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Vol.16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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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작가 전성시대]
여성작가의 책을 사고 읽는 독자는 누구인가

 

 

 

구환회(교보문고 도서 MD)

 

2020. 11.


 

 

올해 노벨문학상은 미국의 시인 루이즈 글릭이 받았다. 이 결정이 뜻밖이라는 논평들도 눈에 띈다. 루이즈 글릭이 최근 수상 작가 중 익숙한 조건이 아닌 ‘여성’과 ‘시인’에 모두 해당하기 때문이다. 뮤지션인 밥 딜런을 제외하면, 1993년의 토니 모리슨 이후 ‘미국’ 문학가로는 첫 수상이라는 점까지 추가된다.
이 중 여성 작가가 수상자로 이름을 많이 올리지 못했다는 부분은, 현재 국내 문학계의 시선으로 볼 때 다소 낯설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문학상은 여성 작가들이 휩쓸고 있다. 2020년만 해도 현대문학상(백수린), 젊은작가상(강화길), 김승옥문학상(김금희), 동인문학상(김숨) 등 독자들에게 친숙한 문학상들은 모두 여성 작가들에게 돌아갔다. 현재 여성 작가들에게 보내는 평단의 지지는 매우 공고하다.

 


올해의 문학상 수상작들


올해의 문학상 수상작들

 

그렇다면 여성 작가를 향한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최근 여러 언론에서 다뤘던 것처럼 올해 ‘국내 소설’은 전년 대비 높은 판매 증가를 보였다. 이러한 성장을 여성 작가들이 주도한 것인지, ‘여성 작가 강세 현상’이 서점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지 먼저 짚어보자. 이어서 여성 작가의 소설을 읽는 독자는 누구인지 살펴보겠다.

 

 

 

여성작가가 국내 소설의 성장을 이끌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교보문고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소설 상위 100편 중 여성 작가의 책이 몇 권이 되는지 추려 보았다. 단, ‘여성 작가의 부각’이라는 이번 호 커버스토리의 경향성을 읽을 수 있는 ‘한국 문학’, 즉 국내 소설에 한정했다. (일부 도서를 제외하면 국외 소설 베스트 목록에서는 이 글의 주제와 큰 연관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명확한 분석을 위해 국내 소설 안에서도 고전 소설, 청소년 소설, 미스터리 소설 등 ‘일반 현대소설’에 포함되지 않은 분야는 모두 제외하였다. 오늘의 국내 소설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르인 SF, 그리고 『아몬드』와 같은 일부 영어덜트 소설은 포함했다.

 


국내 소설 베스트 100 중 여성 작가 책의 비중


국내 소설 베스트 100 중 여성 작가 책의 비중

 

100종 중 무려 71종이 여성 작가의 소설이다. 2019년 같은 기간의 55종에 비해 크게 증가한 양상이다. 더 먼 과거를 돌아보자.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발표된 2016년의 바로 전 해이며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5년, TOP 100 중 여성 작가의 책은 44종으로 절반에 조금 못 미쳤다.

 


‘2020 vs 2015’ 국내 소설 베스트 10


‘2020 vs 2015’ 국내 소설 베스트 10

 

2015년 베스트 목록에서 최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김진명, 조정래, 김영하, 성석제 등 남성 작가 사이에 김숨, 정유정, 한강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2010년 중 후반 이후 환영받는 인기 작가군이 된 젊은 작가의 책이 많지 않다는 점도 그동안 일어난 변화를 느끼게 한다.
상위 100편 중 여성 작가의 책이 71%를 차지한 것은 역대 최고 비중이다. 게다가 남성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순위가 높은 책은 김훈의 『달 너머로 달리는 말』로 순위는 11위다. 지금 독자들이 서점에서 많이 찾는 문학, 대중적 인기가 모아지고 있는 문학인 ‘여성 작가의 작품’이 국내 소설의 약진을 이끈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가 여성 작가의 책을 읽는가?

 

여성 ‘작가’ 소설의 주 구매층은 아마 여성 ‘독자’일 것이라고 추정하게 된다. 여러 대조군과 비교해 보자. 우선, ‘도서 시장 전체’ 그리고 ‘소설 분야 전체’ 모두 여성 독자의 비중이 높다. 올해 교보문고 판매 데이터 기준, 국내 소설과 국외 소설을 합한 ‘소설 분야 전체’ 구매회원 중 여성의 점유율은 약 67%다. 단행본 분야 중 ‘시/에세이’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소설 구매자 중 여성 독자의 비중


소설 구매자 중 여성 독자의 비중

 

이 글에서 집중하고 있는 ‘국내 소설’의 경우 여성 독자의 비중은 약 72%다. 소설 분야 전체보다 5% 높다. 국외 소설(약 66%), 미스터리 소설(약 65%), 고전 소설(약 67%) 등 소설 내 다른 분류와 비교해도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얼마나 차이가 날까? 동일한 ‘국내 소설’ 구매자 기준, 여성 독자는 작년 동기간에는 약 69%, 2015년 동기간에는 약 62%의 점유율을 보였다.
앞서 소개한 ‘국내 소설 상위 100편’ 목록으로 한번 더 들어가 본다. 100종 중 71편을 차지하는 ‘여성 작가 책을 구매한 여성 독자 비중’은 약 77%까지 치솟았다. 남성 작가의 책 29편의 경우 여성 독자 비중은 약 60%로 낮은 수준이었다. 이와 같이, 여성 작가들의 활발한 창작 활동과 그 주요 소비층인 여성 독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맞물려 소설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다음은 연령별 현황이다. ‘국내 소설’ 전체 독자 중 최다 구매층은 남녀 전체 중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20대 여성 독자다. 이들의 비중은 약 26%로, 전년 동기간의 약 23% 대비 3% 정도 증가했다. (‘비중’이 3% 증가한 것은 큰 폭의 변화다.) 물론 구매 회원수의 증가도 남녀 전체 연령대 중 20대 여성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젊은 층이 책을 읽지 않고, 독자의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는 산업적 인식을 감안하면 20대 독자의 증가는 고무적이다. 20대 다음은 30대(약 20%), 40대(약 16%) 순으로 독자가 많았다. 이 세 고객군을 합치면 약 62%에 이른다.

 


2020년 여성 독자가 많이 구매한 작가 TOP 10


2020년 여성 독자가 많이 구매한 작가 TOP 10

 

올해 여성 독자가 가장 많이 구매한 작가 10인은 모두 여성이다. 작가별로 주요 구매 연령층은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점. 여성 독자는 젊은 작가를 지지한다. 열 명 중 정세랑, 손원평, 강화길, 김초엽, 장류진, 최은영 여섯 명이 2010년대에 데뷔한 젊은 작가다. 여섯 명을 포함한 젊은 작가군과 위 작가 9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들을 통해 오늘 여성 작가를 읽는 독자의 특징은 무엇인지 유추해 본다. (열 명 중 ‘드라마 셀러’의 영향을 받았던 이도우는 예외로 했다.)

 

 

 

소설 읽는 독자들의 세 가지 특징

 

첫 번째, 폭력과 부조리에 적극적인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독자가 소설을 읽는다. 가부장제의 모순, 비합리적 직장 문화, 일상과 구조 속 다양하게 내재화된 차별 등 오늘의 젊은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던지는 시선의 방향은 전방위적이다. 젊은 작가군이 아닌 작가들의 소설도 이 경향과 연결된다. 여성 독자가 많이 선택한 작가 6위인 한강의 책 중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되살려 낸 『소년이 온다』이다. 7위 구병모의 소설은 날카롭고 현실 비판적이다. 더 놀라운 점은 8위에 이름을 올린 양귀자의 인기다. 80년대 등단한 작가의 90년대 발표작인 『모순』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페미니즘 문학의 모던 클래식으로서 생명력을 유지하며 젊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구매 독자의 거의 절반인 44%를 (30대, 40대가 아닌) 20대 여성 독자들이 차지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설에 담긴 메시지가 현재 시점에서 유효하기만 하다면, 독자들은 같은 세대인 젊은 작가에 속하지 않는 작가의 책도 기꺼이 읽는다.

 

두 번째, ‘내’ 존재의 오롯한 독립만큼이나 ‘남’, 타자와의 공존을 중시하는 독자가 소설을 읽는다. 최은영 소설의 인물들은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위로한다. 정세랑은 스스로를 ‘하드코어한 환경주의자’라 부른다. 한 강연회에서 김초엽은 “내 소설이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귀결되는 것이 싫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위 순위에는 없지만 역시 올해 주목받은 젊은 작가인 천선란은 『천 개의 파랑』에서 인간, 동물, 로봇 등 종에 무관하게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개체들의 조화로운 연대를 주장한다. 김혜진은 ‘2인칭’ 소설들만 모은 소설집 『너라는 생활』을 발표하기도 했다.

 

세 번째, ‘마치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낄 정도의 ‘공감’을 구하는 독자가 소설을 읽는다. 공감을 이끌어 내는 배경은 다양하다. 위 작가 10인의 책을 가장 많이 구매하는 그룹은 대부분 20대인데, 유일하게 장류진만 30대가 최다 구매층이다. (손원평의 구매자 중 40대 여성이 많은 것은 『아몬드』가 청소년 소설이기 때문이다.) ‘픽션인가 다큐인가’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현실 밀착형 공감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30대에게 더 가깝게 와 닿기 때문이다. 같은 해 출간된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도 결을 같이 하는 단편을 수록했다. 반면 지금 대세 분야가 된 SF는 얼핏 범주가 다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이야기의 무대가 우주로 확장되고, 육신이 세상에 없는 망자와 소통할 수 있고, 일상에서 상용화된 로봇이 등장하는 SF 소설은 ‘일상’보다는 ‘상상’이라는 단어가 어울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감의 밀도가 높다는 점은 동일하다. 심너울 소설집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의 첫 번째 단편 「초광속 통신의 발명」은 “진짜 퇴근하고 싶다.”라는 처음 보지만 이미 백 번은 읽은 것 같은 친밀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SF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일반 소설’ 속 주인공들과, 지금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은 서로 닮아 있다. 많은 ‘SF 소설’들이 과학과 기술의 최첨단을 투과해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일반 소설’이 글로 그린 세밀화의 주요 피사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민, 근심 그리고 갈망이다. (맞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편의상 ‘일반 소설’과 ‘SF 소설’로 나누어 적었다.)
이 세 가지 특징을 ‘누가 여성 작품을 읽는가’라는 물음의 답으로 제시한다. 인구 통계적 특성으로 ‘20~40대 여성’이라는 점이 추가된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여성 독자는 남성 작가를 읽지 않는가?” 그리고 “남성 독자는 여성 작가를 읽지 않는가?”

 

 

 

여성독자가 읽는 남성작가, 남성독자가 읽는 여성작가

 


2020년 세대별 주요 남성 작가의 여성 독자 비중


2020년 세대별 주요 남성 작가의 여성 독자 비중

 

여성 독자들은 남성 작가의 책도 읽는다. ‘국내 소설’을 구매한 전체 고객 중 여성의 비중은 약 72%라고 앞서 적었다. 표본으로 뽑아 본 남성 작가들 중 박상영 책의 여성 독자 비중은 약 71%로 전체 평균에 근접했다. 75%인 심너울은 72%를 초과했다. 신인에 가까운 작가일수록 여성 독자의 비중이 높았다. 반면 김훈, 황석영 같은 70대에 접어든 남성 작가는 남성 독자가 과반을 차지했다.
박상영과 심너울은 주목받는 젊은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상영은 ‘수상작품집이 가장 많이 팔리는 문학상‘인 젊은작가상 대상을 2019년에 수상했다. 심너울은 한국 SF의 새로운 물결을 이루는 작가이자, 굳이 분야의 구분을 논할 것 없이 대표적인 90년대생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다. 두 작가는 우리가 예전에 만나 보지 못했던 젊고 새롭고 신선한 문학 언어를 구사한다. 상기한 여성 젊은 작가들의 장점과 감각과 개성들을 공유한다. 결과적으로 여성 독자들에게 많이 읽혔다. 내가 필요로 하는 가치들을 담고 있기만 하다면, ‘작가의 성별과 무관하게’ 독자들은 그 책을 읽는다. 현재 이에 해당하는 작가가 남성 작가보다 여성 작가, 특히 젊은 여성 작가 중에 월등하게 많을 뿐이다.

 


2020년 남성 독자가 많이 구매한 작가 TOP 10


2020년 남성 독자가 많이 구매한 작가 TOP 10

 

그리고 남성 독자의 경우다. 김훈, 황석영, 김진명이 포함된 것만 빼면 선호 작가 TOP 10 명단은 여성 독자의 목록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총 열 명 중 일곱 명이 여성 작가다. 게다가 1위부터 4위까지 최상위 작가는 모두 젊은 작가이자 여성 작가다. ‘여성 작가의 책=여성 독자만 읽는 책’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이처럼 남성 독자와 여성 독자의 합, 즉 전체 독자가 읽고 있는 작가와 작품을 ‘대세’라고 부르는 건 어색하지 않다. 지금 소설 시장의 지각 변동을 일으킨 주인공은 물론 여성 작가다.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가는 핵심 조력자는 여성 독자다. 남성 독자도 이 흐름에 의미 있는 보조를 맞춰 가고 있지만, 여성 독자 대비 비중은 (약 3대7 정도로) 낮은 상황이다.

 

 

 

차이를 부각하지 않으며 책에 대해 말하는 것

 


2017년 ‘오늘의 젊은 작가 12’ 기획전 배너


2017년 ‘오늘의 젊은 작가 12’ 기획전 배너

 

3년 전인 2017년 연말, 업무 시간에 문득 여성 작가 강세를 실감했던 순간이 있다. 2018년에 주목해야 할 작가를 추천하는 〈오늘의 젊은 작가〉 특별전을 준비할 때였다. 작가 12인을 정한 결과 모두 여성 작가였다. 그렇다고 행사명을 〈오늘의 젊은 ‘여성’ 작가〉 특별전으로 변경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만약 대상 작가 12인이 모두 남성이라고 해도 〈오늘의 젊은 ‘남성’ 작가〉라는 타이틀로 행사를 진행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한 작가들의 책들을 다시 생각하며 얻게 된 배움도 ‘꼭 필요하지 않다면 차이를 부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여성 작가/남성 작가, 여성 독자/남성 독자, 국내 소설/국외 소설, 일반 소설/SF 소설, 젊은 작가/중견 작가 등 많은 ‘구분’과 ‘분리’의 표현을 사용한 것을 양해 바란다. ‘지금의 독자는 과거의 독자보다 여성 작가의 작품을 더 많이 읽는다.’ 이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고, 맞는다면 그 독자는 누구인지 분석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구환회(교보문고 도서 MD)

교보문고에서 도서 MD로 일하고 있다. 현재 담당 분야는 소설이다. ‘먹방’을 보면 먹고 싶은 것처럼, 읽으면 뭐라도 읽고 싶은 욕망이 싹트는 ‘책방’ 장르의 글을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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