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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1  2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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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과 출판]
충성 독자층을 구축하라: 출판계 팬덤 열풍

 

 

 

곽아람(〈조선일보〉 Books 팀장)

 

2023. 03.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독서 인구 비중은 50.6%. 2011년 61.8% 이후로 매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독서 인구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는 14.4권으로 최근 10년간 최하를 기록했다. 갈수록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 더 이상 출판 시장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매스 마케팅(mass marketing)은 먹히지 않는다. 차라리 넷플릭스와 소셜 미디어가 유혹하더라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며, 웬만해선 배신하지 않을 충성 독자층을 다져 그들을 타깃으로 한 책을 만드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다. 저자에 대한 팬덤에만 기대도 충분히 책이 판매되던 시대는 끝났다. 저자를 넘어 출판사 자체에 대한 팬덤을 구축하고, 이를 발판 삼아 각 출판사의 색깔이 분명히 드러나는 책을 출간하고, 독자들의 취향을 공격해야 살아남을까 말까 한 시대가 왔다. 팬덤 형성을 통해 충성 독자층을 붙잡으려는 출판계의 여러 시도를 짚어봤다.

 

우리 출판사를 지지해 주세요: ‘팬클럽’ 아닌 ‘북클럽’ 시대

 

충성 독자를 잡아라! 요즘 출판계에선 북클럽 ‘고객’ 모시기가 한창이다. 이름은 ‘북클럽’이지만 사실상 특정 출판사를 향한 ‘팬클럽’이다. 회원들은 아끼고 좋아하는 출판사를 지지하며 연대감을 형성하고,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마음을 다해 ‘밀어준다.’ 기존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대형 출판사들 중심으로 북클럽이 운영됐지만, 북클럽을 보유하는 것이 마케팅에 도움이 되다 보니 이젠 중소 출판사들도 점점 북클럽 운영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가 지난해 북클럽을 론칭한 유유 출판사. 분기당 100~200명씩을 모집, 매월 나오는 신간을 가장 먼저 받아볼 수 있도록 한다. 편집자의 편집 후기 및 전문가의 독서 가이드가 실린 레터도 동봉한다. 회원들이 연간 받아보는 3권 중 한 권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B컷 디자인으로 제작한다. 가입비는 4~6만 원 선. 조성웅 유유 대표는 “독자와 직접 소통하기 위한 창구를 마련하고 싶었다.”라고 했다.

 

원한다고 해서 다 북클럽 회원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판사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회원들의 충성도를 가늠한다.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수질(水質) 관리’인 셈이다. 2018년 북클럽을 론칭한 마음산책의 경우 매년 50~100명씩을 뽑는다. 이 과정에서 지원자들의 소셜 미디어 활동을 살피는 등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단순히 소셜 미디어 팔로우 수가 많은 독자가 아니라 책 읽기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감상문까지 쓸 수 있는 독자들 위주로 선발한다”면서 “평균 경쟁률이 5:1 정도”라고 했다. 마음산책 출판사는 북클럽 회원들만 참석 가능한 프라이빗 북토크를 매년 네 차례씩 개설한다.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팬층을 향해 구애하는 셈이다.

 

지난해 마음산책이 윤가은 감독의 『호호호』를 출간한 후 열었던 북클럽 회원 대상 토크 장면

지난해 마음산책이 윤가은 감독의 『호호호』를 출간한 후 열었던 북클럽 회원 대상 토크 장면

 

 

2018년 시작한 문학동네 북클럽도 회원만 참여가 가능한 프리미엄 강연회를 연다. 지난해엔 소설가 은희경, 그림책 작가 루리, 보건학자 김승섭 등이 강연자로 나섰다. 회원들에게 북파우치를 비롯한 가입 선물을 제공하며, 자회사인 카페꼼마 커피 50% 할인 혜택 등도 제공한다. 가입 선물을 정할 때는 이전 기수 회원들에게 설문을 돌려 의견을 청취한다. 회원들의 반응이 마케팅에 참고할 일종의 ‘빅 데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누적 2만 명 이상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면서 “서점을 거치지 않고 도서를 가장 직접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는 내부의 판단이 있어 북클럽을 운영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실제로 북클럽을 운영해 보니 단순히 소비자와 제조사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소통을 하면서 서로 애착을 느끼게 되더라. 회원들끼리 같은 책을 읽으며 서로 내적 친밀감을 표현할 수 있으니 회원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했다.

 

2011년부터 북클럽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는 민음사는 지난해 선착순으로 북클럽 회원 7,000명을 모집했는데 두 달 만에 정원이 마감됐다. 이유진 민음사 마케팅부 과장은 “북클럽 회원들을 위한 특별 선물로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작품 등 세계문학전집 특별 에디션과 북파우치를 제작했는데 굿즈가 좋은 반응을 받으면서 회원권도 매진됐다”고 했다. 민음사 역시 북클럽을 운영하는 이유를 “책을 매개로 직접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평균 5만 원 선인 가입비로 책과 선물, 강연회 티켓 등을 제공하면 당장은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렇지만 출판사들은 독자들을 위한 ‘취향의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책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우리 독자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 출판사를 좋아하는 회원이 1,000명 이상만 모이면 판매에 대한 큰 부담 없이 어떤 책이든 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향후에 북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기존에는 판매 부담이 돼 시도하지 못했던 실험적인 책도 내 볼 계획”이라고 했다.

 

좋아하는 작가와 책을 후원해 주세요: 북펀딩 유행

 

북펀딩 진행은 북클럽 운영과 함께 출판사들이 팬덤을 형성하는 또 다른 창구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지난 1월 진행한 『반지의 제왕』(J.R.R. 톨킨, 김보원 옮김, 아르테, 2023) 일러스트 특별판 독자 북펀드 모금액은 2억 435만 1,600원을 달성했다. 참여자는 958명으로, 이 특별판에는 1,280쪽짜리 양장본으로 저자 J.R.R. 톨킨(J.R.R. Tolkien)이 직접 쓰고 그린 일러스트, 지도, 스케치 30여 컷이 수록됐다. 책 가격은 23만 원. 펀딩 첫날에 이미 목표 금액 2,000만 원을 달성했다. 펀딩 후원자들에겐 톨킨 작품에 나오는 ‘요정어(語)’로 이름을 인쇄해 초판 1쇄에 수록해 준다. 3월 중순 이 책을 출간하는 아르테 출판사 김지연 팀장은 “『반지의 제왕』 팬층을 위한 이벤트를 고민하다가 북펀딩을 진행했다. 고가의 책이라 수요를 파악하고 제작비를 일부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알라딘 『반지의 제왕』 북펀딩 화면

알라딘 『반지의 제왕』 북펀딩 화면

 

 

북펀딩은 제작비 모금과 마케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방편이면서, 팬덤 구축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의 경우 지난 5년간 북펀딩 프로젝트 수는 2.7배, 후원자 수는 3배, 후원 금액은 3.6배 이상 성장했다. 안재욱 텀블벅 매니저는 “지난해엔 텀블벅 전체 펀딩 수에서 출판이 25%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면서 “2011년 서비스 시작 이후 4만 건 넘게 진행했고, 2,000억 원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라고 말했다.

 

북펀딩 도입 초기엔 제작비 조달이 어려운 1인 출판사 위주로 진행됐지만, 요즘은 중견 출판사들도 활발히 뛰어든다. 우선 펀딩 플랫폼이나 서점 홈페이지 등에 책이 노출되는 효과를 노릴 수 있고, 더 나아가 마니아 독자층의 ‘팬심(心)’을 통한 마케팅 효과를 장기적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디치미디어는 지난해 말 예스24의 북펀딩 플랫폼 ‘그래제본소’를 통해 일본 아동문학 연구자 이케다 마사요시(池田正孝)의 『세계명작 동화를 둘러싼 40년의 여행』(이케다 마사요시, 황진희 외 옮김, 미음, 2022)을 출간했다. 펀딩 목표액은 100만 원. 제작비라 하기에는 낮은 액수다. 이온누리 메디치미디어 과장은 “저자 인지도가 낮은 책이라 홍보 목적으로 펀딩했다. 초판본 삽지(揷紙)에 후원자들 이름을 넣고 후원자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처럼 가장 먼저 받아보도록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북펀딩 프로젝트가 후원자 이름을 초판본에 수록하는 이벤트를 연다. 후원에 참여한 독자들에게 ‘내가 이 책을 밀어줬다’는 뿌듯함과 재미를 주고, 후원자들이 자기 이름을 사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면 입소문 효과까지 톡톡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책이 북펀딩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대중적이지는 않아도 마니아층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북펀딩 성공의 필수 요건이다. 북클럽과 마찬가지로 북펀딩 사이트도 팬들이 결속해 모여 놀 수 있는 장(場)으로 작용한다. 영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더 스크린이 지난해 가을 텀블벅 펀딩을 통해 제작한 단행본 『마침내, 박찬욱』(더 스크린, 2022)이 대표적인 예다.

 

이 책은 “2022 충무로영화제-감독주간”의 박찬욱 감독 데뷔 30주년 기획 도서로 박찬욱 감독의 칼럼, 인터뷰, 대담 등을 총망라해 텀블벅에서만 구매 가능하도록 했다. 목표 금액은 1,000권 제작비인 6,500만 원. 한 달간 모금액은 3억 3,444만 1,000원으로 목표 금액의 514%를 달성했다. 안재욱 매니저는 “단순한 상품 판매·구매 행위가 아니라 후원자들의 응원과 지지를 기반으로 출판이 이뤄진다는 것이 북펀딩의 가장 특별한 점”이라고 했다. 예스24는 독자들의 재판매 요청으로 충분한 수요가 예측되거나, SF·판타지·만화 등 장르물로 한정판 소장에 대한 팬층이 있는 도서 위주로 펀딩을 진행한다. 박태준 알라딘 도서4팀 대리는 “넓지는 않지만 확실한 지지를 받는 작가 작품, 학술적 성과가 분명하나 대중성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 등 우리 독자 성향에 맞는 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자가 직접 펀딩을 진행한 책이 출판사의 눈에 띄어 출간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놀 출판사에서 출간된 정해나 작가의 만화 『요나단의 목소리』(정해나, 놀, 2022)가 그런 사례다. 3권 세트의 목표 금액은 2,500만 원, 모금액은 4,351만 4,000원으로 2021년 텀블벅 만화 매출 2위를 기록했다. 김한솔 놀 편집자는 “텀블벅 펀딩을 보고 작품을 알게 됐다. ‘교회 내 성소수자’라는 특수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저자 명성 같은 다른 근거가 없으면 큰 출판사에서 채택하긴 어려웠다. 텀블벅에서 보여준 반응이 있으니 출간하자고 회사에 강력하게 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책인가, 굿즈인가: 대본집 인기

 

영화나 드라마 대본집을 전통적 의미에서의 ‘책’이라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책’이라기보다는 영화나 드라마 팬들을 위한 ‘굿즈’라 볼 수 있겠다. 드라마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가 출판 시장의 다크호스로 등장한 것은 지난 2017년 무렵. 2017년 9월 2주 알라딘 예술·대중문화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는 드라마 대본·영화 각본집이 여섯 권 포함돼 있었다. 드라마 〈청춘시대〉 시즌 1 대본집 상·하권이 각각 2위와 4위, 일본 영화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도쿄 이야기〉 각본집인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오즈 야스지로, 박창학 옮김, 마음산책, 2017)가 3위였다. 5위는 김종관 감독의 영화 〈더 테이블〉 시나리오, 6위와 7위는 드라마 〈비밀의 숲〉 대본집 1·2권이 차지했다.

 

대본집의 기세는 갈수록 대단해졌다. 지난달 말 출간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대본집은 출간과 동시에 교보문고 예술 분야 1위에 올랐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대본집은 지난해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19위를 차지했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대본집 등 영화·드라마 연계 도서는 모두 78종이 나왔다. 지난 2018년엔 35종, 2019년 44종, 2021년 71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판매량도 전년 대비 139% 성장했다.

 

예스24 <헤어질 결심> 대본집 판매 화면

예스24 〈헤어질 결심〉 대본집 판매 화면

 

 

대본집이 출간되는 드라마·영화 역시 북펀딩 대상 도서와 마찬가지로 흥행 히트작보다는 골수팬이 있는 작품이다. 한 예로 〈비밀의 숲〉은 최고 시청률 6.6%(닐슨코리아 제공)에 그쳤지만 한국 드라마의 전형성에 빠지지 않았다는 찬사를 받으며 탄탄한 팬층을 만들었다. 〈비밀의 숲〉의 대본집을 낸 북로그컴퍼니 관계자는 “인터넷 서점에 서지 정보만 등록한 날에도 팬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각 권마다 300부 넘게 주문이 들어왔다”고 했다. 이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1·2권 합쳐 2만 부 가량이 팔렸다.

 

‘굿즈’이지만 단순히 소장용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드라마 ‘덕후’들은 밑줄까지 쫙쫙 그어가며 대본집을 정독한다. 대본집을 낸 한 출판사 대표는 “보통 배우들이 대사를 입에 붙도록 조금씩 고쳐서 연기하는데, 팬들은 대사를 일일이 타이핑해 배우의 대사가 대본과 다른 부분까지 비교해 가며 서로 공유하곤 한다”고 말했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대본집을 구매한 독자층의 59%가 2030 세대이다. 이처럼 젊은 층 사이에서 대본집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20~39세 독서 인구 비중은 2011년 약 76%에서 2021년 약 56%로 크게 줄었다. 젊은 세대의 연간 독서 권수도 2011년 17권에서 2021년 9권으로 감소했다. 독서 생태계는 갈수록 ‘그들만의 세상’이 되고 있다. 팬덤 문화 구축을 통한 출판사들의 마케팅은 그 틈새에서 그래도 희망을 갖고 애써 살아남고자 하는 눈물겨운 시도다.

 

곽아람 〈조선일보〉 Books 팀장

주중엔 기사를, 주말엔 에세이를 쓴다.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이자 Books 팀장이며, 지은 책으로 『쓰는 직업』, 『공부의 위로』,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등 아홉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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