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9 2022. 02.
[2022년 청년 책의 해 - 2030이 말하는 책 생태계]
김화진(민음사 편집자, 소설가)
2022. 02.
서울시 중구에 새로 생긴 도서관에서 4회간 한국문학에 대해 짧은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도서관 강연은 처음인데…… 떨리고 두려웠으나 언제나 안 해 보던 일을 해 보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곤 했고, 일 때문에라도 정기적으로 도서관에 들른다는 사실이 좋았고,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궁금했으므로 하겠다고 했다. 4강의 작품 리스트를 짤 때에는 조금 신이 난 상태였다. 무슨 얘길 하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한국문학 얘기는 언제나 재밌지, 도서관이니까 구간부터 정기간행물까지 읽을 수 있는 재밌는 작품을 소개해야지,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하여 내가 짜 간 리스트는 박완서의 『나목/도둑맞은 가난』(1강의 제목은 ‘한국문학의 원초적 재미, 무궁한 읽기’였다.), 박솔뫼의 『을』(2강의 제목은 ‘쓸쓸하고 맹렬한, 작가의 시작을 읽기’였고……),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3강의 제목은 ‘사려 깊게 무르익은, 작가의 두 번째를 읽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의에서 소개할 작품은 임선우 소설가의 최근 발표작 두 편이었다. 《현대문학》에 발표되었던 「유령의 마음으로」와 《릿터》에 발표되었던 「여름은 물빛처럼」.
앞서 다짐한 것처럼 한국문학을 읽는 일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있는지를 말하고 싶었고, 그래서 나름대로의 흐름으로 테마를 짜 본 것이다. 이미 한국문학에 거목이 된 작가의 대표작 읽기, 지금 가장 매력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의 데뷔작 읽기, 혜성처럼 등장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의 두 번째 작품집 읽기, 그리고 아직 단행본을 내지 않는 신인 소설가의 발표작 읽기. 매우 열의 넘치게 준비를 하긴 했는데……. 첫 수업에 들어가자, 내가 간과한 점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바로 수강생들의 연령이었는데, 나는 동네 도서관을 가장 성실히 이용하는 분들의 연령대가 50~60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분들은 강의를 하는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강의 대상 책인 박완서의 소설도 잘 모른 채로 그저 항상 다니는 익숙한 도서관에서 여는 정기 강연에 자연스럽게 참석하신 분들이었다. 1강에서 나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 줄거리를 거의 모두 들려 드렸고, 그를 둘러싼 일화나 생애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다.(박완서 10주기 특별판으로 소설선집 『지렁이 울음소리』를 편집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선 녹초가 되어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 강의가 걱정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내가 선정한 작품들은 도서관 수강생들에게 난생 처음 듣는 책들이었고, 그래서 강의 때마다 어르신들의 리액션이 무척 신경 쓰였다. 그분들은 강의 내내 흥미가 없다가도 강의가 끝나면 “젊은 사람이 재밌게 얘기해 주니까 한번 읽어 보고 싶네.” 하고 말해 주곤 하셨다. 한껏 긴장한 채로 두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 말이 힘이 되었는데, 3강이 끝날 무렵엔 심지어 어떤 분께서 나를 검색해 보시곤 “소설도 쓰신다면서요. 마지막에 단편소설 얘기할 때 선생님 소설도 해 주세요.”라고 말해 주셨고……. 나는 편집자로서 맡게 된 강의에서 계획에도 없던 독자와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내 얘기를 하는 건 머쓱했지만, 신인 작가의 단편소설을 다루는 마지막 강이 가장 어려울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수강생들은 「유령의 마음으로」의 감정을 읽는 유령과, 「여름을 물빛처럼」의 나무가 된 사람, 그리고 「나주에 대하여」(여전히 머쓱하다…….)의 SNS를 통한 이상한 관계―그러니까 가장 그들과 낯설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가장 눈을 반짝이며 재밌게 읽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수업이 끝날 무렵 내게 말해 주었다. “선생님을 알게 되었으니 선생님 소설은 따라 읽겠어요.” 그 말이 수강생 앞에서 쩔쩔매던 나를 그저 위로하는 말이었다고 해도, 진심으로 고마운 말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통로처럼 들리기도 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우연히 닿게 되어 이유는 잘 모르지만 친밀감을 느낄 때, 서서히 그 사람을 알아가고 싶을 때, 그 사람이 건네는 것을 그저 믿어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을 나는 그 도서관에서 느꼈던 것 같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고, 지금 책을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모두가 자기도 모르게 언제든 그런 우연한 접촉이 찾아와 내가 모르던 책을 고르게 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읽게 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반대로 어느 날 갑자기 나 스스로 어떤 책이 읽고 싶어져 정보도 없는 책을 집어 들게 되는 일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어떤 책이 누군가에게 가 닿는 경로는 정말 신비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조금 재미있어 보이는 책 이야기를 하면 “이 책 어쩌다 알게 됐어?” 하고 묻고 싶은 마음이 된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책 추천을 믿고 싶다는 마음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별로 어렵고 복잡한 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모르던 책을 건네는 이는 나와 이미 알던 사이가 아닌 경우가 많은데, 특히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스며든 매체 덕분에 그런 우연한 만남이 가능하게 되기도 한다. 나의 20대엔 팟캐스트가 있었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채널은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 “문학 이야기”였다. 권희철 문학평론가가 선정하여 읽어 준 소설의 구절들은 아직도 나에게 오래 감동으로 남아 있다. 권여선의 「봄밤」, 정소현의 「어제의 일들」, 윤이형의 「루카」, 최은미의 「너무 아름다운 꿈」 같은 단편소설들. 나는 그 팟캐스트를 들으며 단편소설에 대해, 그 아름다움에 대해, 그 작가의 이름과 문장에 대해 오래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권희철 평론가가 농담 한 마디 섞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하고, 아름답다고 여긴 부분들을 차분히 읽어 주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가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말하면 그 사람에게 끌리게 되거나 그 사람에게 끌리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까지 좋아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내가 문학 편집자가 된 것도, 그 좋음이 강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내가 지녔던 얕은 열정마저 덕질이라고 할 수 있다면, 덕질은 이렇게나 쉽게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의 독자들은 아마도 유튜브 채널에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2019년 출판사들의 유튜브 도전 바람(?)에 휩쓸려 몇 편의 영상에 출연했다. 이게 회사 일인지 내 일인지, 누구 좋으라고 하는 일인지, 누가 좋아하긴 하는 건지, 아무런 판단이나 기준 없이 그저 풍덩. 얼굴과 직업 정보가 모두 노출된다는 부담이 큰 매체였으나 어쨌거나 그런 선택을 했고, ‘아아 시대가 너무 달라졌다, 내가 유튜브에…… 유튜브를…….’ 하고 종종 스스로를 낯설어하고 부담감에 낑낑댔지만 막상 그 안에서 하는 일은 내가 늘 하던 일과 비슷했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말하기.
그러면 어느 밤 출판사 팟캐스트를 오래오래 재생해 놓고 소설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던 나처럼, 내가 두서없이 늘어놓는 책 이야기를 듣고 그 책을 샀다고, 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편집자님이 말해서 『자살클럽』 샀어요.’, ‘『일인칭 단수』 샀어요.’ 그렇게 말해 주는 분들을 만나면 늘 신기하다. 그런 경험이 좋아서 그 어색한 일을 조금 좋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튜브를 찍는 동안 나도 누군가의 책 취향에 슬쩍 스미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나와 함께 몇 편의 영상에 출연한 동료 편집자 기현이다.(정기현 편집자를 좋아하는 민음사TV 구독자 분들 많으시죠……. 저도 정기현 편집자 좋아해요…….)
기현과 나의 취향은 어딘가는 들어맞고 어딘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어긋나는데, 우리는 유튜브 촬영을 빌미로, 혹은 촬영을 하지 않을 때에도 점심을 먹으며 서로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한 사이다. 그때마다 나는 기현이 말하는 독서 목록을 은근히 챙겨놓곤 했다. 지금 생각나는 것들만 말해 보자면 이렇다.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 『모든 우주 만화』, 내가 아직 읽지 않았던 박솔뫼의 소설들, 오카다 도시키의 『비교적 낙관적인 케이스』, 하야시 후미코와 판판야의 모든 만화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완독하지 못했는데, 기현이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굉장히 좋다고 했을 때 나도 그 소설을 완독하고 싶어졌다.
취향이 멋진 사람들은 얼마나 멋있는지. 그 사람들의 취향을 엿보게 되면 내 취향을 넓히고 싶다는 욕망이 든다. 그 두근두근하는 에너지는 우리의 손을 우리가 선뜻 집지 않던 책에까지 뻗게 만든다. 좋아함의 힘은 이처럼 놀랍다. 나는 작년에 런칭한 에세이 시리즈 중 문보영 시인의 『일기시대』를 편집했는데, 그 책에서 문보영 시인은 이 설렘과 부러움, 그리고 즐거움으로 뒤섞인 욕망을 ‘나도 할래 수용체(I want to do something receptor)’라고 명명한다. 천재인가……. 그도 독서계의 몇 안 되는 멋진 덕질 유발 인간이다. 문보영의 독서 리스트도 퍽 탐이 나서, 그의 책을 편집하며 동시에 그의 글에 등장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G.H.에 따른 수난』과 안토니오 타부키의 『사람들이 가득한 트렁크』를 구입하고 있었다…….
뭔가를 오래 좋아한 사람들이 보내는 좋아함 에너지는 누군가와 손이 미처 닿기 전에 아주 약하게 찌릿, 느껴지는 전기 같다. 세기가 아무리 약해도 그 찌릿함은 아무나 손이 닿는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진짜로 통할 때만 가능한 어떤 것인 셈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지닌 사람은 초능력을 숨기고 평범한 척 살아가는 도사, 히어로, 요정, 마법사……. 그런 존재 같기도 하다. 그런 에너지를 쏘는 사람도, 아주 섬세하게 그 에너지를 캐치하는 사람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소리다.(책에 그렇게 애정이 넘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보통 사람은 아니다.)
최근에 내가 그렇게 느낀 사람 중 한 명은 소설가 정지돈이다. 깨닫게 된 것은 지난해부터 구매한 도서 목록을 찬찬히 훑어보고 나서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구매한 도서들 중 ‘정지돈 추천’ 구매 내역이 벌써 여러 권이었던 것이다. 그가 서점 라이프북스에서 큐레이션한 도서 『영원의 건축』은 그해 하반기 나의 감동 도서였고, 그가 그의 장편소설 『모든 것은 영원했다』 집필에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는 사 놓은 지가 한참이었는데 그의 소설을 읽고 나서야 읽기 시작했다. 민음사TV에 출연했을 당시 추천한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 좌안 1940-1950』 역시 읽으려고 대기 중이며, 최근에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친구』도 그가 잡지 《악스트》에 실은 서평을 읽고 샀다.
유튜브 채널 민음사TV 중 정지돈 작가 출연 장면
그리고 올해는 또 누굴까. 언제, 우연히, 멀리서, 어떤 사람이 보내는 좋아함 에너지를 받고 나도 모르게 관심도 없던 책을 집고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조용히 설레는 것이 느껴진다. 나를 읽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지만 드물어서 반갑다. 그렇게 해서 책에 빠지고 취향이 넓어지는 일은 마치 애써 만나려고 하지 않아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그 책이 필요했다는 걸 세상이 알아채고 내 쪽으로 책을 보내 주는 것 같아서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생각하면 더 재밌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되고, 벌어지는 일의 선후 관계는 뒤엉켜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게 되고,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까지 좋아하게 되는 일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일이, 우리가 책을 통해 닿지 않아도 닿고, 엮이지 않아도 엮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경이롭다. 책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우리는 만날 책과는 언젠가 만나게 된다. 김화진(민음사 편집자, 소설가) 민음사 한국문학팀에서 단행본을 편집하고 잡지를 만든다.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