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2018. 10.
플랫폼에서 찾는 콘텐츠 산업의 발전 동학(dynamics), 그리고 출판 비즈니스의 미래를 위한 소고
유진희(한국엠씨엔협회 사무국장)
2018. 10.
* 본고에서 다루고 있는 ‘책’은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경우 ‘종이책’을 지칭하며, ‘종이’라는 물리적 성질, 즉 만질 수 있는(tangible) ‘디바이스’로서의 ‘플랫폼’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뉴미디어 플랫폼’으로서 ‘책’이 몰고 왔던 파괴적 혁신
ICT/IT 기반의 뉴미디어 플랫폼들이 대세가 된 현대 사회에서 가장 올드하게 여겨지는 플랫폼은 단연코 ‘책’일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영향력이 감소한 매체가 책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이 전달하는 이미지 자체가 디지털을 대표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나 ‘기술중심주의(technocentrism)’와는 관련이 없어 보여서 그런지, 다른 미디어에 비해 책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디지털 문명과는 유독 거리감이 먼 감이 있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책’은 본래 등장부터 지금의 모바일 플랫폼에 버금가는, 혹은 어쩌면 그보다 더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뉴미디어 플랫폼’이었다. 1450년경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술’이라는 혁명적 기술이 도입된 이후, ‘책’은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내며 유럽과 전 세계의 문명을 급진적으로 발전시켰다. ‘책’의 확산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비롯하여 학문적, 문화적 유산을 꽃피웠던 르네상스 문화운동을 이끌었고,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인류의 계급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평등사회를 여는 프랑스 시민혁명이 발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때(1450년경)로부터 프랑스 혁명(1789년)까지는 불과 300여 년밖에 걸리지 않았으나, 그 기간 동안 유럽 시민들의 의식 개혁과 비전의 향유, 그리고 실질적인 체제변혁이 모두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단일 국가만의 변화가 아닌, 유럽 대륙 전체의 개혁, 나아가 국제사회의 가치관과 인류의 문화, 역사의 흐름이 완전히 바뀔 정도로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책’은 인쇄술 이후 확립된 개념이다. 출판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은 인터넷의 무한복제 기능에 버금가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제조업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진 영국의 산업혁명보다도 무려 3백 년이나 앞섰던 때였다. 그러나 15세기의 대중은 당시로써는 매우 첨단의 기술이 도입된 ‘책’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덕분에 ‘종이책’은 한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빠르게 소비된 ‘뉴미디어’ 플랫폼으로 군림했다.
〈그림 1〉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사건
〈그림 2〉 책 이미지
양피지에 콘텐츠를 담던 시절에도 ‘책’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가격은 물론이고, 분량과 무게, 원자재 확보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긴 분량의 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플랫폼이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일종의 “분량=기술력”의 공식이 성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일부는 어느 정도 적용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된 것이 기원전이었는데도 책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것은 필사로 제작되느라 책 자체가 극히 소량이고 비쌌던 탓이었다. 계급사회 체제에서 돈과 권력이 없었던 대중들은 평생 책을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럴수록 지배 계급은 책을 독점하여 권력 유지를 위한 ‘통제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 더욱 능숙하고 담대해질 수 있었다.
본래 플랫폼은 ‘다양한 집단 간’의 가치 교환이 일어난다는 정의를 담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로마 시대 노천극장 또는 거리의 장터 등 소수의 한정된 오프라인 공간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교류하는 플랫폼의 전부였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개념처럼 각 지역 구석구석까지 침투하는 ‘대중문화 콘텐츠’ 및 ‘미디어로서의 플랫폼’의 개념은 인쇄술 이후 책이 확산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플랫폼으로서의 ‘책’은 다양한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표지부터 내지, 일러스트, 폰트, 편집 등 디자인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하였으며, 콘텐츠 IP(지적재산권) 비즈니스 모델, 작가 육성 교육 등도 ‘책’이라는 플랫폼 산업이 발전하면서 동반 성장했다. 또한 학술 연구 영역, 저작권, 도서관, 데이터베이스, 검색체계 및 정보관리, 콘텐츠의 검색·유통·보호 등 책과 관련된 부가산업들은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핵심 분야이자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처럼 플랫폼의 성공 여부는 그것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와 강도에 의해 결정된다. 책은 ‘저렴한 가격’으로 ‘정보의 대중화’를 구현시켰다는 점에서 혁명적(revolutionary)이었다. 또한 누구나 휴대 가능하다(portable)는 점, 각자 선택한(my-own) 정보·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은 중세시대 버전의 ‘이동성 개인 미디어’였고 파괴적 혁신을 가져온 최초의 ‘뉴미디어’ 플랫폼이었다.
미디어 환경 변화와 이용자들의 미디어 소비 변화
1) “보는 음악” 시장을 개척한 MTV
1980년대는 전 세계가 유례없는 경기 호황을 맞던 시기였다. 경제발전은 언제나 그렇듯 미디어와 콘텐츠의 발전을 이끈다. 게다가 때마침 출시된 컬러TV로 인해 비주얼 요소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감각적인 것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특히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을 감지한 MTV는 1981년 8월 1일, 음악에 영상을 입힌 ‘뮤직비디오’ 전문 채널을 만들었다. 지금은 마이클 잭슨, 듀란듀란 등 전설적인 빌보드 스타들을 배출한 세계 최대의 음악 채널로 유명하지만, 개국 당시 MTV는 가입자가 고작 몇천 명에 불과할 정도로 볼품없는 작은 PP(Program Provider, TV 채널)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이보다 훨씬 큰 규모의 PP들이 많이 있는 세계 최대의 방송시장 미국에서 특별히 MTV 개국이 관심을 끈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MTV 개국의 의의는 ‘음악 콘텐츠’도 영상 플랫폼인 ‘TV’에 적합한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 다시 말해 콘텐츠의 새로운 표현방식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1970년대만 해도 음악은 TV가 아닌 ‘라디오’가 메인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뮤직비디오가 음원 프로모션의 필수 요소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뮤직비디오’라는 개념이 극히 생소했기 때문에 MTV의 이러한 시도는 완전히 새로운 모험이었다. 실제로 MTV의 개국 당시 채널 ID는 루이 암스트롱이 아폴로에서 내려 달에서 걷고 있는 유명한 장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이는 한동안 MTV의 브랜드 이미지로 작용하기도 했다(Wikipedia).
〈그림 3〉 아폴로13호의 달 착륙 장면을 모티브로 한 MTV의 개국기념 채널ID 화면
MTV가 개국 첫 뮤직비디오로 선택한 것은 ‘버글스(The Buggles)’의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네!(Video Kill the Radio Star!)〉였다(Wikipedia). 개국 40년이 다 되어가는 2018년 현재, 뮤직비디오 시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확인해보면, MTV의 버글스 뮤직비디오 방송이 얼마나 탁월한 선곡이었는가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이제 세계 음반시장은 뮤직비디오를 배제하지 않는다. 음악과 영상의 조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MTV가 보여준 덕분이다.
〈그림 4〉 MTV가 개국기념으로 처음 방송한 ‘버글스’의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MTV의 개국은 전 세계 대중음악계에 아이돌 산업, 뮤직비디오 산업, VJ산업, 비디오 포맷/음악방송 관련 각종 어워즈 산업 등 새로운 콘텐츠 시장을 만들어냈다. 스타 굿즈(Goods), 팬 미팅 등 파생 시장 규모를 합치면 MTV 채널 개국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콘텐츠 산업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교과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오디오 시장도 MTV의 수혜를 입었다. 개국 2개월이 되기도 전에 지역 레코드점들이 MTV에서 방영된 ‘뮤직비디오 수록 음반들’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콘텐츠(음반)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MTV, 광고주, 제작사 및 음반사(유통채널) 모두에게 좋은 신호였다. 또한 뮤직비디오 문화에 적극적이었던 영국 출신 가수들이 MTV에 대거 출연하는 등, 미국 팝음악계가 보다 풍성한 인재풀을 구축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Wikipedia). 결국 MTV는 기존 오디오 중심의 음악 시장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비디오 음악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으며, 이를 통해 세계 음악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데 공헌했다.
MTV 시도에 절대적 지지를 보낸 이들은 1020 세대였다. MTV 개국 당시 기준으로 볼 때, 12세부터 24세까지의 세대 중 무려 50% 이상이 하루 평균 30분에서 2시간씩 매일 MTV를 시청하는 ‘열혈’ 시청자였다(Wikipedia). 요즘처럼 온디맨드(on-demand, 맞춤형/주문형) 형식으로 원하는 시간대에 보던 시대가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TV가 정해주는 시간에 맞춰, 거실의 TV 앞에 매일 앉아서 해당 채널을 본다는 것은 플랫폼 충성도가 매우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디어 트렌드 변화를 이끄는 핵심층의 신뢰와 지지는 MTV가 글로벌 방송채널로서 성장할 수 있는 독보적 경쟁력이자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MTV가 음악 콘텐츠에 대한 기존 관념을 고수한 채 이용자들이 원하는 변화의 바람을 읽지 못했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현상이었다.
〈듀란듀란〉, 〈뉴키즈 온 더 블록〉 등 1980년대 미국 아이돌 산업이 거대 시장으로 성장하게 된 데에는 음악 콘텐츠를 ‘듣는 산업’에서 ‘보는 산업’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던 MTV의 실험이 성공한 덕분이었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콘텐츠뿐 아니라 플랫폼의 전환으로도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준 사례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두는 유연한 사고의 중요성, 이것이 바로 우리가 MTV를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이다.
2) ‘1인 미디어 시대’를 만든 공신, 유튜브, 아이폰, 그리고 MCN
1981년만큼이나, 2007년 역시 미디어 업계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해였다. 2006년 구글에 인수된 유튜브가 영상 앞에 광고가 붙는 ‘애드센스(Adsense)’를 시작한 것이 2007년이었기 때문이다(Youtube Official Blog, 2007).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You Partner Program)’이라고도 알려진 이 서비스는 오늘날 유튜브가 방송, 통신 등 모든 미디어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만든 ‘핵심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 BM)’이자 유튜브의 ‘정체성(identity)’이며, 무료 서비스를 채택하는 모든 동영상 플랫폼들이 공식처럼 채택하는 BM이기도 하다.
1981년의 MTV가 ‘콘텐츠 장르’에 대한 인식의 한계에 도전한 것이라면, 2007년의 유튜브가 시도한 것은 ‘광고’에 대한 이용자 태도의 변화였다. ‘동영상=무료’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퍼져있던 그 당시 상황에서, 이용자들이 동영상을 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3가지 정도였다. ‘돈’을 지불하거나, 불법 사이트에서 몰래 보거나, 매우 퀄리티가 낮은 무료 영상을 보고 견디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튜브는 이용자들에게 ‘무료’로, ‘좋은 콘텐츠 골라서(심지어 그 콘텐츠를 ‘평가’할 수도 있다)’, ‘떳떳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옵션을 제안했다. 그것이 광고였다. 전통적으로 광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던 이용자들에게, 광고 시청을 ‘콘텐츠를 공짜로 볼 수 있는 쿠폰 획득 방법’, ‘15초밖에 안 되는 부담 없는 조건’, ‘최고의 지출 절약 방식’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로 치환시키고자 한 것이다.
유튜브는 광고시청과 ‘콘텐츠 지불의사(Willing To Pay: WTP)’를 놓고 이용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를 충분히 고민한 게 분명하다. 애드센스의 이용자 반응이 좋자, 유튜브는 3년 뒤인 2010년 5초 후 광고스킵을 할 수 있는‘트루뷰 비디오 광고(True View Video Ad)’ 기능을 도입하여 이용자 편의를 극대화했다(Youtube Official Blog).
〈그림 5〉 유튜브 파트너스 프로그램 ‘애드센스’
지금도 광고는 이용자들의 저항이 매우 높아, 대중에게 노출(exposure)과 도달(reach)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그러나 유튜브의 이러한 시도는 글로벌 미디어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그토록 광고를 싫어했던 이용자들이 광고를 적극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창작자들의 수입은 늘어나게 되었고 광고주들 또한 난생처음 자신들 광고를 적극적으로 시청하는 대중을 만나 흥분했다. 현재 유튜브가 자타공인 최고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 한 데에는 근본적으로 동영상에 광고를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시킨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다는 것에 이견을 대기는 어렵다. ‘애드센스’는 우리의 인식 속에 광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21세기 콘텐츠 산업의 강력한 파괴적 혁신 모델을 제시한다.
‘아이폰’도 유튜브에 못지 않은 혁신적 변화를 가져왔다. 유튜브가 애드센스를 선보이던 2007년, 통신 디바이스 시장에서는 애플의 ‘아이폰’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아이폰의 등장을 주목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들고 다니는 인터넷’이라는 콘셉트는 공허한 외침으로 들렸고 기존의 2G 폰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 때문에, 많은 업계 전문가들이 아이폰의 몰락을 예상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콘텐츠 소비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젊은이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최적화된 맞춤형 미디어였으며, 이후 전 세계의 이동통신 시장은 모바일 중심의 스마트폰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오죽하면 스마트폰 보느라 모두의 고개가 숙여져 있다는 의미로 “스티브 잡스가 인류의 자세를 구부정하게 만들었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림 6〉 ‘아이폰3’를 발표하는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
경쟁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단기간에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어떠한 산업군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현상이다. 아이폰의 등장은 그만큼 충격적이었고 혁신적이었다.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가 새로운 플랫폼에 열광했으며,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들이 하루에도 수천만 개씩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스마트폰 플랫폼을 활용한 새로운 실험들이 끊임없이 진행 중에 있다.
모바일 시대 들어서 나타나는 특징은 IT 기술을 접목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너무도 빈번하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이용자’가 있다. 과거 콘텐츠 산업의 주체가 자본력을 가진 ‘기업’이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개인의 노동’만으로 콘텐츠의 창작과 유통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심지어 그것으로 돈도 벌고, 나를 위한 ‘팬’들을 만들기도 한다. 1인이 만든 영상들(UCC)이 산업의 단계인 ‘MCN(Multi-Channel Network, 멀티채널 네트워크)’으로 발전한 것은 바로 콘텐츠 창작자를 향한 ‘팬덤’의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림 7〉 전세계 팬들이 몰린 비드콘 2018 현장
2018년 현재, 우리가 경험 중인 모바일 미디어 환경은 창작-소비-유통-수익-공유-소통-구매 등 콘텐츠의 모든 소비 과정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너지가 더 커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영상 창작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콘텐츠 누적 수가 증가하므로 더 많은 광고수입을 얻게 되며, 이용자들은 놓쳤거나 다시 보고 싶었던 영상을 볼 수 있게 돼서 만족감이 더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콘텐츠의 영향력과 시장이 성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대중의 움직임을 확인한 방송사들도 몇 년 전부터 모바일 플랫폼과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거나 협업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용자들의 역할이 절대적인 콘텐츠 시장에서, 그들이 만든 1인 창작물이 체계적으로 기획된 방송사의 영상보다 높은 팬덤을 확보하는 현상은 실제 방송시장의 원리나 어떠한 학문적 연구결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MCN은 21세기의 가장 큰 ‘콘텐츠 혁신 산업’이다. 미디어 산업의 주체로 부상한 1인들(대중)이 유튜브, 스마트폰, 동영상, 이 세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현재 글로벌 영상 콘텐츠 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15세기 책이 미쳤던 엄청난 파급력이 오늘날의 방식으로 구현된 것이다.
출판계의 착각과 이용자(독자)들의 외면
1) 책 읽기가 싫은 사회, 그 이유는?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들의 연간 독서율(‘1년’간 ‘일반도서’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은 종이책이 59.9%,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쳐도 62.3%로, 각각 이전 조사보다(2015) 5.4%, 5.1%가 감소했다(백원근 외, 2017).
그런데 이 수치를 자세히 살펴보자. 성인의 연간 독서율 60%라는 숫자는 1년 간 책을 1권만 읽은 사람들 비중이 얼마인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읽은 책의 장르와 내용도 깊은 사유가 요구되는 책인지, 말초적 재미만을 제공하는 책인지는 알 수 없다.
책 읽는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60%가 모두 실질적인 연간 독서율일 것이라고 보기는 솔직히 어렵다. 국민 독서실태 조사임에도 매년 조사되지 못하고 2년마다 조사되는 것만 봐도 우리 사회에서 ‘책 읽는 행위’의 문화가 어떤지는 짐작할 수 있다.
본 조사에서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비독서율(1년 동안 단 1권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 비율)이 40% 가까이 된다는 부분(종이책 비독자, 40.1%)이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본인의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도(59.6%), 정작 전년보다 독서시간이 늘어난 사람들은 고작 7.6%인 반면, 독서시간이 줄어든 사람들은 29.2%였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독서율이 높은 10대층이 성인이 되어서도 높은 독서율을 유지할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의 연간 독서율은 90%에 육박하지만, 이는 입시위주의 독특한 국내 학습문화에 기인한다는 것을 추론하기란 어렵지 않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우리 사회 분위기를 볼 때, 학생들의 연간 독서율이 90% 이상이라도 성인이 되면 바로 50% 밑으로 급감할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실제로 학생들은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았다’(21.1%), ‘스마트폰 이용, 인터넷 게임’(18.5%)을 독서 장애요인으로 꼽았다. 결국 90%의 학생 열독률은 변화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을 교육계와 출판계가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따른 일시적 결과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년 콘텐츠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미래 독서세대인 10대와 20대의 독자 점유율의 감소 추이는 매우 심각하다. 연령별 도서구입 비중에서 2008년에도 가장 많이 책을 샀던 20대는 2014년부터 점유율이 낮아지더니 2018년에는 20%대로 떨어졌고, 2008년 구매 점유율이 10%대에 머물렀던 10대층은 2018년는 0%대 수준으로 내려왔다.
〈그림 8〉 교보문고 연령대별 도서구입 비중 추이 (출처 : 2018 콘텐츠산업 전망, 한국콘텐츠진흥원, 17쪽)
아무리 경제력이 없는 세대라고 변론하고 싶어도, 수치가 0% 가깝게 나왔다는 것은 ‘책’이 10대들에게 거의 어떠한 가치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사실 이들 세대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필요한 용돈을 벌어서라도 그것을 구매하는 세대이며, 게임, 웹툰, 영화, 웹소설, 1인 방송 아이템, 음악 스트리밍과 동영상 월정액권 등 콘텐츠 소비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그런 이들의 구매목록에 ‘책’이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현재 상태라면 이러한 현상은 지금의 10대인 Z세대(1995년 이후 출생한 세대)와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모모세대’(More Mobile)로 갈수록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런데도 과거와 같은 의무적인 독서교육으로 국민 독서율이 증진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2) 출판의 디지털은 이펍(e-pub)인가?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생산자’의 마인드 변화다. 현재 사회 전반에는, 출판업계가 이용자의 독서행태를 고려하기 보다는, 그들 자신(출판계)이 정의하는 프레임 속에서만 책을 인정한다는 시각, 즉 독자의 필요를 파악하려는 소통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다. 이미 대중들은 포털 플랫폼을 통해 이동 시간 중에 장르소설을 읽고, 일반인들이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브런치’나 ‘블로그’, ‘스팀잇’ 등 소셜 플랫폼에 올려서 고유한 ‘미디어’ 영역으로 발전시키고 있는데 말이다.
유튜브 애드센스 덕분에 영상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영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듯이, 이제는 재능있는 작가 지망생들이 소셜 플랫폼을 통해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정식 작가로 데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자본이 없으면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 사이트를 통해 직접 후원금을 모집하고, 평소에 꾸준히 콘텐츠로 소통함으로써 자신들을 지지하는 ‘팬’을 확보해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책’이라는 형태를 건너뛰고,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른 장르의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의 사례들은 ‘디지털’로 통칭되는 내용들의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디지털’은 ‘혁신’의 측면에서 볼 때, 중세시대 인쇄술이 내포했던 ‘사회변화의 가치’와도 상통한다. 단순히
이용자들은 창작, 소통, 출간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 주도하여 새로운 프레임을 짠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이제 들고 다니던 ‘예쁜 디자인의 종이 제본’ 모양에 구애받지 않는다. 출판사가 보기 좋게 편집해서 버전별로 선보이는 이펍(e-pub) 형식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출판 비즈니스가 현재 어려운 게임을 하는 것이 단순히 독서 인구가 부족한 때문일까? 이용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퍼블리’(Publy) 같은 이용자 중심의 유료 서비스 플랫폼이나 ‘브런치’(Brunch) 같은 작가 중심 플랫폼들의 성공사례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생태계의 속성과 이용자들의 특성을 잘 이해한다면, 독자들이 돌아올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다시 처음으로!
‘혁신 DNA’의 회복과 이용자 중심의 정책 실현그러면 우리의 인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책’에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구텐베르크 시대에 가장 디지털화된(digitalized) 플랫폼이었을 ‘책’은 21세기 현재 가장 아날로그적인(analogue) 매체라고 여겨지지만, 그래서 오히려 특수하고 대체 불가한 매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가상’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를 대체하는 대다수의 플랫폼 속에서, 현실에 ‘실재’하고 물리적 ‘경험’ 제공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소수의 플랫폼들은 차별화된 임팩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갈수록 프리미엄의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데이비드 색스는 그의 저서인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종이’가 갖는 혁신성이 ‘디지털’보다 어떤 점에서 더 강력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D.Sax, 2016; 박상현·이승연(역), 2017). 물리적 접촉에서 오는 ‘경험’은 독자의 ‘몰입’(engagement)을 극대화 시키므로, 작가와 독자 간에 더 공고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고의 디지털은 최고의 아날로그와 같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 경험과 몰입의 제공’이지, ‘종이책의 위대함’이 아니다. ‘책’이라는 것을 ‘종이’라는 형태 또는 포맷으로 규정하기보다, 플랫폼의 일종으로 생각한다면 혁신은 좀 더 수월해진다. 대중의 종이책에 대한 수요는 분명 줄었다. 그러나 오프라인 공간에서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은 가상 플랫폼이 대세가 된 디지털 시대에 더 강해졌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플랫폼 간의 탈경계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콘텐츠 산업은 플랫폼 간의 ‘융합’과 ‘해체’가 수시로 일어나는 미디어 환경에 맞게 유연한 플랫폼 전략을 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책’의 개념을 종이책과 전자책 바깥의 ‘더 넓은 범주’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제본 형태의 종이 모양은 기껏해야 600~700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녔다. 하지만 20세기 ‘온라인’이라는 가상 생태계가 현실 세계를 잠식하는 초특급 혁신을 가져왔던 것 이상으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통해 탄생한 ‘종이책’은 몇 천 년간 폐쇄되었던 정보를 개방시키며 인류 역사를 한 단계 진보시켰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당시의 ‘디지털’ 기술이었고, 그때의 ‘책’은 디지털의 혁신성을 기반으로 한 뉴미디어 플랫폼이었다. 어쩌면 가장 혁신적인(innovative) 플랫폼 DNA는 이미 출판계에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모든 플랫폼은 그 자체로 진화한다. 이는 그 플랫폼에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새로운 정체성은 사람들이 플랫폼에 모여 소통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며, 그 과정에서 사회발전을 위한 결합이 이루어진다.
1인들이 중요해진 시대답게, 현대의 플랫폼은 개인들의 네트워킹을 연결해주는 것이 최우선 가치가 되었다. 과거의 플랫폼은 대중을 집합시키는 공간이었지만, 21세기의 플랫폼은 자유로운 ‘개인들’을 매개해주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윤지영, 2016). 때문에 플랫폼이 스스로 ‘오가닉’(organic)하게 성장·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은 해당 플랫폼을 활용하는 산업계가 혁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21세기 플랫폼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개인’의 역량이 돋보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집중해야 한다. 전달하는 정보 또한 각양각색, 천차만별이 될 것이다. 기존 ‘책’이라는 플랫폼에서 담을 수 있던 단일 메시지의 묵직함과 비교하는 것은 금물이다. MTV, 유튜브, 아이폰의 사례처럼, 기존 콘텐츠와는 “아예 다른 시장을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자신들의 플랫폼에 맞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개발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글로벌 미디어 시장은 ‘파괴적 혁신’을 시도했던 기업들이 선도해 왔다.
현재, 출판계의 진짜 문제는 국민 독서인구의 감소가 아니라, ‘혁신’을 원하는 이용자들의 기대를 출판계가 충족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하루에도 수백 편 이상이 쏟아지는 웹소설이나 웹툰들을 저급한 영역으로 치부하거나, 출판 외의 콘텐츠 영역은 물론, 제조, 브랜드 등 다양한 산업분야와의 교류가 부진했다. 활발한 협업과 치열한 경쟁, 다양한 마케팅과 프로모션 전략을 시도하여 ‘고고한 출판’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출판계는 전자책이 있긴 하지만 비즈니스 플랫폼을 ‘종이’라는 영역에만 한정하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인정하지 않는 그 영역들을 이용자들이 더 선호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출판계가 21세기 플랫폼 전쟁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구텐베르크 시대의 정신으로 돌아가 혁신 DNA를 되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인쇄술’의 발명은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혁신적이고 강력한 ‘책’이라는 플랫폼을 탄생시키며 인류사 전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21세기의 혁신도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나오고 있다. 콘텐츠 산업같은 비즈니스 영역은 물론이고, IT 기술력에 따른 국가경쟁력, 제도보완 등 국가정책 기조를 변화시키는 것도 플랫폼 비즈니스의 역할이다.
따라서 출판계는 책을 ‘플랫폼의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출판 입장에서의 ‘디지털 혁신’과 ‘확장성’ 및 ‘사회적 영향력 회복 방안’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미디어를 구분하는 가장 흔한 표현인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에서, ‘뉴’(new)라는 말에는 ‘올드(old) 미디어’에 없는 장점이 내포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심리가 담겨있다. 그중 가장 큰 기대가 ‘혁신'에 대한 기대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어떤 형태의 혁신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다. 이는 MCN 콘텐츠도, 웹툰도, 웹드라마도, 그 어떤 것도 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예 ‘책’을 대체하는 다른 단어가 나올 수도 있다. 새로운 시장은 새로운 플랫폼이 만든다.
플랫폼의 역할은 콘텐츠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주도하고 싶은 디지털 시대의 이용자 욕구를 지원하고, 그들의 수요를 파악하여 비즈니스 정책에 바로 반영해주는 것이다. 21세기 출판 산업의 미래를 위한 ‘발전 동학’(dynamics)은 여기에 달려 있다.
참고문헌 ․ 김영석(2017), 〈디지털시대의 미디어와 사회〉. 경기도 파주 : 나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