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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7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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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경제와 출판산업]
구독은 출판의 ‘오래된 미래’인가?

 

 

 

백창민(북헌터 대표)

 

2020. 12.


 

 

최근 여러 분야를 통해 급속하게 ‘구독 경제’와 ‘구독 모델’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구독(Subscription)’은 신문과 잡지, 출판 분야에서 꽤 익숙한 모델이다. 인접한 신문과 잡지 분야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고, 출판 역시 구독으로 정기간행물 독자를 모집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독 모델이 다른 분야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이유는 뭘까? 왜 새삼스럽게 ‘구독’일까?

 

 

 

구독,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먼저 다른 분야에서 도입하고 있는 구독 모델을 살펴보자. 꽃구독을 아시는지? 꽃구독 서비스 ‘꾸까(Kukka)’는 2주 또는 4주에 한 번씩 꽃다발을 배송해 준다.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일정 기간마다 ‘꽃선물’을 받는 특별한 기분을 누릴 수 있다. 스타트업 ‘와이즐리(Wisely)’는 면도날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다. 질레트와 쉬크, 도루코 같은 유명 브랜드를 이용해 온 남성 고객에게 가성비 좋은 면도날 구독 서비스를 선보이며 매출을 늘려가고 있다.

 

양말을 구독하는 ‘블랙삭스닷컴(Blacksocks.com)’은 이미 꽤 유명하다. 일본 출장길에 전통 찻집에서 신발을 벗은 새미 리체티(Samy Liechti)는 구멍 난 양말이 부끄러워 미팅 내내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출장에서 돌아온 그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남성이 적지 않음에 착안해서 ‘블랙삭스닷컴’을 창업했다. 구독하면 디자인과 색상, 크기가 같은 ‘검은 양말’을 정기적으로 보내 준다. ‘블랙삭스닷컴’의 아이디어는 너무 단순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검은 양말 구독 서비스는 남성으로부터 꽤나 인기를 끌었다.

 

비즈니스맨의 필수품인 셔츠. 깔끔하게 세탁해서 빳빳하게 다림질한 셔츠는 입을 땐 좋지만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위클리셔츠(Weekly Shirts)’를 구독한 고객은 셔츠를 세탁하거나 다림질할 필요가 없다. 다림질까지 마친 셔츠가 이름처럼 매주 배송되니까.

 

트렌디한 유행을 좇는 당신께 신상 의류는 늘 유혹의 대상이지만 모든 ‘신상’은 ‘구제’가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옷장에 쌓여 자리만 차지하는 의류를 정리하는 것도 일이다. 미니멀한 삶을 추구한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고객을 위해 SK플래닛은 ‘프로젝트 앤(Project Anne)’이라는 신상 의류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다.

 

겉옷뿐 아니라 속옷 역시 구독 모델에 합류했다. 해외에서는 ‘아도르 미(Ador Me)’를, 국내에서는 ‘월간가슴’을 선보였다. 월간가슴은 첫 3개월 9,900원으로 속옷을 구독할 수 있다. 여성용품 역시 빠질 수 없다. ‘해피문데이(Happy Moon Day)’는 ‘달에서 온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용품 정기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마스크 팩을 구독할 수 있는 ‘스테디(Steady:D)’를 출시했다. 늘 구입해야 하는 일상용품을 구독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프라이팬 구독 서비스를 아시는지?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으로 음식을 조리하면 건강에 안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살짝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당장 교체하는 것은 애매하지 않나. ‘자코라(Jakola)’를 이용하면 이런 애매함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일정 기간마다 새 프라이팬과 냄비를 받아 쓸 수 있으니까.

 

호텔에서 누리는 깔끔한 침구는 여행의 로망이다. 그런 로망을 일상에서도 누리고 싶다면? ‘클린베딩(Clean Bedding)’을 이용하시라. 호텔침구가 일정 기간마다 집으로 배송된다. 쓰던 침구와 교체해서 내 침실은 늘 호텔룸으로 변신한다.

 

 

 

구독, 어디까지 해 보셨나요?

 

의식주의 핵심인 음식이 구독 행렬에서 빠질 리 없다. 신세계백화점 ‘더 메나쥬리(The Menagerie)’는 한 달 5만 원으로 매일 빵을 먹을 수 있는 빵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아침식사를 빵으로 해결하는 근처 직장인에게는 복음이다. 어차피 빵을 매일 사야 하는데, 단돈 5만 원으로 한 달 아침밥, 아니 ‘아침빵’을 해결할 수 있으니까. 더 메나쥬리 입장에서도 빵 구입 고객을 미리 확보하는 셈이니 서로 윈윈이다. 점심식사도 구독으로 해결할 수 있다. ‘위잇딜라이트(We Eat Delight)’는 도시락 구독 서비스다.

 

아모레퍼시픽 오설록은 차를 구독하는 ‘다다일상(茶茶日常)’을 선보였다. 좋아하는 차를 일상처럼 누리는 삶을 이어가고 싶으면 ‘구독’만 하면 된다. 차뿐일까? 술도 합세했다. 배상면주가는 막걸리 구독서비스 ‘홈술닷컴’을, ‘술담화’는 전통주 구독 서비스를 선보여 주당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퍼플독(Purpledog)’은 와인 구독 서비스다. 일본 주류회사 기린은 매월 공장에서 갓 만든 수제맥주를 배송해주는 ‘홈탭(Home Tap)’ 서비스를 선보였다.

 

버거킹(Burger King)은 아메리카노 30잔 구독 서비스를 단돈 4,900원에 출시했다. 처음에는 신이 났다. 불과 하루 몇백 원으로 모닝커피를 즐길 수 있으니까. 시간이 흐르니까 주말에도 버거킹 매장을 찾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롯데제과는 과자를 박스로 받아보라며 ‘월간 과자’를 출시했다. 박스에 담긴 과자, 어린 시절 한 번쯤 꿈꾼 로망 아닐까. 간식 구독은 필연적으로 허리둘레를 늘리겠지만 궁금하다. 매달 박스에 담겨올 과자 종류가.

 

신선식품을 먹는 건 건강에 중요하지만 신선식품을 늘 챙기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만나박스(Mannabox)’는 신선식품 장보기로부터 당신을 구해줄 서비스다. 외식만 하다 보면 집밥이 그리울 때가 많다. 1~2인 가구에 맞는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하는 것도 일이다. ‘테이스트샵(Tasteshop)’은 사람 수만 설정하면 셰프가 엄선한 요리 재료와 레시피를 배송해 준다.

 

인테리어 고민도 해결할 수 있다. ‘핀즐(Pinzle)’을 이용하면 그림 구독으로 당신의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다. 취미가 없어 고민이라고? 취미도 이제 구독하면 해결할 수 있다. 매번 다양한 취미 거리를 선사하는 ‘하비인더박스(Hobby in The Box)’를 구독하면, 당신의 고민은 바뀔 것이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취미가 많아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현대셀렉션(Hyundai Selection)’이라고 하는 자동차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월 59만 원을 내는 베이직부터 월 75만 원을 내는 스탠다드, 월 99만 원을 부담하는 프리미엄 서비스가 있다.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면 아반떼부터 그랜저까지 다양한 차종을 바꿔가며 탈 수 있다. 그랜저를 탔던 당신이 아반떼를 선택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한 지붕 두 회사인 기아도 질세라 ‘기아플렉스(KIA Flex)’라는 월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반려동물, 이젠 ‘가족’이다. 반려동물의 옷과 보신을 위한 음식까지, ‘돌로박스(Dolobox)’는 당신 대신 가족 돌보미를 자처하는 서비스다. 고양이 집사를 위한 사료와 용품 구독 서비스 ‘미유파우(Miwpaw)’도 출시됐다.

 

영화와 TV 프로그램 구독 서비스 ‘넷플릭스(Netflix)’와 ‘왓챠(Watcha)’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각각 이용하는 사람은 이제 흔해졌고 동시에 구독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구독 모델은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 분야로도 확대되었다. ‘티빙(Tving)’과 ‘웨이브(Wavve)’로 방송 프로그램을 골라 보는 고객도 이젠 흔하다.

 

 

 

출판 분야 구독 서비스는?

 

그럼 책을 구독하는 서비스는 없을까? 걱정 마시라. ‘플라이북(Flybook)’이 있다. 책은 가격에 비해 고르기 쉽지 않아 의외로 관여도가 높은 제품에 속한다. 책 고르기는 귀찮지만 독서는 하고 싶은 독자를 위한 서비스다. 구독하면 서비스 이름처럼 책이 당신에게 ‘날아’ 온다. 전자책 분야는 구독 모델 도입에 훨씬 적극적이다. 아마존은 ‘음악(Music Unlimited)’과 ‘킨들 무제한(Kindle Unlimited)’ 서비스를 시작한 지 오래다.

 

국내 전자책 업계도 무제한 구독 서비스를 표방하는 ‘밀리의서재’를 필두로, 리디북스의 ‘리디셀렉트(Ridiselect)’, 예스24 ‘북클럽(Bookclub)’, 교보문고 ‘샘(Sam)’이 회원제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 독자 대상 B2C 분야뿐 아니라 도서관을 비롯한 기관고객 대상 B2B 서비스에도 구독 모델이 도입되고 있다. 서울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도서관이 ‘구매’가 아닌 ‘구독’을 통해 전자책을 기간 단위로 서비스하고 있다.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 〈역사비평〉 같은 정기간행물에 도입된 구독 모델은 또 다른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무도 청탁하지 않지만 뭐라도 쓴다’를 표방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일간 이슬아〉는 ‘저게 되겠어?’라는 시선 속에 구독 모델로 성공적인 ‘안착’을 했다. 구독 모델을 선보인 후 2019년 1월 헤엄출판사를 창업한 이슬아 작가는 지상파 방송까지 출연하며 힙한 인물로 부상했다.

 

해외 출판계에서는 이른바 ‘분철출판’으로 알려진 ‘파트워크 퍼블리싱(Partwork Publishing)을 통해 일찍부터 구독을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해왔다. 스타워즈·세계의 명산 같은 큰 주제로 세부 시리즈를 계속 출간하는 파트워크 퍼블리싱은 개별 시리즈를 단행본으로 판매하지만 구독 서비스로도 독자를 유인한다. 구독이 끝나면 ‘전집’으로, 비주얼 이미지를 모아 디지털콘텐츠로, 각종 굿즈(Goods)를 끼워 다양한 형태로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이다. 1호를 정가의 1/10 가격으로 할인해서 파는 이탈리아 ‘디아고스티니(Diagostini)’는 한 해 수조 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출판사 천년의상상에서 선보인 ‘월간 정여울’ 프로젝트는 단행본 판매만 진행했지만, 구독을 병행할 수 있는 모델이다. 구독을 진행했다면 출판사는 정여울이라는 저자에 ‘꽂힌’ 독자 정보를 확보해서 이벤트와 추가적인 출판 기획이 가능했을 것이다.

 


전자책 회원제 구독 서비스, 아마존 킨들 언리미티드(화면출처: 아마존)


전자책 회원제 구독 서비스, 아마존 킨들 언리미티드(화면출처: 아마존)

 


작가 이슬아가 선보인 <일간 이슬아>(화면출처: 헤엄출판사)


작가 이슬아가 선보인 〈일간 이슬아〉(화면출처: 헤엄출판사)

 

 

 

다양한 분야 구독 모델이 출판에 주는 시사점

 

물론 모든 구독 서비스가 승승장구하는 건 아니다. 위클리셔츠와 프로젝트 앤은 서비스를 종료했다. 그럼에도 구독 모델이 급속히 퍼지는 이유는 뭘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기업의 ‘비용’ 문제와 관련이 있다.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비용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신규 고객을 유입시키는 비용은 기존 고객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팔 때 드는 비용보다 최소 다섯 배에서 열 배 높은 걸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다섯 배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 ‘수렵형 마케팅’에서 ‘사육형 마케팅’으로 바뀌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상당수 기업이 마케팅 비용 증가를 부담스러워하면서 ‘남의 고객 빼앗기’ 만큼 ‘우리 고객 지키기’가 중요해졌다.

 

이런 맥락에서 ‘면도날 모델(Razor Model)’ 같은 소모품 모델과 ‘구독 모델(Subscription Model)’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구독 모델은 면도날 모델보다 더 고도화된 모델이다. 면도날 모델은 고객이 소모품 구매 여부를 그때그때 판단할 수 있지만, 구독 모델 고객은 제품과 서비스를 쓰든 말든 기업에게 정기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객은 왜 구독을 하는 걸까? ‘자물쇠 효과(Lock in Effect)’ 때문이다. 한 번 서비스를 이용하면 웬만해서는 빠져 나가기 어려운 것이다. 고객의 이런 심리를 ‘경로의존성 이론(Path Dependency Theory)’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한 번 접어든 길을 쉽사리 벗어나지 않는다. 관성과 관행에 기댄 모델인 것이다.

 

일찍부터 구독에 익숙했던 출판 입장에서 구독 모델의 확산은 새삼스러울 수 있다. 동종 산업이 아닌 이종 산업과 경쟁이 치열해지는 오늘, 다른 분야 구독 모델 확산은 출판에게 또 다른 위협이 될 수 있다. 다른 미디어에 묶여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고객이 출판 콘텐츠에 쏟는 관심과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 위기 대응뿐 아니라 출판 역시 고객과 관계를 강화하며 지속적인 매출을 일으키는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출판이 ‘구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구독은 출판의 ‘오래된 미래’였던 것은 아닐까.

백창민(북헌터 대표)

책사냥꾼으로 지내다가, 종이책 출판사부터 전자책 회사까지 책동네를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도서관 여행을 좋아해서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를 연재했고 〈세상과 도서관이 잊은 사람들〉을 쓰고 있습니다. 쓰기와 말하기·만들기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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