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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9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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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코로나]
코로나19 시대 ‘글로생활자’로 사는 법

 

 

 

구완회(작가)

 

2021. 3.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고 10년 가까이 부지런히 글을 써서 생계를 꾸려 왔지만, 스스로 ‘전업 작가’라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다. 흔히 ‘네이버 사전’이라 불리는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나는 ‘전업 작가’에 별로 부합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전업 작가를 ‘문학 작품이나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 정의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써온 글들은 대부분 가이드나 매뉴얼, 그러니까 각종 설명서에 가까웠다(가장 최근에 쓴 책의 제목 또한 『학부모회 사용설명서』이다).

 

가끔 내 직업을 알려야 하는 자리가 있으면 ‘작가’ 대신 ‘글로생활자’라 소개한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물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다. 몇 해 전에는 어느 공기업 외고를 쓰기 위해 사업자등록증을 만들면서 상호를 ‘글로생활자’라 정하기도 했다. 때로는 ‘글로생활자’, 가끔은 ‘말로생활자’라 소개하기도 한다. 내 수입의 상당 부분이 학교나 도서관 강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그렇다고 그 수입이 상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전업 작가, 혹은 다른 글로생활자들의 사정도 비슷할 거다. 우리나라에서 오로지 글만 써서 먹고사는, ‘진정한 글로생활자’의 숫자는 지극히 미미하다는 것이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을 경신 중인 출판계의 정설이니까. 나도 그렇다. 부지런히 책을 쓰고, 외고를 쓰고, 공모전 심사나 멘토링도 하고, 전국의 학교와 도서관, 지자체 등으로 강연을 다니며 가정 경제를 책임져 왔다. 고 구본형 소장 식으로 말하면 ‘1인 기업’이고, 정부 통계에 따르자면 ‘프리랜서’, 업계 용어로는 ‘1인 자영업자’에 해당한다.

 

다른 자영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비롯한 글로생활자들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 전대미문의 전염병은 업계의 생태계마저 바꿔 놓은 듯하다. 힘들지만 한 해만, 더욱 힘들지만 두 해만 버틴다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어 보인다. 어떻게 하면 버티기를 넘어 적응하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재난의 시대. 코로나19 발생 후 지금까지 좌충우돌해 온 나의 경험을 나눠보려고 한다. 내 보잘것없는 경험이 재난의 시대를 함께 넘으려는 분들께 작은 시사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코로나19가 만든 명과 암

 

처음에는 상상도 못 했다. 중국 우한에서 정체 모를 폐렴이 급속히 퍼진다는 뉴스를 듣고, 잠시 고민하다 오래전 예매한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일상이 통째로 바뀔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다른 세상이 나를 맞이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가장 즉각적이고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곳은 여행업계였다. 덕분에 여행 관련 외고도 심각하게 줄어들었다. 나는 여행 잡지에서 일하고 가이드북 편집장을 한 덕분에 꾸준히 여행 외고를 써 왔다. 하지만 여행이 사라진 세상에선 여행 외고 또한 필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관광공사와 여러 지자체에서 해마다 만들던 각종 온·오프라인 여행 콘텐츠가 사라진 것이 타격이었다. 지난겨울, 2020년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지자체 팸투어에서 만난 여행 작가가 말했다.

 

“일이 없어요. 진짜 하나도 없어요.”

 

나도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 외고와 비슷한 충격이 강연에서 왔다. 처음에는 하나둘 연기되더니, 나중에는 줄줄이 취소되었다. 운 좋게 몇몇 코로나19 확진자가 적은 지역의 강연이 예정대로 진행되어 겨우 숨통이 좀 트였다. 나중에는 온라인 강연으로 바뀌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강연 수입은 예년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의 ‘글로생활’이 여유로웠던 건 아니다. 이는 고려대국어대사전의 전업 작가 항목에 딸려 나오는 예문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전업 작가가 된 후로 그녀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어렵사리 유지하던 생계가 코로나19로 인해 경각에 달리게 된 것이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일까. 다행히 어린이 책 인세가 예년에 비해 좀 늘었다. 나중에 출판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또한 코로나19가 만든 현상이었다. 등교 수업을 못하면서 어린이 책 매출이 전반적으로 늘었던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어린이 역사책을 십여 권 출간해 놓은 것이 나름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혜택(?)을 본 곳은 어린이 책만이 아니란다. 문학과 청소년, 그리고 주식과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경영서들도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이런 분야의 상품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는 대형출판사들은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언택트 시대’의 수혜주인 온라인 서점도 배달 업계만큼은 아니지만 예년보다 매출이 크게 늘었단다.

 

문제는 코로나19의 명보다 암이 훨씬 더 크고 짙다는 점이다. 몇몇 분야를 뺀 출판시장 전반은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이어갔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추지 못한 작은 출판사들의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저마다 독특한 색깔로 지역의 문화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던 독립서점들의 처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출판시장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 것이다. 작가들의 경우에는 강연 시장 등의 위축으로 수입이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기도 분야별, 개인별로 격차가 크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궁즉변, 변즉통?

 

개인적으로는 공공도서관이 오랫동안 문을 닫은 것도 어려움을 더했다. 원고 작업을 주로 집 근처의 공공도서관에서 했던 탓이다. 차선책으로 이용하던 카페도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날이 많아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조금 완화되어 좌석의 일부를 이용할 수 있다 해도 오랜 시간 작업을 하긴 힘들었다. 집에서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 번잡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어 집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는 확실히 작업 능률이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온라인 강연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특히 청중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어려웠다. 오프라인 강연에서는 강사가 일방적으로 떠든다 해도 매 순간 청중과의 교감이 일어난다.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 것 같은 청중들도 강단에서 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걸 느낄 수 있다. 강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이렇게 미묘한 반응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즉시 강연에 반영하는 스킬이 늘어난다. 청중의 눈빛만 봐도 강연에서 어떤 내용을 강조해야 하고 어떤 것을 빼야 하는지 ‘느낌’이 오는 것이다. 이 느낌에 따르다 보면 똑같은 강의안으로 시작해도 전혀 다른 강연으로 끝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온라인 강연에서는 도무지 청중들의 반응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어린이들은 대부분 비디오를 켜고 있어서 표정이라도 좀 볼 수 있지만, 어른들은 닉네임만 남은 검정 화면 일색이라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한두 번 경험이 쌓이니 조금씩 노하우가 늘었다. 어린 청중과는 주로 채팅창을 이용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무표정한 아이들도 채팅창에서는 시끌거렸다. 작은 선물을 걸고 퀴즈라도 내면 채팅창에 난리가 났다. 어른들의 채팅창은 대체로 조용하지만 자꾸 말을 걸면 조금씩 반응이 왔다. 특히 강연을 시작하면서 잠시 비디오를 켜고 인사를 나누면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

 

어느 정도 온라인 강연에 적응되니 내친김에 유튜브를 해보자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는 비슷한 일을 하는 친구와 함께 유튜브 채널을 준비 중이다. 중년 아재 둘이서 하는 동영상이 얼마나 시선을 끌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아마도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궁하면 변한다[窮卽變]’라는 옛말은 21세기에도 진리였다. ‘변하면 통한다[變卽通]’는 말까지 실현된다면 좋겠지만, 당장은 통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계속 변해볼 생각이다. 변화가 쌓일수록 통할 확률도 높아질 테니까.

 

글쓰기도 조금씩 변화를 주려고 한다. 이제까지 주로 쓰던 여행과 역사에 더해 좀 더 다양한 분야를 두드려볼 생각이다. 앞서 언급한 『학부모회 사용설명서』도 그런 맥락에서 쓴 책이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우연히 시작하게 된 4년간의 학부모회 활동을 책으로 묶어냈다. 이 과정에서 함께한 학부모들이 손을 보탰고, 우리는 내친김에 교육시민단체까지 만들었다. 글로생활자로 쌓은 노하우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에 도움이 되어 기뻤다. 앞으로의 활동도 새로운 글과 책으로 묶어낼 계획이다.

 

재난의 시대, 함께 살아가기

 

글을 쓰고 책을 써서 먹고 사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글쓰기, 책쓰기를 권하는 책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간다. 관련 강좌 또한 우후죽순이다. 그것도 취미로, 혹은 SNS에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가이드가 아니라 ‘책을 써서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성공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대다수다. 자신의 노하우를 배우기만 하면 몇 달, 심지어 몇 주 만에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다는 책들도 상당수다(아이러니한 건 이런 책의 저자 중에 베스트셀러를 낸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성공을 위해 모두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뛰어드는 것보다는 책을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글로생활자 입장에서 잠재적 경쟁자들이 늘어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모두가 책을 쓰기 위해서는 모두가 책을 읽어야 할 테니, 경쟁자 그룹보다 출판시장이 훨씬 더 커져 좋을 것 같다(해마다 최저를 갱신하는 1인당 독서 통계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모두가 저마다의 성공을 위해 각자도생하는 것보다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아닐까? ‘IMF 사태’가 우리 사회를 각자도생으로 내몰았다면, 코로나19는 천덕꾸러기가 된 지원과 연대를 불러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자체에는 일치단결인 정치권을 보면 그렇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위기를 맞은 자영업자 재난지원금과 함께 프리랜서에 대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이 지급되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처지의 프리랜서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우리야 다른 자영업자들처럼 임대료나 인건비가 나가는 것이 아니기에 더 그렇다. 그래도 지원 규모와 대상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일회성 지원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향후 일상화될 재난을 모두가 견딜 수 있는 사회적 안정망이 갖춰지길 바란다. 덕분에 각자도생만 횡행하던 우리 사회에 재난을 함께 헤쳐가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좋겠다.

 

이번 기회에 비슷한 처지의 전업 작가, 혹은 글로생활자들이 연대하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 작년 말 ‘해촉증명서’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이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사연은 이렇다. 원고료처럼 일시적인 소득을 근거로 다락처럼 오른 건강보험료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업체마다 연락해서 해촉증명서를 떼는 데 지쳐버린 프리랜서 작가가 있었다(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 그가 건강보험공단과의 작은 싸움을 통해 공단에서 직접 해촉증명서를 떼기로 했다는 승전보(?)를 SNS에 올리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수많은 축하와 칭송의 댓글을 달았단다. 이는 청와대 청원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해촉증명서 없이 건보료를 재조정할 수 있는 법안까지 발의되었다.

 

얼마 전에는 프리랜서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국단위 일반노조인 ‘전국연대노조’가 한국노총 산하에 설치되었다. 전국의 글로생활자들이 연대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된 셈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 곳곳에 고립되어 각자도생에 내몰리던 많은 이들이 서로 손을 잡았으면 좋겠다. 또한 더 다양한 이들을 품는 연대 조직들이 생겨나 우리 사회를 바꿨으면 좋겠다.

구완회(작가)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과 함께 퇴사하고 20개월의 세계일주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는 중이다. 저서로 『크레이지 허니문 604』, 『아빠가 알려주는 문화유적 안내판』, 『열두 달 놀토 아빠표 체험 여행』, 『재미있다! 한국사』, 『조선 사람의 하루』, 『학부모회 사용설명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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