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6 2022. 09.
[따로, 또 같이: 출판사들의 협업]
정혜민(옵/신 페스티벌 총괄 운영), 임경용(더 북 소사이어티, 미디어버스 대표)
2022. 9.
〈독립출판사들의 협업 - 옵/신 스페이스: 북페어〉
정혜민(옵/신 페스티벌 총괄 운영)
예상하지 못한 호응
종로구 서촌에 위치한 ‘서촌공간 서로’에서 2022년 6월 22일부터 6월 28일까지 ‘옵/신 스페이스: 북페어’가 개최되었다. 독립출판사 워크룸 프레스, 이안북스, 미디어버스가 함께한 ‘북페어’는 예상치 못했던 큰 호응을 얻었다. 북페어 첫날 배포된 무료 서적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것으로, 이 무료 서적을 받기 위해 온 독자들도 있었다. 무료 배포 서적은 몇 시간 만에 매진되기까지 했다. SNS에 게시한 판매 책 목록을 보고 예약, 배송이 가능한지 전화 문의, DM도 있었다. 호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판매 부수를 적게 배치하여 일부 서적은 첫날 매진되기도 했다.
옵/신 스페이스: 북페어
북페어를 주최한 옵/신
‘옵/신’이라는 단체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먼저 소개해야겠다. 옵/신의 시작은 다원 예술 저널 〈옵/신〉으로, 2011년 1호부터 현재 9호까지 출판되었다. 옵/신은 ‘장(scene)으로부터/벗어나다(ob)’라는 뜻을 가지고 2020년에 국제 동시대 예술 축제 ‘옵/신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그리고 2021년 신진 작가들의 도약의 장으로 새로운 플랫폼 구축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옵/신 스페이스’를 시작했다.
2022년 옵/신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중에 옵/신의 시작이었던 ‘책’으로 프로그램을 하나 정도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옵/신에서 만든 책으로만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는 규모가 작아서 옵/신과 출판 작업을 진행했던 워크룸 프레스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마침 사무실 이전으로 잠시 책 판매를 중단해야 했던 미디어버스가 옵/신 스페이스: 북페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종로구 독립서점들 중 친분이 있었던 이안북스도 참여하게 되면서 종로구 독립출판사 3곳이 북페어 참여를 확정했다. 각 독립출판사의 큐테이터들이 북페어에 맞는 책을 큐레이팅하여 판매 목록을 만들어주었고 그렇게 ‘옵/신 스페이스: 북페어’의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옵/신〉 매거진, 도서를 열람용으로도 비치하여 방문객들이 부담 없이 읽어볼 수 있게 했다.
종로구 작은 북페어
서촌공간 서로는 지하에 작은 소극장을 갖고 있고, 1층에는 로비와 카페 공간이 있다. 평일 낮, 서촌공간 서로를 활용해 문화공간이자 독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수익을 기대하고 연 행사는 아니었지만, 지역과의 상생을 고려해 카페공간을 활용했다. 옵/신 북페어에 참여한 워크룸 프레스, 이안북스, 미디어버스는 독립출판사 중에서도 인지도가 높고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어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방문한 독자들도 많았고 판매 수익 또한 놀라웠다. 한 권만 사는 독자들이 없었다.
북페어 기간 중에 종로구에서 1인 출판사를 운영한다며 SNS를 보고 찾아와 다음 해에도 소규모 북페어를 기획할 것인지를 문의하는 분들이 있었다. 올해 진행된 북페어의 뜨거운 호응에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은 독립출판사, 1인 출판사들이 참여하는 북페어를 생각하게 됐다. 만약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종로구를 중심으로 인근에 위치한 다양한 출판사들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옵/신 스페이스: 북페어’에 대한 단상〉
임경용(더 북 소사이어티, 미디어버스 대표)
9년 동안 서울 통의동에서 책을 만들어 팔며 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유령작업실이라는 이름의 건물 지하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은 물론 워크룸 프레스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축 건물로 이사를 간다는 설렘도 잠깐이었고, 무더위와 장마가 시작되는 7월에 신축 건물 지하에 서점을 오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우리는 가구를 포함한 이 장소 전체를 노란 색으로 칠하기로 결정을 했고 그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서점 이사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이 글은 ‘옵/신 스페이스: 북페어’에 대한 것이 아니었냐고? 물론 맞다. 하지만 이 작은 북페어는 우리가 한창 이사를 하고 있는 도중,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란색 페인트칠을 하고 있던 중에 진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옵/신 스페이스: 북페어와 노란 페인트, 책 정리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처럼 서로를 연상시켰다. 거기다가 이 페어에 참여한 워크룸 프레스 역시 같은 건물로 이사를 하는 중이었고, 옵/신을 발행하는 스펙터 프레스도 이 건물에 지분이 있으니 이 북페어가 서울 옥인동에 새로 둥지를 트는 유령작업실 건물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안북스 역시 근처 효자동에서 출판사와 레퍼런스라는 서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니―기획자의 의도겠지만―옵/신 스페이스에서 진행된 북페어는 우리가 서촌이라고 부르는 작은 동네 안에서 활동하는 출판사들의 행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울 옥인동 유령작업실 건물에 새로 둥지를 마련한 ‘미디어버스’와 ‘더 북 소사이어티’
책은 적을 만든다 - 효자동 하우스 북페어
이안북스나 워크룸 프레스, 미디어버스는 관심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현대예술과 관련된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는 곳이다. 이안북스가 사진과 관련된 책을 주로 발행하고 다루고 있다면 워크룸 프레스는 미술이나 디자인 같은 시각예술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예술이론, 비평 등 좀 더 넓은 의미의 동시대 예술에 대한 책을 출판한다. 미디어버스로 말할 것 같으면, 특별히 정해놓은 장르나 영역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미디어버스가 아니면 출간되기 힘든 책들에 관심을 가진다. 이건 좀 무책임한 소리일 수 있겠지만 현대미술이나 사진, 디자인, 건축, 아티스트북, 모노그래프, 전시 도록에 비평, 이론서, 철학서, 소설, 페미니즘 등 우리가 출간한 책의 목록을 보면 미디어버스가 어떤 출판사라고 이야기하기가 애매한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옵/신 스페이스 북페어에 참여한 3개의 출판사는 예술과 관련된 책을 출간하는 작은 규모의 출판사이자 우연하게도 모두 서촌에 위치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책은 적을 만든다 - 효자동 하우스 북페어”
이 지역을 기반으로 기획되었던 북페어의 연원을 찾자면 2016년 지금 더레퍼런스 건물이 있는 서울 효자동 50-7번지에서 이안북스가 주축이 되어 진행했던 “책은 적을 만든다”는 하우스 북페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는 출판사뿐만 아니라 미술 작가와 디자인 스튜디오, 지금은 용산으로 이사 간 전시 공간인 ‘시청각’도 있다. “책은 적을 만든다”라는 2016년 당시에 미술과 디자인, 사진의 영역과 그 언저리에서 책이나 책과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던 사람들이 모인 행사였다. 우리는 기성 출판이 아니라 출판의 형식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고 꼭 종이가 아니더라도 영상 설치나 워크숍, 퍼포먼스, 심지어 굿즈 등 다양한 형식을 활용해서 우리 활동을 외부에 알리고자 했다.
지금 이안북스는 서울 효자동 50-7번지에서 더레퍼런스라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고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도 같은 이름의 2호점을 운영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하다. 지금은 몇 개의 설치와 워크숍 사진 몇 장만 찾을 수 있지만 당시에 꽤 많은 사람들이 효자동 하우스 북페어를 찾아왔고 기대치가 낮았던 우리에게는 꽤 성공적인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대 그리고 마이크로 아트북페어
누군가에게는 매우 폐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러한 동네 북페어들이 기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마침 비슷한 생각을 가진 출판사들이 서로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일 텐데 이것은 특정한 동네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습성도 한몫을 할 것 같다. 이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나 다른 여러 이유에서 과거처럼 특정한 지역과 정체성을 연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예전에는 홍대나 이태원, 서촌/북촌, 강남하면 무언가 떠오르는 이미지 같은 것이 있었다. 물론 2022년 지금은 프랜차이즈 기업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카페나 기관들이 이 지역을 점유한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특정한 지역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폐쇄적인 구별 짓기가 아니라 협력과 연대에 기반을 둔 예술 생산의 자연스러운 양식으로 이해한다면, 특정 지역의 정체성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문화적 다양성이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생산적 동력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트북페어가 가진 특징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다. 북페어는 365일 항상 운영되는 책 공간은 아니다. 언론이나 미디어가 관심을 가지는 큰 북페어가 아니라 이런 작은 북페어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책은 적을 만든다”가 꽤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발성 행사로 끝난 것은 이것을 지속할 만한 내외의 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크고 작은 (아트)북페어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출판은 원래 다양한 주체 사이의 협업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합이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예술 생산과 유사한 속성을 가진 예술 출판은 종이뿐만 아니라 다른 형식의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체의 밀도를 높이거나 내용이나 형식을 확장할 수도 있다. (전 세계 아트북페어에서 진행되는 전시나 책을 통한 전시 같은 사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즉 아트북페어는 기본적으로는 책을 사고파는 공간이지만 그 구성원이나 프로그램, 책의 배치와 배열을 통해 다른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유기체에 가깝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러한 아트북페어는 예술 창작의 또 다른 형식이 되기도 한다.
물론 모든 것이 인스타그램과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지금, 책이라는 오래된 매체에 기반을 둔 이런 작은 행사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질문이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 모두 식상해졌지만 아마 추측건대 이러한 질문이 나온 이유는 우리 자신이 만들고 있는 책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 같다. 그리고 그 질문의 이면에는 우리가 책이나 종이라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무언가 더 나은 것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마이크로 아트북페어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기대의 작은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출판사들이 동네나 특정한 정체성의 우산 아래에 모여 짧은 기간 동안 ‘책 공간’을 만들고 그것을 해체하는 식으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교육하고 경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책을 읽거나 소유하는 것 이상으로 책을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책을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일종의 확장된 매체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혜민 옵/신 페스티벌 총괄 운영 뮤지컬, 연극, 콘서트, 축제 등 다양한 공연 장르에서 제작, 기획, 홍보마케팅 등 다양한 포지션을 맡았다. 2003년부터 SMG PAI, 옐로우나인, 서울연극협회, 하이서울페스티벌 해외축제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등에서 근무했으며 계명대학교, 한국뮤지컬협회(뮤지컬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옵/신 페스티벌에서 총괄 운영/행정을 맡고 있다.
임경용 더 북 소사이어티, 미디어버스 대표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에서 미디어버스라는 소규모 출판사와 더 북 소사이어티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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