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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  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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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기획이 뜬다]
〈퇴근 후〉 시리즈의 ‘마이크로 타깃팅’

 

 

 

최병윤(리얼북스 대표)

 

2020. 07.


 


『퇴근 후』 시리즈 1

 

배고픔을 해결하거나 취업을 위해 기술을 배워야 했다. 근로자들은 토요일은 격주 휴무를 하거나 오전 근무를 하고 야근이나 철야, 주말 특근까지 빈번했던 시대가 있었다. 꽤 먼 시대의 이야기 같지만 불과 30~40년 전의 이야기다. 필자가 자랄 때만 해도 보릿고개(수확한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수확하기 전의 계절)가 있었고, 학교나 마을에서 쌀 대신 밀가루나 보리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혼․분식을 장려하기도 했었다. 그러한 시대 상황이 사회․경제적 성장, 산업 고도화로 물질적 풍요를 주는 대신 정신적 여유와 안정을 빼앗아 갔고 이런 현상의 결과로 90년대 후반부터 취미나 여가생활이 생겨났다. 끼니를 때우는 것에서 잘 먹는 것으로, 일하고 돈 버는 것에서 내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이른바 웰빙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04년에는 김영사에서 이러한 웰빙 문화를 소개한 〈잘 먹고 잘사는 법〉이라는 생활문화 시리즈가 5년여의 기획 끝에 출간되었다. 건강과 취미, 리빙, 여성, 여행, 음식 등 6개 카테고리, 문고본 형태의 종합 실용서가 출간되었다. 〈잘 먹고 잘사는 법〉은 동명의 생활 정보 프로그램이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2년간 SBS에서 방송될 정도로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웰빙이 2000년 전후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면, 2000년대 중후반에는 지속 가능한 웰빙의 실현, 자연주의와 친환경, 힐링을 표방하는 ‘로하스’가 사회문화적 키워드가 되었다. 지속 가능한 건강한 삶을 위한 〈살림 로하스〉 실용서 시리즈가 출간되기도 했다.

 


김영사의 <잘 먹고 잘사는 법> 실용서 시리즈(사진 김영사 제공)


김영사의 〈잘 먹고 잘사는 법〉 실용서 시리즈(사진 김영사 제공)

 


살림출판사의 <살림 로하스> 체험 수기 공모전 포스터 (사진 살림출판사 제공)


살림출판사의 〈살림 로하스〉 체험 수기 공모전 포스터(사진 살림출판사 제공)

 

2020년, 현재를 대변하는 사회문화적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중에 하나가 워라벨(Work-life balanc)이 아닐까 싶다. 성공이나 연봉을 위해 강도 높은 노동(야근, 퇴근 후 업무)도 마다않던 상황에서 이제는 개인적인 삶, 퇴근 후 내 생활이 보장되는 삶을 원하게 된 것이다. 법정 근로 시간이 일주일 최대 근무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개정되기도 했다.

 

리얼북스는 실용서 시리즈를 기획하기 전, 시대적 요구사항으로는 웰빙, DIY 등과 워라벨 시대 취미 실용서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달라야 하는 점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또한 시리즈 도서 론칭의 형태도 시대가 변한만큼 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실용서 시리즈들의 광범위하고 범용적인 독자를 타깃으로 했다면 좀 더 세밀하고 타깃 독자에게 맞춤형 도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타깃 독자를 워라벨 시대에 맞추어 ‘직장인 여성’으로 한정해 ‘퇴근 후’로 이름 짓고, 시리즈 콘셉트를 자기계발형 실용서가 아니라 즉, 활용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책을 보며 배우거나 따라 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울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했다.

 

책의 형태 또한 주 타깃 독자의 ‘직장 여성’의 취향에 맞게 슬림한 사이즈와 분량(188*128, 150쪽 전후)으로 출간했다. 부담 없이 내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책이란 콘셉트는 비단 분량이나 구성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각 도서의 제목에서도 ‘한 권’, ‘한 접시 요리’, ‘한 장’ 등과 같이 도서 제목이 주는 뉘앙스 또한 편하고 슬림함을 선택하고 있다.

 

시리즈의 여러 도서를 한꺼번에 론칭하며 마케팅을 하는 대규모 론칭 대신 한 권 한 권의 개성과 낱권으로도 가치를 부여하는, 개별 도서의 마케팅 퍼포먼스를 갖는 론칭 방식을 택했다. 시리즈의 이미지보다는 각 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마케팅 포인트 또한 ‘직장 여성’의 활동 영역에 맞게 온라인, SNS 등으로 한정해 진행했다.

 

시리즈의 이름을 ‘퇴근 후’로 하였을 때 타겟팅이 명확해지는 부분은 있었으나 직장인으로 한정되는 문제가 있었고, 대규모 론칭이 아닌 각 권별 출간 론칭 방식도 시리즈 도서 출간에서는 모험적인 부분이다. 한꺼번에 시리즈 도서를 론칭할 때 비용이나 시리즈 세트 도서 판매 등 마케팅에서 효율적인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6권째 출간을 앞둔 상황을 돌이켜 보면 ‘퇴근 후’라는 이름이 갖는 함축성과 대표성의 장점이 오히려 더 많은 편이다. ‘워라벨’이라는 시대적 키워드에 맞게 자연스레 ‘퇴근 후’ 여가생활에 관심이 맞추어졌고 ‘퇴근 후’라는 시리즈 이름은 대표적인 도서 상품이 될 수 있었다. 또한, 퇴근 후 생활이 갖는 상징성이 여가생활, 나의 생활, 내가 주인인 삶 등으로 확장되어 ‘퇴근 후’ 시리즈는 꼭 퇴근 후에만 보며 활용하는 도서가 아닌, 여가를 즐기는 도서가 되고 있다.

 

시리즈 도서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인데 46판형(128*188)의 무선제본과 양장제본이다. 드로잉 같은 따라 하기 과정이 필요한 것은 책의 펼침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가로가 큰 형태의 양장제본을 택했고, 『퇴근 후 그림책 한 권』과 같이 읽는 책은 이동 시에도 읽기 편하게 세로가 큰 형태의 판형을 선택했다. 페이지 분량은 두 형태 모두 150페이지 전후의 슬림한 형태를 취했으며, 도서의 구성 또한 층층이 구성되는 직렬식 구성 대신 각 섹션이 드러나는 병렬식 구성을 통해 단순하고 찾아 읽기 편한 구성을 선택했다. 디테일한 내용을 보면 젊은 직장인 여성에 맞는 깔끔한 디자인, 일러스트 사용, 작은 글씨, 단순한 구성, 슬림한 내용과 분량으로 구성되었다.

 

다양한 책이 있을 수 있고 그 쓸모가 제각각이겠지만 리얼북스의 〈퇴근 후 시리즈〉는 책을 통해 무엇을 준비하거나 나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책, 복잡하고 두꺼운 것이 아닌 단순한 구성과 슬림한 구성과 분량의 책, 많은 사람을 타깃으로 하는 범용성보다 직장인 여성을 타깃으로 한,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한 도서라고 할 수 있다. 『퇴근 후 한 접시 요리』를 첫 책으로 『퇴근 후 캘리그래피 한 장』, 『퇴근 후 그림책 한 권』, 『퇴근 후 드로잉 드로잉』, 『퇴근 후, 동네 서점』 다섯 권이 출간되었고, 하반기 『퇴근 후 색연필』, 『퇴근 후 오일 파스텔』, 『퇴근 후 어반드로잉』, 『퇴근 후 음료』 등의 도서가 출간될 예정이다.

 


『퇴근 후 한 접시 요리』



『퇴근 후 캘리그래피 한 장』



 『퇴근 후 그림책 한 권』


『퇴근 후 드로잉 드로잉』『퇴근 후 동네 책방』

『퇴근 후 한 접시 요리』, 『퇴근 후 캘리그래피 한 장』, 『퇴근 후 그림책 한 권』, 『퇴근 후 드로잉 드로잉』, 『퇴근 후 동네 책방』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워라벨, 퇴근 후의 삶 등을 유용하고 즐겁게 보내는 데 있어 독자들의 삶에 리얼북스의 〈퇴근 후, 시리즈〉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 본다. 퇴근 후 시리즈의 비전과 전망을 가져 본다면 비단 국내 상황에 그치는 것은 아니므로 아시아 도서 시장에 수출도 적극 타진하고 싶다. 또한 자기만의 삶, 즐거운 삶을 가꾸는 데 있어 맞춤형 도서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애정 있는 독자에 대한 관심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아울러 이전 ‘퇴근 후’ 종이책의 형태나 구성이 독자에게 친근하고 유용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콘셉트를 잡아 왔다면 도서 콘텐츠의 접근 플랫폼이나 유통, 마케팅에 있어서도 ‘오디오북’이나 ‘펀딩’ 사이트처럼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독자와의 친근한 관계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최병윤(리얼북스 대표)

컴퓨터 도서 및 실용서 편집자를 포함해 출판사 편집자로 17여 년간 근무했으며, 리얼북스 출판사로 독립해 6년간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여러 컴퓨터 및 실용서를 집필하기도 하였으며, 사진 및 여행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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