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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3  20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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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태계 ‘노동’을 말한다]
디지털 전환 시기, 사서(司書) 노동의 불평등한 모자이크

 

 

 

김종진(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2023. 05.


 

낯선 곳의 일상, 도서관과 사서

 

도서관에 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도서관은 누구나 쉽게 책을 보고 자료를 찾는 곳이다. 때론 시민들의 휴식처 혹은 모임 공간이다. 국가와 도시별로 차이가 있지만 도서관은 지역 공동체 간 연결 기능도 하고 있다. 도서관이 책을 열람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의 역할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외국 도서관에는 직업상담사나 사회복지사가 배치된 경우도 있다. 도서관에서는 도서와 자료 제공만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도서관 사서의 업무는 매우 다양하다. 대출 반납이 주 업무가 아니라 도서관의 기획·운영 전반이 핵심 역할이다. 암호 같은 분류 기호를 외워 이용자들이 쉽게 도서를 찾아볼 수 있도록 분류하는 일도 그중 하나다. 공공도서관 사서는 견학, 독서의 달, 체험 행사, 북스타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맡고 있다. 사실 도서관 사서의 핵심 업무 중 하나는 ‘장서 점검’이다. 대출 반납 소장 자료 목록과 실제 도서관 자료 간의 일치 여부, 자료 폐기, 장서 재배치 등을 점검해야 하는데, 어떤 곳은 이조차 수행 인력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과도한 성과 평가 때문에 지역구 축제, 동 축제, 마을 축제까지 참가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도서관에서 새로 편성되거나 확대된 서비스는 사서의 업무와 노동 강도를 가중하고 있다. 이미 유럽과 미국 도서관에서는 전통적인 사서 직무 중 3분의 1 이상은 새로 편성되거나 확대된 서비스이며, 새로운 수요에 조응하지 못할 경우 일자리 상실 위험성도 언급하고 있다.

 

지체된 적응, 도서관의 노동 현실

 

현재 공공도서관 1,200여 곳에는 약 3만 명의 사서가 일하고 있다. 문제는 기간제 계약직뿐만 아니라 시간제와 초단시간 등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도서관 연장 개관 인력은 계약직으로, 주말은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른 전문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초단시간 고용도 특이한 현상이다. 아무리 예산이 부족하다지만 실업급여도 못 받는 초단시간 사서가 11%나 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해 사서로 취업하면 210~220만 원 내외의 월급을 받는다. 최저 임금보다 고작 15만 원 남짓 더 많은 셈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사서 10명 중 4명은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이직 생각을 갖고 있으며, 공공도서관 사서의 평균 근속 기간은 4.5년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도서관 사서의 인권 침해와 부당 대우인데, 몇몇 실태조사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특히 비민주적인 조직에서나 나타날 법한 현상들이 도서관에서는 일상화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재단이나 종교법인의 행사 차출(45%), 합리적 이유 없는 업무 재배치(27.8%), 연령(20.6%)이나 비정규직(20.6%)에 대한 부당 대우 등이다. 수탁 기관 변경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이익은 다반사이고, 사서의 81%가 여성인데 육아 휴직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민간위탁 도서관은 직영 도서관에 비해 상황이 더 심각하다. 민간위탁 도서관 중에는 사서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은 자가 관장을 맡고 있는 곳도 있다.

 

게다가 일상적으로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들과 대면하다 보니 감정 노동도 심각하다. 도서관 이용객으로부터의 폭언(67.9%), 성희롱(14.9%), 괴롭힘(48.4%)은 심각한 수준이다. 소위 ‘1급 진상’ 때문에 경찰이 출동할 만큼의 소란도 가끔 발생한다. 그럼에도 민원이 들어오면 항상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말만 되풀이 하도록 한다. 도서관 이용자에게 극존칭을 쓰게 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게 하는 등의 저자세 서비스의 강요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관료주의 폐해를 보여준다.

 

지역의 기초의원이나 지역 유지들로부터의 ‘갑질’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민간위탁 법인 대표가 사서들을 모아 놓고 진행하는 회의들도 문제다. 매월 1회 법인 재단 대표의 낭독훈화는 애교에 가깝다. A 종교법인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는 아직도 사서에게 자발적 후원(?)을 강요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항상 주민들을 위해 함께하자!’라는 말은 오랜 시간 동안 사서의 인권 침해를 은폐시키는 요인이다.

 

사서의 숙련과 변화하는 노동 시장 상황

 

고용노동부의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사서’란 “도서관 및 자료실에서 도서 및 자료를 관리하고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를 대출 및 수납하는 업무” 종사자로 정의한다. 국내외 문헌을 찾아보면 ‘사서 업무’는 크게 7개 영역으로 구분된다. 주요 업무는 ① 선정 업무, ② 취득 업무, ③ 조직 업무와 접근성 제공, ④ 보존과 관리 업무, ⑤ 이용자 지원 업무, ⑥ 이용자 교육 업무, ⑦ 도서관 운영과 경영 업무로 구성된다(Gorman, Michael, 2000: 33~35; 김종진 외, 2019:1). 도서관 유형에 따라 공공도서관, 학교도서관, 대학도서관, 그 이외로 구분되는 내적 특성과 업무 차이도 일부 확인된다. 그런데 사서의 노동 문제는 도서관과 정책의 제도화 과정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소외되었다. 〈제1차~제3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에서도 사서의 노동기본권 문제는 찾아볼 수 없다.

 

향후 10년간 사서 인력이 현 상태로 유지될 것 같지만, 변화하는 환경에서 숙련과 전문성이 약한 곳은 디지털 전환에 따라 사서 업무의 일부가 자동화될 것이다. 평생교육 수요 증가나 공공도서관의 편의성 개선 등으로 인해 사서 인력 충원과 달리 환경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도서관은 단순 정보 제공 장소가 아니라 종합적인 정보 제공과 지역의 허브 역할로의 변화를 모색한 지 오래다. 이에 따라 사서 업무 또한 음악, 예술, 전시, 교육 등 문화 융합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도서관의 138개 사서 업무와 과업들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비대면 도서관 프로그램·행사, 비대면 열람 및 대출, 도서관형 창작·콘텐츠 개발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주요 업무 중 80.4%(111개)가 코로나19 시기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코로나19 시기 동안 이용자들의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는 서비스인데, 주로 스마트도서관, 예약 대출, 온라인 원화 전시 등이다. 팬데믹 이전 시기에 운영하던 북큐레이션, 독서 모임, 평생교육 등 각종 오프라인 프로그램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거나 온·오프라인 병행 형태로 시행되었다.

 

아마도 코로나19 시기에 신규로 구축되거나 기존 서비스가 확대된 것 중 다수가 그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2021년 실태조사 결과, 사서 10명 중 약 7명(72.4%)은 지난 3년 사이 도서관 업무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새로운 서비스 도입 또는 중대한 변화(78.1%), 새로운 업무 방식 도입 또는 중대한 변화(51.7%), 새로운 정보 통신 기기 도입 또는 중대한 변화(49%) 등을 꼽고 있었다(아래 〈표〉 참조).

 

〈표〉 국립·공공·학교·국공립대학도서관 사서의 코로나19 전후 신규 서비스 인식

(2021, 단위: %)

서비스 분류 서비스 성격 서비스 전망

코로나19 이후
신규 서비스

코로나19 시기
확대 서비스

지속 예정

서비스 종료·
종료 예졍

미정

① 비대면 도서관 프로그램·행사 89.0 11.0 56.0 20.9 23.1
② 비대면 열람 및 대출 70.8 29.2 59.7 36.1 4.2
③ 도서관형 창작·콘텐츠 개발 프로그램 86.1 13.9 66.7 11.1 22.2
④ 디지털화 및 데이터베이스 제공 68.8 31.3 81.3 6.3 12.5
⑤ 비대면 이용자 교육 및 서비스 69.2 30.8 57.7 23.1 19.2
합계 79.7 20.3 60.6 23.2 16.2

* 자료: 윤자호·이선미·김보희(2021),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로 인한 사서직 직무변화 현황조사 및 정책적 지원방안 연구』, 국립중앙도서관, p.50.

 

 

사서의 일자리와 노동 문제는 도서관이 처한 환경 변화에서 잘 알 수 있다. 도서관 역할과 기능은 이전과 달리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도서관이 처한 환경의 변화는 디지털 정보 기술 발달 및 정보 매체 다각화, 도서관 공간의 성격 변화(개방성, 창조 활동 공간, 지식 정보 격차 해소 매개) 등이다. 도서관의 협력형 서비스 강화는 물론 인쇄 자료 중심의 ‘소장’에서 다양한 자료에 대한 ‘접근’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와 같은 내·외부 환경 변화는 사서 역할의 확장성과 함께 일하는 방식의 변화 필요성이 수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의 다양한 일하는 방식에 맞춘 숙련과 노동 문제가 검토되어야 한다.

 

사서의 노동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

 

변화하는 산업 구조와 기술 발전 과정에서 사서 직무의 경력 개발과 직무 교육이 연결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용노동부 자료에서는 약 14년에서 16년 정도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직업군으로 사서를 분류하고 있고, 숙련 기간은 1년~2년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사서의 인력 충원이라는 양적 문제만이 아니라, 고용 구조, 노동 조건, 숙련 형성 기제(보수 교육, 자기개발), 감정 노동 등 질적 개선을 위한 법제도조차 없는 것은 심각한 현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간하는 「알기 쉬운 도서관 통계」에서조차 ‘사서 고용의 질’에 대한 지표는 찾아 볼 수 없다.

 

몇 년 전 영국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이용한 적이 있다. 아직까지도 생생한 기억은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갖춘 ‘사서’였다. 그들은 사전에 온라인으로 신청한 자료뿐만 아니라 연관 자료 목록까지 추가로 전달해 주었다. 최근에는 지역 사회 시민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육 등의 역할도 맡고 있다. 반면에 국내 공공도서관은 마법과 같은 고용 법칙이 존재한다. 정규직 사서와 비정규직 사서, 그 외 보조 인력(자원 봉사·공공 근로·대체 복무 요원 등)이 각각 3분의 1의 비율로 활용된다.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전문적인 서비스는 불가능하다.

 

도서관계 내의 논리와 원칙은 있겠지만 사서 노동 현실을 바꾸기 위한 그간의 노력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방자치단체, 도서관협회와 대학 교수, 그 누구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서 노동 권익 향상을 위한 법률과 자치법규 그리고 정책을 위해 도서관의 책들 사이에 숨겨진 사서의 인권을 되짚어볼 시점이다.

 

 

 

참고문헌
김종진(2022), 「도서관 책 속에 숨겨진 사사의 노동」, 『노동자의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 않는다』, 롤러코스터.
김종진·윤자호 외(2020), 「공공도서관 민간위탁 운영과 도서관 사서 노동실태」, 《이슈페이퍼》, 2020-02, 제121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윤자호·이선미·김보희(2021),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19로 인한 사서직 직무변화 현황조사 및 정책적 지원방안 연구』, 국립중앙도서관.
Gorman, Michael(2000), Our Enduring Values: librarianship in the 21st Century, [국역: 이재환, 『도서관의 가치와 사서직의 의미』, 태일사, 2011].

 

이용해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불안정 노동, 노동 시간, 감정 노동, 정의로운 전환 등 다양한 노동 문제를 정책화하고 실천적으로 사회 의제화하는 데 관심 갖고 활동하고 있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 부위원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플랫폼노동산업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 한국산업노동학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노동자의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 않는다』(롤러코스터, 2022), 『숨을 참다』(후마니타스, 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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