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0 2023. 02.
[다시, 종이책의 미래를 말하다]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2023. 02.
코로나19 팬데믹이 큰 고비를 넘기고, 엔데믹으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면서, 북 콘서트, 팬 사인회, 독서 모임 등 오프라인 활동이 증가하는 등 서점 풍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 세 해 동안, 출판 시장은 종이책 인쇄 및 유통망의 약화, 전자책 시장의 성장, 오프라인 서점의 위기 등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겪었다. 책의 미래와 관련해 무엇보다 읽는 습관과 관련된 변화가 중요하다.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독자들이 늘면서 전반적인 독서량이 증가했으나, 전자책, 텍스트 콘텐츠 구독 등 디지털 읽기에 참여하는 독자는 더욱 빠르게 늘어났다. 미국출판협회(AAP)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전자책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4.4%나 증가했고, 그 수치는 줄었으나 증가 추세는 팬데믹 기간 내내 꾸준히 이어졌다. 이는 오프라인 서점 매출이 40~70% 정도 일시적으로 크게 줄어든 점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었다. 물론, 팬데믹이 일상화되면서 종이책과 전자책 간 매출 비중은 상당 부분 본래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디지털 읽기의 증가라는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
『거대한 가속』에서 스콧 갤러웨이는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10년 정도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당신의 회사가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소비자 행동과 시장은 이미 추세선의 2030년 지점에 도달해 있다.” 이는 아마도 장기적으로 종이책 출판 시장에 크고 깊은 영향을 미칠 터이다.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에도 2022년 세계 출판 시장 규모는 약 1,230억 달러(추정치)에 이른다. 이는 2021년 1,170억 달러보다 약 5.1% 성장한 것이다. 성장을 이끌어간 것은 종이책보다는 전자책, 단행본보다는 교육 콘텐츠, 기존 출판보다는 자가 출판 쪽이다. 중국, 인도 등 아시아-태평양 시장의 성장이 두드러졌고, 북미 시장은 전자책과 교육 콘텐츠 쪽에서 크게 선전했으며, 종이책 의존도가 높은 유럽 시장은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퍼블리시 드라이브(Publish Drive)는 2022년 전자책 시장이 2021년 대비 약 13%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약 23억 달러 매출을 올려 출판 전체 시장의 18.7%를 차지했다. 이는 2021년 대비 3.2%p 늘어난 수치이다. 교육 콘텐츠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출판 영역이다. 온라인 강의가 일상화됨에 따라 디지털 콘텐츠 판매 및 e-러닝 시장 규모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e-러닝 시장의 규모는 2021년 약 1,860억 달러에서 2022년 약 3,2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를 제공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 증가하면서 자가 출판의 인기도 여전했다. 특히, 니치 마켓에서 특정 콘텐츠를 사고파는 시장의 활발한 성장은 주목할 만하다. 『인에비터블』에서 케빈 켈리는 “디지털 시대는 비베스트셀러 시대”로, “공유 기술 덕분에 가장 관심을 덜 받은 작품도 잊힌 채로 있지 않다”라고 이야기했다. 상업 출판을 하기엔 충분히 크지 않으나, 취향이나 관심을 공유하는 소수 마니아를 위한 책은 자가 출판을 통해서 다채롭게 세상에 쏟아졌다. 자가 출판과 크라우드 펀딩 출판의 꾸준한 증가는 켈리의 예측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웹소설, 웹툰에 이어서 텍스트 콘텐츠 구독 시장도 활성화하는 중이다.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세계 웹소설 시장은 2022년 약 68억 달러 규모로, 2016년 이래 연평균 8.2% 정도 성장했다. 뉴스 기사, 연구 보고서, 에세이 등 특정 주제나 대상에 맞춰 필요한 고품질 텍스트 콘텐츠를 배송하는 구독 서비스 시장 역시 활짝 열렸다. 디지털 영역에서도 ‘잘 기획된 좋은 콘텐츠’는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점은 출판의 미래를 생각할 때 큰 시사점을 준다.
인터넷 없는 세상에서 한시도 살아본 적이 없기에 디지털 콘텐츠 소비에 익숙한 Z세대의 시장 내 진입은 이러한 흐름을 강화한다. 구독뿐 아니라 소액 결제, 광고 등 다양한 디지털 수익 모델을 실험하고, 드라마, 영화, 게임, 웹툰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원천 콘텐츠를 확보하려고 독자적 플랫폼을 운영하는 저자와 출판사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활발한 디지털 출판의 움직임은 종이책 출판 시장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어둡게 만드는 듯 보인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가 책을 읽고 쓰고 접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건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볼 때 이러한 도전이 종이책 출판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은 섣부른 예측에 불과하다. 종이책 시장이 빠른 속도로 쇠락해 위기를 맞진 않으리라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무엇보다 종이책에는 전자책 등 디지털 읽기가 주지 못할 독특한 매력이 있다. 종이의 속성과 질감에서 오는 냄새와 촉감, 전체를 빠르게 훑어 읽거나 원하는 부분을 빠르게 찾아 읽을 때의 편리함, 책장에 꽂아두었을 때 풍겨 나오는 강렬한 존재감, 책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고, 선물하거나 되팔 수 있는 등 내 마음껏 처분해도 된다는 사실에서 오는 충족감, 특정 기기나 플랫폼 없이도 언제든 눈으로 확인하거나 손에 들고 메모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접근성, 친구와 돌려서 읽거나 대대로 물려 읽을 수 있는 지속성과 사회성 등은 전자책에선 얻지 못할 종이책의 독특한 매력이다. 이러한 고유한 특성은 종이책이 극도로 가상화한 미래 세계에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것임을 보증한다.
물론, 지난 10년 이상 전 세계 종이책 시장의 정체는 뚜렷하다. 그러나 종이책 출판의 쇠퇴를 선언하기엔 아직 충분치 않다. 2016년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79%는 여전히 종이책으로 읽는 것을 좋아하고, 전자책을 읽거나 오디오북을 듣는 비율은 각각 28%, 14%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전자책과 오디오북 소비가 활발한 미국에서조차 종이책 매출 비중은 전체 시장의 약 70~80%에 달한다. 게다가 성장률은 미약한 편이나, 종이책 시장 자체의 규모는 아직도 조금씩 커지는 중이다. 2022년 세계 종이책 시장 규모는 약 463억 달러로 전년보다 2.2% 성장을 기록했다. 우리는 아직 종이책 출판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
코로나19 이후, 전자책 시장은 2019년 이래 약 20% 내외의 시장점유율을 넘어서 다시 성장을 시작했다. 그러나 전자책 시장 확산이 종이책 독자를 줄이거나 없애리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전자책 읽기의 증가는 종이책 독서를 대체하기보다는 디지털 화면 시장에서 새로운 독자를 창출하는 효과가 더 큰 것 같다. 그 결과가 종이책도 읽고 전자책도 읽는 하이브리드 독자의 증가다. 종이책은 읽지 않고 전자책 독서만 즐기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심지어 완전한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조차 책을 읽을 땐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더 선호한다. 여전히 사람들은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좋아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꺼이 종이책으로 되돌아오려고 한다. 인기 디지털 콘텐츠의 종이책 애장판 또는 특별판 출판의 증가는 디지털 읽기가 종이책 읽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흥미로운 증거이다.
종이책 비중이 쉽게 약해지지 않을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도 있다. 2015년 이후,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독립서점 열풍이다. 미국서점협회(ABA)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의 독립서점 숫자는 2021년 대비 300곳 이상 증가했고, 10곳 중 7곳은 2022년도 매출이 2019년도 매출을 초과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독립서점 숫자도 최근 10년 동안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립서점은 강렬한 큐레이션을 무기 삼아서 지역 독자들이 읽을 만한 좋은 책을 선별해 제공하고, 북 콘서트나 창작 모임 등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아마존 같은 온라인 서점의 도전을 이겨내고 있다. 독립서점이 있는 한, 종이책 출판도 멈추지 않는다.
책 읽는 이들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교류하는 오프라인 독서 공동체의 꾸준한 증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20년 도서산업연구회(BISG) 조사에 따르면, 친구나 지인과 모여서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미국 내 독서 모임 숫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독서 모임 이용자 다수가 전자책보다 종이책 읽기를 선호함을 고려하면, 종이책의 위기나 몰락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건 어리석다.
그러나 종이책의 장래가 밝지만도 않다. 무엇보다 ‘비독서’의 극복이 시급하다. 비독서란, 글은 많이 읽으나 책은 거의 읽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디지털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이기에 글자도 알고 글도 읽을 수 있으나 자발적·적극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인 독서율은 종이책과 전자책을 모두 합쳐도 47.5%에 불과하다. 한 해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 어른이 절반이 넘는 셈이다. 필요할 때는 책을 찾아 읽으나, 평소에는 전혀 책을 읽지 않는 비독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출판의 앞날은 너무나 어둡다.
탄소 제로 문제에도 주목해야 한다. 출판 산업, 특히 종이책 생산은 펄프를 이용하는 등 기후 변화에 악영향을 끼친다. 기후 재앙이 심각해질수록 종이책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윤리적 비판이 증가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재생 용지 사용, 판형 표준화 등을 통한 종이 활용 극대화, 친환경 잉크 개발, 후가공 최소화, 디지털 우선 출판 등 이 문제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는 종이책 출판에서 갈수록 중대한 문제가 될 테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립으로 인한 세계화 해체와 보호무역 대두에 따른 펄프 가격 상승, 운송 및 유통 비용 증가,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 인력 고갈 및 고금리 고물가에 따른 임금 인상 등도 종이책 출판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마도 창의적인 혁신이 없다면 대다수 출판사가 이러한 난관을 넘기 어려울 수 있다.
종이책 출판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전자책, 오디오북, 구독 서비스, 인공지능과 연동한 플랫폼 비즈니스 등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출판에 도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가능한 모든 채널을 이용해 독자와의 접점을 늘리는 사업 다각화 전략 없이 출판은 장기적으로 정체와 위축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 등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저서로 『출판의 미래』, 『같이 읽고 함께 살다』 등이 있으며, 『기억 전달자』, 『고릴라』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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