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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6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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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작가 전성시대]
여성작가 르네상스, 공감과 위로로부터

 

 

 

정여울(작가, 평론가)

 

2020. 11.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킨 대부분의 작품이 여성작가의 작품이 된 지는 오래됐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한국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페미니즘 소설로서는 드물게 100만 부를 돌파하고 영화로까지 제작되며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어 큰 사랑을 받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정세랑 작가, 『7년의 밤』, 『종의 기원』, 『진이, 지니』로 국내외 많은 팬을 두텁게 거느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 정유정 작가. 최근 몇 년간 서점가 베스트셀러 코너를 장악하고 문학상을 석권한 작가는 대부분 여성이다.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 두 작품집만으로 독자에게 단단히 눈도장을 찍은 최은영 작가,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로 이어지는 연타석 홈런으로 쉴 새 없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김금희 작가, 『백의 그림자』,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 등으로 평단의 주목과 베스트셀러 진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황정은 작가,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청소년 소설로 시작해 『파과』, 『네 이웃의 식탁』 등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며 사랑받고 있는 구병모 작가. 『달려라, 아비』와 『두근두근 내 인생』, 『바깥은 여름』으로 출간하는 모든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된 김애란 작가의 인기는 데뷔 직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다. 『푸르른 틈새』, 『내 여자의 열매』, 『안녕, 주정뱅이』 등 수준 높은 단편집으로 오랫동안 독자에게 사랑받은 권여선 작가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른다. 청소년 소설 부문에서 4년째 부동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는 장편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하여 큰 사랑을 받았다. 이렇듯 2010년대 이후 여성작가의 활약상은 워낙 다양하여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여성작가의 르네상스가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로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사회현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페미니즘이 재조명되고, 세계적인 미투 현상에 대한 여성들의 주체적인 인식이 급증하면서, 여성이 이끌어 가고, 여성이 만들어 내고, 여성이 주도적으로 읽는 문학작품이 함께 급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되었다. 출간 당시 신인작가의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과 함께 커다란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82년생 여성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이름이 바로 ‘김지영’이었고, 바로 그런 평범한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고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면서 가슴 아픈 경력 단절과 우울감을 겪는 이야기는 수많은 여성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냈다. 수십 개국에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배우 정유미, 공유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 또한 성공했다. 또한 2020년에는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름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엄청난 성공이 아닌 단지 ‘오늘 나의 일자리’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아이를 키우면서 아메리카노 한 잔 편하게 마시지 못하는 엄마를 ‘맘충’으로 몰아가는 사회에 대한 뼈아픈 성찰. 그것은 단지 베스트셀러로서의 의미를 뛰어넘어 ‘현대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해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여성작가 전성시대가 열린 것은 여성작가의 작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은 독자의 뜨거운 입소문을 타고 감동과 공감의 릴레이를 이어가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SNS와 유튜브에 빼앗긴 우리의 따스한 감수성을 되찾게 해 주는 아름다운 문장이야말로 최은영을 비롯한 여성작가들이 유감없이 발휘하는 특장점이다. 특히 화려한 수사 없이도 따스한 감성을 자극하는 수많은 인물, 트라우마로 인해 깊은 상처를 가졌지만 그 상처에 수동적으로 머물지 않는 강인함과 지혜로움을 지닌 인물이야말로 최은영 소설의 트레이드마크다. 아주 작은 상처에도 바스라질 듯 연약한 심성과 함께 타인의 상처를 향한 극도의 배려심과 예민함을 가진 최은영 소설의 인물은 우리 주변 착하고 따스한 사람의 전형이다. 과도한 자극과 공격성이 다분한 매스미디어 속 주인공에 지친 독자에게, 최은영 소설은 내성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치유의 힘을 가진 주인공을 데려와 속삭인다.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신이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고. 당신이 깊이 상처입었음을. 오랫동안 우울하고 외로웠음을. 다 이해해 줄 것만 같은 따스한 인물이야말로 최은영 작가의 소설에 독자가 오랫동안 열광하는 이유 아닐까.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 「모래로 지은 집」(『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중에서

 

 

여성작가의 서사가 예전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트라우마와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급증한 현대사회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여성들이 서로를 돕고 치유하는 ‘여성 연대 서사’가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남성과의 경쟁 속에서 출산이나 육아로 인해 ‘더 많이 일하고, 더 뛰어날 것’을 요구받으며, 성희롱이나 직장 내 괴롭힘 등에 더 쉽게 노출되는 여성들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위로하는 작품이 독자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 「고백」(『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중에서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에서도 육식을 거부하고 오직 채식을 갈망하는 영혜의 상처와 우울에 유일하게 진정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영혜의 언니였다. 『진이, 지니』에서는 납치당한 보노보 원숭이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육사 ‘진이’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 스토리텔링에서 ‘여성적 공감’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이 사회의 숨겨진 공간에서 홀로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에 진정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여성적 공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권력을 공유하는 남성적 유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나쁜 비밀을 지켜 주는 남성적 편들어주기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여성적 공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나에게 해가 될지라도 내가 아닌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교감하는 따스한 연대의 감정일 것이다. 여성적 공감이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권력을 분배하는 연대감’이 아닌, 오히려 ‘권력을 해체하여 약자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는 연대감’을 뜻한다.

 

 

트라우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치명적인 무기가 되어 인간을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로 인해 ‘여기가 나의 한계다’라는 인식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면서
바로 그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으려는 불굴의 투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
트라우마 이후에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트라우마를 통해 삶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사람들도 많다.
바로 이 ‘트라우마 이후의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 진이와 민주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준다. 트라우마는 자칫하면 인간의 인생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트라우마를 이겨내려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이
트라우마보다 훨씬 크고 깊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 『상처입은 치유자, 트라우마를 넘어 눈부신 사랑의 길로 떠나다』(정여울) 중에서

 

 

과거 문단에서는 공지영, 신경숙, 은희경 등 스타작가 중에서 여성작가의 작품이 사랑받았다면, 지금은 신인작가부터 중견작가에 이르기까지 작품세계와 작가군의 활동이 매우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강화길, 박서련 등 등단 5년 이내의 작가도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제 60대에 접어든 최윤 작가는 변함없는 거장의 손길로 『소유의 문법』을 써 심사위원의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찬사와 함께 2020년 이효석문학상을 받았다. 김혜순 시인은 『죽음의 자서전』으로 2019년 캐나다 그리핀 문학상을 받았으며, 편혜영 작가는 장편소설 『홀』로 미국의 문학상 셜리잭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K-팝과 한국드라마에 이어 한국문학 또한 여성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더 큰 사랑을 받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인작가부터 중견작가에 이르기까지, 풍요로운 작가 군단을 촘촘하게 형성하고 있는 한국 여성 문단은 이제 제2의 르네상스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 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 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 『채식주의자』(한강) 중에서

 

 

손원평의 『아몬드』의 주인공은 감정을 느끼는 데 어려움을 겪는 독특한 캐릭터다. 뇌의 (아몬드 모양을 닮은) 편도체에 이상이 생겨 희로애락을 비롯한 모든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무엇에도 분노할 수 없는 성격 때문에 성장과 생존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하여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엄마와 할머니를 통해 간신히 학습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엄마와 할머니가 눈앞에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본 윤재는 더더욱 커다란 트라우마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상태가 된다. 감정이 사라진 세계, 짐작과 상상조차 희미해지고 오직 아주 건조한 팩트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 윤재. 『아몬드』는 이토록 외로운 윤재를 지켜 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랑과 우정과 격려 속에서 윤재는 ‘엄마’라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주체가 영원히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매일매일 아이들이 태어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축복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누군가는 군림하고
명령하면서도 속이 비틀린 사람이 된다. 드물지만 주어진 조건을 딛고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이 소설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 특히 아직도 가능성이 닫혀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내미는 손길이 많아지면 좋겠다. 거창한 바람이지만 그래도 바라본다.
아이들은 사랑을 갈구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랑을 주는 존재들이다. 당신도
한때 그랬을 것이다.
- 『아몬드』(손원평) 작가의 말 중에서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제 나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으로 고통받는 순간. 그때부터 오히려 윤재 곁에는 새로운 사랑과 우정이 찾아든다. 윤재만큼이나 어두운 트라우마를 간직한 소년 ‘곤이’와의 우정, 너무나도 해맑고 통통 튀는 햇살 같은 성격을 가진 아이 ‘도라’를 향한 사랑. 이 두 가지 감정이 기적처럼 싹트면서, 윤재는 편도체에 이상이 생겨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괴물에서 벗어나 ‘우리처럼 느끼고, 우리처럼 사랑하며 살아가는’ 감정 세계 속으로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감정노동은 많이 하지만, 감정 배출구는 찾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현대인,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면서 치유와 위로를 찾는 현대인에게, 『아몬드』를 비롯하여 ‘여성적 공감’이 담긴 수많은 소설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경쟁과 성공, 각자도생의 마인드로 메말라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절실히 갈망하는 것, 그것은 여전히 사랑과 연대와 희망임을.

정여울(작가, 평론가)

KBS 제1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을 진행하고 있으며, [김성완의 시사夜]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 심리 치유 에세이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인문학과 여행의 만남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청춘에게 건네는 다정한 편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인문 교양서 『헤세로 가는 길』, 『공부할 권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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