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5 2021. 09.
[출판계 주류의 변화]
이기문(조선일보 편집국 문화부 기자)
2021. 9.
‘작가들의 지형도’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요즘 ‘잘나가는 작가’는 과거와 무엇이 다를까. ‘작가’ 개인의 언어 예술인 문학은 언제나 ‘독자’를 시장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작가의 변화는 곧 독자, 그리고 시장의 변화와 함께일 수밖에 없다.
‘문학의 위축’, ‘쪼그라든 문학’이라는 말은 이제 시장을 설명하는 클리셰 문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야기의 왕’으로서의 문학은 이제 그 왕관을 영화를 넘어 유튜브와 넷플릭스, 트위치로 대변되는 영상과 게임 콘텐츠에 넘겨준 듯 보인다.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대중문화로서 문학은 급격히 왜소해졌다. 인기가 있다 싶으면 100만 부 판매가 거뜬했던 소설책 판매량은 이제는 나올 수 없는 과거의 영광, 혹은 향수가 됐다. 지금은 ‘10만 부 판매 기념 에디션’을 낸 소설가가 대중에 선택된 작가로서 박수갈채를 - 그것도 ‘아는’ 사람들에게서만 - 받는다. 출간 1년 안에 1만 부 고지를 밟는 국내 저자가 백 명이 되네 마네 하는 요즘, 출판 시장에서 10만 부 판매는 하나의 사건처럼 취급받는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한 문학 전문 출판사 대표는 최근 내게 이렇게 말했다. “소설책 1쇄를 보통 1,000부, 많으면 2,000부 찍는데 신인 작가의 경우 증쇄(2쇄)하는 경우가 열에 하나 있을까 말까예요.” 1만 부만 팔리면 베스트셀러 대접을 받는다. 책을 열렬히 소비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탓에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는 요동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다시 해볼 수 있다. ‘문학 시장’ 혹은 ‘출판 시장’은 지배적인 대중문화 시장이 더는 아니라는 사실을. 책은, 더 나아가 문학은 찾는 사람만 찾고, 보는 사람만 본다는 현실을. 문학 독자는 대중의 작은 일부라는 진실을 거부할 사람은 이제 많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정말 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읽지 않는다.
그렇기에 달라진 작가의 지형도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현재 문학 시장을 이끄는 주요 소비자층에 대한 분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학을 향유하는 주요 독자층은 ‘20~40대 여성’이다. 한국 문학 시장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소중한 독자들이다.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주변의 30대 남자들은 여가 시간에 대부분 유튜브·넷플릭스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 정기적으로 책에 돈을 지출하는 기특한 남자들은 주로 주식 등 경제·경영 실용서를 찾는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에 소설·시·희곡 분야 도서를 구매한 남녀 성비는 약 3:7로 여성 독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30대 여성들은 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활발히 이용해 특정 문학 작품에 대한 반응, 더 나아가 트렌드를 이끌어내는 반면, 40·50대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지갑을 열고 문학을 즐긴다.
따라서 20·30대 여성으로부터 적극적으로 호명되는 작품과 작가가 시장의 주류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여성의 삶과 부조리를 다룬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여성들의 대대적인 호응을 얻으며 2016년 사회 신드롬이 됐던 예가 대표적이다. 『82년생 김지영』은 2009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며 페미니즘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이와 함께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대표되는 퀴어 소설 또한 여성 독자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뚜렷한 문학 경향이 됐다.
2016년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 사건과 문화·예술계 성폭력, 미투 운동 등으로 이어진 흐름 속에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발화하기 시작했고, 문학의 주요 독자인 여성들의 광범한 사랑을 받았다. 소설가 강화길, 박민정, 백수린, 정세랑, 최은영, 최은미 등도 여성들의 서사를 앞세우며 한국 소설을 지탱했다.
재미와 장르
등단한 지 11년이 된 40대 남성 소설가는 내게 말했다. “정말 슬픈 일이지만, 문학의 경쟁 상대는 이제 넷플릭스, 유튜브, 트위치예요.” 이제 예전처럼 다른 문학 작품과의 예술적 싸움, 혹은 문학적 성취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옛날, 문학의 전성시대엔 ‘거대 담론’이 있었다. 대중은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에 투신하긴 어려워도 접속하길 원했고, 소설은 그 대중에게 ‘사람이라면 응당 이런 삶을 살아야지’라는 감각을 피부에 와닿도록 대리 경험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때의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잘, 혹은 멋지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어떤 무언가를 느꼈다. 거대 담론을 체화시킨 존재는 소설 속 인물이었다. 그들은 독자에게 자존감 - 낮춰 말하자면 ‘뽕’ - 을 선사했다. 힙합의 ‘스웨그(멋을 가리키는 은어)’가 힙합 팬들의 자존감을 올려주듯, 당시엔 소설 읽는 행위가 이런 ‘스웨그’를 줬다는 것이다.
거대 담론과 거대 서사가 붕괴한 시대에, 그런 로망은 사라졌다. 일터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 쉬는 사람에게 유튜브냐, 넷플릭스냐, 게임이냐, 문학이냐를 놓고 보자. 문학은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상응할 만한 무언가를 해주지 않으면 선택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 소설가는 출판사 편집자에게 이런 농담을 종종 한다고 했다. 이제는 화장실에서 읽을 만한 문예지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학 작품이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순간을 노릴 수 있는 공간은 화장실밖에 남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이런 슬픈 현실에선 ‘재미’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 재미를 주지 않으면 소설은 여가 선용의 수단에서 단박에 제외된다.
재밌는 소설, 다시 말해 쉽게 읽히면서 문학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소설이 필요해졌다. ‘현실의 직장인의 삶을 다루면서도 쉽고 재미있으면서 빠르게 읽힌다’는 평가를 듣는 장류진이 문단의 주목을 받는 소설가가 됐다. 과학 소설(SF) 등 문학의 변방에 불과했던 장르 소설이 주류로 떠오른 이유 역시 여기에 있는 듯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 『천 개의 파랑』의 천선란, 전자책에서 입소문으로 시작해 오프라인 서점에서 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른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이미예가 시대의 요구에 맞춰 소환됐다.
SF와 판타지 등 장르 문학은 국내에서 유독 ‘하위문화’ 취급을 받았지만 젊은 얼굴들이 등장하고, 대중의 선택을 받으며 주목받는 주류 문학으로 당당히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다 준 암담함 때문에 미래에 대한 상상이나 판타지의 힘을 빌린 소설이 젊은 독자들의 관심과 지지에 힘입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상위 자리를 차지했다.
독자와 만나기 위해 ‘움직이는’ 작가들
“김영하의 북클럽” ‘라방’ 모습 ⓒ 김영하 인스타그램
웬만한 출판사 대부분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채널을 운영한다. 신간이 출간되면 작가는 출판사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출연해 ‘라방(라이브방송)’을 한다. 화상 회의 프로그램 “줌”을 이용해 출간 기념회를 열기도 한다. 코로나19 펜데믹이 변화를 가속화했지만, 근본적으로 기술과 시대와 시장이 변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옛날처럼 신작 출간을 하면 출판사 사무실에서 문학 담당 신문·방송 기자들만 만나 인터뷰를 해서는 흥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수의 문학 주요 독자들을 제외하곤, 일반 대중들은 더는 신문이나 문예지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각종 언론사 서평을 통해 신작을 소개받아 지갑을 열지 않는다. 아니, 온라인 간편 결제를 하지 않는다.
그 역할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이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온라인 동영상이 담당한다. 내 소셜 미디어 ‘피드’에 작가와 작품이 올라오느냐, 그리고 소셜 미디어 친구나 또래 독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느냐가 중요해진다. 젊은 독자들은 자신의 미디어에 친숙한 작가, 그러니까 주로 젊은 작가들을 더욱 찾게 된다. 독자들의 팬덤도, 앞서 언급했듯 문학 시장이 아무리 ‘작은 시장’일지라도, 온라인상에서 강하게 결집해 나타난다. 출판사가 이들과 접점을 늘려나가려 더욱 온라인 마케팅에 매진하는 이유다.
출판 시장 불황에 따른 ‘전업 작가’ 종말 시대, 작가에겐 엔터테이너의 기질이 요구된다. 작품만 써서는, 작품만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문학 시장이 척박해졌다. 좋든 싫든 간에 기회가 되는 대로 ‘라방’에, 유튜브에, 줌에, 더 나아가 시사·교양 예능 방송에 나가서 작품과 자신을 부지런히 알려야 한다. 혹은 지속적으로 독자층에 얼굴을 보여야 작가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작가로 살기에 유리해졌다.
소설가 장강명은 tvN 프로그램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에, 소설가 김중혁은 KBS2 “대화의 희열2”에 고정 패널로 출연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정기적으로 ‘라방’을 열고 9.2만 팔로워를 상대로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소설가 장강명 ⓒ tvN
소설가 김중혁 ⓒ KBS2
작가의 양극화
다시 말하지만, 책과 문학은 지배적인 대중문화 콘텐츠가 아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흥행작은 기존의 열성 독자를 넘어 일반 대중으로까지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대중 영향력이 큰 각종 시사·교양 예능 방송이 중요해졌다.
이 중 최고는 방송인 유재석이 진행하는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같다. ‘유느님(유재석)’의 질문을 받은 작가는 연예인이 되고, 작품은 흥행작이 된다. 소설가 정세랑, 정유정이 유퀴즈에 출연했다. 아쉬운 점은 유퀴즈에 ‘섭외되는’ 작가는 이름난 작가라는 점에 있다. 방송은 시청률을 위해 이미 충분히 알려진, 인지도 있는 작가를 부르고, 그 작가는 방송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다.
지난 6월 정유정의 장편 신작 『완전한 행복』이 출간된 직후 출판사 은행나무 사옥에 갔더니 ‘정유정 작가, 유퀴즈 출연’이란 문구의 포스터가 사내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었다. 10·20대 충성 시청자를 거느린 유퀴즈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정유정 작가가 유퀴즈 방송에 출연한 이후, 그를 몰랐던 10·20대 신규 독자들이 출판 시장에 대거 유입하면서 작가의 신작뿐 아니라 과거 작품들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정유정 작가와 작품의 힘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과거에도 신작 소설을 낼 때마다 예전 작품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다시 올렸으니까. 다만 이번 유퀴즈 출연을 통해 그 힘이 보다 증폭됐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유느님’은 흥행을 보증하는 이 시대의 강력한 미디어이자 홍보 채널이다. 비슷한 위치에 넷플릭스가 있다.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를 영상화한 넷플릭스 드라마 예고편이 공개된 순간부터 판매량이 늘어나며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역주행을 했다.
소설가 정세랑, 정유정의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 모습 ⓒ tvN
새로운 작가? 이미 유명한 작가?
사정이 이럴진대 출판사 입장에서 최소한 망하지 않고, 나아가 흥행을 노려볼 수 있는 손쉬운 출간 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구독자 수십만 명을 거느린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인플루언서를 출판 시장에 소개하는 일이다. 요즘 베스트셀러 목록엔 종종 ‘스타 유튜버’의 에세이가 새롭게 등장한다. 새로운 작가의 발굴인지, 허약한 출판 시장의 한 단면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 다만 대중에 소구할 만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일은 언제나 출판사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었고, 출판사 관계자들은 늘 ‘작가가 없다’며 눈에 불을 켜고 새로운 얼굴을 찾는다. 최근에 직업, 취미, 동네, 음식 등을 소재로 한 에세이가 사랑을 받는 이유도, 취향과 기호가 분명하고 거대 담론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MZ 세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들은 스스로 출판·문학 시장에 걸어 들어오지 않는다. 새로운 작가와 작품, 새로운 시도로 끊임없이 그들을 찾아가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작가의 스타성이 없으면 독자를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아무리 양극화의 시대라 할지라도 세상에 처음부터 유명한 작가는 없었다. 다양한 개성으로 무장한 작품들이 보다 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렸으면 좋겠다. 젊은 사람들은 이제 책을 손에 잡지 않는다고? 앞서 말한 ‘등단 11년, 40대 남성 소설가’의 입을 빌려 대답하고 싶다. “제가 전혀 희망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해리포터』 때문이에요. 지금 20대 중반들은 『해리포터』를 읽고 자란 세대거든요. 그 친구들은 독서만이 주는 즐거움을 경험해본 친구들입니다. 아직 그 친구들이 문학 시장에 들어와 시장을 지탱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이 주는 기쁨을 알고 있거든요. 아직 희망을 포기하면 안 돼요. 분명히는, 우리가 그 친구들이 원하는 걸 못 주고 있을 뿐이죠.”
이기문(조선일보 편집국 문화부 기자) 2011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국제부, 여론독자부, 산업부를 거쳐 문화부에서 일하고 있다. 1987년 태어났고 카이스트에서 경영과학(現 기술경영학)을 전공했다. 게임 회사 창업 이야기를 담은 책 『크래프톤 웨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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