 적당한 실력으로 만족해온 사람은 누구라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저자라면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열망을 해소해 줄 도구로 AI에 기대는 순간 그저 그런 글을 끌어오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모든 저자는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융합해줄 강력한 도구로써 챗GPT와 AI를 바라봐야 한다. 채워지지 않는 글을 얻는 도구가 아니라 쓸 거리를 풍부하게 만들어줄 획기적인 조수를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작업은 기획자 개인적으로, 출판계 선후배로, 출판사의 대표로, 각기 다른 흥미와 어려움과 현실을 종합적으로 겪게 해준 작업으로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의 20년, 시대의 변화 앞에 무력감을 느끼는 연로한 출판인의 모습이 아닌 경험 많은 노련한 노장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대중의 필요에 앞장서는 할머니 출판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손민규

서진 스노우폭스북스 대표

20년 차를 바라보는 출판인이다. 에디터, 기획, 마케팅 경력을 동시에 키워왔다. 자체 개발한 250여 종의 기획 건을 저자와 연결해 집필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즐겨왔다. 강사, 교수 외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100여 건 이상의 기획안을 제공했으며 그중 70여 종은 책으로 출간되거나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기계발, 경제경영, 에세이를 주요 분야로 작업하고 있으며 4년 연속 베스트셀러이자 300쇄를 돌파한 『돈의 속성』(김승호, 스노우폭스북스, 2020)의 기획자다.
harup1@sfbook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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