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2019. 05.
독자 가꾸기에 나서자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2019. 05.
[국내 첫 ‘독자-비독자 비교 연구’ 정밀 분석]
2명 중 1명만 책을 읽는 시대
한국인의 읽기 습관이 추락하고 있다.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만 13세 이상의 독서율은 2013년 62.4%에서 2017년 54.9%로 하락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서는 만 19세 이상 성인 독서율이 2013년 71.4%에서 2017년 59.9%로 떨어졌다. 이들 통계를 단순화하면, 이제 한국인 2명 중 1명은 읽는 사람이고 다른 1명은 읽지 않는 사람이다. 이는 단지 개인의 취향이나 여가 활용 방식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지식과 상상력, 미래 경쟁력의 위기라고 고쳐 말할 수 있다. 출판의 측면에서 보면 산업의 근간이 흔들리는 근본적인 재앙이다. 책은 출판과 독서의 양쪽 바퀴로 굴러가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독자가 줄어들면 출판의 대지도 그만큼 사라진다. ‘독자 개발’은 출판계 절체절명의 과제로 부상했다.
처음 시도한 독자-비독자 비교 연구
지난해 정부는 25년 만에 다시 ‘책의 해’ 간판을 내걸었다. 독서 진흥과 출판 수요 창출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민간 단체들이 합심해 추진 체계를 만들고,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 사업 중 하나로 ‘독자 개발 연구 ― 읽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 조사를 실시했다. 전국의 만 10세 이상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다. 이와 별도로 독서 유무와 연령대에 따라 60명을 10개 그룹으로 나눠 심층 면접하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도 병행했다. ‘독서’의 범위는 〈국민 독서실태 조사〉와 마찬가지로 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웹툰)를 제외한 일반도서(종이책, 전자책, 웹소설 포함)로 정했다.
주 1회 이상 책 읽는 독자는 10명 중 2명
조사 결과, 한국인 10명 중 2명(19.2%)은 적어도 1주일에 1회 이상 책을 읽는 애독자, 6명(57.8%)은 드물게라도 책을 읽는 간헐적 독자, 나머지 2명(23%)은 전혀 읽지 않는 비독자였다. 지난 1년간의 독서 여부와 독서 빈도를 기준으로 한 구분이다. 만약 독서 빈도에서 ‘한 달에 한 번’(17.3%) 읽는 사람까지만 포함시키고 ‘몇 달에 한 번’(25.1%)이나 ‘1년에 한 번’(15.4%) 정도 읽는 사람을 제외하여 ‘월평균 독서율’을 계산하면 36.5%가 된다. 3명 중 1명꼴이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만 16세 이상 일본인의 월평균 서적 독서율이 45%, 잡지 열독률이 46%로 한국인에 비해 높은 편이다(마이니치신문, 〈독서여론조사〉, 2018.10.26.).
어릴 때 독서 습관이 평생 좌우
이는 응답자 스스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각 시기마다의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 정도를 100점 만점 수치로 평가한 ‘생애 독서 그래프’에서도 마찬가지였다(〈그림 1〉 참조). 취학 전의 독서 관심도는 조기교육의 영향 때문에 젊은 세대일수록 높아졌고, 초등학생 때 가장 높던 독서 관심도가 점차 하락하는 식의 추이를 나타냈다. 60대 이상 세대에서는 고등학생 때(34.7점) 독서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아졌다가 하락한 반면, 20~30대의 경우 초등학생 때 독서 관심도가 정점을 찍은 후 대학 입시 준비 기간인 중고등학생 때 대폭 하락하고, 20대 이후 약간 상승하다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시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림 1〉 연령대별 생애 독서 그래프 (시기별로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 수준을 100점 만점으로 자가 진단)
〈그림 2〉 독자 유형별 생애 독서 그래프
매일 독서하는 ‘책벌레’는 국민의 2%
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은 1.1권이었다. 그런데 평균의 뚜껑을 열어보면 애독자의 한 달 독서량은 3.5권, 간헐적 독자는 0.7권, 비독자 0권으로 형태가 분명해진다. 파레토 법칙(80:20 법칙)과 유사하게 10명 중 2명에 해당하는 애독자들의 독서량이 전체 평균을 대폭 끌어올린 결과다. 또한 ‘매일 읽는다’는 응답의 전체 평균은 5.4%이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애독자 그룹만 보면 27.9%로 비율이 확 높아진다. 이를 통해 전체 국민의 2% 정도가 매일 독서하는 ‘책벌레’라고 추정할 수 있다. 다른 조사 항목들을 보아도 애독자, 간헐적 독자, 비독자 간의 차이는 분명하다. 독서 프로그램 및 모임 참여도는 애독자 그룹이 9.4%로 평균치(3.3%)의 3배 정도다. 과거 대중매체에 소개된 책을 읽어본 경험은 애독자 55.1%, 비독자 4.3%였다.
비독자일수록 TV 의존도 높아
여기서 책을 자주 읽지 않거나 전혀 읽지 않는 간헐적 독자와 비독자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선호하는 도서 분야는 실용적인 분야(취미, 건강, 재테크 등)에 대한 관심이 애독자보다 높았고, 책의 선택 과정에서 대중매체나 가족‧친구의 추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었다. 특히 정보 습득을 위한 매체 이용에서 텔레비전을 꼽는 비율이 비독자 그룹에서 34.5%로 높았고(애독자는 5.3%), 여가활동에서 ‘휴식’의 비중이 비독자 그룹에서 45.1%(애독자는 17.3%)로 매우 높았다. 그리고 비독자들은 독서의 장애 요인으로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33.1%), ‘독서가 즐거웠던 적이 없어서’(9.5%) 등을 다른 그룹보다 훨씬 높게 꼽았다. 독서를 ‘공부나 숙제 같이 느낀다’는 비율도 56.1%로 독자 유형 가운데 가장 높았다. 개방형 질문의 응답인 ‘독서의 필요성이나 가치를 느낀 경험이 없었다’는 답변도 비독자 그룹에서 32.2%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애독자가 책에 대해 능동적이고 즐거운 경험을 축적한 사람들이라면 비독자는 그 반대의 경험을 해온 사람들이다.
강요된 독서는 책을 멀어지게 한다
독서는 환경이 중요하다. 가정, 학교, 직장, 사회 환경에 의해 독자의 양과 질이 결정된다. 독자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가 하면, 읽던 사람이 어떤 사정으로 못 읽게 되기도 하고, 안 읽던 사람이 읽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독서 생태계는 유동성이 강하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애독자 그룹은 가정(장서, 독서 대화, 부모님의 독서 권장과 읽어주기), 학교와 직장(독서 권장, 독서 모임), 사회(집/학교/직장 근처에 도서관과 서점 유무 등)의 독서 환경에 관한 11개 항목 모두에서 긍정적인 응답률이 일관되게 가장 높았다.
독서 운동 아닌 독서 생활화로 가야
성인 비독자의 인구통계적 속성은 저학력, 저소득, 블루칼라, 고연령 등이다. 반대로 학력이 높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책을 볼 시간과 여유가 있는 직업에 종사할수록 책을 읽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시간과 여건이 주어진다고 해서 독서 인구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주5일 근무제 시행 이후에도 독서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결국 어릴 때부터 책 읽기가 즐거운 활동으로 인식될수록 독서가 습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커진다. 성장기 이후에는 독서 친화적인 환경(독서의 계기와 자극)이 지속적으로 조성되는가가 관건이다.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한국출판학회 부회장이며 출판평론가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 〈독서진흥연차보고서〉 등의 책임연구자를 다년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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