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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1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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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 실현을 위한 출판계 변화 제언]
세계화를 위한 K-출판의 과제

 

 

 

장동석(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2024.01-02.


 

지난해 말, 자타공인 출판대국 일본에서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일본 출판문화산업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9월을 기준으로 전국 1,741개 기초지자체 중 26.2%인 456곳에 서점이 없다. 일본출판인프라센터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서점 수는 지난 10년간 30% 정도 감소했다. 인구 감소, 스마트폰 보급이 서점 감소의 가장 큰 이유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은 어떨까. 독자들은 답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서점 감소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 하향 곡선은 결국 출판의 현실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책이라는 상품, 아니 공공적 성격의 문화재(文化財)가 독자들과 만나고, 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일은 말 그대로 한 사회 혹은 국가의 중차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초라해서 ‘출판’ 하면 ‘불황’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시절이 길어지고 있다.

 

세상 모든 콘텐츠를 향유하는 일은 곧 읽는 행위

 

출판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내수를 진작하는 일, 다시 말하면 본래 책을 읽던 이들이 아닌, 책과는 일정 거리를 두고 있는 이들을 다시금 책의 세계로 불러내는 것은 시급하고도 절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유인책이 마땅치는 않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바일 세계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를 제법 긴 호흡이 필요한 활자의 세계로 호출하기가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모든 교육이 입시에 초점이 맞춰진 세상에서 책은 더더욱 가까이 할 그 무엇이 아니다. 교과서마저 디지털 환경으로 전환되는 마당에, 즉 어려서 책이라는 사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 봉쇄된 상황에서 책은 필패(必敗)의 조건을 완전하게 충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답은 무엇일까. 이것이 정답일리는 없지만, 결국 젊은 세대가 자주 접하는 (아니 몸의 일부인 양 생각하는) 기기나 매체들을 보는 행위를 ‘읽는’ 일에 포함시키는 것이 한 방법일 것이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자주 접하는 매체 혹은 기기를 보는 행위를 ‘읽는’ 일에 포함시켜야 한다. TV 드라마 마니아라면 TV를, 영화광이라면 영화를, 미술관에 자주 가는 사람에게는 미술관을,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음악을 읽는 행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짧은 영상인 숏폼(short-form) 역시 읽는 행위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세상 모든 콘텐츠를 향유하는 일을 읽는 행위라고 규정하자는 것이다. 책은 책이고 콘텐츠는 콘텐츠라며,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은 책으로 돌아올 기미가 없다.

 

생각해 보면 책은 본래 소수의 것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0년 정도였다. 하지만 인류는 그 전에도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삶을 살아내기 위해 몸과 하늘의 별을 읽어냈고,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소통했다. 책이 보편적 읽기 행위가 된 후에도 사람들은 책이 아닌 다른 여러 가지를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악보를 읽어 아름다운 음악을 향유했고, 화가의 그림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내며 그 화풍은 물론 작품에 담긴 함의를 풀어냈다. 다시 강조하지만, 책 외에도 읽을 것은 무한하다. 하물며 전 세계인의 손 안에 들려진 ‘스마트폰’도 읽는 행위의 대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출판, 책과 모든 콘텐츠를 연결하는 일 담당해야

 

이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읽어낸’ 그 모든 것을 진짜 책과 연결시킬 수 있는 섬세한 가이드다. 세상 모든 콘텐츠와 책을 연결할 수 있는 퇴로(退路) 하나를 열어줄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출판의 역할은, 단순하게 책을 기획하고 편집·디자인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에 그칠 것이 아니라, 책과 세상 모든 콘텐츠를 연결하는 일을 담당해야 한다. 책이야말로 세상 모든 지식과 지혜를 담고 있는 그 무엇이라면, 지금 가장 ‘핫한’ 세상 모든 콘텐츠와 독자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화를 위한 K-출판의 과제’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읽는 행위의 확장을 주문한 것은, 어찌 보면 별다른 연관성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책이 끌어안아야 할 모든 콘텐츠들이 책의 외연 확대, 나아가 세계화를 도모할 수 있는 한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이제까지 수동적이었다. 소설을 중심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될 책들은 한때 날개 돋친 듯 팔렸다. 10여 년 전,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인기는 남녀 아이돌이 주연을 맡은 뮤지컬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잘 아시다시피, 그 원작인 정은궐의 소설 『해를 품은 달』(파란미디어, 2011)은 100만 부 이상이 독자들의 손에 들려지면서 일명 ‘해품달 신드롬’을 자아냈다.

 

지난해 초, 애플TV+의 8부작 드라마 〈파친코〉의 인기는 국내 시장에서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소설 『파친코』(이민진, 신승미 옮김, 인플루엔셜, 2022)의 역주행을 일궈냈다. 출판사가 바뀌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30만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유행했던 스크린셀러, 드라마셀러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 개념어라고 할 수 있다. 여타 콘텐츠의 호조에 이은 책 판매는 일종의 공식이다. 물론 꼭 책의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유의미한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난중일기』를 읽는 이들은 흔치 않지만,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명량〉은 1700만 명 이상, 〈한산: 용의 출현〉은 72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 12월 20일 개봉한 〈노량: 죽음의 바다〉은 개봉 일주일 만에 23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며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이순신 관련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눈 밝은 어떤 독자들은 이순신 관련한 어떤 책이든 찾아보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믿고 싶다.).

 

『해를 품은 달』, 『파친코』

『해를 품은 달』, 『파친코』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다. 각 콘텐츠 산업의 이합집산(離合集散),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아니라 정교한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책은 책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등등이 아니라 책, 영화, 드라마, 연극, 음악, 미술 등 다양한 K-콘텐츠를 넓고 크게 볼 수 있는, 하여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이에 대해 출판평론가 김성신은 2022년 7월(Vol.34) 〈출판N〉에 기고한 ‘지금 바로 여기는 K-출판의 기로다: 출판사의 역할,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소 긴 글이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이제 출판은 ‘책’이라는 유형의 상품 제작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즉, 무형의 ‘지적 가치’를 훨씬 더 다양한 형태로 상품화하고 원활하게 유통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작가 에이전트, 저술가 매니지먼트, 작가 브랜딩, 저작권 기획과 관리… 등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출판 시스템을 수용할 경우 출판으로부터 시작되는 엄청난 규모의 2차 저작권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출판산업의 규모가 지금과는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거대해질 수 있다. 지금은 출판산업의 수익 구조가 거의 전적으로 책의 판매에 의존하고 있지만, 출판기업이 2차 저작권 시장을 직접 기획하고 관리하는 수준까지 이르면 매우 다양하고 규모도 큰 2차 저작권 수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책이 모든 콘텐츠의 원천인데 그 자부심을 헌신짝처럼 버리자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읽는 행위의 원천은 책이 아니었다. 자유로운 인간의 정신과 사상, 거기서 배태된 모든 형태의 창작물이 콘텐츠다. 책도 그 일원이며, 그중 앞에 서 있을 뿐이다. 다만, 세상이 홀대하고 읽는 일을 소홀히 한다 하여도, 이렇게 책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인류 문명은 어느 정도는 책에 기대어 있음으로, 문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책과 출판은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불황의 탈출구로 인식하면 세계화는 없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K-출판의 세계화를 출판 불황의 탈출구쯤으로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수 부진을 수출로 만회하는 것은 대한민국 거의 모든 산업의 전략적 선택일 수 있지만, 책과 출판의 세계화는 미진한 내수를 벌충하는 역할에 그칠 수 없다. K-출판의 세계화는 우리 것의 확장, 즉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고, 세계적인 것이 한국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종의 조류(潮流)여야 한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이 종종 쓰였다.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말로써 이겨보려는 하나의 레토릭(rhetoric)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한국적인 것이 하나둘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이 부른 노래가 동남아시아를 휩쓸고, TV 드라마들이 저 멀리 중동까지 전파를 타면서 한국적인 것들은 하나둘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그 파장은 서서히 깊고 넓어졌다. 이제 우리 문학도 세계인들의 시선을 붙잡기 시작했고, 어떤 작품들은 평단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기도 했다. 올해만 해도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가 2023년 11월 프랑스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Prix Médicis)을 수상했다. 2023년 정보라의 SF·호러 소설집 『저주토끼』(래빗홀, 2023)가 미국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에, 천명관의 『고래』(문학동네, 2004) 역시 영국 부커상(The Booker Prize)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문화전문잡지 〈쿨투라〉 2021년 3월호에 기고했던 글의 일부를, 다소 길지만 인용해 본다.

 

“K-문학의 세계적 인기를 그 좁은 틀에 가둘 수는 없다. K-문학은 그 자체의 힘으로 세계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K-문학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동시대성’이다. 한국 문학은 그간 전쟁, 가족 등의 서사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게 읽히는 한국 문학은 전쟁이나 가족 등 진부한 소재는 사라지고,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주제와 서사를 구축해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 2016)은 단지 한국적인 현상이 아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젊은 세대는, 특히 여성은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감정을 잃어버린 『아몬드』(손원평, 다즐링, 2023)의 주인공 윤재는 현시대 청소년들의 자화상이다. 감정 따위는 없는 듯 입시만을 위해 내달려야 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그것이 꼭 입시가 아닐지라도, 전 세계 공통 현상이다. 이제 한국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K-문학도 그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세계적인 것 역시 한국적인 것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와중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학의 상상력, 나아가 책의 상상력을 계속해서 더듬어가며 우리 미래를 찾아가는 일이다.”

 

『작별하지 않는다』, 『저주토끼』, 『고래』

『작별하지 않는다』, 『저주토끼』, 『고래』

 

 

문학뿐 아니라 우리 출판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우리 것의 세계화, 세계적인 것의 우리화, 즉 책을 비롯한 모든 콘텐츠의 동시대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말로만 세계 10위권 출판대국의 위상을 되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걸맞은 콘텐츠를 찾아내는 일에 나서야 한다. 책과 출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력뿐 아니라 정책과 행정의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K-출판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사가 환기되어야 한다.

 

장동석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서평 전문지 〈출판저널〉 편집장,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주간, 철학잡지 〈뉴필로소퍼〉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는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문화 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저서로는 『살아 있는 도서관』(현암사, 2016), 『금서의 재탄생』(북바이북, 2017), 『다른 생각의 탄생』(현암사, 2017), 『삼국지, 천 년 넘어 새로워진 이야기』(너머학교, 2021) 등이 있다.
97449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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