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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8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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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 이야기, 책 만드는 사람의 자격]
의사가 웬 출판을

 

 

 

강병철(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2021. 12.


 

의사인데 환자를 보지 않고 출판사를 운영한다고 하면 모두 흥미로워한다. 살기는 캐나다에 사는데 출판사는 한국에 있다고 하면 흥미를 넘어 신기해한다. 출판사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10년경 밴쿠버의 한 도서관에서였다.

 

2005년 12월,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 서귀포에 있던 소아과는 환자가 많아 감당을 못할 정도였다. 보호자들은 나를 신뢰했고, 제주도 내에서는 명사 대접을 받았다. 무엇보다 가난하게 자라 평생 머리를 짓누르던 돈 걱정에서 해방되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은밀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원래 교수가 되고 싶었으나 부친이 병을 얻는 바람에 집안을 떠맡게 되어 개원을 선택했었다. 일차 보건 의료는 보람이 있었지만 지적 자극이 부족했다. 평생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경제적 여유가 생기는 대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영국 여행을 갔다가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자유롭고 다양하며 문화적 전통이 풍부한 유럽에 살아보고 싶었다. 여러 가지로 길을 찾아보았으나 현지에서 직업을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2년여 시간을 공들인 끝에 영국 소아과의사 면허를 딴 것이 2005년 12월이었다.

 

2006년 12월, 모든 것을 잃었다. 영국에 가서 살 거라고 전지훈련(?) 삼아 아이들을 싱가포르로 유학 보냈다.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수면제를 먹고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큰 아이의 정신질환이 발병했다. 유학을 포기하고 가족을 불러들였다. 아이의 상태는 심각했다. 마음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데 어디서도 양질의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라는 책을 원서로 읽었다. 목마르게 원하던 모든 정보가 거기 있었다. 몇 번을 읽고 나서 번역하기로 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모들을 도와야 했다. 주요 정신병 환자가 100만이 넘으므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잘 아는 출판사 대표님을 설득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초판도 다 팔리지 않았다.

 

2008년 3월, 병원을 접고 밴쿠버로 떠났다. 우선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야 했다. 아이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왕따가 심해 견디기 어려웠다. 차별과 경쟁이 덜한 캐나다에서 아이의 학업을 이어가며, 내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영국으로 옮길 예정이었다. 그때 큰 실수를 했다. 한국을 떠나면서 섣불리 투자를 하는 바람에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것이다. 게다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환율이 끝 간 데 없이 치솟았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가진 재주라고는 환자 보는 것과 번역뿐이었다. 상업 번역 시장에 뛰어들었다. 1년도 안 되어 기반을 잡았다. 모두가 나를 원했다. 고된 일이었지만 수입은 어지간한 봉직의만큼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에 살며 번역으로 가솔을 부양한다는 비현실적인 목표가 현실이 되었다. 스스로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어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번역을 하면서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짬짬이 쉬는 시간에 서가를 들여다보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흥미를 끄는 책이 많았지만 역시 건강 도서 섹션에 눈이 갔다.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유통되는 정보의 질과 양이 너무나 부러웠다. 아주 희귀한 병도 의사가 쓴 지침서와 환자가 쓴 투병기가 나와 있었다. 병에 걸린 사람이 사서를 찾아와 정보를 요청하면 좋은 책을 검색해 다른 도서관에 있더라도 반드시 구해 주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의료 접근성이나 의료 이용 관행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선정적인 방송이나 이웃집 사람(!)을 통해 주먹구구식으로 정보를 얻기보다 책을 통해 총체적 정보를 얻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속도가 빠르다고 지식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로 일할 때 환자들에게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겹쳤다. 마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여기서 뭐하니?’ 행복을 찾아 이역만리로 떠나왔는데, 조그만 성공에 취해 또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었다. 의사이자 번역가가 되었으니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출판사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어떻게 한국에 출판사를 한단 말인가? 번역은 할 줄 알아도 제작이나 유통, 마케팅은 백지 아닌가? 책이 그렇게 안 팔린다는데… 그때 정신질환 책이 떠올랐다. 의사로서 전문성을 살려 사람들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정보를 담은 책을 내보고 싶었다. 다른 출판사에 민폐를 끼치기보다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보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일단 네이버와 다음의 출판 카페에 가입하여 게시판의 글을 꼼꼼하게 읽는 일부터 시작했다. 뜻밖의 인연이 찾아왔다. 카페 가입 인사에 적은 간단한 프로필을 보고 제작 실무에 밝은 분이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선생님은 캐나다에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제가 한국에서 콘텐츠를 책으로 만드는 식으로 동업을 하면 어떨까요? 동업은 피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출판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컸다. 동업이 깨지는 이유가 돈 문제 말고 다른 것이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돈 문제라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순진한 착각이었다. 동업을 가로막는 요소는 백만 가지쯤 되었다. 무엇보다 꿈이 다른 사람과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었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소득이 있었다. 출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략 파악했고, 외국 출판사와 직접 접촉하여 계약을 이끌어내면서 저작권과 출판 계약에 관한 기본 개념도 알게 되었다. 실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셈이었다.

 

2013년 11월, “누군가에게 빛이 될 책을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출판사 “꿈꿀자유”가 탄생했다. 당초 목표는 희귀병 환자에게 도움이 될 책을 내는 것이었다. 그런 책을 내자면 회사가 자력으로 굴러가야 했다. 일단 육아서에 집중하여 이익을 창출하고 여력이 생길 때마다 내고 싶은 책을 한 권씩 내자는 전략을 세웠다. 육아서를 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짜 과학, 유사 과학이 근거 없는 공포를 조장하여 사람들을 속이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공부를 시작했다. 실력을 키운 덕에 “안아키” 사태가 터졌을 때 조목조목 과학적 근거를 들어 비판할 수 있었다. 약간의 이름을 얻어 내 자신의 육아책을 쓰고, Yes24에서 운영하는 “채널예스”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다. 저술가로서, 칼럼니스트로서 조금씩 경력이 쌓였으나, 출판사의 경영 상태는 악화일로였다. 규모가 작은 데다 번역을 직접 한 덕에 버텼지만, 나이가 들면서 상업 번역과 출판 번역을 병행하기가 점점 힘들었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2015년 여름,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한국을 강타했다. 의료 체계가 참담하게 무너져 내렸다. 1인 출판에 가까운 회사를 겨우 꾸려가는 주제에 책임감을 느꼈다. 책을 점점 안 읽는다지만, 세상은 책을 읽는 사람이 끌고 간다. 사회에 절박한 문제가 닥쳤을 때 출판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믿는다. 의사이자 출판인인 내가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내야 하지 않을까? 전염병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다 발견한 책이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이다. 솔직히 버거웠다. 너무 길고 방대했으며, 당시 경영 상태로는 제작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원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 선인세를 낮춰 달라고 설득하고, 글자 수를 빡빡하게 채운 포맷으로 제작비를 줄여서 겨우 냈다. 불발이었다. 그나마 수의학계와 환경계에서 입소문을 탄 덕에 조금씩 팔리긴 했지만, 경영을 호전시키기는 역부족이었다.

 

2018년 늦가을, 알마 출판사의 의뢰로 번역한 『뉴로트라이브』가 출간되었다. 자폐의 역사 속에 담긴 기막힌 사연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널리 알리고 싶어 전국을 누비며 10여 차례 북 토크를 열었다. 장애를 지닌 자녀를 돌보며 세상의 편견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위대한 부모들을 만나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다. 어떻게든 신세를 갚고 싶었다. 책 만드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은 역시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나아갈 방향이 보이는 듯했다. 매년 한 권은 장애에 관한 책을 내리라 생각하며 첫 작품으로 고른 것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다. 860쪽짜리 대형 프로젝트였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2019년에는 강연차 천안에 갔다가 『뉴로트라이브』를 감명 깊게 읽으셨다는 부부를 만났다. 알고 보니 정신질환으로 최근 아들을 잃은 분들이었다. 이야기를 듣는데 우리 아이와 너무 비슷했다.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속에 쌓인 회한을 털어 놓으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캐나다에 돌아가서도 두 분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식을 잃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이 얼마나 클지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에 생각이 미쳤다. 출판사를 시작한 뒤에도 계속 복간을 생각했지만 회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청년을 기려 이 책을 복간하면 어떨까?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다면 젊은 영혼도 저세상에서 환히 웃을 수 있지 않을까? 놀랍게도 두 분은 흔쾌히 동의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부모들에게 도움을 주시고자 노력하시는 선생님 모습을 보면서 …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만한 뭔가 없을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제안을 주셔서 너무 기뻤습니다! … 그 비용을 조건 없이 저희가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야 맞는 것 같아요.”

 

2020년 초, 돈이 떨어졌다. 출판사를 열면서 아내에게 1억을 까먹으면 그만두겠노라 약속했었다. 첫해에 6천, 다음 해에 2천을 까먹었다. 2천이 남은 상태로 5년을 버텼는데 이젠 돈이 없었다. 워낙 운영비가 들지 않는 회사이므로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었다. 자폐와 정신질환 책은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까지 내고 그냥 접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몸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여 책을 내도 반응이 너무 없었다. 7년을 했는데 한 달 매출이 200만 원을 조금 웃도는 정도였다. 그냥 내려놓고 쉰다고 생각하니 너무 홀가분해서 눈물이 났다. 그러던 차에 책을 내고 싶은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딱 잘라 거절했다. 지금 문 닫을 궁리를 하는 판국입니다만… 상대는 끈질겼다. 그간 재활의학에서만 논의되었던 장애 문제를 공공의료 차원으로 확대시킬 계기를 마련해보고 싶다고 했다. 허허, 이것 참… 이런 문제를 모른 척하려면 애초에 출판은 뭐 하러 시작했나 싶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너 돈 있냐?’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에라, 모르겠다. 합시다!” 밤새 후회했다. 마누라한테는 뭐라고 한단 말인가!

 

한 달쯤 지나자 대역병이 돌았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가 불티나게 나가기 시작했다. 그해 매출이 지난 7년 매출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았다. 2021년에 출간한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북펀딩에서 1,400만 원이 넘는 자금이 모였다. 당사자 부모의 도움으로 복간된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는 입소문을 타며 돌풍을 일으켰고, 정신질환 가족지침서로 자리를 굳혔다. 이 글은 한국에서 쓰고 있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가 롯데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에 선정되어 지원금 2천만 원을 받았기에 시상식에 참여하려고 한국에 왔다. 불과 2년 사이에 내고 싶은 책을 내는 데에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장애에 관한 책, 올바른 의학 정보를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책을 계속 낼 생각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원고 청탁서는 “책 만드는 사람의 자격”을 주제로 써달라고 했다. 나처럼 만년 출판 초보인 사람이 그런 걸 운운할 자격은 없을 것 같다. 그저 선한 의지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 꿈을 버리지만 않으면 언젠가 실현된다고 믿을 뿐이다. 출판 시장은 어렵다. 이익을 좇아 말도 안 되는 책,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책도 많이 나온다. 남에게 뭘 충고할 생각은 없고, 나만은 부박한 시류에 휩쓸려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원칙대로 살아왔고 손해도 보았지만 후회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하리라. 사실 출판계에는 그런 분들이 많다. 서로 격려하고 연대하여 양질의 정보를 전달한다는 사명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만이 출판도 살고, 사회도 사는 길이다.

강병철

 

강병철(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소아과 전문의로,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다. 『툭하면 아픈 아이, 흔들리지 않고 키우기』, 『이토록 불편한 바이러스』를 썼고,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등 30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www.facebook.com/jason.kang.37
nakc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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