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9 2022. 02.
[2022년 청년 책의 해 - 2030이 말하는 책 생태계]
오민지(책방 정류장 대표)
2022. 02.
오후 2시 오픈 시간에 맞춰 책방 문을 열면 막 방과 후 학습이 끝난 초등학생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학생들은 책방 와이파이를 이용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기도 하고, 책방에 비치되어 있는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아주 가끔은 책방에서 학교 숙제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데 그때 학생들과 책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일상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그렇게 한참 떠들다가 해가 질 때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집에 간다.
책방 정류장 외부 모습
그때쯤 책방에는 진짜 손님들이 온다. 직장 일을 마치고 책방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하러 오는 손님, 주문한 도서를 찾으러 오는 손님 등 말이다.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보면 지난 1년간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47.5%, 연간 종합 독서량은 4.5권으로 2019년에 비해 각각 8.2%, 3권 줄어들었지만, 그중 20대 청년층의 독서율은 78.1%로 2019년에 비해 0.3%p 소폭 증가했고 모든 성인 연령층과 비교하면 높은 독서율과 많은 독서량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책방에 방문하는 주 고객층은 2~30대다. 그들에게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의 유형은 에세이다.
책방에는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지만 주로 에세이 유형의 책이 비치되어 있다. 최대한 다양한 주제의 책을 진열하는 것이 큐레이션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책방을 ‘다양성 존중’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과 여성, 채식주의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이 책방을 구성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인생’ 코너에는 토닥토닥하는 내용의 책보다는 전문적으로 현 상황을 분석해주거나 직접 겪은 일을 공감할 수 있게 쓰인 책들을 선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위로하는 글보다는 비슷한 힘듦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의 책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일 책방지기가 『기분이 없는 기분(구정인 만화)』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현재 주 고객층인 청년들이 어떤 심정으로 그 코너에 있는 책들을 고르게 되는지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도 절대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책방에 진열된 『기분이 없는 기분(구정인 만화)』 소개 글
작년에 대전문화재단에서 지원받아 진행했던 “책 더하기 예술”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청년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나누며 문화 예술 활동을 함께했다. 그때 한 해 주제로 잡았던 것이 ‘내면의 성장’이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알아보며 초석을 다듬고, 점점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기획했다. 매회 퇴근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너무 피곤한데도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위로받고 힐링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평가해줬다.
이제는 책방이 책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 같은 정겨움과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함께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는 추세인 것 같다. 매년 독립서점, 동네 책방으로 불리는 서점들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북스테이라는 형태로 책과 숙박을 함께 할 수 있는 서점도 있고, 30분 정도 책 처방사와 대화를 나누고 책을 처방해주는 서점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서점들이 청년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가 직장을 다닐 때, 항상 퇴근길 버스에 올라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그때 읽었던 책이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이었다. 1998년에 초판이 출간된 책이지만 현시대에 출간된 책처럼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자세하게 그려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세상은 네가 해석하는 것처럼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냐. 옳으면서도 나쁘고,
19살 때부터 시작한 사회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늘 회사생활을 힘들어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 싫다는 말을 매일 반복했다. 그리고 출근하면 매일 퇴사 생각을 했었고, 퇴사 자금으로 모아두던 적금이 만기되자 그걸로 무엇을 하며 먹고살까 고민했다. 그러다 퇴사하고 휴식을 취할 때마다 자주 했던 책 읽기가 생각났다. 책방에서 책을 오래 꾸준히 읽었던 것처럼 집에서도 그렇게 하고 싶어 좋은 스피커와 소파 등을 사놨지만 잘 실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공간을 내가 갖고 있으면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책방을 시작했다. 수익적으로는 아직도 많이 힘들긴 하지만, 회사생활을 했던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선택과 책임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보며 ‘지금과 그때는 뭐가 다르지?’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처음 하는 일이라 잘 모르고 적응도 안 돼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책방 관련 인터뷰나 책방을 하고 싶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깨달았다. 서툴러도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내 삶을 내가 한 선택들로 꾸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나는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이건 필자 본인뿐만 아니라 책방에 방문하는 많은 청년이 고민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책방 내부 모습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이 내가 한 선택들로 인해 후회가 가득할 수도 있고 혹은 내가 아닌 타인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을 수도 있다. 어찌 됐건 삶은 결국 모순투성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선택들로 삶을 꾸릴까?’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선택을 할 때 다양한 선택지를 던져줄 수 있는 것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폭은 한정되어 있어 다양한 선택지를 구성할 수 없다. 그때 책을 통해 다양한 세계관과 간접 경험으로 선택지를 늘리면 현재 삶에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꼭 책이 아니라도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가치나 세계관들을 공유할 때 간접 경험으로 다양한 선택지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방 정류장은 최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모임이나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다. 동네 사랑방처럼 누구나 올 수 있고,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퇴근길 책 한 잔을 권한다.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서점을 찾아 나만의 휴식처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부디 나의 취향과 다르다고 동네 서점을 배제하지 말고, 한 번쯤 방문해 색다른 보물들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오민지(책방 정류장 대표) 대전에 있는 ‘책방 정류장’을 3년째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 오민지입니다. ‘책방 정류장’은 제가 직장 다닐 때 오후 6시 퇴근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그널을 듣는 것을 너무 좋아했는데, 그 잠깐의 시간이 저에겐 굉장한 힐링이어서 저희 책방에 방문하시는 분들도 잠깐의 시간이나마 힐링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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